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 -소동파 지음 (송나라 제1의 시인)
횡간성령측성봉(橫看成嶺側成峰)/횡으로 보면 산줄기 측면을 보면 봉우리
원근고저각부동(遠近高低各不同)/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이 제각기 다르니
불식여산진면목(不識廬山眞面目)/진정으로 알 수 없노라 여산의 참모습을
지연신재차산중(只緣身在此山中)/그것은 이 몸이 산중에 있기 때문이리라
***삶의 진짜 목적을 위해서 마음의 여유를 찾아라 ***
바쁜 산속같은 일상 삶(인생의 수단가치)에만 파묻히지 말고
산 밖에서 가끔 여유를 가지고
멀리 산속의 일상 삶(인생의 수단가치)을 바라보면서
인생의 진짜 목적과 진짜 모습(인생의 목적가치)을 사색하며 실천하라 .
(1)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며 송나라 제1의 시인으로 손꼽히는
소동파의 시 한 수를 올립니다.
이 시는 소동파가 유배지로 가던 도중 여산에 들러 읊은 것입니다.
내용은 아주 쉽지만, 음미할수록 오묘한 진리가 들어있는 시 이지요.
일종의 철리시(哲理詩),哲學詩라고 할 수 있는데, '철리시'란 개인적인 체험,
경험을 통하여 하나의 보편적 진리를 추출해내는 철학적인 시를 말합니다.
(2)산속에 들어가 있으면 부분적인 산의 모습은 볼 수 있어도
산 전체의 모습을 보기 어렵지요.
그러므로 산을 제대로 보려면 일정 거리 떨어져서 봐야
참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거리가 필요하다,
즉 삶의 진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 또한 필요하다는 얘기지요.
우리는 어쩌면 너무 바쁜 삶 속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삶의 의미(인생의 목적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요즘처럼 바쁜 삶이야말로 시에 나오는 '여산 속에서 살아가는 일상적 삶' (인생의 수단가치에만 급급한 삶)이 아닐까요?
여산에 들어가 있으면 여산의 진면목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바쁜 삶속에 파묻혀 살다보면 자칫 인생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삶의 진정성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독일의 실존 철학자 하이데커도
"인간은 각자가 아무런 목적없이 이 세상에 던져지는 존재가 아니다.
단 하나 뿐인 목숨을 가지고 태어난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라고 설파했다.
(3) 맹목적인 삶이란 시간과 돈과 각종 욕망에만 끌려가는 인생을 말합니다.
도무지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 없는 삶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게 되면 시간을 관리하면서 살 수 있게 되고,
욕망도 줄어들어 돈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돈과 욕망은 바람직한 삶을 위한 도구(인생의 수단가치)에 불과할 뿐인데,
너무 집착하다 보면 주객이 전도되어 인간이 오히려
그것들의 노예로 전락해 버립니다.
그러다 보면 '바람직한 삶'(인생의 목적가치)이이어야 할 인생의 궁극적인 진짜 목적은 잊어버린 채
돈과 욕망에 발목을 잡혀 인생의 수단가치에만 끌려다니게 되는 것이지요.
(4) 그런 점에서 소동파의 '여산진면목'은
자기 자신의 진짜 가치와 진짜 목적(인생의 목적가치)을 바라보게 하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계수단인 자신에게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 가끔
멀리 거리를 둔 채 가끔 인생의 참된 목적가치를
생각 해보는 습관을 가지는 것도 좋습니다.
명상,신앙생활, 기도, 사회 자원봉사와 같은 것이야말로
생계 수단가치를 잠시떠나 일정거리에 자신을 세워놓고
또다른 영혼을 가진 자기가 멀리서
객관화시켜 자기의 참 목적, 참 모습을 바라보며
반성하는 연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편집자 생각 : 인생의 목적가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생계수단"인 수단가치(경제생활)의 중요성을 한시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인생의 수단가치도 해결 못하면서 목적가치만을 논하는 것도
공허한 삶이라고 생각된다. 수단가치(경제생활)에 충실하면서도 인생의 목적가치를 잊지말고 수시로 반성(종교,명상,일기)실천하는 것이 현대인의 삶의 방식이 아니겠는지요.?
물론 성직자들,인생의 정신적인 가치를 매우 강조한 종교인등은 인생의 목적가치에 월등한 비중을
두기도 하지만 현실생활에서는 이것도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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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연중 안개속에서 자태를 감추고 좀처럼 옷을 벗지 않았던 여산, 꿈에 그리던 산이 보고파 찾았던 소동파도 결국 여산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다는 데서 '진면목'이란 고어가 생겼다는 정도의 일천한 상식으로 암기해 왔던 시였는데 자네의 고매한 철학덕분에 다시 음미할 수 있었네. 감사하네. 전금종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네. " 옛 선현들의 시나 고담준론은 나이가 들어야만 그 진미를 비로소 느낄 수 있다"는 어느 시인의 지적과 같이 이 나이에야 누구나 척 보면 느낌이 오지 않겠나. 서울 회원들도 이 카페 좀 자주 방문해 주면 좋겠네.늘 건승,건안하기를 빌고 좋은 시간 보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