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타고 대전까지
차가 움직이지 않아요
내가 우이제일교회 청년부를 담당했을 때의 제자 현아가 결혼을 하는 날이다. 오래 전부터 자기가 결혼을 할 때는 내가 주례를 해야 한다고 부탁을 했었기 때문에, 나 역시 기쁜 마음으로 승낙했고 이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대전에서의 결혼식은 2시인지라, 그 시간에 맞추기 위해 나는 토요일인 것을 감안해 조금 일찍 서둘렀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연희동에서 서울역까지는 택시로 대략 20분 안팎이면 갈 수 있다. 하지만 토요일이니까 막힐 시간을 대비해서 기차 출발 45분 전에 집 앞에서 택시를 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차도가 꽉 막혀 있었다. 토요일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것은 찻길이 주차장이었다. 많은 차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 상태였다.
꽉 막힌 도로
나는 택시 기사님께 물었다.
“기사님! 제가 11시 기차를 타야 하는데 가능할까요?”
그 때 시간은 10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기사님은 웃으며 말했다.
“예, 손님. 가능합니다. 여기만 지나면 괜찮을 겁니다.”
하지만 길은 좀처럼 뚫리지 않았다. 결국 연세대 앞으로 가려던 택시가 돌아서 동교동, 신촌 족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인가? 신촌도 많은 차들로 길이 꽉 막혀 있었던 것이다.
기다리다보니 기차 출발 시간 11시 10분 전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불안해지고 있었다.
‘주례인 내가 결혼식에 못 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늦으면 어떡하지?’
잠시 눈을 감고 기도했다. 하나님 길을 뚫어달라고, 아니면 어떻게든 해달라고 기도했다.
아! 목사님이시군요
그때 택시기사님이 물었다.
“손님, 뭐하시는 분이신가요? 기차 타고 어디 가시는데요?”
막혀 있는 길에서 나는 신상을 털기 시작했다.
“네, 저는 지금 대전에 제자가 결혼을 해서 가는 길입니다. 2시부터 시작인데, 제가 주례를 해야 해서요. 저는 교회 목사이구요. 또 설명이 필요하지만~~ 학교 교사이기도 합니다.”
택시기사님은 반색을 하며 물었다.
“아~! 목사님이시군요. 저도 교회 나갑니다.”
그러고 보니 운전석과 조수석 옆에 낡은 성경책 세 권이 놓여 있었다.
“네, 그렇군요. 어느 교회 다니시나요?”
“네, 서울 00동에 있는 교회인데, 사실 제가 지금 교회 때문에 마음이 안 좋은 상태입니다. 다툼이 좀 있어서요.”
그러면서 교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나도 마음이 아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상처 받은 한 영혼을 만나게 하신 것이다.
택시로 대전까지
대화가 오가는 중에 시간은 10시 57분, 58분을 지나고 있었다.
‘어떡하지? 집으로 돌아갈 시간도 안 되고, 고속을 타도 늦을 것 같고~.’
“기사님!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네, 목사님! 3분 가량 늦게 서울역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오늘 유난히 막히는 날이네요. 어쩌죠?”
나는 코레일 회사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환불을 요청하려 했지만, 직접 사람이 와서 해야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환불액이 줄어든다고 했다. 더욱이 대전행 열차는 특실 좌석을 예약한 상태였다. 내려서 역에 가 기다려 환불을 받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대전에 2시까지 도착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마음에 결정을 했다.
“기사님! 대전까지 가실 수 있을까요?”
기사님을 즉각 대답했다.
“네, 그럼요. 목사님! 갑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물었다.
“기사님! 제가 이렇게 장거리를 택시로 가는 건 처음인데 비용은 어느 정도인가요?”
기사님은 웃으며 말했다.
“목사님이신데, 그냥 미터기로 가시죠. 저희들이 부르는 가격이 있긴 한데, 오늘은 왠지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만나게 하신 것 같네요.”
나도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러셔요? 저도 좋습니다. 그럼 가면서 편안히 이야기 하셔요. 제가 다 듣겠습니다.”
부족한 아빠예요
불현듯 하나님께서 이분을 만나게 하신 뜻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16년 동안 사역을 하며 택시로 장거리를 가는 경우는 처음인지라, 기분이 새로웠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택시 기사님의 호칭이 ‘집사님’으로 바뀌었다.
“집사님, 그런데요. 2시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요?”
천안을 지날 무렵 시간은 1시를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의 전용 차선에 들어갈 수도 없고, 혹시 불법으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차가 많았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기도가 저절로 나올 수밖에.
“네, 가야죠.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목사님. 이렇게 장거리 택시 타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 줄 아시나요?”
“글쎄요. 급한 사람들이겠지요? 저처럼 차를 놓쳤거나~.”
집사님은 웃으며 말했다.
“범죄자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절대로 들르지 않구요.”
“아~, 그렇겠네요.”
웃으며 대화하는 사이에 집사님과 나는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집사님은 믿음을 가진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분이었다. 그리고 매우 선한 마음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요. 목사님. 저는 열심히 일하고, 하나님 잘 믿고 사는 것은 맞는데, 아이들만 생각하면 부족한 아버지일 뿐입니다. 이미 아이들이 장성했지만 같이 있을 시간도 많지 않고요. 그래도 잘 성장한 걸 보면 은혜지요.”
무사히 결혼식을 마치고
택시는 어느덧 대전으로 들어서고 있었고, 결혼식 시작을 10분가량 앞에 두고 있었다. 신랑과 신부가 전화를 계속 해왔다.
“아~ 미안. 기차를 타지 않고, 차로 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곧 도착할 거야.”
