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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궁(神弓) 제13장
제 13 장. 소림사의 밤.
3.
황개노인이 표정을 살피며 웃었다.
"어디 하대치 뿐이겠느냐! 무림인들 모두가 지금 소실산에 모여들었
다. 홀홀."
"아니, 그놈들은 또 왜 몰려들어 질랄들이랍니까? 물건은 찢어버린지
오랜데?"
"욘석아. 가짜를 가지고 큰소리 칠테냐? 하대치란 놈도 그만한 눈치쯤
은 있어! 하지만 그놈 목적
이 꼭 장보도에 국한된 것은 아닌 모양이더라."
"무슨 소리요? 그럼, 그놈이 소림사라도 때려부수려 한단 말이오?"
"허! 홀홀. 이놈, 아주 멍청이는 아닌데그래? 하대치 그놈이 어떤 놈
인지는 몰라도 보통놈이 아
니야. 그놈은 네놈이 여기있다고 떠벌이는 한편, 소림사가 장보도를 차
지했다고 소문을 냈더구나.
무림인들을 살살 부추겨 소림사를 어찌해볼 심산이지. 몇일내로 일이 터
질게야. 홀홀홀."
도일봉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하대치라면 그 목적이 어디있는지
몰라도 능히 그럴 수 있
는 인물이다.
전에 문국환에게 들었던 무림분쟁(武林分爭)에 대한 일이 떠올랐다. 하대
치의 꼬락서니를 보면 이
분쟁에 하대치의 검은손길이 다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연 듯 떠
올랐다.
"그놈에 대해 아는게 있소?"
"나도 몰라. 의심스런 점은 있지만 증거가 없어. 그놈이 관련되어
있더라도 그는 하수인(下手
人)에 지나지 않아. 우두머리가 밖으로 나돌기야 하겠느냐?"
도일봉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의혈단(義血團)!"
황개노인이 눈을 크게 떳다.
"어라? 이놈보게! 너도 의혈단을 아느냐? 하대치가 의혈단의 하수인
이라는 것은 능히 짐작
하고 남을 일이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야."
"헌데, 노인은 어째서 그같은 말을 내게 하는게요? 나도 나쁜놈인
지 모르는데? 그리고 난
노인네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요런 고얀! 네놈은 보물을 찾아 뭘 하려고 움켜쥐고 내놓지 않는게
냐?"
"쳇. 노인네는 내 부하도 아닌데 그건 왜 묻소? 비밀을 알면 해롭다는
것도 모르쇼? 남이야 뭘
하든!"
"이런 고연놈. 하지만 장보도는 너무 많은 사람을 해치고 있어! 이젠
그 살상극(殺傷劇)을 멈
춰야 해. 이 늙은이, 네놈에게 장보도를 내놓으라고는 않겠다. 하지만
네놈이 그걸 가지고 나쁜짓
을 해댄다면 내가 대매에 때려죽이고 말겠다! 홀홀. 이런소린 할 것없
고. 네놈은 어째서 소림사
제자되기를 거절했느냐? 무공을 배울 수 있었을텐데?"
"째째한 중놈들. 내가 아무리 무공이 부족하기로서니 중놈들 제자가 되
어 중들의 명령을 듣는다
면 그게 어디 말이 되겠소? 가르쳐주지 않겠다면 할 수 없는 일이
지....."
하쉽기는 한지 말을 하면서도 입맛을 쩍쩍 다셨다. 만약 지금 이 실
력으로 소림사를 나서기만
한다면 하대치 같은 자들에게 꼼짝없이 당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귀운
장의 소남천에게도 끝내 이
길 수 없으리라. 도일봉은 은근한 눈빛으로 황개노인을 바라보았다.
'혹시 이 노인네가 무공을 가르쳐 준다면 못이기는척 해서라도 배워둬
야 겠다. 노인네의 무공이
워낙 강하니 배꾿워두면 쓸모가 많을거야.'
