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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람마 뚬부꾸(울지마 톤즈와 부시먼 닥터)
쌀람마 뚬부꾸!
WELL!
안녕하세요!
2011년 11월 25일은 마다가스카르의 의료 선교사 이재훈 외과전문의가 고 이태석 신부를 기리기 위한‘이태석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되어 상을 받는 날이다. 고 이태석 신부는 자랑스러운 용마(경남고)의 후배로 ‘울지 마 톤즈’로 이미 잘 알려진 분이고 이재훈 선교사는 고대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에서 외과전문의를 하고 내가 참여하는 WELL이라는 단체에서 함께 활동한 후배로 지금은 마다가스카르에서 부인과 함께 의료선교를 하고 있는 분으로 ‘부시먼 닥터’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8년 여름 이재훈 선교사와 함께 마다가스카르의 오지에서 함께 진료한 그때를 회상하며 그 당시 단기 해외 의료선교에 대해 기록해둔 <쌀람마 뚬부꾸>라는 나의 글을 다시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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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람마!>는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인사이고 <말라리?>는 <어디가 아프십니까?> 라는 말라카시어이다. 이두마디 밖에 못하는 내가 어린 엄마가 안고 있는 예쁜 아이가 귀여워 “쌀람마!” 하고 인사한다는 것이 그동안의 진료 시 입에 붙은 “말라리?”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어린 엄마는 눈이 둥그렇게 커지고 말았다.
이번 여름(2008년)휴가는 국제구호개발 NGO 단체인 WELL(Well of love & light, 사랑과 생명의 샘)의 일원으로 마다가스카르의 오지 마을 배루루하에서 진료를 하며 보냈다. 그곳에는 WELL의 단원으로 활약하다 마다가스카르로 의료선교를 떠난 외과 전문의 이재훈 선교사 가족이 선교활동중인 곳이다. 그들이 이번에 우리를 초청하였다. 대부분의 약품 등 의료장비는 한국에서 WELL이 준비를 했지만, 마다가스카르 현지에서는 비행선교단인 MAF, Hover-Aid team등 여러 외국 선교단체와 교회 등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었다.
내게는 이번 여정이 특별한 몇 가지 의미가 있었다. 본과 2학년 때 생명경외 클럽(VVC)에 가입하여 슈바이처 박사를 흠모하며 아프리카를 꿈꾸기 시작한 것이 1965년, 말만 듣고 글속에서 만 보아온 아프리카의 오지를 실로 43년 만에, 비록 단기 의료선교이지만 WELL 가족 26명과 함께 다녀온다는 기대감이 매우 컸다. 그리고 지난해 정든 예닮 교회를 떠나 선교사로 마다가스카르로 전 가족이 함께 간 전 예닮교회 당회장 김창주 목사님이 어떻게 지내는지 만나보고 싶기도 했다.
얼마 전 알렌 박사의 후손들과 세브란스의 후손들이 123년의 역사를 가진 세브란스 병원등 그분들의 자랑스러운 선조들이 뿌린 씨가 어떻게 열매를 맺고 있는지 그분들의 발자취를 돌아보았다. 너무나 흐뭇한 감명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분들을 보면서 지금 해외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분들을 생각하고 또 그분들의 후손들을 생각해 보았다.
"목사로서, 신학자로서, 바하 연구가로서 현재의 보장된 지위를 활용해서 아프리카를 돕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겠느냐?"고 많은 친지들이 슈바이처 박사의 아프리카 행을 완강히 만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로 가기 위해 그 힘든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된 슈바이처 박사는 1913년 7월초 프랑스 퀸스바흐에서 적도 아프리카 콩고 랑바레네로 갔다. 그때 친지들은 “무엇이 아쉬워 아프리카행이냐?” 고. 그러나 그의 실천적인 행동은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꿈과 동시에 행함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고, <생명 경외>라는 사상으로 인본주의 중심에서 모든 생명체 즉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에 대한 경외로 사랑의 폭을 넓혔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인간의 고통, 인간의 생명, 그리고 지극히 작고도 지극히 무의미한 것에까지도 미치는 경외가 지금으로부터 오고 오는 시대에 세계를 지배하는, 범할 수 없는 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WELL은 수개월의 준비를 해서 서울의 정동제일교회 젠센 홀의 파송예배를 마지막으로 떠날 준비를 완료했다. 아이들도 포함된 26명의 대원이 어떻게 하면 무사히 진료를 마치고 귀국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말라리아에는 걸리지 않을까? 10명 정도가 겨우 탄다는 경비행기는 안전할까? 카누는 안전할까? 텐트를 치고 잔다는데 잠자리는 괜찮을까? 풍토병은 없을까? 서울 메디칼 센터에서 황열병주사, 파상풍 예방주사, 폐구균 예방접종, 말라리아 예방약 등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많은 해외여행에서 경험하지 못한 긴장감을 느꼈다.