택시로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신랑과 신부는 그날 결혼에 관한 것만 집중해야 하는데, 주례를 맡은 나로 인해 정신적 혼란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시에 다른 결혼식이 또 있다고 했다. 그래서 2시 시작을 넘겨서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
1시 57분, 결혼식장 200미터 앞에 택시는 섰다.
“집사님, 내려야겠죠? 차들이 또 막혀 있네요.”
“네, 목사님. 뛰시죠? 제가 주차하고 올라가겠습니다.”
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에서 내려 예식장을 향해 뛰었다. 200미터를 나는 쏜살같이 달렸다. 그리고 1분 전에 결혼식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헐떡거리는 속을 달래며 결혼식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신랑 홍택수 군과 신부 송현아 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식을 진행하던 중, 한 가지 이상한 것을 느꼈다. 하객들이 자리에 반도 차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관광버스로 하객들이 내려온다고 들었는데, 다 어디 간 거지? 식당에 있나?’
예식을 은혜롭게 마쳤다. 참 감사했다.
대전역까지만요
오늘은 주례를 마치고, 서울로 가서 저녁 6시에 응암교회에서 아버지학교 강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주례만 마치고 바로 대전역으로 가야할 상황이었다.
미리 서울로 가는 기차표 예약을 해 놓았었다.
집사님이 말씀하셨다.
“목사님! 오늘 제가 참 복된 날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안 좋은 마음이 많이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목사님 만나고, 또 대전까지 오고, 은혜로운 주례 말씀도 감명 깊었습니다. 참 감사한 날입니다. 서울로 올라가는 것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따로 차비 안 받구요. 저는 어차피 올라가야 하니까요. 그리고 아버지학교 하는 교회까지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제가 응암교회 잘 알고 있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무엇보다 집사님을 회복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나는 택시로 갈 경우 교회까지의 시간을 검색해 보았다. 6시까지 도착은 무리였다. 도착 시간은 저녁 7시를 넘는다고 나온 것이다.
“집사님, 아무래도 택시로는 강의 시간까지 가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괜찮으시면 대전역까지만 데려다 주시면 제가 4시 ktx로 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주시겠어요?”
“아유, 그럼요. 그럼 대전역까지 모시겠습니다.”
콜택시가 생겼어요
나는 택시를 타고 대전역으로 향했다. 20분 가량 소요되는 것인지라, 안심하고 있었는데, 결국 길이 막혀 또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집사님, 또 기차를 놓쳤네요. 그래도 기차를 타고 가야 할 것 같아요. 택시로는 도저히 강의 시간에 맞춰 도착을 못할 것 같아서요. 제가 다음 차 알아보고 타고 갈게요. 그리고 택시비를 드려야죠. 얼마 드려야 하나요?”
집사님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제가 모시고 가면 좋은데,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택시비는 15만원만 주십시오. 미터기로는 166,800원이 나왔는데, 제가 봉사해야죠.”
나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닙니다. 20만원 받으셔요”
나는 카드를 드렸다. 하지만 집사님은 결국 15만원으로 결제를 했다.
“목사님, 우리 기사들은 이런 정도면 25만원 가량을 부릅니다. 더 부르는 사람도 있구요. 하지만 오늘 저는 목사님을 만나, 큰 은혜를 누렸습니다. 다음에 또 뵈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학교 저도 나중에 꼭 하려고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계획하심에 감사했다. 부족한 나를 통해 힘들어 있는 한 영혼을 만나게 하시고, 위로와 평강을 불어넣어주심에 감사했다.
“집사님, 번호 폰 알려주셔요. 제가 집사님이 필요할 때가 계속 있을 것도 같네요. 하하하.”
“네, 목사님. 연락 주십시오. 또 모시겠습니다. 하하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콜택시를 선물하신 것이다. 나는 감사의 마음으로 가방에 있던 내 신간 책 한 권을 집사님께 드렸다.
취소한 표로 서울행
나는 대전역으로 또 뛰었다. 그리고 표를 사는 줄에 섰다. 이미 떠난 차표는 취소를 해야 하고, 새로 표를 끊어야 했다.
그런데 다음 표가 없었다. 매진인 것이다. 그 다음 표는 20분 후에나 있었다.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매표소 직원이 불현듯 소리쳤다.
“아~ 손님. 지금 하나 떴네요. 누가 취소했어요.”
“할렐루야”
입에서 저절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울역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응암교회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예정되었던 아버지학교 강의를 무사히 마쳤다.
집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데, 하루의 생활이 꿈만 같았다.
내가 계획하여도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절감하는 하루였다. 더욱이 그 택시가 회사용이었다면 대전까지 가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택시여서 가능했고,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힘든 영혼을 위로하게 하셨다.
인도하시는 하나님
밤에 현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목사님, 오늘 너무 감사했어요. 다들 주례로 은혜 받았대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현아야, 애썼다. 내가 빨리 도착 못해서 미안하다. 사정이 있었어.”
그래도 택시를 타고 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현아는 계속 말했다.
“목사님. 결혼식 시작할 때 저 깜짝 놀랐어요. 손님들이 너무 없어서요. 나중에 보니까 서울에서 버스가 늦게 도착한 거예요. 2시 30분쯤에요. 길이 굉장히 막혔었대요. 전용 차선으로 왔는데도 그렇다네요.”
나는 이 말을 들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모저모로 간섭하시고, 섭리 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역시 하나님의 방법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의 모든 것을 주관하신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도하는 가운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정말 주례가 온다고 했다가 갑자기 못 오게 되면, 그 결혼식은 어떻게 되는 거지?’
2016. 5. 28. 토.
영훈고 울보선생 최관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