"안돼지 안돼! 내 밑천을 너같은 버릇없는 놈에게 내줄수는 없지. 아
암. 홀홀홀."
도일봉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말투였다.
도일봉이 짜증을 냈다.
"이런...제기! 노인네가 요술만 부리는군. 노인네 밑천이 얼마나 된다
고 그리 째째하게 구는거
요? 대단한 것도 아니면서...."
요는 뻐기지말고 가르쳐 달라는 말이다. 노인이 크게 웃었다.
"홀홀홀...낄낄낄. 요놈좀 보게? 싹싹 빌어도 힘든 판인데 고개를
뻣뻣이 들고 나서? 너같이
버릇없는 놈에게 그런 재주를 가르치면 얼마나 기고만장 날뛸지 뻔히 보
이는데?"
"정 손해보기 힘들다면 우리 서로 배우도록 합시다. 내가 배운 것은
소림사의 일지선이라오.
죽을 때 짊어지고 가는것도 아닌데 째째하게 굴지 말아요."
"홀홀홀. 요놈아. 나도 일지선을 배워 너처럼 유배생활을 하란 말이
냐? 술도 없고, 고기도 없는
이곳에서?"
"노인네처럼 귀신같은 사람을 소림사 중들이 왜 잡아놓겠소? 잡힌다
해도 요술을 부려 도망치
면 될일 아니오? 싫으면 가보쇼. 아는 것이나 더 연습해 둬야겠소."
"홀홀홀홀."
황개노인은 얼마간 더 도일봉을 애타게 만들다가 선심쓰듯 한가지 무
공을 가르쳐 주었다. 바
로 황개노인 비전의 취팔선보(醉八仙步)라는 신번이었다. 이것은 발걸음
을 통해 상대의 움직임을
무력화시키는 보법으로써 보법중에서는 단연 발군이라 할만했다. 도일봉
은 무공을 배워야 살길이
열린다고 믿고 온 힘을 다해 가르치는대로 배우고 수련했다. 황개노인
이 왜 굳이 좇아와 무공을
가르치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황개노인은 노인네대로 생각이 있었다. 첫째, 장보도 때문에 일어나는
살상극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게하기 위해서다. 도일봉이 장보도를 가지고 있다해서 살상을 다
막을수는 없지만, 도일봉에
게는 나름대로 유리한 점이 있다. 무림의 모든 사람들이 도일봉에게 장
보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점, 대소림사가 도일봉을 보호하고 있다는 점, 또한 거기에 개방의 황
개가 도일봉을 보호하고 있
다는 것이 알려지면 무림인들도 원만하면 대들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
다. 둘째는 신비한 하대치
때문이다. 황개노인은 하대치에게 어느정도 의심을 품고 있다. 의혈단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심말
이다. 도일봉에게 무공을 가르쳐두면 도일봉은 분명 하대치를 찾아 복수
를 하려할 것이다. 도일봉
이 하대치를 마구 들쑤셔 놓으면 어쩌면 하대치의 정체를 파악할 기회
가 올지도 모른다. 이런 생
각으로 황개노인은 일부로 도일봉을 찾아와 약간의 정보를 주고 또 무공
까지 전해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벌인 일은 아니지만 시간을 지연시켜 하대치등이 몰
려와 도일봉을 궁지에 빠
지게한 도의적 책임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일봉은 황개노인의 취팔선보를 쉽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가르쳐
주는대로 열심히 익혔다.
이걸 배워야 소림사를 벗어날 수 있고, 또 하대치를 찾아 복수를 할 수
있다 생각하면 꾀부릴 시
간이 아깝다. 하다못해 잠자고 밥먹는 것조차 잊고 취팔선보에 매달렸다.
