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33살의 주부입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분가해서 살고 있는데 남편은 혼자
사시는 아버님을 모셔 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어느 며느리가 혼자 되신 시아버지 모시자는 말에 단번에 좋다고 할 수
있겠어요.
더구나 우리보다 훨씬 형편이 나은 형님도 계신데, 수입이 많지 않은 남편이 모신다는 것이 저로선 이해가 안
됐습니다. 전 임신 중이라 회사도 관둔 상태였거든요.
그 일로 거의 매일 싸웠습니다. 전 저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서로
입장만 이야기 하니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더군요. 그렇게 서로 지쳐 갈 때쯤,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와 눈물을
글썽이며 속에만 담아놨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칠순을 바라보시는 아버님 속을 그 동안 얼마나 썩였는지를요. 그때마다
아버지가 다른 사람 앞에 얼마나 많은 고개를 숙였는지, 차에 치일뻔한 남편 대신 차에 치어 어깨를 아직까지 잘 못쓰는
것도,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시며, 자식들 평생 뒷바라지 하셨고 넉넉하진 않지만, 많이 부족하지 않게 키워주신 이야기도
했습니다.
아주버님네는 아예 모시지 않겠다고 선을 그어놓은 상태고요. 아들자식 키워도 다 소용없네 싶었지만, 막상 제
남편이 아들 노릇 해보고 싶단 소리에 아버님을 모시면 불편해질 여러 가지 점을 생각하니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제 남편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그렇게 결정하고 모시러 갔는데 저희 집으로 가는걸
한사코 거절하시더라고요. 늙은이 가봐야 짐만 된다고요. 하지만 남편이 설득해 겨우 모셔왔습니다.
그렇게 아버님과의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반찬도 그렇고,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게 많았습니다. 아무리 신경 써도 반찬이 돌아가신 시어머니
솜씨 못 쫓아 갔지만, 그걸 드시면서도 엄청 미안해 하셨어요. 가끔 고기 반찬이라도 해드리면, 저랑 남편 먹으라고 일부러
조금만 드시더라고요.
한 번은 장보고 집에 들어왔는데 아버님께서 걸레질을 하고 계신 거에요. 깜짝 놀라 걸레를 뺏으려고
했더니 괜찮으시다며 끝까지 다 청소하시더라고요.
하지 말라고 몇 번 말씀 드리고 뺏어도 보지만 그게 편하다는 아버님
마음 제가 왜 모르겠어요. 이 못난 며느리 눈치 보시는 것 같아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버님의 한 달 전쯤부터 아침에 나가시면 저녁때쯤 들어오셨어요. 놀러 가시는 것 같아서 용돈을
드려도 받지 않으시고 웃으면서 다녀올게 하시며 매일 나가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래층 주인집 아주머니께서 "이 집
할아버지 유모차에 박스 실어서 가던데..."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며칠 전부터 저 먹으라고 사 오신 과일과
간식들이 아버님께서 어떻게 가져오신 것이지...
아들 집에 살면서 돈 한 푼 못 버는 게 마음에 걸리셨는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폐지를 수거하시며 돈을 벌었던거죠.
저는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이리저리 찾으러 돌아다녀도 안 보이시고 너무
죄송해서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친정 아버지도 평생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는데 아버님께서도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실 거 같아 정말 두렵고 죄송한 마음에 한참을 펑펑 울고 또 울었습니다.
남편한테 전화해서 상황을
말하니 아무 말도 못 하더군요.
평소보다 일찍 들어온 남편이 찾으러 나간 지 한 시간쯤 남편과 아버님이 함께
들어왔습니다.
오시면서도 제 눈치를 보시고 뒤에 끌고 오던 유모차를 숨기시더군요.
주책 맞게 눈물이 쏟아졌지만,
아버님이 더 미안해 하실까봐 꾹 참았어요. 그리고 아버님 손을 잡아드렸습니다. 평생 가족들을 위해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손은
꺼칠하셨고, 어깨는 꽉 잡으면 부서질것처럼 많이 야위어 있으셨습니다.
아버님 돌아가신 저희 친정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정말 잘
모실 거에요. 두 번 다시 밖에 나가서 힘들게 일 안 하시게 허리띠 졸라매고 알뜰하게도 살게요.
사랑합니다
아버님... 제 곁으로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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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모님과 당신
부모님, 그렇게 선을 그어 놓고 살고 있진 않나요? 때론 섭섭하게 할 때도 있고, 마음을 몰라 주실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당신 부모님이 아닌 내 부모님이라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럼 벌어졌던 마음에 거리가 훨씬 가깝게 느껴질 거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