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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궁(神弓) 12장 第 12 章 끊질긴 추적(追跡). 1. "그래! 소림사로 가자. 전에 그 정공이란 중이 꼭 한 번 놀러 오라 고 하지 않았던가! 또 내 무공이 형편없으니 소림사 중들에게 좀 더 가르쳐 달라고 해야겠다." 생각을 정한 도일봉은 터덜터덜 걸었다. 등에는 작은 보따리 하나가 달려 있었다. 난장이 왜소자가 도망을 치고 있는한 장보도가 가짜라는 사실은 발 각되지 않을 것이고, 왜소자가 오래, 멀리 달아날수록 도일봉에겐 유 리하다. 도일봉은 왜소자가 평생 도망이나 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 다. 그리고 하대치와 거래를 생각할때면 웃움이 터져나오곤 했다. 가 짜보자기 하나에 보석이 한주머니니 정말 그럴듯한 거래였다. 왜소자 까지 중간에 나서 도와 주었으니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도일봉은 그와같은 가자보자기가 두 개나 더 있다. 무삼수와 헤어지 기전, 그들은 가짜보자기를 네장이나 만들어 두었다. 그중 한 장은 무삼수가 가져갔다. 한 장을 왜소자가 훔처 달아났으니 아직 두장이 나 남았다. 무삼수는 그 림에도 소질이 있어 진짜 그림과는 비슷한 모습이다. 하지만 진짜는 그림이 아니라 자수다. 진짜는 도일봉의 몸 에 잘 간직되어 있다. 하루를 걸었어도 따라오는 자들이 없다. 도일봉은 그래도 항시 경계 하며 길을 걸었다. 마음이 다소 안정되자 걱정거리가 떠올랐다. 바로 무삼수의 안전이다. 만약 무삼수가 죽어버리기라도 했다면 그건 순전 히 자기 탓이다. 더욱이 무삼수에게 해준 일이라곤 아직 하나도 없지 않은가? 고생만 시켰을 뿐이다. 그것도 걱정이지만 그가 죽어 버린다 면 자신이 마음먹고 있는 장군부의 첫 인물이 죽어버리는 것이 되므 로 운수불길(運輸不吉)이라 해야겠다. "빌어먹을 무삼수. 지금 살아 있는게야 죽은게야? 어디에 잘 있는게 야?" 하지만 무삼수는 비록 나이가 마놓진 않지만 세상 경험이 많고 또 약삭빠르고, 임기응변(臨機應變)에 능하니 무사히 도망쳤을지도 모른 다. 도일봉은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몇일을 걷다보니 어느새 숭산(崇山) 초입(初入)에 이르러 있었다. 중원오악(中原五嶽)중 중악(中嶽)으로 불리는 숭산은 그야말로 웅장 하고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사천지방의 그 험하고 위태로 운 봉우리들과는 또다른 풍모를 지니고 있다. 거대하면서도 우아하 고, 험하면서도 빼어난 기상이 어려있다. 당당한 봉우리들, 골골마다 흐르는 물줄기는 그야말로 일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숭산 그 자체만으로도 이토록 빼어나건만, 소실봉(少室峰)아래 소림 보찰(少林寶刹)은 이 웅장한 숭상의 위명을 한층 더하고 있었다. 천 년보다도 전에, 서족의 보리달마께서 동진(東進)하여 선종(禪宗)을 전파한 이래 소림보찰은 중원불교의 선종일맥을 대표해 왔다. 소실봉 아래 자리잡은 이 천년고찰(千年古刹)은 풍우에 씻겨 고색창연(古色 蒼然)하건만 그 명성만큼은 세월이 갈수록 높아만 졌다. 당나라이후 저 북쪽의 오랑캐를 맞아 싸운 무승(武僧)들이래, 소림승들은 또 무 승(武僧)으로써 큰 명성을 떨쳐왔다. 왕조는 변해도 소림은 여전히 굳게 버텨오지 않았던가! 누가 있어 감히 이 천년고찰을 넘보리요! 도일봉은 그동안 물어물러 여기가지 왔고, 또 물어가며 소림사를 찾 아 걸었다. 그는 날이 갈수록 경계를 더하고, 사람들 눈을 피했다. 무림인들과 떨어진지 벌써 수일째다. 왜소자는 이미 가짜를알아보았 을 것이고, 지금쯤 다시 좇아오고 있을 것이다. 