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성 히어로, 소리 없이 빛나는 사람
◐ 월드컵 축구 이야기 ◑
러시아 월드컵이 이제 결승전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한 달 동안 전 지구를 들썩이게 하는 최대의 축제입니다. 축구전쟁이라는 말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되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개인적으로 국가간의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지만 과정이 좋지 못하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모든 것이 끝인 축구와 같은 경기는 싫어해서 잘 보지 않은 편이지만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하지 못했다고 해서 선수나 감독을 비난하는 모습도 매우 불편합니다. 그래서 나는 승부와 관계없이 조별리그보다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보여주는 토너먼트 경기가 편합니다. 이번에도 8강이 결정 되었을 때 나는 전통적인 유럽의 강호보다는 변방의 잘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와 남미팀이 선전하기를 기대하고 은근히 응원했는데 결국 4강은 모두 유럽팀이어서 아쉽습니다. 그래도 그 중에 벨기에와 크로아티아가 이겨서 결승에 진출하기를 바랐습니다. 덜 알려지고 국력이 약한 나라가 선전하기를 바라는 공통의 마음에서일 것입니다. 축구에서 내가 주로 보는 것은 최종적으로 골을 넣는 한 명의 공격수가 아닙니다. 그 한 골을 넣기 까지 누가 어떻게 돕고 바라보고 희생하는가를 주의 깊게 바라보려고 합니다. 훌륭한 감독들은 바로 그런 숨은 공로자를 잘 찾아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요.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보여준 것처럼....
이번에도 숨은 공로자를 조명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아무리 잘해도 빛이 나지 않지만 한 번 실수하면 치명적인 패배로 이어지는 수비수나 골키펴에 대해 관심을 보여준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도움주기를 잘 하는 선수들을 놓치지 않고 보여주는 방송과 해설자의 안목이 잘 드러나기도 했지요.
‘언성 히어로(Unsung Hero·이름 없는 영웅)’는 말 그대로 팀의 조연입니다. 끝까지 드러나지 않고 박수도 받지 못하는 존재이지만 그들이 없으면 경기는 빛을 잃고 맙니다. 세상의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새벽 나는 크로아티아와 잉글랜드 준결승전을 보았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고 계획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경기도 잘 안 보는데 그것도 새벽 3시에 열리는 경기를 보다니....
한 골을 먼저 넣은 잉글랜드는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결승에 오를 것처럼 경기를 하였고 절박한 상황에서의 크로아티아는 시간이 지나면서도 조급해 하거나 허둥대지 않고 저기들만의 플래이를 침착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1:1로 끝이 나고 승부는 연장전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똑 같은 상황이지만 크로아티아에는 ‘언성 히어로’가 있었습니다. 연장 전반을 적절한 수비와 공격으로 조절하며 마친 다음, 남은 연장 후반에 숨은 영웅의 진가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성실하고 헌신적인 도움과 동료 선수에 대한 배려 그리고 희생.... 결국 그의 발끝에서 시작된 패스 하나가 승부를 갈랐습니다. 그러나 카메라는 골을 넣고 환호하는 선수에게 집중되고 더러는 직전의 패스를 한 선수를 비추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경기는 끝이 났고 크로아티아는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경기 후 감독은 16강 ,8강 모두를 연장전까지 치른 상태에서 주전들의 체력소모가 극심해서 당연히 선수 교체를 하려고 했지만 선수 그 누구도 교체되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모두 '나는 더 뛸 수 있다'고 의지를 불태워서 선수들을 교체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어찌 보면 내가 ‘언성 히어로’로 지목한 이반 라키티치 뿐 아니라 모두가 ‘언성 히어로’인 것입니다.
인구 400만의 작은 나라의 모든 국민들처럼 나는 이제 남은 결승에서 그들을 응원할 것입니다.
