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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사도행전 22장)
믿음의 눈을
열어 주셔서 말씀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깨닫게 하옵시고 말씀으로 가르침 받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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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고 보십니까? 무엇을
근거로 해서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판단하겠습니까?
결국 자기 주관적인 생각이며 판단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을 두고 대화를 하다 보면 ‘너는 왜 네 말만
옳다고 고집 부리느냐?’는 말이 종종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성경의
내용을 두고 대화를 할 때 종종 빠지기
쉬운 것이 자신의 옳음을 증거하는 쪽으로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즉 내가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이 옳다는 것을
고집하는 대화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성도의 대화는 분명
서로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누고 전파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자신의
배후에는 살아계셔서 역사하신 예수님이 계셨음을 증거합니다.
우리가 증거 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서 보여지는 것은 죽은 예수님 뿐입니다
그래서 조그만 일에도 낙심하고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이 아닙니까?
나의 배후에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날마다 담대함과 평안 속에서 살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믿음의 체험입니다.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믿는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가고 말씀에 이끌려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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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리들 앞에서 증거함.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저
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사도행전 22 :1-2)
바울은 유대인들의 오해로 인하여
유대인에게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로마 천부장을 보내사 바울을 결박하여 보호하셨습니다.
바울은 구제헌금을 전달하러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는 구제헌금을 전달할뿐 아니라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이방인과 유대인의 화해를 이루고자하는 소망이 더욱 강했습니다.
바울은
부형 여러분,자신이
이제 여러분에게 드리는 해명을 잘 들어 주시기 바란다고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 자신과 유대인
무리들과의 동질성을 강조하여 자신이 무작정 이스라엘의
전통을 훼방하는 자가 아님을 보이며 자신도 유대인임을 강조합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사도행전 22 :3)
바울은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출신임을 말합니다. 그 성에서 성장했고 가말리엘의 문하
에서 수학했다고 말합니다. 가말리엘은 존경을 받는 율법사였습니다.
바울 자신은 어려서부터
경건하고 보수적인 신앙교육을 받았으며
그가 배운 지식대로 열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바울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교의 신봉자가 되었는 가에 대하여 설명해 나갑니다.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받게 하려고 가더니"
(사도행전 22 :4-5)
바울은 열심을 가지고
이 도를 핍박하여 남자든지 여자든지 잡아
결박하여 옥에 넘기는 일을 했고 예수 믿는 도를 박멸하려했습니다.
무리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을 때
증인들은 옷을 벗어 사울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또 교회를
진멸할 때 각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심지어 멀리 다메색 성에까지
가서 예수 믿는 자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와 형벌을 받게 하려고 많은 무리들을 이끌고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2. 사울을 찾아온 나사렛 예수.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사도행전 22 :6-8)
그러나 바울이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러
정오쯤 되었을 때에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바울을 둘러 비취었습니다.
그리고는 누군가가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오는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는 음성이 들려온 것입니다.
바울이 깜짝 놀라
"주여 뉘시오니이까" 하고 묻자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 라고 예수님께서 대답 하셨습니다.
나사렛에서 자라셨던 예수님
33년간 세상에 계셨던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셔서 40일간 계시다 승천하신 예수님,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
그 예수님께서 핍박자 바울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그를 굴복시키셨습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사도행전 22 :9)
함께 있는 사람은 빛은 보았지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바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는 경험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빛을 보기는 하였으되
그것을 영광스러운 예수의 계시로 보지 못했으며,
또한 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 구체적인 의미는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오직 바울만이 그 순간에 있었던 사건의 경험자이자 완전한
참여자였습니다. 바울은 그 순간 하늘에서 들려오는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었고 그리하여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하려고 했던 일들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라는
물음을 묻게 되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을 체포하려고하는 바울이 예수님께 체포되었습니다.
3. 계획하고 바울을 부르신 예수님.
"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사도행전 22 :10-11)
바울은 예수님께 '주여' 라고 부르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까를 여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그 큰 빛 때문에 앞을 볼 수 없게
되어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 갔습니다.하나님이 아니시고는 아무도 잘못된 지식과
열심을 가진 핍박자 바울을 굴복시키고 변화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사도행전 22 :12-13)
아나니아라 하는 한 사람이 바울을 찾아왔습니다.
아나니아는 율법에 비추어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메섹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핍박자 사울의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으나
주께서 지시하신 대로 순종하여 바울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바울에게 오사 곁에 서서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말했습니다.
바울은 즉시 그를 쳐다보았고 그의 시력은
즉시 회복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나니아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울을 위해 정하신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바울은 육신의 눈만 열린 것이 아니라 영의 눈도 열렸습니다.
4. 바울을 모든 사람의 증인 삼으심.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22 :14-15)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그의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시고 그의 친 음성을 듣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부르신 것은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울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곧 복음전도자로 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바울의 사명이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일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았습니다.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
간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사도행전 22 :16-18)
아나니아는 이제 주저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결단을 촉구하는 것으로,
아직도 확신을 갖지 못하여 망설이는 바울을 책망하는
뜻이라기 보다는 어서 속히 은혜에 참여하라는 초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무명의
아나니아를 통하여 바울을 도왔습니다
바울을 겸손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계승하게 도우셨습니다.
바울은
그 날 그 시간에 아나니아의
권면대로 주의 이름을 불렀고 세례를 받고 죄씻음을 얻었습니다.
