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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
♬ 해돋이 여행 12월28일 오전. 서울행 기차는 정시에 출발했다. 차창 밖에는 눈이 성글게 흩날리고, 들판 가득 부옇게 시야를 덮는 눈송이들이 그 어느 때보다 겨울의 정취를 듬뿍 느끼게 했다.
그런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차츰 희부연 해져서 아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중국 옌타이(烟台)행 배가 출항하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당시 옌타이 여행은 그 해 여름 남 백두산 천지와 청도(青岛)에 갔다 오느라 거의 6개월 만에 가는 터였다. 그런데 영등포역에 도착하니 다행히 눈이 그쳤다.
언제나처럼 영등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동인천역으로, 동인천역 길 건너편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환승하여 인천 국제1여객 터미날에 도착했을 때는 목적지에 도착한 것만큼이나 피곤했다. 여행사 직원에게서 옌타이행 향설란(XXL) 왕복 승선권과 현지 호텔 예약 티켓을 건네받자 다시금 힘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하기는 나의 연말 여행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대개 3박4일 일정으로 선상에서 1박 하며 새벽녘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는 것이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해가 떠오르며 온 천지가 검붉은 색으로 물들 때 그 장관이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 순간 대자연 앞에서 숙연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후 선상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9시경 옌타이 항에 입국하여 하룻밤을 머물고 다시 저녁 4시경 승선하는 일정이었다.
사실 대전에서 인천항까지 오가는 것만 해도 시간이 만만치가 않다. 그런데도 평상시에도 내가 굳이 선박여행을 선호하는 것은 새벽녘 해돋이 광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바다 한가운데서 나 자신을 바라볼 때 버려지는 것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인천항에서 옌타이항으로 항해하며 무수히 많은 생각들을 바다에 버리니까 말이다. 한밤중 선창 밖을 내다보면 내가 승선한 향설란(XXL)은 마치 칠흙 같이 어두운 밤에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와도 같다. 물론 파도가 높지 않을 때이지만.
이튿날 아침 옌타이 항에 도착했을 때는 엄동설한에 강풍이 살을 에는 듯했다. 옌타이는 그 당시 일을 핑계로 자주 방문했던 터여서 몇 달 만에 왔는데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입국장을 나와 부둣가에 즐비한 허름한 상점을 보면서도 낙후되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네 시골 같은 느낌을 받아 더욱 정겨웠다. 나는 꼭 가야 할 곳도 없기에 부둣가에 상점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물론 구입할 것은 없었다. 건물이 붙어있는 상가를 드나드는데도 칼바람이 얼굴을 할퀴는 듯했다.
부두 바로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호텔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가격은 1위안이다. 매번 느끼지만 중국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공짜 인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았다. 호텔은 그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호텔 역시 낯설지가 않았다. 호텔방으로 올라와 녹차를 한 잔 끓여 마신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서 중심가까지는 걸어 나왔다. 택시를 타도 기본요금 7위안으로 저렴하다. 그러나 지난밤 선상에서 있었기에 맑은 공기도 쏘일겸 걷고 싶어서였다. 내가 옌타이를 자주 가는 것은 그런 여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타국에서도 내 나라처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것 말이다.
옌타이는 그런 면에서 내가 정말 좋아한다. 발해 만에 인접해있는 작은 해안 도시로 시내에서 조금만 나가면 내가 좋아하는 바다가 있다. 가깝게는 산도 있어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산행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옌타이 기차역에서는 청도나 북경 등 거의 모든 도시를 다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심가에 있는 싼잔 시장은 산동성 지방에서 제법 큰 규모의 소, 도매 재래시장으로 우리나라 상인들도 많이 찾는다고 들었다.
시장을 들러 구경하고 나니 저녁 무렵이 되었다. 인근에서 즐겨 먹던 만두를 사먹고 단골 안마 집으로 갔다. 마침 오전에 주인 여자를 부두에서 만났기에 더 없이 반가웠다. 나는 간이침대에 누워 안마를 받으며 서툰 중국어로 그동안 남 백두산과 청도에 갔다 온 이야기를 더듬더듬 말했다. 주인 여자는 사뭇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를 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가까운 청도(青岛)조차도 못가봤다고 했었다.
그녀는 내 말이 끝나자 내게 누구랑 갔느냐고 물었다. 여행사에서 모객해서 단체 팀으로 갔다고 했더니 그럼 아직도 애인이 없냐면서 중국 남자가 좋지 않냐구 물었다. 나는 중국어로 말했다. “중국남자는 좋지만 내가 한국에서 살고 있으니까 자주 만날 수가 없다. 전화 통화를 하고 싶어도 내가 중국어를 유창하게 못하니까 제대로 의사 전달을 할 수 없어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데 바로 옆 침대에서 안마를 받던 중국인 남자가 음,음, 알겠다는 투의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얼핏 내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것 같기도 했다.
나중에 주인 여자가 말하는데 그 남자는 아직 미혼인 자신의 오빠인데 벌써부터 내게 소개하고 싶었던 터라고 했다. 그날 오전 우연하게 부두에서 입국한 나를 본 후 오빠를 기다리게 했던 것이다. 그녀의 돌연한 행동에 한순간 당황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평소 그녀가 너무나 따뜻하게 대해주었기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후에도 물론 전과 다름없이 그곳으로 안마를 받으러 갔었다. 그녀 또한 더 이상 오빠 이야기는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치근거리지 않는 것이 중국인들의 좋은 점 중에 하나 인 것 같았다.
이렇듯 나의 해돋이 여행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유명한 관광지는 아닐지라도 우리와 다른 문화를 탐닉하면서 그곳에서 만나는 일상적인 일들...... 그리곤 지루할 때 마다 메모지를 들춰보듯 꺼내보는 것도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옌타이에서 1박을 한 후 오후 늦게 인천행 여객선에 승선, 이튿날 다시 해돋이를 바라 볼 때는 마음이 한결 가벼움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한다. 따뜻함을 안고 돌아가는 것 말이다.
― 첫수필집『내마음의 첼로』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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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일기같은 여행기가 참 재미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쓴 글인데도 저도 재미있어서 해마다 꺼내보곤 해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행운이요님과도
멋진 추억 남기고 싶네요. 선상에서 차 한잔 손에 들고 먼 바다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박인히의 그리운 사람끼리 노래도 멋있고,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
옛날에 좋아했던 노래입니다
향설란호 추억이 많이 있지요 ~ ~
님은 먼곳에님과는 추억이 있어요.
언젠가 향설란 선상에서 님은 먼곳에님이 캔맥주 하나 들고
제 방 앞을 지나가시던 뒤모습 추억이 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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