16강부터 연속 세 경기를 연장전 승부까지 견뎌낸 진정한 '언성 히어로'들을 말입니다.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둔 팀들을 보면 어김없이 ‘언성 히어로’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여럿이... 반대로 16강에 오르지 못했거나 8강에 오르지 못하고 탈락한 우승 후보들에게는 세계적인 몸값의 스타들은 즐비했지만 팀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진정한 ‘언성 히어로’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땠을까요? 우리나라의 축구를 지켜보고 응원한 분들은 어떠했고 그것을 보도하는 언론은 또 어땠을까요? 승부나 결과가 아닌 경기 흐름 속에서 진정한 ‘언성 히어로’를 발견하고자 관심은 기울였을까요? 패배에 대한 희생양 찾기에 급급한 나머지 실수한 선수에게 핑계를, 감독에게 책임을 넘기기에만 집중한 것은 아닐까요?
한번쯤 깊이 생각해 봐야할 문제입니다. 누구나 말하기는 쉽고 문제를 지적하기는 간단하지만 성찰과 깊은 사유의 생각은 쉽지가 않습니다. 상대방 입장에서의 배려가 없는 비판은 단지 비난일 뿐입니다. 그 비난은 독을 품은 화살이어서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스포츠든 우리의 세상의 일이든 같은 이치가 아닐는지요?
◐ 생활 속에서 ◑
디짜이! 뿜짜이! (기쁘다, 이것이 태국의 자존심이다!)
태국 북부 치앙라이루 동굴에 갇혀 있다가 고립 18일 만에 기적적으로 전원 구출된 유소년 축구선수와 코치 13명의 이야기가 감동으로 전해지는 아침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들을 다독이며 보살피다 맨 나중에 구조된 젊은 코치의 이야기는 ‘가만 있으라’ 고 방송만 하고 혼자 빠져나온 세월호 선장의 모습이 겹쳐져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합니다.
자기를 믿고 따르던 제자들을 위해 코치 자신은 물만 마시며 간식과 과자를 아이들에게 전부 양보하고 아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명상 시간을 갖고, 생존법을 가르치고, 구조대를 통하여 아이들의 부모에게 편지로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25세의 무국적 난민 청년입니다. 세상의 관심은 온통 흥미와 자극적인 가십거리와 돈에 집중되어 있지만 이 구조 활동 전과정에서 보여준 태국 정부의 모습과 그 나라 언론, 시민들의 성숙된 자세는 너무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름도 얼굴도 드러나지 않은 많은 숨은 영웅들이 있었음을 나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나는 우리 성당의 진정한 ‘언성 히어로’를 만납니다. 한 대의 미사가 거행되기 까지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필요한지 지금까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마치 잘 차려진 밥상에 앉아 수저만 드는 태도로 미사에 참여한 까닭이겠지요. 대접받는 손님처럼 말입니다.
내가 성당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이 나고 그렇게 준비를 마친 분들은 우렁 각시처럼 더 이상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복사를 서기 위해서, 독서나 해설을 위해서 매우 일찍 성당에 가는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풀어쓴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글을 그분들에게 선사하고 싶습니다.
모두 그가 이룬 것이지만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는다. 일이 끝나면 그는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주일 교중 미사 전에도 우리 성당의 우렁각시 같은 분들을 만납니다. 성가대 연습을 위해 1시간 전에 성당에 가는 아내와 동행 하다보면 미사 한시간 전의 모습을 보고 듣습니다. 성가대 연습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서 느끼는 감동이 내게는 미사중에 울리는 성가대의 찬양 소리보다 더 기쁘고 깊게 다가옵니다. 한 음 한 음을 바로 잡아가며 마치 안경알을 닦듯이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채워가는 그 시간의 과정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듯 보이지 않은 영웅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보이지 않게 빛나는 그 ‘언성 히어로’를 위해 미사 때마다 두 손 모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눈빛이나마 늘 전해주고 싶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여자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 들던 이들이다. <마태27,55>
첫댓글 대한민국 4대 일간지 칼럼 수준의 글을 읽는 즐거움을 주시는 오후 네시 형제님, 성가대 맴버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성가대를 언성 히어로우로 칭찬해 주시니 너무 기분이 좋군요..예수님께서는 겸손한자를 일꾼으로 쓰신다하셨으니 앞으로 더욱 겸손한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