황개노인은 이같이 열심
히 파고드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흐뭇해 하며 홀홀 거렸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소림사 중들이 없는 곳에서 가르쳤다. 남의 집에와서 다른집 무공을 가
르친다는 것은 아무래도
예의가 아니겠기 때문이리라. 두사람이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 사이에 어
쩐 일인지 십팔나한은 거
의 보이지 않았다. 소림사 밖에 한떼의 사람들이 몰려와 소란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이십여일이 흘러가 버렸다. 도일봉은 이제 취팔선보의 요지
(要旨)와 동작을 몸과 마
음으로 완전히 숙지했다. 아직 자유롭게 펼치지 못하는 것은 연륜(年輪)
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황개노인은 덤이라며 혈에 관한 것들도 가르쳐 주었다. 혈도의 운행
과 역할, 급소 등을 가르
쳤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도일봉은 끝내 점혈법에 대해서는 다 배우지
못했다. 황개노인은 도일봉
이 점혈법에 대해서는 소질없음을 알아채고 억지로 가르치진 않았다. 인
연없는 것에 매달려 시간
끌 필요는 없는 것이다. 도일봉은 대충의 혈도만 공부했을뿐 오직 취팔
선보만 거듭 수련했다.
두사람이 한구석에서 무공을 가르치고 배우고 있을 때. 소림사 밖에
서는 매우 기니박한 상
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림인들이 점차 앙심을 품고 소림사에 대들기 시
작한 것이다. 물론 소림사
가 장보도를 내놓지 않는다고 시비를 거는 것이고, 하대치일당의 부추
김을 받은 것이다. 두사람
도 이같은 사정을 알고는 있었지만 나설 입장이 아니다. 다만 무공만 열
심히 익히고 수련했다.
계절은 벌써 초여름에 접어들어 있었다. 도일봉은 하루종일 취팔선보
에 빠져 땀을 흘리다가 일
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을 자다 요란한 소란에 깨어났다. 황개노인도 밖
에 나와 있었다.
"놈들이 처들어온 건가요?"
황개노인의 안색이 무거웠다.
"놈들이 왔지. 소림사엔 재주많은 중들이 많고, 무공도 하나같이 뛰어
나니 놈들을 충분히 막을
수있을게야. 하지만 희생도 크겠지. 놈들이 절에 불이라도 지른다면 큰
일 아닌가 말이다. 네놈은
어쩌려느냐?"
"어찌 하다니요? 내 비록 소림사에 잡혀있는 몸이긴 해도 목숨을 구
원 받았는데 보고만 있겠
어요? 제기. 한바탕 해보지요 뭐."
"좋아. 홀홀. 하지만 네놈이 나서봐야 도움될 일은 하나도 없어.
그러니 우린 숨어서 절에
불이라도 지르는 놈을 찾아보자. 자. 가자."
"좋습니다. 잠시 기다려요."
도일봉은 잠시 방으로 들어갔다. 물건을 챙기고 승복으로 갈아입은 모
습으로 나왔다. 손에는 홍
옥죽장을 짚고 있었다. 황개노인이 그 꼴을 보고 웃었다.
"중이 싫다는 녀석이 왠 행각승(行脚僧) 차림세냐? 홀홀. 탁발(托
鉢)이라도 나가련?"
"헤헤. 은혜는 은혜고, 싫은건 싫은거지요. 내가 이런 좋은 기회를
마다할 것 같아요? 일이 끝
나면 곧바로 탁발에 나서야지요. 아미타불."
"이런 고연놈! 네놈의 그 도망치는 재주만은 정말 장하구나. 탁발승과
늙은거지라...거참. 잘
어울리겠는걸! 어서 가자."
두사람은 한바탕 웃으며 자리를 떳다. 혹여 미리 침입한 놈들이 없나
절 안을 한바뀌 돈 후 그
들은 산문밖 넓은 공터로 나가보았다. 그곳엔 이미 소림백팔나한대진(少
林百八羅漢大陣)이 장엄하
게 펼쳐져 있고, 중들의 손에는 저마다 선장, 계도 등의 병장기가 들려
있었다.
맞은편에는 이백여명이 넘는 무림인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각기 복장들은
달랐지만 분위기는 살벌
했다.
