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지킬 섬(FRB의 발원지)
1910년 11월 22일 밤, 한 대의 기차가 뉴욕 근교로부터 남쪽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그 중 한 칸은 완전히 밀폐되었고, 모든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 칸의 사람들은 모두 미국의 중요한 은행가들이었으며, 그들 중 자신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열차의 종점은 수백 킬로미터 밖에 있는 조지아 주의 지킬 섬이었다.
조지아 주 지킬 섬은 미국의 백만장자들이 겨울철 휴양지로 즐겨 찾는 곳이다.
J.P. 모건을 위시한 경제계 거물들이 지킬 섬에 사냥 클럽을 세웠는데, 지구상 6분의 1의 부가 이 클럽 회원의 손에 집중되어 있다.
회원권은 양도가 안 되고 계승만 가능하다. 어느 날 클럽 측은 누군가 이 클럽을 2주간 사용할 텐데, 그 기간에는 어떤 회원도 출입을 금지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클럽의 모든 직원은 대륙에서 선발해 오며, 이곳에 도착하는 손님에게는 이름만 부르는 것이 허용되고 성을 호칭할 수 없었다. 클럽 주변 80킬로미터 반경에 대한 기자들의 출입도 통제했다.
모든 준비가 진행되고 손님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 비밀회의의 참석자 중에는 다음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 넬슨 올드리치(Nelson Aldrich)-상원의원, 국가화폐위원회 의장, 넬슨 록펠러의 외조부
* A. 피아트 앤드루(A. Piatt Andrew)-미국 재무부차관보
* 프랭크 밴더리프(Frank Vanderlip)-뉴욕 내셔널시티은행장
* 헨리 P. 데이비슨(Henry P. Davison)-JP모건 사장
* 찰스 D. 노턴(Charles D. Norton)-뉴욕 퍼스트내셔널은행장
* 벤저민 스트롱(Benjamin Strong)-JP. 모건의 오른팔
* 폴 와버그(Paul Warburg)-독일 유대계 이민자, 1901년 미국에 옴, 큰롭 사(Kuhn Loeb and Company)사장, 로스차일드 가문의 영국과 프랑스 대리인, 미연방준비은행의 총 설계사, 미연방준비은행의 1대 이사
이렇게 쟁쟁한 거물들이 그저 사냥이나 하겠다고 작은 외딴섬까지 행차했을 리는 없었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중요한 문건인 ‘FRB’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폴 와버그는 전문가답게 은행 업무의 세세한 부분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각종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일일이 대답해 줄 뿐 아니라, 자세한 역사적 내력까지 막힘없이 설명해주었다. 모두가 은행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에 고개를 숙였다. 폴은 자연스럽게 문건의 주요 기안자이자 해설자가 되었다.
넬슨 올드리치는 참석자 중 유일하게 금융의 비전문가였다. 그는 문건 내용이 정치적 요구에 정확히 들어맞아 의회에서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책임을 맡았다. 다른 사람들은 각 은행 그룹의 이익을 대표했다. 이들은 폴이 제기한 방안을 두고 아흐레 동안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의견 일치를 보였다.
1907년의 은행 위기 이후 미국인의 눈에 비친 은행가들의 이미지는 형편없었다. 은행가가 제정에 참여한 법안을 감히 드러내놓고 지지하는 의원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부득이 뉴욕에서 외딴섬까지 가서 문건의 초안을 작성하기로 한 것이다. 초안에서는 중앙은행이라는 명칭이 문제가 되었다. 제퍼슨 대통령 시절부터 중앙은행이라는 이름은 영국의 국제 금융재벌과 비밀리에 결탁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에 폴은 ‘FRB’ 라는 이름으로 주의를 분산시켰다. 그러나 명칭에 상관없이 새로운 문건으로 탄생하는 은행은 중앙은행의 직능을 그대로 유지했다. FRB도 잉글랜드은행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보유한 주식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를 통해 거액의 이익을 창출할 것이다.
앞선 두 중앙은행과 FRB의 차이점이 있다면, 주식 가운데 원래 20%를 차지하던 정부 지분이 없어지고 ‘순수’한 민영 중앙은행으로 거듭났다는 점이다.
FRB에 힘을 실어주고자 폴은 이를 관장하는 문제에서 교묘한 방안을 제시했다.
“의회가 FRB를 통제하고, 정부는 이사회 대표 자격을 가진다. 그러나 이사회의 다수 구성원은 은행협회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통제한다.”
나중에 폴은 마지막 제안 부분을
“이사회 구성원은 미국 대통령이 임명한다.”
라고 정정했다.
그러나 이사회의 진정한 기능은 ‘연방자문위원회’가 관장하며, 연방자문위원회와 이사회는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어 ‘토론’한다. 연방자문위원회의 구성원은 FRB의 이사 12명이 결정하는데, 이 점은 의식적으로 대중에게 알리지 않았다.
폴이 직면한 또 하나의 난제는 뉴욕 은행가들이 FRB를 주도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숨기느냐 하는 것이었다.
19세기 이래 미국 중서부의 중소 상인과 농장주들은 금융위기의 쓴맛을 톡톡히 본 터라 동부 출신 은행가들에 대한 원한이 사무쳐 있었다. 그러므로 이 지역의 의원들은 은행가들이 주도하는 중앙은행을 지지할 수 없었다.
폴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2개의 연방준비은행 지점으로 전체 시스템을 구성한다는 기발한 해결 방안을 설계했다. 금융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미국 화폐와 신용대출이 뉴욕에 고도로 집중된 상태에서 각 지역에 FRB를 설립한다는 것은 중앙은행의 업무가 뉴욕에 집중되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데 불과하다.
폴의 선견지명은 FRB 본부를 빈번하게 지령을 주고받는 금융 수도 뉴욕이 아니라 거기서 멀리 떨어진 정치 수도 워싱턴에 두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럼으로써 뉴욕 은행재벌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다소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폴의 또 다른 고민은 FRB의 12개 산하 지역은행의 관리자를 선출하는 문제 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넬슨 올드리치가 의회에서 쌓은 경험을 십분 발휘 했다. 그는 중서부의 의원들이 뉴욕 은행가들에게 적의를 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통제가 잘 안 되는 국면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지역은행의 이사는 의회에서 간여하지 않고 반드시 대통령이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법적으로 큰 모순이 있었다. 헌법 제1장 제8절에 의회가 화폐의 발행과 관리를 담당한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회를 배제하면 FRB가 처음부터 헌법을 위반한다는 허점을 보이게 된다.
과연 이 문제는 나중에 의원들이 FRB를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렇게 많은 준비 끝에 이 법안은 엄연히 미국 헌법의 분권과 상호 견제를 시험한다는 명목으로 출현했다. 대통령이 임명하고 의회가 심의하며 독립 인사를 이사로 임명하고 은행가가 고문이 되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설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