뒤를 이어 그 많은 무림인들이 전부 좇아올 것이다. 그들을 섕각하면 지금도 머리털이 곤두설 지경이다. 도일봉은 고개를 내두르며 걸음을 재촉했다. 하루를 더 걷자 소실봉아래 작은 망을로 접어들었다. 도일봉은 연일 쉬지않고 달리듯 했는지라 녹초가 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쉬어야 했다. 그는 허름한 객점을 찾아들었다. 하룻밤 쉬고 곧 소림사로 오 를 생각이다. 몇일동안 잠을 자지 않고, 거의 노숙(露宿)을 한 도일 봉은 방을 잡자마자 잠에 떨어졌다. 언 듯 깨어 일어나니 벌써 아침 이다. 야채와 만두로 대충 허기를 떼운 도일봉은 서둘러 객점을 빠저 나왔다. 막 문을 나서려는데 한사람이 불쑥 안으로 들어왔다. 폭삭 늙어버린 거지꼴의 늙은이다. 하마터면 몸을 부디쳐 넘어질뻔 했다. "어! 왜 이래?" 도일봉이 한쪽으로 비켜서는데 노인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같은 방향으로 한걸음 비켰다. 도일봉이 반대로 몸을 비키자 노인도 똑같 이 반대로 비켰다. 두 번이나 똑같은 짓을 한 두사람은 허허 웃고 말 았다. 노인이 불쑥 손을 내밀어 도일봉의 어깨를 잡아 옆으로 비켜놓 고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도일봉은 잠시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 다 객점을 나섰다. 부지런히 걸어 점심때가 되었을 때, 도일봉은 작은 시냇물을 발견하 고 그곳 옆에 앉아 다리쉼을 하며 마른음식을 꺼내 먹었다. 음식을 먹다가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재빨리 황룡궁에 시위를 걸었다. 다람쥐란 놈이었다. 도일봉은 자신이 너무 과민하다고 웃으 며 시위를 풀어 품속에 갈무리했다. 그런데. "어라?" 도일봉은 깜짝 놀라 품속을 더듬었다. 없다! 재빨리 품 속의 물건들 을 모조리 꺼내 보았지만 역시 없다. 단도가 있고, 장군전이 있고, 보석주머니가 있었지만 두장의 가짜지도는 없었다. 오직 그것들만 감 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어찌된 일이지?" 객점에서 나올때까지는 분명 품속에 있었다. 나올 때 확인하지 않았 던가! 어디서 빠졌을까? 계단대 앞에서 빠졌을까? "그 늙은이!" 객점을 나설 때 부딪친 그 늙은이. 꾀제제한 차림에 허연 머리칼. 염소수염. 홀홀 거리며 웃을 때 보이던 이빠진 모습. 그 늙은이가 가 로챈 것이 분명하다. "큰일났다!" 가짜 장보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장보도가 자신의 수중 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그건 곧 왜소자의 가짜 장보도가 들통났다는 말이된다. 더구나 그 늙은이가 가짜를 훔 쳐가느 것을 보면 소면선생과 장종인, 하대치등도 벌써 따라왔다는 말과 같다. "제기랄!" 소면선생이나 당종인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고, 눈이 파란 양도깨비 하대치를 떠올리면 오금이 저린다. 도일봉은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 작했다. 이젠 오로지 소림사로 달려가 숨는 도리밖에 없다. 출가한 중들이 보물에 욕심낼리 없으니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살려달라고 부 탁하는 도리밖에 없다. 날이 어두워질 때가지 마구 달렸으나 길을 잘못 들었는지 소림사는 보이지 않았다. 꽤 깊이 들어 왔는데도 절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가 어딘지 분갈할 수도 없다. 