소림사의 선두에는 심선당수좌와 계율당수좌가 버티고 있었으며 십팔
나한들이 호위하고 섯다.
무림인들중에서도 몇놈이 앞에 나서 있는데, 도일봉이 아는 얼굴이라고
는 손사문과 당종인 정도
뿐이다. 황개노인이 그자들이 누군지 알려주었다.
"저기 얼굴이 길죽한 놈은 활염라(活閻羅) 장도(張桃)란 놈인데 간
계(奸計)가 많다. 앞엣놈은
화태세(和態歲) 배문신(裵雯愼), 다음이 신탄(神彈) 이림(李林)이다.
모두 녹림(綠林)의 거마효웅
(巨魔梟雄)들이라 할 수 있는 놈들이다. 좋지 않은 놈들이야. 저런 놈
들이 강호상에 활개치고 다
니니 무림이 어지러울 수 밖에!
다음놈은 누군지 모르겠다. 아마 하대치의 수하쯤 되겠지. 그리고 앞에
나서지 않은 자들중에는
무림의 명문대파출신 제자들도 적지 않다. 얼굴이 팔리지 않도록 숨어
있을 뿐이야. 하지만 이들
역시 보도에 대한 욕심이 많지. 그런 자들은 더욱 조심해야 해. 하대치
란 놈은 지금쯤 어딘가에
숨어서 수작을 부리고 있을게야."
"그처럼 못된 놈들이라면 내가 당장 황룡궁으로 쏘아 잡지요? 살려둘
필요가 있나요?"
"우린 하대치만 찾으면 된다."
두사람이 말하고 있는 중에도 양쪽의 대표들은 계속해서 언쟁을 벌이
고 있었다. 활염라 장도
란 놈이 연신 쌍소리를 해대며 계율당수좌를 도발케 유도했으며, 배문신
이란 놈은 한술 더 떠서
삿대질까지 마구 해대고있었다. 그들은 소림사가 흑야묘와 장보도를 차
지하고 내놓지 않는다고 떠
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소림사가 보물에 욕심이 동했다고 슬슬 부추
겼다. 그때. 이림이란 이룡
산(二龍山) 도적놈이 모두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떠들었다.
"소림사의 고승들은 이제보니 보물에 욕심이 있었군! 청빈(淸貧)한 대
사(大師)들이 염불엔 관심
없고, 보물에 눈이 멀었군그래. 이 어찌 기사(奇事)가 아니리요!"
목소리에 내공력을 실어 말하니 멀리에서도 똑똑히 들렸다. 계율당
수좌가 발끈해서 호통을 내
질렀다.
"이시주는 어찌 그런 해괴한 소리를 하시오?"
분노한 계율당수좌 목소리는 귀가 울릴 정도였다. 장도란 놈이 빈정거
렸다.
"하핫. 그렇다면 어째서 흑야묘란 도둑고양이를 감싸고 내놓지 않는단
말요? 그놈이 장보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 아니오? 흑야묘란 놈이 소림사
에 있는데 이제 대사들이
그놈을 내놓지 않고 변호하니 우리로선 대사들이 보물에 욕심이 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구려.
그 흑야묘란 놈을 이 자리에 끌어내어 모두에게 장보도가 어떤 것인지
구경이나 시켜주시오."
도일봉은 장도란 놈이 거듭 자신을 걸고 넘어지며 쌍소리를 해대자 화가
치림었다. 단번에 홍옥죽
장에서 황룡궁을 꺼내들고 한 대 먹여주려 했다. 황개노인이 말렸다.
"네놈이 나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여기 그대로 있거라."
황개노인이 공터 한가운데로 걸어나갔다. 도일봉은 노인네가 어쩌려
는지 알 수 없어 성질을
꾹꾹 눌러 참았다. 그러나 장도란 놈 주둥이에 한방 먹여주겠다는 생각
엔 변함이 없었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순간에 황개노인이 중간에 딱 버티고 서자 떠
들던 놈들도 일시 입을 다
물었다. 중인들을 한바뀌 휘 둘러본 황개노인은 장도 앞으로 다가가 갑자
기 손을 휘둘러 보기좋게
따귀를 올려붙였다. 노인이 버럭 호통을 내질렀다.
