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楚)나라 사람 손숙오(孫叔敖)는 학덕이 높았지만 나이가 들때까지 벼슬을 하지 못한 채 처사로 지냈다.
그런데 당시 재상이던 우구자(虞丘子)가 초나라 장왕(莊王)에게 자기 대신 손숙오를 재상에 추천하였다.
뒤늦게 초나라 재상이 된 손숙오는 백성들을 올바로 가르치고 인도하여 덕의 정치를 구현하였다.
즉 어거지로 백성들에게 요구하지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나라의 법도에 따르도록 유도하였다.
그래서 위아래가 잘 화합하였으며, 세속도 아름답게 보존되었다.
손숙오는 가을과 겨울에 백성들로 하여금 산에 들어가 대나무를 벌채하도록 하였으며,
봄과 여름으로는 물길을 터서 그것들을 뗏목으로 만들어 실어 날랐다.
이처럼 저마다 편리한 것을 연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생활을 윤택하게 꾸려갈 수 있게 하였다.
초나라 백성들은 낮은 수레를 좋아하였다.
장왕이 생각하기에 수레가 낮으면 말이 불편을 느껴 빨리 달리지 못하고 금세 지칠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전시에 활용할 수가 없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여봐라! 백성들에게 수레를 높이 만들도록 하라.”
이때 손숙오가 나서서 말하였다.
“대왕! 영을 자주 내리는 것은 백성들이 따를 바를 모르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왕께서 반드시 수레를 높이고 싶으면,
수레보다 먼저 문지방을 높이도록 영을 내리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것은 어째서 그렇소?”
장왕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물었다.
“대체로 수레를 타는 사람들은 군자들입니다. 군자들은 수레에서 내려 걷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수레에서 내리면서 동시에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수레의 높이에 문지방을 맞춘 것입니다.
만약 문지방을 높이게 되면 자연스레 수레의 높이 역시 그에 맞게 고치게 될 것입니다.”
“옳은 얘기요.”
장왕은 곧 손숙오의 말대로 문지방을 높이라는 영을 내렸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나자 초나라의 길을 지나다니는 수레는 모두 높아졌다.
말들도 힘차게 달려 보기가 좋았다.
손숙오는 이처럼 반드시 가르치지 않더라도 백성들이 따르도록 하는 덕의 정치를 베풀었다.
이것은 또한 자연에 역행하지 않고, 순리에 따르는 정치의 도라고도 할 수 있었다.
순리에 따르는 정치를 하면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보고서 배우고,
멀리 있는 사람은 들어서 배우기 때문에 백성을 억압하지 않고도 자연스레 본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손숙오는 세 차례나 재상의 자리에 올랐으나 기뻐하지 않았고,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 날 때도 결코 후회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재능이 마땅히 그 자리를 얻을 만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또 그 자리를 물러남에 있어서도 그것이 자신의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인물로 읽는 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