도일봉은 달리는 것을 그만두고 카 다란 바위밑에 쭈구리고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소림사는 어디 있는거야? 제기..." 장보도 하나 때문에 이 무슨 죽을 고생이런가! 하지만 결코 내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도일봉은 본래 욕심이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사람이다. 대보물 을 캐내 그 돈으로 사람들을 모우고 한 번 거창하게 일을 벌여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이다. 그만한 소원을 이루려면 이만한 고생은 감수 해야 한다. 고생이 대수로운 것은 아니다. 목숨이 문제다. 목숨이 없 고서야 어찌 소원을 이룰 것인가! 도일봉은 바위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주위가 삽시간에 조용해 졌다. 새 소리도 없고, 벌래소리도 없다. 도일봉은 사냥꾼이 다. 유능한 사냥꾼. 레럼 갑자기 찾아드는 숲의 조용함에는 분명 이 유가 있다. 무언가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는 것. 도일봉은 촉각을 곤 두세우고 황룡궁에 시위를 걸어 장군전을 장전했다. 앞쪽 숲이 움직 였다. 짐승이면 다행이고, 사람이면 큰일이다. 하지만 우선 죽여놓고 볼 일이다. 도일봉은 장군전을 날렸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가 없다. 도일봉은 다시 장군전을 걸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아무것도 없다. 그때. 툭! 무언가 옆에 떨어졌다. 도일봉은 몸을 돌리며 번개처럼 장군전을 날 렸다. 그러나 역시 허탕이다. 누군가 장난치고 있다. 도일봉은 재빨 리 주위를 살폈다. "홀 홀 홀." 앉아있던 바위 위에서 괴상한 웃움소리가 들려왔다. 도일종은 내심 깜짝 놀랐으나 벼락이 치듯 몸을 돌리며 연속해서 세대의 장군전을 발사하며 웃움소리가 들린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런데 바위 위의 인 물은 몸을 마치 미꾸라지처럼 움직여 그 빠른 장군전 세대를 모두 피 해냈다. 이처럼 가볍게 피하는 것을 보고 도일봉은 더욱 경계를 하며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섰다. "어라!" 도일봉은 그만 어리둥절 해졌다. 바위 위에서 괴상한 웃움을 흘리고 있는 자는 다름아니라 객점에서 잠깐 부딪쳤던 그 폭삭 늙은 노인이 었다. 가짜 장보도를 소매치기한 바로 그 꾀제제한 노인이다. "고작 예까지 밖에 못왔나? 홀 홀." 노인이 입을 벌여 말할 때 도일봉은 또다시 벼락같이 한 대의 장군 전을 날렸다. 이번엔 그 어느때보다 힘껏 날린 장군전이다. 그러나 역시 노인은 몸을 가볍게 흔들어 피해버렸다. 이 꾀제제한 노인의 무 공은 그야말로 측량할 길이 없어서 소름이 오싹 끼쳤다. 장군전으론 어쩌지 못할 노인이다. 노인이 다시 바람 빠지는 웃움을 흘렸다. "홀 홀 홀. 그것으로야 안되지." 목소리를 들어보면 적의가 있는건 아니다. 도일봉은 두렵기도 했으 나 한편 오기가 치밀어 몇발 앞으로 걸어가 몸을 홱 돌려 등을 보이 고 말했다. "흥. 난 등을 대고는 말하지 않소이다." 노인은 도일봉의 행동에 눈을 똥그랗게 떳다. 그리고는 홀홀 이빠진 웃움을 날리며 호통을 쳤다. "끼놈! 버릇이 고약쿠나. 네놈은 존장을 대하는 법도 배워먹지 못했 느냐?" "흥. 존장 좋아하시네! 남의 물건이나 슬쩍 훔치는 재주 좋은 날치 기는 어디가고, 이와같이 점잖은 노인네가 갑자기 나타났을까? 제 기... 알 수가 없군!" "요런! 고약한 놈이로다! 늙은이에게 욕을 다 하는구나. 요즘 젊은 것들은 점점 더 버릇이 없어진단 말이야. 우선 네놈의 버릇부터 고쳐 놓아야 겠구나. 