바울이 회심한 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때, 즉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는 경험을 한 후
3년간 아라비아에서 체류한 다음 예루살렘을 방문한 때라고 봅니다.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 중에
주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는 바울이
주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장소가 성전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있어 성전은
거룩한 장소이므로 그곳에서 바울이 계시를 받았다면 어느
누구도 그 계시의 진정성에 대해 함부로 시비를 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증언해도 예루살렘 사람들이 듣지 않을 테니
너는 예루살렘을 나가 멀리 이방인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에게 내려진 계시는 즉시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5.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바울.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
(사도행전 22 :19-20)
바울은, 이방인들이 자신이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회당에서 때리고
스데판을 죽이는 것을 찬성하고 증인이 된 것을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회심을 체험한 바울은 자신이 이전에 저지른 일이
하나님을 훼방한 자들을 징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를 믿는 자들을 박해한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과거에 잘못한 일들을 숨기려 하지 않고
솔직히 고백하는 것에서 그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 반문하였습니다.
바울이
저지른 잘못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가담했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비록 자신이 직접 돌을 들어 스데반을 치지는 않았지만
그를 죽이는 일에 찬성하였고 그를 죽이는 일에 가담한 자들의 옷을
지켰다는 점에서 죽이는 일 이상의 책임을 갖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 하는 것까지 저희가
듣다가 소리 질러 가로되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하자 살려
둘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사도행전 22 :21-23)
예수님은 다시 한번 바울을 멀리 이방인에게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의 이야기가 어떤 의도에서 나온
것이든 주님은 재차 그에게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방인이라는 말이 나오자
유대인들은 격분하였습니다. 바울의 조심스러운
연설을 잠잠히 듣던 무리들은 바울의 이방 선교 소명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치 휴화산이 폭발하듯이 다시 아우성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금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그들은 바울을 없이하자 살려둘
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옷을 벗어던지고 티끌을 날렸습니다.
완고한 선민
의식과 이방인에 대한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의 전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대"
(사도행전 22 :24)
천부장은 히브리말을
알아 들을 수 없어서 무슨 일인지 몰랐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영내로 데리고 가서 채찍질하여 심문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말할 때 아람어로 말했으므로 천부장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다만 군중들의 흥분으로
보아 바울에게 무엇인가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채찍은
가죽 끈에다 쇠조각과 뼈를 매단
것이며 이것으로 심하게 맞을 경우 불구자가 되거나 죽기까지도 하였습니다.
이 채찍질은 로마인이 아닌
사람이나 노예를 심문할 때 사용하였는데,
지방에서는 자유인에 대해서도 공공연히 채찍질로 심문하였다고 합니다.
6. 로마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는 바울.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 할 수 있느냐 하니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가로되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사도행전 22 :25-26)
바울은 자신을 치고자
가죽줄로 매자 로마 시민인 나를 재판도 하지 않고
때릴 수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는 뱀처럼 지혜롭게 핍박을 피하였습니다.
당시에는
혐의자에게 채찍질을
가하기 위해 기둥이나 말뚝에 채짹질하기 좋은 위치와 자세로 묶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로마시민의 권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로마 사람들은 발레리안 법(Lex Valeria)과
포르시안 법(Lex Porcia)에 의해 보호를 받았는데, 정당한
재판에 의해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채찍질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이 법을 어기고 함부로 채찍질을 가할 때는
엄격한 처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쥴리안 법
(Lex Julia)은 로마 시민들이 로마 법정에 호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바울이
아무런 혐의도 없고 재판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부당한 채찍질을 가하려 한 데 대해 항의를 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백부장이 천부장에게 이 사람이
로마 시민인데 어찌하려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는 말을 들은 백부장은 매우 당황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고한 로마 시민을 결박하여
채찍질을 가한 것은 명백한 범법(犯法) 행위였고
그것에 대한 처벌이 어떤 것인지는 백부장 본인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
부터로다 하니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사도행전 22 :27-29)
천부장이 네가 로마 시민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백부장의 보고를 들은 천부장은 상당히 당황한 듯합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경우라면 피의자인 바울을 자기에게 불러 사실
여부를 묻는 것이 상례일텐데 지금은 그가 직접 바울에게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 시민인 것을 알고는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천부장은 많은 돈을 들여서 로마 시민권을
산 사람이나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로마
시민권은 로마인이 아니고서는
몇몇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매우 중요한 자격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민권은 정부의 고위층이나
로마를 위해 뛰어난 공헌을 했던 사람들에게만 선별적으로 주어졌습니다.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
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저희 앞에 세우니라"
(사도행전 22 :30)
이튿날 천부장은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고소하는 이유를 알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인이었고
로마법에 의하면 고소한 사람이 있어야만 심문할 수 있었으므로
고소자가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함부로 바울을 심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진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원인 규명을
해야 했고 또 그 문제가 종교적인 것이었으므로 산헤드린을 소집한 것입니다.
이것은 천부장이
바울 사건에 대해서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가지게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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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흥분된 군중에 의한 여론 재판을 피하여 그래도
유대 민족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에서 사실을 규명하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실상 산헤드린은 바울을 적대하고
그를 죽이기까지 하려는 무리들이 가득한 반(反)
기독교 집단이었고 거기에서의 심리(審理) 결과가 바울에게
불리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지만 천부장이 그것까지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여튼 바울이 산헤드린에 서게됨으로써
사건은 또다른 방향으로 전개됩니다.바울은 로마
시민임을 이용하여 채찍을 피하였습니다. 더 나가서 그는 공회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는 뱀처럼 지혜롭고 순결한 사람이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주님이신줄 믿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말씀과 성령으로
날마다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므로 우리는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우리의 영혼을 주님께 의탁하여
지혜와 능력을 공급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핍박자 사울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그를 굴복 시키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땅끝까지 전하는
전도의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였던 것처럼 이 땅에 사는
우리들도 바른 진리와 바른 성경 지식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 8. 7.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