그런대 문제는 비행기를 갈아타는 방콕공항에서 일어났다. 마다항공을 갈아타기 위해 우리는 방콕에서 KAL 비행기에서 내렸다. 비행기에서 내려 나는 약 100M 쯤 걸어가다 조끼에 넣어둔 여권을 만져보았다. 아무리 뒤져도 여권이 없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급히 비행기로 돌아 달려가던 우리는 KAL의 승무원을 만났다. 한참 후에 돌아온 승무원의 손에 나의 여권이 있었다. 고맙다는 말과 명함을 남기고 일행에게 돌아오니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잘못하면 수개월동안 준비한 고생이 한순간에 달아날 뻔 한 순간이었다.
무사히 돌아온 후 출발부터 여권을 잃어 버려 모두를 긴장케 한 것이 미안하여 농담으로 사과를 했다. “나의 실수가 전화위복이 되어 전 대원에게 경각심을 심어 준 것은 모두 이 Smile 오방떡의 살신적 음덕?^^이니 칭찬해주십시오. 수고한 WELL의 모든 가족에게 ‘말라리?’하지 않고 ‘쌀람마!’하면서 인사드리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돌아와서 KAL의 홈피를 통하여 감사편지를 보내니 오히려 KAL로부터 고맙다는 답장까지 받았으니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실감합니다.”이렇게라도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마다가스카르의 안타나나리보 공항에서는 김창주 목사내외분과 이재훈 선교사 내외분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으나 일행의 가방이 하나 없어져 또 한 번 당황하였다. 김창주 목사님이 수고를 많이 하여 돌아오기 전날 가방을 찾아 모든 것이 탈 없이 진행된 것을 자축했다.
수도 타나에서 Centre Maibahoaka에서 짐을 풀고 김창주 목사님의 도착예배 말씀을 듣고 함께할 외국 선교사들을 소개 받았다. 이재훈 선교사와 부인 박재연 선교사가 외국의 다른 선교단체들과 손을 잡고 진료지 베루루하 까지 우리를 무사히 상륙시키고 오지의 진료를 준비하는데 무척 많은 땀을 흘린 것이 역력했으나 바쁜 일정 중에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음날 승용차로 안치라베에 가서 MAF 비행선교단의 경비행기를 4조로 나누어 탔다. 생전 처음 타보는 경비행기이지만 무척 안락했고 바위산으로 풀 한포기 없는 불모지를 1시간 반가량 날아갔다.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을 한참 날아가니 강이 보이고 숲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밀림속의 비행장에 내렸다. 활주로는 비포장 도로였다. 거기서 승합차로 우리가 보기에는 길도 없는 밀림 속 도로를 약 1시간 달렸다. 현지인 운전기사와 김준환 선교사 등은 잘도 찾아간다. 만국기강이라는 넓은 강에 도착하여 카누를 타고 북쪽으로 내려가며 강을 건너 베루루하 켐프 야영지에 도착했다. 여기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였다.
켐프장의 일출과 석양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드럼통에 강물을 퍼 올려 다시 물통에 옮기고 그것을 매달아 샤워를 하는 임시 샤워장도 있어 며칠간 목욕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가셨다. 나는 아예 수영복을 입고 강에 들어가 매일 목욕을 했다. 돌아와서 악어가 우리가 목욕한 곳에 출현했다는 소리를 듣고 다리가 저려왔다. 함께 오신 부인들이 마련한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고 6시경 예배를 본 후 약 40분 걸어 진료하는 마을로 갔다. 일부는 후버 크라프트라는 배를 타고 이동 진료를 나갔다. 식수는 강물을 여과하여 먹었다.
오지 말라가시 인들은 “쌀람마!”하는 우리의 인사에 아주 순진하게 웃으며 “쌀람마!”하고 답례를 해주었다. 그들과 우리가 다른 점은 그들은 돈이 없고 교통이 나빠 현대문명에 접해보지 못했으나 불평불만이 적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들에 비해 너무 과분한 혜택을 받으면서도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다는 것이다.