홀홀홀." 이가 빠져 흘러 나오는 웃움은 정말 듣기가 거북했다. 도일봉은 이 노인네와 손발로 싸워봐야 괜시리 낭패만 당할 것 같아 아예 시위를 풀어 갈무리했다. 그렇더라도 어찌 말로까지 지겠는가! "윗 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 늙은이의 행실이 그러할진데 어 찌 후배를 탓하는지 모르겠군? 요즘 노인네들은 점점 요상해진단 말 씀이야?" 노인은 도일봉의 말에 그만 입을 딱 벌렸다.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 질 않는다. 강호를 주름잡고 떠돈지 어언 수십년. 이같이 막되먹은 자식은 보다보다 처음이다. 그래도 자신은 무림의 명숙이요, 정의를 지키며 살아온 인생이다. 그간 누구에게도 욕을 먹지 않았는데, 이 놈은 대놓고 욕지거리다.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노인이 단번에 바 위에서 도일봉 앞으로 뛰어내려 호통을 내질렀다. "네 이놈! 네놈의 방자함이 실로 말로는 다 할 수 없도록 지나치구 나! 네놈이 나의 행실을 어찌 안다고 그따위 망발(妄發)을 입에 담느 냐? 네놈이 이 늙은이 행실을 보기라도 했니? 했어?" 삿대질 만으로는 모자란 감이 있는지 침까지 마구 튀며 발을 동동 구르는데, 억울해도 크게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도일봉은 노인의 어 린애같은 분노에 그만 실소를 짓고 잸날았다. 자고로 늙으면 애가 된 다더니! 웃움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도일봉은 짐짓 점 잖은 척 입을 열었다. "말과 행동은 다르기가 쉽지요. 노인장은 아침에 내 물건을 훔쳐가 지 않았겠소? 그 물건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 목숨이나 한가진데, 그 걸 훔쳐갔으니 내 목숨을 ?친 것이나 다름 없지요., 선배가 되어 후 배의 목숨을 해쳤으니 내 말이 다 틀리다고는 할 수 없을겝니다." 노인은 점잖은 공격을 당하자 무안하고 답답했는지 오히려 호통을 쳤다. "그따위 가짜를 어디 쓴단 말이냐? 내가 그걸 슬쩍 했기로서니 그것 이 어째서 네놈을 해친 것이 뇌느냐 말야? 응?" 노인은 말을 하면서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두장의 보자기가 둘둘 말려 천천히 날아왔다. 보자기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도일봉은 크게 괴이쩍게 생각했다. 무릇 물건을 던질 때, 던져내는 힘에 따라 그 속도가 빠라거나 늦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느리고 빠름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혹 팔 힘이 좋고 내력을 익힌 사람이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는 던질 수 있다. 하지만 내공이 측량할길 없이 높다해도 느리게 던져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도 지금 이 두루말이는 이렇듯 천천히 날아오지 않는가! 이로 미루어 이 꾀제제한 노인의 내 공력이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차라 리 요술 같기만 했다. 도일봉은 오싹 소름이 끼쳤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 알 수 없어 두루마리를 잦아채는 동시에 뒤 로 재빨리 물러섰다. 그렇게 물러 났는데도 불구하고두루마리에는 아직도 남은 힘이 대단하여 대여섯 발자국이나 더 밀려나고사야 몸을 바로 할 수 있었다. 