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속냐!' 꽤 오랜 시간, LG 팬들의 즐거운 시간은 4월까지였습니다. 그러던 LG가 어느새 포스트시즌은 당연히 갈 만한 팀으로 성장했는데요. 더 높은 곳을 바라는 팬들의 눈에는 부족한 점부터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팬들이 잠시나마 힐링타임을 가질 수 있도록 희망찬 이야기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LG를 슬로우스타터라 부를 수 있을까?
최근 몇 시즌 LG는 후반기에 매우 강했다. 2014년 LG의 후반기 반등은 '기적'이라 불렸다. 2016년 대반격도 드라마에 가까웠다. 올해 또한 후반기 시작이 상쾌하다. 반대로 초반엔 매번 힘들었다.
'DTD'와의 작별은 달갑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몇 년 째 전반기에는 갈팡질팡 해왔다는 이야기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엉터리 영어 DTD(down team is down)는 암흑기 LG의 치부였다. 4~5월 하얗게 불태워 상위권을 유지하다 여름이 지나면 순위표 저 밑으로 내려가곤 했다. 최근은 반대다. 초중반까지 하위권에서 허덕인다. 8월부터 치고 올라간다. 그런데 매번 너무 밑에서 시작한다. 돌아보면 항상 전반기가 아쉽다.
그나마 올해는 2014년, 2016년과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쳤다. 하지만 똑같이 4위로 시즌을 마감한다면 어차피 제자리걸음인 셈이다.
그간의 패턴을 돌아보면 전반기는 항상 어수선했다. 캠프 때 야심차게 계획한 플랜A가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었다. 전반기는 항상 이를 수습하는 과정이었다. 차츰 팀이 안정되면서 후반기부터 제 실력이 나왔다. 5년 연속 리그를 제패한 삼성 왕조의 '여름성'과는 다르다. 삼성 또한 시즌 초 하위권에 머물렀다. 여름부터 달리기 시작해 여름성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삼성은 단지 주전 선수들의 경기 감각적인 문제로 인해 시동이 늦었을 뿐이었다. BEST9이 수시로 바뀌는 LG가 경기 감각을 탓 할 수는 없다. 항상 시작부터 어그러지는 시즌 계획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2014년 6월 LG는 승패 마진 -14까지 추락했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김기태 감독이 4월, 사상 초유의 초단기 자진사퇴로 물러난 여파가 오래 갔다. 양상문 감독이 5월 부임해 묵묵히 수습했다. 7월 13승 7패, 8월 12승 9패, 9월 이후 10승 7패로 선전했다. 7월 이후 승패 마진이 +12로 반등해 4위까지 점프했다. 특별한 전력보강이나 파격수는 없었다. 선수단이 하나로 똘똘 뭉쳐 일궈낸 기적으로 평가됐다.
2015년은 토종 원투펀치 우규민, 류제국 없이 개막을 맞았다. 소사, 루카스 외에 임지섭, 임정우, 장진용이 선발 로테이션을 돌았다. LG 코칭스태프는 우규민, 류제국이 돌아오는 5월까지 버티기만 하면 이후 승부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시즌 초 불펜 과부하를 감수했다. 4월은 13승 13패 승률 5할로 선전했다. 오히려 우규민과 류제국이 돌아온 5월 8승 17패로 추락했다. 후유증이 빠르게 드러나 발목을 잡힌 것이다. LG의 2015시즌은 여기서 끝났다.
하지만 이때의 실패로 LG는 크게 깨달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리는 금물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눈앞의 결과 보다는 시즌을 길게 보는 인내심을 배웠다. 절대 서두르지 않는 투수 운용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불펜 관리만큼은 LG가 10개 구단 최고다.
지난해에는 7월까지 40승 51패로 고전했다. 외국인투수가 문제였다. 스캇 코프랜드가 4월 22일에 첫 등판했다. LG는 외국인선수 1명 없이 15경기를 치렀다. 그나마도 코프랜드는 중도 퇴출 됐을 정도로 활약이 미약했다. 7월 데이비드 허프를 대체 선수로 데려오면서 서서히 안정을 찾았다. 8월에 16승 10패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9월 이후에도 15승 10패, 상승세를 유지했다. 시즌 승률 5할을 맞추며 4위로 페넌트레이스를 마감했다.
올해는 타선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리드오프로 점찍은 김용의의 페이스가 지난해 만 못했다. 채은성도 중심타순의 한 자리를 확실하게 지켜주리라 기대했지만 부진했다. 채은성은 지난해 타율 3할, 81타점을 치며 잠재력을 터뜨린 듯 했으나 올해에는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지난해 26홈런 101타점을 쓸어담은 외국인타자 루이스 히메네스는 슬럼프를 이겨내지 못하고 교체됐다.
