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선계곡, 별유천지비인간
이원근(수필가)
◉ 2026.7.15.
◉ 추성주차장-칠성교-두지동-윗칠선교-선녀폭포-선녀탕구름다리-비선담-옥녀탕
대프리카의 염천을 피해, 칠선계곡을 찾았다. 설악산 천불동계곡, 한라산 탐라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대구에는 꽝철이가 붙었는지 장마철인데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한낮에는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뜨거웠지만,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서자, 공기의 결부터 달라졌다. 산그늘과 계곡 바람이 더위를 한 겹씩 걷어내는 듯했다.
칠선계곡은 험준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 그리고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을 품고 있다. 깊은 골마다 자연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지리산 계곡 가운데 여성의 이름을 딴 지명이 특히 많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골은 깊고 날카로워진다. 숱한 생명을 앗아가 ‘죽음의 골짜기’로도 불렸고, 그 험준함 때문에 전문 산악인들이 히말라야 원정에 앞서 겨울철 빙폭 훈련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등로를 벗어나서는 발을 놓기 어려울 만큼 지형이 험해 등로가 상당 구간 계곡과 떨어져 있다. 일행 몇은 예약 없이 출입이 허용되는 선유담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머물 만한 곳을 찾기로 했다.
계곡에서 한참 떨어진 등산로를 따라 마을 모양이 식량을 담는 뒤주를 닮았다는 두지동마을을 지난다. 예전에 화전민들이 살던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빈 마을인 듯하였다. 세월이 바뀌어도 깊은 산골 마을이 품은 고요함은 그대로였다.
윗칠선교를 건너 다시 등로를 따라가면 선녀탕 구름다리에 닿는다. 천상의 일곱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선녀탕은 모래와 돌이 많이 쌓여 예전의 빼어난 모습은 다소 흐려졌지만, 조금 위의 옥녀탕은 여전히 깊고 맑은 물빛을 간직하고 있었다.
허락 없이 누구나 상시 출입이 허용되는 비선담 통제소에 이르렀다. 이곳에서부터는 조식 선생이 “하늘이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라고 읊었던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산꾼들은 천왕봉의 위대함을 가장 깊이 느낄 수 있는 길로 칠선계곡 코스를 꼽곤 한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여러 등산로 가운데,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두 곳 중 하나의 길로 남아 있는 코스다.
그러나 오늘의 목적은 정상이 아니다. 대구의 뜨거운 열기를 벗어나 깊은 계곡의 물소리와 그늘 속에서 한나절을 보내는 일이다. 우리는 다시 되돌아 선녀탕 구름다리 위에 섰다.
가장 먼저 눈길을 붙든 것은 옥녀탕의 투명하다 못해 깊고 영롱한 에메랄드 물빛이었다. 물이 워낙 맑아 수면 아래 잠긴 크고 작은 돌들이 또렷하게 보였다. 한쪽에서는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계곡물이 시원하게 흘러들고, 수면 위로는 잔물결과 흰 물거품이 부드럽게 번져 나갔다. 대구에서 가져온 한낮의 열기는 그 물빛 앞에서 더는 기세를 부리지 못했다.
옥녀탕 언저리에 자리를 잡고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불로 곡차(?)를 나누어 마시며 고개를 드니, 주변 풍경도 한층 또렷하게 다가왔다. 오랜 세월 물과 바람에 깎인 바위들은 밝은 회색과 화강암 특유의 거친 질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를 이루는 거대한 암벽과 물가의 둥근 바위, 그 위를 덮은 짙은 초록의 이끼는 깊은 원시림의 분위기를 더했다.
사방을 둘러싼 숲은 연두에서 짙은 녹색까지 여러 빛깔을 내며 탕 위로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다. 빽빽한 나뭇가지와 숲의 그림자가 물가에 스며들어, 이곳이 깊은 지리산 품 안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 주었다. 옥녀탕과 선녀탕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신비롭고 고요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가 물가에 머물렀다.
평생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세상 보는 눈을 길러 주기 위해 애써 온 사람들이 이제는 각자의 시간을 조금 내려놓고 이름난 계곡을 찾았다. 예전 같으면 산행의 거리와 고도, 정상까지의 시간이 먼저 화제가 되었겠지만, 오늘은 물가에 앉아 발을 식히고 바람을 맞는 시간이 더 소중했다. 누구는 물빛을 바라보고, 누구는 숲의 그늘을 이야기하고, 누구는 말없이 흐르는 물소리를 들었다.
맑고 차가운 계곡물의 청량함, 이끼와 나뭇잎이 내는 싱그러움, 바위와 숲이 만들어 낸 깊은 그늘이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 같았다. 대구의 무더위를 피해 찾아온 길이었지만, 단순히 더위를 식히는 피서만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지리산 깊은 골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고, 자연이 내어준 시원한 품 안에서 편안한 여유를 누린 하루였다.