두루마리를 품에 간직하는 동시에 도일봉은 황룡 궁에 시위를 걸고 장군전을 먹였다. "못된 늙은이! 그따위 요술로 사람을 희롱해? 흥. 말은 번지르르 하 지만 역시 헛것에 불과해. 덤벼 보시지!" 노인은 도일봉을 놀려주고 시험하느라 일부로 두루마리에 암경(暗 勁)을 넣어 보냈다. 그런데 도일봉이 비록 뒤로 십여보나 물러서긴 했지만 그건 스스로 물러서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이 수 포로돌아간 셈이다. 도일봉의 호통에 노인은 안색을 붉혔지만 암경 을 요술이라 부르는 말에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홀홀.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로고! 내공력을 보고 어째서 요술이라 하는게냐? 돌대가리는 할 수 없구나! 그나저나 네놈은 몇대 얻어맞아 야 정신을 차릴 놈이야." "흥. 그 따위가 무슨 무공이람? 난 요술이나 부리는 노인네와는 싸 우지 않소이다. 그리고 난 갈 길이 바빠 이만 갈터이니 노인장은 요 술이나 계속 부려보시오." "홀홀. 가겠단 말이지? 밑천을 털어놓지 않으면 어림없을걸?" "이야! 이 늙은이가 이제 강도짓까지 하려드는군! 이 늙은이야. 내 가 가진거라곤 가짜하고 달랑 두쪽밖에 없어! 난 아직 장가도 못가봤 는데, 그것까지 달란 말이야?" "이놈이 정말 돌대가리로구나! 이놈아, 내가 네 두쪽을 떼어다가 어 디 쓰겠니? 회를 처 먹을 것도 아니고. 무공이나 선보이고 가란 말이 다." 도일봉은 그만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노인과는 더 이상 놀 고 싶지 않았다. 지금 한창 놈들이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것 같아 뒷 통수가 가려운데, 어찌 실성기 있는 노인과 놀고 있겠는가! 놈들이 달려와 가려운 뒷통수라도 긁어 주겠다고 덤벼들면 큰일아닌가 말이 다. "노인네와 놀 시간 없소." 도일봉은 걸었던 시위를 풀어 갈무리하고, 보따리를 챙겨 떠나려 했 다. 그러나 노인은 도일봉을 가로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홀홀. 도망쳐 보겠다고? 이놈아, 이 노인네에게 잘못했다고 빌기 전에는 갈 수 없는줄 알아라!" 도일봉이 벌컥 화를 내며 황룡궁을 들어 노인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 다. "노인네야. 내가 실력이 없어 물러서는줄 알아?" 그러나 노인은 살짝 물러서 피하며 약을 올렸다. "요놈아. 그처럼 느려 터져서 어디다 쓰겠니? 그것도 무공이라더냐? 굼뱅이가 따로 없구나!" 도일봉은 약이 오르고 화가 치밀어 황룡궁을 아래위로 마구 휘두르 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그러나 노인은 욕을 할수록 더욱 재미있다 며 홀홀 이빠진 웃움을 흘렸고, 그 몸놀림이 마치 행운유수(行運流 水)와 같고 혹은 술취한 사람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황룡궁 은 노인의 옷자락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했다. 노인은 계속 약을 올 려데며 도일봉이 날뛰도록 만들었다. 두사람은 마치 달빛아래 춤이라 도 추는 듯 움직였다. 자고로, 늙으면 애와 같다!는 말이 있더니 이 노인은 자기가 장보도 때문에 왔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듯 신이 나 있다. 하지만 도일봉은 짜증만 더해갔다. 무슨 수를 써보아도 노인은 어쩔 도리가 없고, 놈 들은 또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예감이 좋지 않아 자꾸만 뒷통수가 가렵다. 