"버르장머리 없는놈! 네놈은 애비에미도 없이 자랐더냐? 네간 쥐새끼
가 어찌 대사들 앞에 나서
헛소리를 지껄여! 네놈을 살려 두었다가는 애들 성격 벌릴테니 아예 이
자리에서 죽여 없애야겠
다! 네이놈. 썩 목을 내밀어라!"
이 의외의 사태에 중인들은 그 만 어안이 벙벙 했다.
황개노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림의 최고원로에 속하고, 지닌바 무공또
한 측량할 길이 없다. 시
람들은 그래서 이 노인에게 깍득했고, 한 수 접어주는 실정이다. 따귀
를 얻어맞은 장도는 어쩔줄
모르고 얼굴색만 수시로 변했다. 이때. 같은 녹림출신 이림이가 나섰다.
"노선배님. 이 자리는 흑야묘란 놈을 성토하는 자리올시다. 버릇을
가르치려 하신다면 후에
자리를 바꾸 하시지요?"
"홀홀. 요놈봐라. 네놈이 이룡산에 처박혀 강도짓을 일삼더니 제법
간덩이가 부풀었구나? 주둥
이 닥치고 있어! 더 나서면 당장 혀를 뽑아 버릴테다!"
노인의 으름장에 이림은 본전도 못찾고 얼굴만 빨게졌다. 황개노인이
앞에 선 여섯놈을 차례차
례 지적하며 말했다.
"너희놈들은 누구의 사주를 받아 이 자리에 섰느냐?"
여섯놈이 일시에 표정을 굳쳤다. 이들은 그래도 한 집안의 우두머리
들로써 크게 내력이 있는
자들이다. 누구의 사주를 받을 인물들이 아니다. 소면선생 손사문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
"여보시오 노인장. 아무리 선배라해도 너무 지나치지 않소? 누가 누구
에게 사주를 받았단 말이
오?"
황개노인이 냉소를 쳤다.
"호! 그래? 네가 사주를 받지 않았다니 참 장하구나!
사주라도 받았다면 그래도 나을뻔 했는데 말이다. 네놈들은 그래도 대가
리가 큰 놈들인데 사주받은
처지도 아니면서 남의 술수에 넘어가 이런꼴이 되었단 말이지?
못난것들!"
내력을 알 수 없는 한놈이 벌컥 나섰다.
"늙은이. 말조심 하시오! 그따위 헛소리를 하면 가만있지 않겠소이다."
"허! 이놈은 그래도 뼈다귀가 있네? 그럼 넌 뭐하러 여기 온 놈이
냐?"
"몰라서 묻소? 여기모인 분들은 모두 보물에 관심이 있지요."
"그러니까 너희들은 허접쓰레기야! 장보도는 벌써 한달도 전에 세상에
서 사라졌다. 그 어린 도
가녀석이 너희들과 하대치일당에게 좇겨 궁지에 몰리자 찢어버렸단 말이
다. 이 늙은이가 직접 목격
한 일이고, 하대치와 부하놈들도 본 일이다. 여직 그것조차 모르는 네
놈들이 주제넘게 감히 소림
을 넘보겠단 말이냐? 이런 지경인데도 네놈들은 누군가의 수작에 말려
들지 않았다고 말할테냐?
이놈아. 이번 수작을 꾸민놈은 지금 어딘가에 숨어 너희들의 이런꼴을 비
웃고 있을 것이다."
"누가 감히 그따위 짓을 꾸민단 말이오?"
"멍청한 놈아. 그놈은 바로 하대치란 놈이다. 그놈이 어디 있는가 하면
바로...."