마다가스카르 수도인 타나에서 자동차로 약 26시간~28시간 달려야 하는 오지마을 베루루하에서 인근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내과, 성형외과, 열대성 질환, 이비인후과, 외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치과, 피부과 등 총 9개 진료과목으로 의료봉사를 펼쳤다. 베루루하는 보건소 건물은 있지만 의사가 없고, 가난하여 진료를 받지 못하거나 무당이나 전통적 치료 방법에 의존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우리 외과계 의사 들은 많은 탈장 환자와 음낭수종 환자, Cleft lip 환자등 약 50명의 환자를 수술해 주었다.
나는 대퇴부 절단환자의 하지에 임시 의족을 만들어 두 다리로 걷게 해준 것과 손에 총상을 입어 손가락이 썩어 들어가도 간단한 절단 수술을 받지 못해 방치하고 있는 사람의 손가락을 절단해 준 것과 홍문주위에 주먹보다 큰 혹을 달고 있으면서 대변보기에 무척 불편했을 젊은 여성의 혹을 이세일 성형외과 선생님과 함께 제거해 준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대변을 볼 때마다 우리가 생각날 것이다. 모두 4일동안 연 인원 약 1,000명의 환자를 진료하였다고 한다. 입원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위해 입원실을 만들어 아침, 저녁으로 회진하며 그들을 돌보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오면서 이제는 누가 그들을 돌보아줄지 마음이 아팠다. 수술한 환자의 뒤처리가 잘될지 걱정이 된다.
치과에서는 올바른 구강위생 교육과 칫솔질 방법을 직접 시범을 보였고, 칫솔도 선물하였다. AIDS 비디오 시청을 통한 예방 교육도 실시하였다. 특히 함께 간 김권기 사장은 평생 사진을 찍어보지 못한 말라카시인 들에게 즉석에서 가족사진촬영을 하고 인화하여 코팅한 사진을 나누어주었다. 그들에게는 참으로 신기하고 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또한 진료지에서는 진료가 시작되기 전 전 주민들을 모아놓고 설교하는 현지인 투부 목사님의 힘찬 설교 모습이었다. 박재연 선교사가 간단히 통역하는 것을 들으니 말씀의 내용도 좋았다. 양손에 병을 하나씩 들고 나왔다. 한손에는 맑은 물이 든 병을 들고, 한손에는 꺼먼 구정물이 든 병을 들고 설교를 시작했다.“여러분 이쪽은 맑은 생수이고, 이쪽은 균이 가득한 구정물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것을 마시겠습니까? 이 맑은 물은 하나님의 말씀과 여러분이 받을 현대 의료이고, 이쪽 검은 물은 미신과 저주가 가득하고 거짓이 가득한 주술사의 말과 잘못된 치료입니다.” 그리고 맑은 물을 마시고 검은 물병을 내동댕이쳤다. 그리하여 마지막 날 저녁 현지어로 더빙한 예수영화를 감상하고 약 40명이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박미 여사, 김정자 여사, 노송희 여사는 수술조수, 약사, 주방장등 1인 3역을 하였다. 김종관, 나사라 부부 수술조는 과히 환상적이었다. 김인애, 이지선, 박은정씨 등의 약품 정리 등 뒷바라지는 눈물겨운 장면이었다. 김성자 전도사님은 하도 풍선을 많이 만들어 목을 가누지 못했다. 내과의 이수진 선생님, 최상태 선생님, 이비인후과의 조홍래 선생님, 재활의학과의 이지선 선생님, 성형외과의 이세일 선생님, 일반외과의 심호식 선생님, 김윤 선생님, 노병선 선생님 그리고 정형외과의 나도 포함하여 훌륭한 야전병원 Staff 들이었다. 세브란스 환경 의생물 학과의 임경일 교수님은 열대의학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였다. 강효은 양 등 젊은 층의 활동은 WELL의 미래를 환하게 해주었다.
현지인 의사 페르난도는 매우 열심이었다. 나는 그에게 알루미늄으로 부목을 간단히 적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알루미늄 스프린트도 한 다발 주었다. 그리고 센트에 와서는 이수진 선생에게 여러 가지 진지하게 배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허버에이드의 피터, 자원봉사한 마누아등도 열심히 우리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하루에도 여러 번씩 우리를 진료소, 비행장 등으로 이송해준 김준환 선교사, 급기야는 마지막 날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다 운전 중인 차의 제너레이터고장으로 천신만고 끝에 우리보다 하루 늦게 주일 밤에 센터에 도착하였다. 그 차에 한인 교회의 반주자인 이지나 선교사도 함께 타고 왔다. 그녀도 통역 등 여러 가지로 우리를 도와주고 마지막 심한 고생을 한 것이다. 센터의 마지막 회의에 늦게 도착한 두 분을 우리 전 대원이 기립환호로 맞이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두 분은 그렇게 고생하고도 어떻게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느냐?”고 이준환 선교사가 대답했다.“조금씩 전진할 때 마다 기도했습니다.”
