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시 63:1~4).
광야에서 주를 찬양하라~~~~~물이 없고 마르고 곤핍한 광야생활은 결코 우리가 반길만한 곳이 아니기에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고 두려운 곳이다. 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광야에는 여러 시련과 고통이 있지만 반드시 다 끝이 나고, 곧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유대 광야에 피신하여 머물고 있으면서 오히려 불평과 불만을 하기보다는 여호와의 구원의 은총으로 갈급한 심령의 해소를 갈망하고 있다. 한 나라의 왕이며 뛰어난 용사였던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다른 사람도 아닌 친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광야 길을 지나는 그의 비참함과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갈망하는 그의 심정의 애절함은 그 황량한 유대 광야 이상으로 타는 듯 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갈망하는 다윗의 모습은 실로 생명과 만족과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으면 삭막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해 주고 있다. 하지만 연약한 우리들은 대적이 핍박을 하고 곤고함이 밀어닥칠 때 주님을 생각하지 못하고 종종 좌절하고 낙심한다. 마치 예수님을 바라보고 물 위를 걸어가던 베드로가 파도를 보고 두려워하여 물에 빠지고 말았듯이, 다윗도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이기에 대적에게 쫓겨 광야에까지 피신해 온 상황인지라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두려움을 주를 갈망하며 사모하는 심정으로 극복해 내고 도리어 힘께 목청을 돋우어 주님을 찬양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 40년의 광야 생활을 통해 말씀과 순종의 훈련을 시키시고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광야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길목에 불과하고 가나안이 본향이다. 이 세상은 성도가 들어갈 본향 천국이 아니고, 천국에 들어가는 길목에 불과하다. 광야에는 각종 두려움과 추위와 배고픔과 갈증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메추리와 만나, 생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셨다. 그러기에 다윗은 그러한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광야에서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은 절대 초월자이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가장 궁극적인 구속사적 관계 속에서만 그 존재의 기쁨과 참 만족을 누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 속에서 비록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광야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이를 핑계로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피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생명과 영혼의 참 만족을 주시는 주 하나님과의 교제에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두려워 떨고 슬퍼할 수밖에 없는 메마른 광야와 같은 현 세상 속에서도 오히려 다윗처럼 주님을 인하여 기뻐하고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 때, 광야의 시험과정을 통과하고 가나안의 참 행복과 기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최종 목적지는 결코 광야가 아닌 가나안임을 믿고 광야를 극복하는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댓글
광야에서 주를 찬양하라
.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유대 광야에 피신하여 머물고 있으면서 오히려 불평과 불만을 하기보다는 여호와의 구원의 은총으로 갈급한 심령의 해소를 갈망하고 있다.
친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세상에 이럴수가요!
실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은 절대 초월자이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가장 궁극적인 구속사적 관계 속에서만 그 존재의 기쁨과 참 만족을 누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생명과 영혼의 참 만족을 주시는 주 하나님과의 교제에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