이백이 산중 문답에서 말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경지가 꼭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뜨거운 도시를 벗어나 깊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숲과 바위와 물소리 사이에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순간, 그곳이 바로 사람 사는 세상 밖의 별천지였다.
선녀탕 ▲ 일곱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했다는 선녀탕,
선녀탕의 전설은 선녀에게 연정을 품은 곰과 선녀를 도운 사향노루가 등장하는 동화 같은 얘기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곰이 일곱 선녀가 여기서 목욕하는 것을 보고 선녀들이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옷을 훔쳐 숨겨 버렸다. 목욕을 마친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맬 때 사향노루가 자기 뿔에 걸려있는 선녀들의 옷을 가져다주어 선녀들이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곰이 바위틈에 누워있던 노루의 뿔을 나뭇가지로 잘못 알고 선녀들의 옷을 숨겼던 게다. 그 후 선녀들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를 칠선계곡으로 이주시켜 살게 했으며 곰은 다른 곳으로 내쫓아 버렸다는 전설이다.
옥녀탕 ▲ 칠선계곡에서 가장 빼어난 소이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울창한 수림과 넓은 소가 연출해 내는 옥녀탕의 전경은 위로 무명 소들과 이어져 깎아지른 듯한 벼랑으로 연결되면서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비선담 안전 쉼터 ▲ 비선담까지의 하부 구간은 등산로 정비·안전시설을 갖추고 있어 누구나 상시로 예약 없이도 산행할 수 있지만, 비선담 통제소에서부터는 탐방 예약제를 시행하고 있다. 1년 중 5월에서 10월까지 단 6개월, 수, 목을 제외한 주 5회, 그것도 예약은 1일 최대 60명까지며, 최소 2인 이상 팀을 구성하여 신청해야 한다.
▲ 옥녀탕에서
첫댓글 ㅡ 권수문
역시 칠선계곡은 국내 골짜기 중에서 단연 백미로 꼽히지요.
산행기를 읽으니 지난날 칠선계곡에서 그야말로 죽을 고생을 한 경험들이
머리를 스칩니다.
백무동에서 장터목까지는 오래 전
겨울에 안내산악회를 따라 영도 철도 모르게 올랐다가 역시 큰 고생을 한 일이 생각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역시 지리산은 대단합니다.
지 아무리 설악이니 한라니 하지만 모든 산을 다 합쳐놓은 것과 같은 산이 지리산이지요.
무더운 날씨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소인은 가만이 앉아서 칠선계곡 잘
다녀왔습니다.
ㅡ 석정규
그 예전 여름 칠선계곡쪽으로 일행들과 하산하다 큰 사고를 당할뻔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지리산 품속 소식 전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더운 여름 강녕 하십시요
화이팅~!!
ㅡ 여인태
지리산 칠선계곡 들어가는데 마천면이 우리시조가 있어요.
ㅡ 최천기
교장 선생님의 글과 사진을 읽고 보다보니 저도 동행한 듯한 기분입니다,
"별유천지비인간" 또 배움을 받읍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ㅡ 이승재
선생님 !
오늘도 무더운 날씨 속에
오늘 하루 잘 보내 셨는지요.
무더위도 무더위 이지만
후덥 지근하고
불쾌 지수가 높은 것이
가장 문제 네요
무더위에 건강관리 잘 하시고 좋은 저녁 보내세요.
ㅡ 김종배
최근 가보지 못한 칠선계곡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고 오래오래 백수까지 건강하세요.
ㅡ 김종철
제 교단 동료들도 여럿이 있고. 주변에 많은 퇴직 동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임 처럼 꾸준하게 산행하는 모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래도록 함께 하시면서 산수를 즐기시길 기원드립니다.
ㅡ 김진호
지리산 칠선계곡에서 여유로운 하루를 보낸 산꾼에게 박수를 보내네.
내 고향 대구가 최근 얼마나 더웠으면 피서지로 지리산 계곡을 찾아 나섰을까? 짐작이 가네.
자연을 벗 삼아 지친 심신 을 달래는 여유로운 삶, 너무 멋지고 우아합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건강하고 중후한 멋쟁이가 되시길...
ㅡ 박낙원
칠월 덜어 두번째 고향집에서 공곡 톡을보고, 새벽이가 내 잠 울 거두어 가고나니 미루어 둔 자네 톡 이 생각나 열어봐서요.
칠성계곡 산길을 한번 가 볼라고 '오만분에 일 지도책' 을 여러번 답사 해오다 아직인 그 계곡 길, 삼대 계곡이 칠성이를 못가봐서 내게는 2대 계곡으로 결정 해야 될꺼에요.
어느날 04시 20분 일어나 들에나갈때 "코둘러" 둘래길 떠나는 날은 코둘러 팀들도 새벽길을 나설꺼야 하면서 밭에 갔는 날도 있어네 ^.^
칠성계곡 청정계곡 정기를 가득담아 와서 벽에 걸어두시게.
그라고 장구목 사진 옆사람 손 잡은 치마씨가 무촌 사이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