그렇다고 노인에게서 빠저나갈 수도 없다. 짜증이 치밀어 버 럭버럭 소리를 지르던 도일봉은 문득 좋은 꾀가 생각나 호통을 내질 렀다. "빌어먹을 늙은이가 사람을 끌어 들이는구나!" 소리친 도일봉은 노인을 돌아보지도 않고 곧 숲으로 뛰어들었다. 노 인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홀홀. 아주 멍청이는 이닌걸!이놈아, 그렇다고 조심하지 않으면 큰 일치룬다. 놈들은 무서워!" 노인의 말이 어쩐지 괴이쩍어 고개를 갸웃 거리는데, 옆에서 불쑥 칼날이 튀어나오며 어깨아래를 할퀴고 지나갔다. 도일봉은 그야말로 혼비백산하여 바닥을 굴렀다. 다른 쪽에서 또다시 칼바람이 몰아쳐 왔다. "진짜로구나!" 도일봉은 사실, 놈들이 진짜로 와 있는줄은 몰랐다. 다만 노인을 놀 라게 하고 도망칠 생각에서 숲으로 뛰어든 것이다. 미리 알았다면 이 토록 대책없이 뛰어 들었겠는가? 하지만 노인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 던 모양이다. "빌어먹을!" 욕을 하며 몰아처 오는 칼바람을 향해 황룡궁을 올려쳤다. 병기가 서로 부딪치며 요란한 쇳소리를 냈다. 상대가 밀려나는 틈을 이용해 도일봉은 벌떡 몸을 일으켜 한쪽을 향해 뛰었다. 곳곳에서 검과 칼이 튀어나와 위협했고, 살갖을 할퀴었다. 도일봉은 정신을 차릴수가 없 었다. 품에서 금검까지 뽑아들고 마구 휘두르며 무작정 앞만 보고 달 렸다. 다행히 산을 잘 알고, 숲에 익숙하며, 그나마 노인이 알게모르게 도 와주고 있기에 도망이라도 칠 수 있었다. 노인의 무공은 그야말로 놀 라와서 앞을 막는 자들은 낙화유수(落花流水)처럼 쓰러졌다. 무림인 들 또한 노인을 잘 알고 있는지, 될 수 있으면 노인앞을 막지 않았 다. 오히려 일부로 피하는 실정이다. 그렇더라도 불쑥불쑥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칼바람과 사람들은 정말 지겹다. 도일봉은 무림인들이 노인을 향해 '황개(黃 )어르신'이니, '개방장 로( 幇長老)님'이니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십분 존경과 양보가 담 긴 목소리 들이다. 강호초출(江湖初出), 무림의 애송이는 모르는 일 이지만 이 황개노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천만인(千萬人) 거지떼( 幇)의 최고 배분을 지닌 인물이고, 무림계의 원로로써 그 지닌바 무 공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늙은이다. 이런 내력의 황개노인이 이런 흙탕물에까지 끼어든 것을 보면 장보도가 대단하긴 대단한 물건인가 보다. 어찌되었든, 도일봉은 이 노인과 한바탕 신나는 놀이(?)를 한 덕에 죽지않고 달아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일봉은 여전히 '못 된 늙은이' '빌어먹을 늙은이'하며 욕을 달고 도망치고 있었다. 원망 할 상대가 있으면 그만큼 위로가 된다. 도일봉은 그럴리야 없겠지만, 황개노인이 사람들을 끌어 왔다고 내내 마구 욕을 퍼붓고, 원망하고 있었다. 도일봉은 숨을 헐덕거렸다. 정말 야차같은 놈들이다. 지칠줄도 모르 는 거머리다. 암내맡은 숫캐처럼 따라붙는다. 그럴수록 도일봉은 오 기 치솟았다. 이젠 죽는 한이 있어도 장보도는 내놓지 않겠다고 수십 번, 수백번 속으로 다짐했다. 정말 죽을때가 되면 장보도를 갈갈이 찢어버리고 죽겠다고 수도없이 맹세했다. 후두둑 후두둑! 비가지 내리기 시작했다. 도일봉은 오히려 다행이라 고 생각했다. 날이 이미 어두워 졌는데도 놈들은 흔적을 찾아 좇고 있으니, 이 비가 흔적을 지워줄 것이다. 도일봉은 젖먹던 힘까지 모 조리 뽑아내어 달리고 또 달렸다. 이젠 따라붙어 칼질하는 놈도 없 다. 나뭇가지가 사정없이 얼굴을 때려도 그는 달렸다. 