이재훈 선교사의 조수 베루는 통역이 부족해 여기 저기 불려 다니며 과로를 해서 나중에는 녹초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모든 참가자들도 몸을 아끼지 않고 봉사했다. 그러한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실로 이재훈 선교사의 말대로 <베루루하 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완수된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이재훈 선교사를 통해 안 일이지만 화려한 무대 뒤에는 항상 무대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다. hover-Aid team은 camping을 하며 camp 장 관리를 하였다고 한다. Team이 도착하였을 때 네델란드 소설가이며 자원 봉사자인 잉카가 다 부릅턴 입술로 우리를 맞이하여 주었다고 하나 우리는 그분들의 고마움을 모르고 지냈다. 그 동안 우리를 뒷바라지해준 그분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린다. 그들은 우리가 철수한 다음 3일 동안 캠프를 정리하고 1000 킬로미터가 넘는 험한 길을 돌아 타나로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4일간의 바쁜 진료를 마치고 배루루하에서 다시 카누를 타고 승합차로 숲을 누벼 숲속의 비행장에 도착했다. 경비행기의 미남 조종사가 자원 봉사하는 선교사라는 말을 듣고 보니 그의 친절한 미소를 이해하게 되었다. 안치라베에서 버스를 타고 길가에 방뇨를 하며 타나에 돌아왔다. 이재훈 선교사가 근무하는 Itaosy 병원을 방문하고 센터에 돌아오니 이미 내 집에 돌아 온 기분이었다. 그다음 날 주일에는 9시 반에 시작하는 이재훈 선교사가 나가는 현지인교회에 모두 들러보고 나를 포함한 일부는 실로암 한인교회로 먼저가 김창주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설교가 끝날 즈음에 현지인교회에서 나머지 단원들이 모두 도착하여 WELL 단원이 모두 나가 특송을 하였다.
기장교단의 파트너가 될 마다가스카르 개혁교회 ‘FJKM'의 선교동역자로 비자를 받아 작년 9월에 마다가스카르에 온 김 목사님은 실로암 한인교회 목회, 신학교 사역, 가난한 농가의 양돈 지원 사업, 사랑의 신발 모우기 등 마다가스카르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몹시 바삐 일하고 있었다. 임전주 사모님도 예배 시 반주를 해주었는데 지금은 말라카시어를 배우면서 1주일에 한 번씩 루터병원에서 진료와 수술을 한다고 한다. 김 목사님은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 안치라베에서의 식사대접, 마지막 귀국 전 한인 실로암 교회에서의 예배 후 전 대원에게 식사대접등을 해주었다.
이재훈 선교사는 이번 진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소감을 피력했다.“2007년 7월 처음 베루루하에 왔을 때 주민들은 낮선 나에게 저주를 하는 등 적대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WELL의 하계의료봉사단이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랑과 정성으로 진료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은 변화되었다. 생애처음으로 극진한 진료와 간호를 받은 환자와 그 가족들은 춤과 노래로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고 진료 팀이 지나갈 때면 마을 주민들은 먼저 손을 흔들고 환호해주었다. WELL 하계의료봉사단의 헌신적인 사랑과 치유의 손길이 이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간직되도록 이후에도 마다가스카르 현지 기독 의사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마을을 방문하여 최선을 다해 마을주민들을 섬기겠다.”고 말했다.
무사히 마치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함께 땀 흘린 모든 분들이 한 가족처럼 느껴진다. 특히 이재훈 선교사 내외분,Hover-Aid와 MAF 비행선교단, AIM 선교사님들, 총지휘를 맡으신 치과 명노철 이사장님, 뒷바라지에 2-3개월을 정신없이 보낸 박충관 국장님과 WELL 직원들, 우리의 모든 여정을 안내한 조홍래 상임이사님, 우리에게 식사대접을 해주신 실로암 한인교회 여러분과 김창주 목사님, 신발을 선물해주시고 좋은 영상을 남겨주신 김권기 사장님, 그리고 모든 WELL의 단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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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첫번째의료봉사때 이헌영정형외과원장님이 쓴 후기임다 별칭 스마일오방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