캠프 때 구상했던 타순도 계획처럼 되지 않았다. 오지환, 이병규(7)와 손주인이 절정의 타격감을 뽐냈다. 오지환을 2번, 이병규를 6~7번, 손주인을 9번에 배치하면 1번부터 9번까지 짜임새 있는 타선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오지환은 체력 문제를 노출해 하위타순으로 돌아왔고 이병규는 2군에 있다. 손주인은 주전 경쟁 중이다. 그나마 이형종, 이천웅, 양석환 등이 계산 이상의 성장세를 과시해 어느 정도 상쇄됐다. 천만다행이었다.
마운드에서는 허프, 임정우가 빠졌지만 차우찬, 신정락이 빈자리를 잘 채워 큰 티가 나지 않았다. 덕분에 LG는 올해 또한 전반기를 생각대로 치르지 못했음에도 41승 40패, 양상문 감독 부임 이후 최고의 성적으로 반환점을 돌았다.
양상문 감독은 '경험 부족'에서 원인을 찾았다. 양 감독은 "아무래도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돼있다 보니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경기를 치를수록 경험치가 쌓이면서 시즌 중, 후반 한층 성장한 경기력이 나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시즌 초반이 항상 예상 밖으로 흐르는 까닭이 바로 경험, 다시 말하면 LG가 현재 치중하고 있는 리빌딩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 LG가 국가대표 야수 한 명 없는 라인업으로 4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놀랍다. 냉정히 당장 다른 팀에 갔을 때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타자를 자신 있게 꼽기 힘들다. 상수가 아닌 변수로 가득한 신예들로는 전력이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다. 1군급 타자 한 명을 육성하는 데 최소 3년이 걸린다 치면 LG는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황당한 수비 실수나 주루사가 잦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LG의 젊은 선수들의 주루 플레이를 유심히 보면 주루코치를 보지 않는 장면이 종종 눈에 띈다. 잘못된 타구 판단으로 한 베이스를 더 못 가거나, 더 가려다가 아웃 된다. 우물쭈물하다가 추가 진루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선수들을 완전히 믿고 맡길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벤치의 개입이 잦은 까닭이다. 그렇다고 작전 수행 능력도 뛰어난 편은 아니라 실패가 많다. 이런 숱한 실패 속에서 선수들이 깨닫고 성장하길 바라는 LG의 고육지책이다.
어찌 됐든 후반기에라도 감을 잡아 신바람을 낼 수 있다는 능력 자체는 긍정적이다. 박용택은 "우리 팀이 후반기에 확실히 잘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런 것들은 엄청 중요하다. 사실 원동력은 나도 잘 모르겠다. 한 번, 두 번 이런 게 반복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믿음이 생긴다. 우리는 후반기 충분히 힘 낼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을 갖는다. 최근에 그런 분위기를 우리가 잘 만들었다. 서로 밖으로 꺼내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다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LG가 가을야구에 만족한다면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 야수진 완성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지 모르지만 투수진은 리그 정상급이다. 포스트시즌은 충분한 전력이다. 하지만 2~3년 안에 정상을 노리려면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후반기에만 강한 팀이 아니라 전반기부터 탄탄한 경기력이 필요하다.
LG가 강팀 포스를 내뿜던 4월초와 7월말에는 확실한 해결사가 있었다. 4월에는 이형종이, 7월에는 박용택이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타석에서의 위압감이 대단했다. 이런 타자가 타순에 한 명만 포진해도 LG는 쉽게 연승을 달렸다. 4월의 이형종, 7월의 박용택처럼 중심을 잡아줄 타자가 최소한 한 두명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주 가까운 예로 LG는 차우찬을 FA로 영입하며 투수진을 완성했다. 리그 정상급 로테이션을 구축하면서 동시에 김대현, 임찬규 등 안정적인 5선발 육성 환경을 조성했고 불펜 안정화까지 1석 3조의 시너지 효과를 누렸다.
다행히 남은 경기 아직 희망적인 요소가 많다. 새 외국인타자 제임스 로니가 세 경기 연속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빠르게 적응 중이다. 3번 타순에서 13경기 타율 0.333, 홈런 2개, OPS 0.941이다. 박용택이 1번으로 올라가 전반기보다는 훨씬 까다로운 타선을 이뤘다. 투수진에서는 마무리 임정우와 에이스 허프가 차례로 돌아온다. LG의 후반기 역습은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