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와도 날씨 쌀쌀해 벌들 잇달아 얼어 죽어…
여왕벌도 알 낳지 않아 3만여 양봉농가 비상
황갈색 낙엽이 쌓인 산에 드문드문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15일 오후 1시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산자락 양봉장에는 하얀 벌통 100개가 다섯 줄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벌통 주변으로 날아다니는 벌은 보이지 않았고 바닥에 손톱 크기의 시커먼 덩어리들이 칼바람에 뒹굴었다. 죽은 벌들이었다.
"벌이 없네." 벌통을 열어본 농촌진흥청 이만영(47) 연구관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벌로 가득 차야 할 벌통 안은 절반이 비어 있었다. 넓적한 양봉판에 듬성듬성 붙어 있는 벌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양봉장 주인 김형주(52)씨는 "지금은 벌통에서 벌들이 터져 나와야 하는 시기"라며 "35년 양봉을 하면서 벌들이 이렇게 많이 죽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김씨가 하늘을 쳐다보며 나지막이 중얼댔다. "꽃이 피면 뭐하나. 벌이 없는데. 올해 농사는 망했네, 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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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 오후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양봉농가에서 한국양봉협회 관계자들이 벌통 내부의 죽은 벌들을 살피고 있다. 최근 저온현상으로 꿀벌 수가 급감해 꿀을 채취하는 양봉농가들이 시름에 빠져 있다. /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최근 봄답지 않게 서늘한 날씨 때문에 벌들이 집단 폐사하고 있다. 양봉 농가는 2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2개월간 벌을 길러 5월 초 벌통을 싣고 아카시아 꽃이 많이 피는 경상도·전라도 지역으로 떠난다. 아카시아 꽃은 꿀이 많기 때문에 양봉 농가는 아카시아 꽃이 피는 5월 한 달 동안 한 해 꿀 농사를 짓는다.
한국양봉협회 최규칠(50) 사무총장은 "전국 3만8000 양봉 농가의 벌 생산량은 작년의 30% 수준이어서 꽃이 피어도 꿀을 딸 벌이 없다"고 했다. 피해가 심해지자 농림부도 지난 13일부터 전국 양봉 농가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섰다.
번성해야 할 벌들이 사라지는 가장 큰 원인은 저온(低溫)현상이다. 올봄까지 쌀쌀한 날씨가 계속돼 꿀을 따러 나간 벌들이 얼어 죽는 것이다. 눈·비도 유난히 많이 왔다. 날개에 눈이나 비를 맞은 벌은 땅에 떨어져 죽는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3월 하순 평균기온은 평년에 비해 1.2도나 낮았다. 초겨울에 가까운 날씨는 수일 전까지 이어져 최저 기온이 영하를 기록하기도 했다. 3월 강수 일수도 14.3일로 한 달의 절반은 눈·비가 왔다. 최규칠 사무총장은 "일하러 나간 벌이 얼어 죽어 유충을 돌볼 벌이 없고, 여왕벌도 움츠러들어 알을 낳지 않아 벌이 계속 줄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 양봉장에서 10여㎞ 떨어진 곳에서 양봉을 하는 차성희(49)씨는 양봉장 바닥에 떨어져 날지 못하는 벌들을 일일이 손으로 집어 벌통 안에 넣고 있었다. 차씨는 "지금 이맘때면 넘쳐나는 벌들 때문에 벌통을 2층으로 올려야 정상인데, 올해는 아직 1통의 반도 못 채웠다"고 미간을 찌푸렸다. 차씨는 지난 8일 전남 목포로 내려가 2000만원을 주고 벌통 100개를 사왔다. 차씨는 "벌을 늘렸지만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한 벌들이 자꾸만 얼어 죽는다"고 했다.
벌통을 이리저리 살펴본 이만영 연구관은 곧바로 차를 몰아 강원도 횡성 한 야산으로 갔다. 이곳 양봉장 가장자리에는 비어 있는 벌통들이 어른 키 높이로 쌓여 있었다. 주인 신동욱(59)씨는 "벌이 죽어서 800통 가운데 200통을 치워버렸다"고 했다. 남아 있는 벌통도 대부분 문을 닫아놓았다. "문을 열어야 벌이 꿀을 따 오는데, 나가면 얼어 죽으니까 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닫으면 입에 풀칠도 못할 판이고…." 신씨는 담배만 연방 빨아댔다.
인근에서 양봉을 하는 안두희(50)씨는 "봄인데도 한겨울처럼 벌통에 스티로폼과 골판지를 넣고 두꺼운 모포를 2~3겹으로 덮어준다"며 "30분에 한 번씩 기상청에 전화를 걸어서 날씨를 알아보곤 한다"고 했다.
이날 오후 신씨 집 거실에서 이 연구관과 인근에서 벌을 기르는 주민들이 둘러앉아 몸을 녹였다. 이날 저녁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 횡성에는 눈발이 날렸다. 금주 들어 기온이 조금 올랐지만, 이미 많은 벌을 잃은 양봉 농가의 시름까지 가셔주진 못했다.
첫댓글 기상이변으로 사고 , 배 도 잘 안될듯 하다네요 이 얼어서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