***이초석: 교회신문 > 제 1273호 사후 심판 때는 각자 일한대로 상을 받는다 (고전9:16~27)
“학생은 졸업 후를 생각하고, 농부는 추수를 위해 땀을 흘린다. 나는 사후 면류관을 보고 충성한다.”
제가 지금 3,000개의 잠언을 쓰고 있는데, 이것은 그중 하나입니다.
맞습니다. 학생은 졸업 후에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농부는 추수 때에 많은 수확을 그리며 땀을 흘립니다. 그리고 국가대표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자신의 한계와 싸우고 있습니다.
8월에 올림픽이 있었지요? 올림픽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마라톤입니다. 그래서 올림픽의 대미는 마라톤이 장식하지요. 이번 파리 올림픽은 예외였지만, 대개 마라톤의 피니쉬라인은 폐막식장인 메인스타디움입니다.
자! 상상해보세요. 마라톤이 시작되고, 선수는 정말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달립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42.195km을 달리는 거죠. 옆을 바라다볼 겨를도 없고, 거리에 나와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답례할 틈도 없이 속도를 조절하고 고통과 싸우며 끝없이 달립니다. 오르막이 심한 마의 구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라토너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장면을 바꾸어 마라토너가 땀을 뻘뻘 흘리며, 헉헉 거리고 달리고 있을 그때 폐막식이 열릴 메인스타디움을 볼까요? 메인스타디움에는 관중이 꽉 차 있고, 그들은 마라토너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광판을 통해 그들의 레이스를 보며 선수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선두주자가 들어오면 일동 기립하여 환호와 박수로 그를 맞이합니다. 이 환호는 마지막 주자가 들어올 때까지 진행됩니다. 이어서 시상식이 열리는데 우승한 선수와 2등, 3등 선수에게 메달과 면류관이 씌워집니다.
저는 이 장면을 영화처럼 눈을 감고 그려봅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달리는 도상 위의 주자, 곧 마라토너입니다. 그 길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라토너인 저와 여러분은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곁눈질하지 않고, 세상 풍류도 누리지 않습니다. 오직 메인스타디움인 천국을 향하여 나와의 싸움을 다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지금 메인스타디움인 천국에서는 이걸 다 전광판을 통해 보고 있고, 예수님을 비롯해 먼저 간 믿음의 선친들, 성도들이 우리를 기다리며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요. 우리가 메인스타디움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기립하여 박수와 환호성으로 우리를 반길 것입니다. 그걸 상상하면 충분히 흥분된 마음으로 달려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메인스타디움에 들어서는 모든 선수들을 향해 관중이 환호하지만, 다 시상대에 오르지는 않습니다. 목에 메달을 걸고 머리에 면류관을 쓰려면 적어도 3등 안에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날 메인스타디움에 들어서면 예수님도, 우리의 선친들도 반기겠지만, 상은 다 받는 게 아닙니다. 다 구원은 얻지만, 상은 다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이왕 신앙생활 했는데 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면류관도 쓰고, 열 고을, 한 고을의 왕도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나아가 예수님과 한 상에 앉아 떡을 떼며 심판하는 그런 영광스러운 꿈도 꾸어 봅시다.
그러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신앙인이 되어야 할까요? 사도 바울에게서 답을 얻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의 소원은 그날에 받을 상에 있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
그래서 그가 어찌 살았습니까?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같은 세상 것들을 다 버리고,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오직 주의 것으로 살았습니다(롬14:8). 주를 위해 생명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았습니다(행20:24).
그는 자신이 우수한 성적으로 우승할 줄 알았습니다. 메인스타디움에 들어가면 예수님이 맨발로 뛰어나와 안아주시고, 의의 면류관을 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당당히 말합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6~8).
그리고 ‘너희도 나처럼 하면 면류관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우승의 면류관을 쓰기 위해 오직 푯대를 향하여 달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시상대에 설 겁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실 포상은 이것입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28~30).
주님과 한 상에 앉아 심판을 한다는데, 길어봐야 100년의 이 세상에 목을 멜 이유가 없지요. 주를 위해 못할 것이 없지요. 누가 비웃으면 어떻습니까? 그날 보면 알게 됩니다. 까무러칠 겁니다.
여러분, 어느 단체나 논공행상(論功行賞)의 이치가 있습니다. 그들 역시 ‘행한 대로’, ‘일한 대로’ 줍니다. 하늘의 상도 동일하게 ‘행한 대로’, ‘일한 대로’ 받습니다. 우리가 맡은 자리에서,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하면 그날에 하나님이 상과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7).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벽을 재건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백성에게 공포합니다. 이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성벽 쌓기에 힘씁니다. 그러나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훼방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롱과 비난을 일삼으며 일하는 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그들을 분열시키려 했습니다. 또한 멀리서 구경만 하던 귀족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훼방자들과 방관자들은 성벽이 재건되었을 때, 그 감격과 기쁨을 결코 함께 누리지 못했고, 되레 책망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도운 자들은 그 공로가 인정되어 보상받습니다.
10월 9일, 서울시청광장에서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위한 평화통일 기도성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왜 자꾸 하냐?’ 하며 성도들의 마음을 흩트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거 안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인 동시에 우리 후손에게 아름다운 이 강산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물려줘야 하기에 바로 우리의 일입니다. 또 ‘뭐 다들 알아서 하겠지.’ 하는 방관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는 훼방자나 일반입니다. 우리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이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를 다 보고 계시고, 기록하셨다가 상으로 갚으실 것입니다.
평화통일이 되어 김일성광장에서 집회하는 꿈을 꿔보세요. 지난주 영상으로 본 인도 뉴델리 집회처럼 갈급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낌없는 칭찬을 물론이고, “너희들 기도로 평화통일이 되었다.”라고 하시며 상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행한 대로’, ‘일한 대로’ 상을 받는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그러니 하는 척하지 말고 열심히, 적극적으로 주의 일에 동참하여 그날에 상과 면류관을 받읍시다.
10월 9일,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위한 평화통일 기도성회를 위해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하고, 물질로 헌신하고, 시간을 내어 봉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백지장도 받들면 낫다 함께 동참하자
졸업장만 받지 말고 우등상을 받는 자가 되자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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