지쳐서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되었을 때에야 도일봉은 커다란 소나 무 밑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너무 힘들다. 입고 있는 옷이 병장기와 나뭇가지에 걸려 걸레가 되다시피 했다. 옷을 벗고 상처를 살펴보니 어깨와 등, 옆구리, 팔뚝 등에 가볍고 깊은 상처가 가득했고, 온몸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상처를 대충이나마 치료하고, 보따리 속의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소나무에 기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새 새 벽이 오고 있었다. 도일봉은 더 머물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 서려다 가 갑자기 인상을 팍 찡그렸다. 뒤로 길게 내려뜨리고 있던 머리칼이 어깨 아래에서 싹뜩 잘려나가고 없는 것이다. "제기랄! 하마터면 목이 싹뚝 잘려 나갈번한 것도 모르고 있었군! 개같은 놈들!"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 도일봉은 지친몸을 끌고 숲을 헤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나무들이 워낙 우거져 바로 앞도 분간하기 힘들다. 헤치고 나가기란 더욱 힘들 다. 한나절을 그렇게 헤맨 끝에 한 봉우리로 오를 수 있었다. 비는 여전히 주룩주룩 내렸고, 뿌연 우막 저 아래로 한줄기 물길이 보였 다. 막 봉우리에 올라 숨을 몰아쉬는데 갑자기 귀신보다 무서운 사람 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도노제. 우린 또 만나게 되었구려. 간 밤엔 고생좀 한 모양 이오?" 하대치였다. 금포를 걸치고 세가닥 교룡수염을 멋지게 기른 눈이 파 란 양도깨비. 뒷짐쥔 모습은 여전히 여유롭다. 하대치 주위엔 몇 명 의 금의졸개들이 둘러서 있었다. 기법을 한 도일봉은 당장 뺑소니를 치려했다. 그러나 봉우리 아랫쪽은 이미 금의졸개들로 가득하다. 도 일봉은 다급하기 이를데 없었으나 짐짓 여유를 꾸미며 허리를 곧게 펴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헤헤. 우리사이엔 과연 인연이 깊습니다그려. 내 어젯밤부터 커다 란 금색쥐에게 좇겨 고생이 정말 말씀이 아니었지요. 하대형의 모습 도 과히 좋은것만은 아닙니다그려? 꼭 물에 빠진 생쥐꼴인걸? 하핫, 제기랄 것!" 욕하는 데에야 밑천이 들지 않는다고! 무공이야 져도 말로까지 질 필요는 없다. 눈이 파란 양도깨비 하대치는 쥐새끼라고 욕을 먹고서 도 눈썹만 약간 찡그렸을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만약 도일봉 이 그같은 욕을 먹었다면 죽인다고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이런것 만 봐도 하대치의 정신수양이 보통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하대치가 웃었다. "그래. 더 갈곳이 있소. 도노제?" 도일봉은 짐짓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더 갈 곳이 있다면 내가 하대형에게 굳이 폐를 끼치러 왔겠소? 인 심좋은 하대형이 이 궁지에 빠진 도노제좀 도와 주시구려." "흐음. 도노제가 이지경이 되었는데, 하대형이 응당 도와 줘야지요. 하지만 그 전에 거래를 끝마쳐야죠? 저 산 밑에는 지금 수 많은 채무 자들이 도노제를 보겠다고 잔득 벼르고 있어요. 그러니 지금 다시 정 당한 거래를 한다면 예전의 조건은 그대로 유지되어 도노제의 그 귀 중한 어깨위의 물건만은 온전하리다." 도일봉은 흐! 