황개노인은 말을 하다말고 번개처럼 손을 뻗어 낮선 사내의 가슴을
움켜쥐려 했다. 그러나 사
내도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음인지 몸을 뒤로 피했다. 바로 그때. 씽
씽!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가 연이어 들리며 황개노인의 손을 피한 낮선 사내와 장도란 놈에게
날아들었다. 바로 도일봉
의 장군전이었다. 낮선 사내는 기겁을 하고 몸을 뒤틀었으나 이미 늦어
두다리를 관통당했고, 장
도는 그만 입을 크게 벌리다가 입속에 장군전이 박혀 절명하고 말았다.
누군가 부르짖었다.
"흑야묘다!"
그때 또다른 장군이 날아들어 소리친 놈의 목을 꽤뚫었다.
"오냐! 내가 바로 도일봉이다! 내게 욕을 하고픈 놈은 모두 나서라.
목구멍에 당장 바람구멍을
내주마. 활염라와 그놈은 나를 욕한 대가로 죽은 것이고, 다른 한놈은 바
로 하대치의 졸개놈이라
화살에 맞은 것이다.
죽어 마땅한 놈들이다!"
도일봉의 목소리는 비록 쩌렁쩌렁 했으나 어디에 있는지 알 수는 없
었다. 사람들은 장군전의
이같은 위력에 등골이 오싹했다. 장도는 그야말로 녹림의 거두라고 거들
먹거리던 자인데 장군전 한
대에 그만 피해지도 못하고 죽고 말았으니 어찌 놀랍지 않으랴! 잘못
나섰다가는 도일봉의 신궁
(神弓)앞에 산적꼬치가 될게 분명하다. 겁에 질린 몇놈은 슬그머니 뼁소
니를 치기도 했다.
황개노인이 두다리를 관통당해 신음하고 있는 자를 잡아 일으켰다.
"이놈. 하대치는 지금 어디 있느냐? 그놈은 뭐하는 놈이야? 응?"
놈은 고통에 인상을 잔득 찌뿌리다가 문득 히죽 웃었다. 그러더니 몸
을 움추리고 몇번 기침을
하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깜짝 놀란 황개노인은 재빨리 놈을 팽게치고
막데기를 들어 놈의 품을
뒤졌다. 알록달록 아름다운 무늬를 지닌 한자길이의 작은 뱀이 기어나
왔다.
황개노인은 막데기를 휘둘러 당장 뱀을 두토막 내버렸다.
"정말 지독한 놈들이로구나!"
황개노인은 다시 중인들을 바라보았다.
"이래도 더 나설테냐?"
황개노인의 호통에 사람들은 우물쭈물 어쩔줄 몰랐다. 그때. 중인들
틈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늙은이의 헛소리에 무림의 영웅들이 놀아나는구나! 그따위 말을 누
가 믿으리요. 개방이 소
림사와 손잡고 무림을 우롱하는구나!"
듣기도 거북하고 어디서 말하고 있는지 위치를 알 수 없게하는 목소리
였다. 황개노인은 놈이 지
금 복화술(腹話術)을 시전하고 있음을 알았다. 복화술이란 고도의 내공
력과 특별한 재주가 있어
야만 시전할 수 있는 무림의 기술이다.
"어느 놈인지 나서보아라! 네놈의 복화술처럼 손재주가도 가상한지 보
겠다!"
음산한 목소리는 들은체도 안했다.
"그럴 것 없이 흑야묘를 끌어내 대질시켜 주시지."
그 소리에 주춤했던 중인들이 다시 소란을 피웠다. 장보도도 없는
도일봉이 앞에 나서지 않는
다는 것은 뭔가 찜찜하다.
"옳다. 흑야묘를 끌어내라!"
"대질을 시켜라! 어찌 이대로 물러나겠는가!"
"끌어내라. 끌어내!"
주위가 소란스러워지며 또 위기감이 흘렀다. 씽씽씽! 다시 십여발의
장군전이 날아 마구 사람들
을 헤쳤다.
