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이란 무엇인가? / 에크하르트 톨레

■ 현존이란 무엇인가? - 에크하르트 톨레
----->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 존재하는 것은 당신의 신성한 현존이다. 우리들 내면에, 삶의 굴레를 벗어나 언어를 초월한 곳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 그것은 아무런 고통이 없는 기쁨의 세계이다. 그 세계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손 안에 있다.”
1996년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란 베스트 셀러로 세계적인 영적 스승으로 떠오른 에크하르트 톨레.
불교철학과 명상법을 공부한 그는 심리상담가이자 스승으로서 유럽, 북아메리카의 수행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 아래 글은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당신은 계속 현존하는 상태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머리로는 이해한 것 같지만, 내가 정말 그것을 체험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전혀 다른 것일까요?
현존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현존에 대해 생각할 수 없으며, 마음으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현존을 이해한다는 것은 현존하는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작은 실험을 해보겠습니다. 눈을 감고 자신에게 말하십시오. '다음에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그런 후 주의력을 집중하고, 다음에 올 생각을 기다리십시오. 쥐구멍을 지켜보는 고양이처럼, 그곳에서 어떤 생각이 나오는지 지켜보십시오.
어떻습니까?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강한 현존 상태에 있는 한 우리는 생각에서 벗어나 있게 됩니다. 당신은 고요한 상태에서 예민하게 깨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당신의 의식적인 주의력이 어떤 수준 밑으로 내려가는 순간, 생각이 밀려든 것입니다. 잡념이 돌아오고 고요함이 사라진 것입니다. 당신은 다시 시간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상생활 속에 현존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 속에 깊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타성을 지닌 마음의 급류에 휩쓸리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현존 상태는 기다림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예수는 몇 가지 우화로 기다림을 비유했습니다. 그것은 현존상태를 부정하고, 늘 지루해 하고 초조해 하는 기다림이 아닙니다. 미래의 어느 지점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방해하는 장애물로서 현재를 인식하는 기다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완전한 의식을 필요로 하는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기다림입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일에 대비해서 절대적으로 고요한 상태에 있는 기다림입니다. 이것이 예수가 말한 기다림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모든 신경이 '지금'에 집중됩니다. 백일몽, 사고, 기억, 기대를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그 속에는 긴장감도 두려움도 없으며 단지 활발한 현존만이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존재로 몸 구석구석까지 현존하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과거와 미래, 그리고 어떤 인격을 가진 '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본질적으로 우리 자신입니다. 사실, 그 어느 때보다 완전하게 자기 자신이 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이 되는 것은 오로지 '지금' 뿐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현존하는 것과 같습니까?
우리가 존재를 의식할 때는 사실, 존재가 스스로를 의식하는 것입니다. 존재가 자
신을 의식하게 되면 그것이 현존입니다. 존재, 의식, 그리고 삶은 동의어이기 때문
에 현존이란 자신을 의식하는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혹은 생명이 자의식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어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현존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방금 당신이 한 이야기는 현존, 즉 궁극적인 초월적 실재는 아직 완전하지 않으며, 지금도 발전 과정을 겪고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듯합니다. 신은 개인적 성숙을 위한 시간을 필요로 할까요?
그렇습니다. 물질화 된 세상의 제한된 시각으로 보자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선언합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나는 살아 있는 유일자
이다."
시간을 초월한 신이 거주하는 왕국이자 우리의 집이기도 한 그곳에서는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가 하나입니다. 만물의 본질은 일찍이 인간의 마음으로는 결코 상상
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온전하고 완벽한 상태로 물질화되지 않은 채 존재해 왔
으며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가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우리에게 시
간을 초월한 완전함이란 불가해한 개념입니다. 영원한 근원으로부터 발산되는 의식
이 하나의 발전 과정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모두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이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진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만물은 '존재'를, 신의 본질을, 어느 정도의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돌멩이조차도
미미한 정도나마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으며, 원자와
분자로 흩어질 것입니다. 모든 것은 살아 있습니다. 태양, 지구, 행성, 동물, 인간등
만물은 다양한 의식의 표현이요, 모습을 갖고 물질화 된 의식의 표현입니다.
