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희용 (11) 운명처럼 만난 말라위… 선교지 사역 후원에 10의 9조
김아영2026. 5. 25. 03:06
회계사로, 아내는 학원 운영 정착
2013년 선교 사명 받은 아내와 함께
말라위 선교사 후원 위한 만남 계기
아내는 현장 선교사, 난 지원자 자원
박희용(왼쪽) 유성희 선교사 부부가 2019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 그레이스미션대(GMU)에서 열린 총회세계선교회(GMS) 미주 선교훈련 수료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은지의 큰 수술이 끝난 뒤 9개월간 사투를 벌였던 아내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2001년 학원을 시작했다. 은지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무럭무럭 자라났다. 심장이 약해 달리기는 못 했지만 미국 최우수 명문고 옥스퍼드 아카데미(Oxford Academy)에서 늘 상위권을 유지할 만큼 명석했다. 나를 닮아 수학과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성품은 올곧은 엄마를 쏙 빼닮았다.
아내의 학원은 날로 번창해 원생 수가 400명에 이르는 대형 학원 ‘페이스 아카데미(Pace Academy)’로 성장했다. 나 역시 미국 공인회계사(CPA)로서 번듯한 개인 사무실을 갖추게 됐다. 열심히 살다 보니 이민 사회에서 부와 명성이 따라왔고 저축도 늘었다. 우리는 다락방 순장 순모로서 교회의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봉사하며 남부럽지 않은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안정적인 삶이 지속하던 2013년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내의 마음에 깊은 음성을 들려주셨다. ‘성희야, 정말 수고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은지의 생명만큼 네 인생도 소중하단다. 이대로 살다 갈 인생이 아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이민자 자녀와 상처 입은 청소년을 돌보며 숨 가쁘게 달려온 아내의 삶을 뒤흔든 부르심이었다. 얼마 후 아내는 예배 중 환상을 보았다. 반으로 갈라진 지구본 위로 교회와 세계 선교지, 병상에서 신음하는 성도들의 외로운 예배가 빛줄기 돼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었다. 그러곤 주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가장 기뻐하는 예배는 신음하며 드리는 예배란다. 네가 어릴 적 꿈꾸던 선교를 다시 해라.’
가장 낮은 곳으로 가라는 뜻이었다. 몇 달 뒤 우리 부부는 운명처럼 한 말라위 선교사를 만나 준비한 헌금을 전했다. 그러자 선교사가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힘들어 선교를 포기하려던 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교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아내가 이름도 낯선 아프리카 말라위로 가겠다고 했을 때 나 역시 반대할 수 없었다.
가난과 굶주림으로 얼룩졌던 내 청소년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희용아, 네가 고통스러워할 때 난 한 번도 널 놓은 적 없다.’ 주님의 말씀이 떠오르며 말라위의 아이들이 과거 내 모습처럼 다가왔다. 결국 우리 가족은 ‘생활인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단했다.
학원은 직원 체제로 재편됐고 아내는 1년에 9개월씩 말라위 청년들과 함께 뒹구는 오지 현장 선교사로 살았다. 내 회계사 사무실은 사역을 후원하고 말라위를 알리는 선교 기지가 됐다. 우리는 현재 수입의 대부분을 주님께 드리는 ‘10의 9조’의 삶을 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선교지가 한계에 부딪히자 우리는 노후 자금으로 모아둔 저축까지 모두 제단에 올려놓았다.
물질을 움켜쥐고 있을 때는 늘 부족했지만 하나님 손에 올려드리자 비로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경제적 자유가 찾아왔다. 삭개오처럼 그리고 과부의 두 렙돈처럼 전부를 던진 순종의 자리에서 사역은 오히려 5배나 성장했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세상의 부유함은 잃었을지언정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부유함을 얻었다. 이제 우리 부부는 물질의 매임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바라보며 기쁘게 순종의 걸음을 옮긴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