"빌어먹을 자라새끼들! 어디 더 욕해봐라! 또 네놈! 숨어서 지껄이는
놈은 귀신놀음 집어치우
고 나서거라!
어르신께서 네놈들을 모조리 상대해 주겠다. 자라새끼들이 숨어있는데
어부어르신이 함부로 나서
겠느냐? 이 자라새끼 하대치야!"
사람들은 도일봉의 장군전이 두려워 떨면서도 속으로는 잘도 지껄인다
고 욕을 했다. 그때. 음산
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흐흐흐.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무림을 우롱하는구나! 네놈먼저 나
서보아라. 그럼 이 어르
신도 나서겠다!"
"요 쥐새끼! 말주변도 없구나! 네놈들이 우롱하는 놈들을 내게 혼좀
내준다고 뭐 잘못된게 있느
냐? 정신 못차리는 놈들은 죽어 마땅하다! 더욱이 너같은 쥐새끼가 굴속
에 숨어 있는데 어찌 고
양이인 내가 나서겠느냐?
고양이는 쥐를 잡는데 명수지만 굴속에 웅크리고 있는 겁많은 쥐새끼는
상대하지 않느니라. 요
간도 작은 쥐새끼야! 낄낄낄!"
사람들은 이같은 비유에 참지 못하고 웃움을 터뜨렸다. 황개노인은
재미가 있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자라새끼, 쥐새끼! 홀홀홀 낄낄낄. 자라새끼 쥐새끼...어? 어이쿠!
이 자라새끼 쥐새끼들이
절에 불을 지르는구나!"
중인들이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개노인의 말대로 절 뒤쪽에서
몇군데 연기가 치솟고 있
었다. 계율당수좌는 눈살을 찌뿌리며 백팔나한대진을 반으로 갈라 급
히 불붙은 곳으로 파견했
다. 이곳의 무림인들은 황개노인과 도일봉의 출현으로 사기가 많이 떨어
져 반수의 나한대진으로도
상대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도일봉은 이 소란을 틈타 슬그머니 중인들 틈에 끼었다. 무림인들 중에
는 얼마간의 중들이 있고,
날이 어두워 들통날 것 같지는 않았다.
소란이 일자 중인들 틈 여기저기에서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흑야묘를 내놓아라!"
"소림사가 보물을 독차지 하려한다!"
"흑야묘를 잡자! 보물을 찾자!"
분명 하대치 부하놈들일 것이다. 소림사를 공격하자는 말은 없었으나
역시 소림사를 공격하자
고 선동하는 말이었다.한동안 그같은 소리들이 끊이지 않더니 이번에는
몇놈이 용감하게 병장기를
빼들고 나한대진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다른놈들도 덩달아 뒤따랐고,
곧이어 모두 한데 휩쓸려
싸우기 시작했다. 도일봉은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도일봉은 멀리 숨어 싸움을 구경했다. 소림나한대진은 진세로써 수비
에 치중하고 있었으며, 무
림인들은 산발적인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지라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도일봉은 자리를 떠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몰래 움직이는 놈들을 발
견하고 멀리서 장군전을
쏘아 쓰러뜨렸다. 그렇게 밤고양이처럼 움직여 절에 불을 지르고 중들
에게 대드는 놈들을 보는
족족 쏴죽였다. 황개노인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이미 보이지 않고, 하대
치는 찾을 수 없었다. 새벽
까지 그렇게 절을 헤매던 도일봉은 날이 밝아오자 슬그머니 산을 내려왔
다.
탁발승 차림으로 죽장을 끌며 삿갓까지 곰는지라 알아보는 사람은 없
었다. 절을 나오니 자유
로운 기분에 살 것 같았다. 한달이 넘도록 갑갑한 절에 갇쳐 있었더니 산
문밖의 공기가 그처럼 시
원할 수 없었다. 도일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지런히 길을 걸었다.
첫댓글 잘 보고갑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밨어요
즐독입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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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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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