세상은 의식이 사고 형태와 물질적 형태를 취하면서 생겨납니다. 이 지구상의 수많
은 생명체를 보십시오. 바다 속에서, 땅 위에서, 대기 중에서, 생명체가 오랜 세월 동안 되풀이해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 목적이 뭘까요?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형태를 갖고 게임을 하는 것 아닐까요? 고대 인도의 선지자들은 스스로 에게 그런 질문들을 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살이란 신이 벌이는 신성한 게임 같은 것(릴라 lila)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게임에서 개별적인 생명체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게 분명합니다. 바다 속에 서는 대부분의 생명체가 태어난 지 몇 분도 되지 않아서 죽고 맙니다. 인간의 형태 역시 꽤 빠른 속도로 먼지로 변하며 언제 존재했느냐는 듯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비극적이거나 잔인한 것일까요? 우리가 스스로 분리된 개체라고 느끼는 한 그것은 진실입니다. 저마다의 의식이란 신의 본질이 형상 속에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는 것 임을 잊고 지내는 한, 인생은 분명 비극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당신 자신 안에 있 는 순수 의식으로서의 신의 본질을 깨닫기 전에는 진정으로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 예수는 이러한 과정을 '돌아온 탕자'라는 우화를 들어 설명합니다. 아버지의 집 을 떠났던 아들이 재산을 다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집에 돌아옵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전보다 더 사랑합니다. 아들의 상태는 예전과 같으면서도 같지 않습니다. 한결 깊어진 것입니다. 이 우화는 완벽한 무지의 상태 에서 시작되어 세속적인 불완전함과 악을 거쳐, 완전한 깨어 있음으로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인격화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에게 어떤 형태를 띤 정체성을 부여하지 마십시오. 영원의 스승들, 신성한 어머니들, 깨달은 마스터들은 매우 보기 드물지만 실재하며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격려하고 방어하고 만족시켜야 할 거짓 자아가 없는 그들은 보통의 남자들이나 여자들보다 오히려 더 단순하고 평범합니다.
에고가 강한 사람은 그들을 보잘것없이 여기거나 그들을 보고도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만일 당신이 깨달은 스승에게 이끌린다면, 그것은 당신이 이미 다른 사람의 현존을 인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현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나 붓다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릇된 스승에게 이끌린 사람들은 많았고 지금도 있습니다.
에고는 더 큰 에고에게 이끌리는 법입니다. 어둠은 빛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오로지 빛만이 빛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빛이 우리 바깥에 있다거나 어떤 특별한 형식을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믿는 주님만이 신의 화신이라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배타적인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 눈에 보이는 형상에 동화되어 있는 것이며, 형상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무리 그럴듯하게 위장을 해도 결국은 에고를 의미합니다.
이름과 모습을 초월하여, 스승의 현존을 '나 자신은 진정 누구인가'를 비추는 거울로 이용하십시오. 스스로 더 강하게 현존할 수 있게 하십시오. 현존 안에는 '내 것', '네 것'이 없다는 것을 당신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현존은 '하나의 상태'입니다.
함께 모여서 수행하는 것 역시 현존의 빛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함께 모여서 현존 상태로 들어가면 매우 강력한 집단 에너지 장이 형성됩니다. 구성원 각자의 현존하는 수준을 높여줄 뿐 아니라, 집단 의식을 마음이 지배하는 상태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입니다. 그래서 각자가 현존상태에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에고가 쉽사리 다시 고개를 쳐들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구성원 중에 한 사람은 이미 현존속에 확고히 자리잡고 그 상태의 에너지 주파수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체수행은 매우 효과가 좋지만 충분하지는 않으며 거기에만 의존해서도 안 됩니다. 현존의 의미를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스승이나 지도자에게만 의존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