헛바람을 들이키며 목을 쓰다듬었다. "이녀석은 확실히 귀중한 물건이지요. 이번에 하대형이 내놓을 거래 물은 뭐요?" "본인은 이미 물건을 넘겼고, 도노제의 물건만 내게 넘겨주면 되지! 물론 진품으로 말이야. 그러면 목위의 물건은 상여금(賞與金)으로 받 는 셈이오." "불공평하오! 나도 물건을 이미 넘겼지 않소? 못지킨건 하대형 탓이 외다." "물건이 가짜라면 흥정이 될 수 없는 법! 이번엔 진품을 내놓아야 할 것이오." "그래도 불공평하오! 난 그 물건이 진짜라고 말한적이 없으니 내가 하대형을 속인건 아니외다. 더군다니 하대형은 진품을 보아도 알아보 지 못할 것이오." 그때. 옆에 있는 자가 호통을 내질렀다. "이 쥐새끼! 말이 많구나! 어서 내놓지 못해!" 곰같은 녀석이 커다란 대감도(大嵌刀)를 들고 있다. 도일봉은 본체 도 안하고 하대꾿치를 향해 말을 계속했다. "어쩌시겠소? 또 다른 흥정을 해볼 의향이 있소?" 하대치는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곰같은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곰같은 녀석은 동료들과 함께 도일봉을 향해 다가왔다. 도일봉은 인 상을 쓰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한아름이나 되는 나무에 막혀 더 물러날 수도 없었다. 나무 뒤로는 바로 경사가 심한 언덕이다. 도일 봉은 또다른 가짜 장보도 한 장을 꺼내 두 손으로 잡고 호통쳤다. "멈추시오! 그렇지 않으면...이걸...찢어 버리겠소!" 하대치는 여전히 웃기만 했다. 대신 곰같은 녀석이 곧장 달려들어 대감도를 후려쳤다. 깜짝 놀란 도일봉은 재빨리 나무를 끼고 돌았다. 곰같은 녀석은 나무를 몇바뀌 돌며 공격하다가 짜증이 났는지 그만 대감도를 휘둘러 나무 밑둥을 후려갈겼다. 단 한 번의 칼질에 그 큰 나무가 잘려 우수수 무너졌다. 도일봉은 재빨리 물러서 나무를 피했 다. 도일봉은 곰같은 녀석과 쓰러진 나무를 번갈아 바라보며 놀랍다 는 표정을 과장되이 지어보였다. 곰같은 녀석이 재차 달려드는데, 도 일봉은 휘휘 손을 내저었다. "됐소 되었어! 그만 합시다. 그대는 역시 힘이 세구려. 난 이렇듯 단숨에 나무를 자르는 무공은 할 줄 모른다오." 도일봉은 말을 하며 언덕 끝머리에 겨우 걸쳐 있는 나무를 바라보았 다. 또 괴주머니가 터졌다. 생각을 정리하며 도일봉은 능글맞은 웃움 을 흘렸다. "하대형과 부하들은 과연 대단하군요. 난 저와같은 부하도 없고, 저 와같은 힘도 없소이다. 좋소. 이렇게 합시다. 나도 저렇듯 단번에 나 무를 벨 수 있는지 한 번 시험해 본 후 물건을 넘겨주겟소이다. 그 큰칼을 좀 빌려봅시다." 곰같은 녀석이 두눈을 부릅뜨자 도일봉이 말을 이었다. "누가 떼먹기라도 한답디까? 잠깐 빌려 달라는데 왠 눈을 그리 사납 게 뜨고 그려쇼?" 곰같은 녀석이 하대치를 향해 결정을 구했다. 하대치가 고개를 끄덕 였다. "도노제의 마지막 소원인데 들어줘야지." 도일봉에게 날고 기는 재주가 있다해도 이미 잡아놓은 고기라 생각 하는 모양이었다. 도일봉은 곰같은 녀석에게서 대감도를 받아들고 이리저리 휘둘러 본 후 으악! 요란한 기합을 넣으며 아래로 내리쳤다. 그러나 한 번으로 는 어림도 없었다. "이게! 이게!" 두 번, 세 번 내리쳐서야 나무를 자를 수 있었다. 나무는 일장가량 되는 통나무가 되어 언덕에 걸쳐 있었다. 도일봉은 화가 난 얼굴로 하대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가짜 장보도를 흔들어 보였다. |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잘밨어요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ㅋㅋ
즐감요
장보도가 잇는지 어덕데 알앗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