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호 (감독·배우·1952 - 1998)
1970년 MBC 탤런트로 데뷔.
70년대 영화 얄개시리즈에 출연하며 하이틴 스타로 사랑받았다.
익살스러운 연기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으며
1990년에는 영화 '동경 아리랑'으로 영화감독에 데뷔했다.
평소 당뇨와 만성신부전증으로 고생했으며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 다큐프로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안재환 (안광성·배우·1972 - 2008)
1996년 MBC 25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서울대 출신으로 드라마 '엄마야 누나야', '똑바로 살아라' 등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6년 이후 사업가로써 바를 오픈하고 신발 사업을 벌이기도 했으며 2007년 개그우먼
정선희와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양종철 (희극인·1962 - 2001)
1987년 KBS 4기 공채 코미디언으로 데뷔.
코미디 프로 KBS '쇼 비디오 자키'의 한 코너인 '도시의 아이들'에서 물방개 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역시 코미디 프로인 '유머 일번지'의 간판 코너 '회장님 회장님'에서는
"밥 먹고 합시다'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코미디언 심형래와 함께 어린이영화에도
자주 출연해 친근한 이미지로 인기가 높았다.
유니 (허윤·가수·1981 - 2007)
아역배우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면 1996년 KBS2의 청소년 드라마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를 통해 본격적인 연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예명은 이혜련.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2003년 1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가수로 전환했다. 예명을 유니로 바꾸고 가수로 활동 하던 중 3집 발표를 앞두고 숨졌다.
유재하 (가수·1962 - 1987)
1984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키보디스트로 데뷔. 단 한장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남긴 후 교통사고로 숨졌다. 클래식과 재즈를 접목시켰던 이 앨범은 발매초기에는 외면
받았지만 사후에 보기드문 명반으로 재평가 받기도 했다. 유작 음반 수익금으로 시작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수많은 실력파 가수들을 발굴해냈으며 유재하는 아직도 많은
가수들이 존경하는 가수로 손꼽는 싱어송라이터로 기억되고 있다.
윤심덕 (성악가·1897 - 1926)
우리나라 개화기를 주도했던 여성 예술가.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이다.
성악가로 활동하다가 연극배우로 전향했으며 일본에서 대중음반을 취입하기도 했다.
당시 문학가였던 유부남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서 동반자살해서 한국과 일본에 큰 화제가 됐다.
윤심덕이 취입한 노래 제목이기도 한 '사의 찬미'는 1991년에 윤심덕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의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기동 (희극인·1935 - 1993)
1970, 19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코미디언. 땅딸이 이기동으로 잘 알려진 코미디언 1세대이다.
MBC의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땅딸이 이기동과 늘씬 미녀 미스 권’으로
권귀옥과 콤비를 이뤄 인기를 끌었다. 배삼룡과 자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쿵따라닥닥 삐약삐약,
닭다리 잡고 삐약삐약"과 같은 유행어가 유명하다. 1980년대 중반에는 음료업체 기동산업을 만들고
사업을 했다. 당시 출시한 '기동사와'는 그의 애칭을 따 땅딸이사와로 불리기도 했다.
이언 (박상민·모델·1981 - 2008)
2006년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로 배우 데뷔. 씨름 선수 출신으로 1997년 전국체육대회 금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1999년에 모델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내다가 케이블 방송에서 주목받으며
사랑받았다. 배우 데뷔 이후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최강칠우' 등을 통해 TV에서도 실력을
검증받았다. 모델과 배우를 겸하면서도 양쪽 모두에서 인정받는 유망주였지만 오토바이 사고로
안타깝게 숨졌다.
이은주 (배우·1980 - 2005)
1997년 선경 스마트 학생복대회에서 은상으로 데뷔. 드라마 '백야 3.98'에서 심은하의 아역으로
주목받았으며 드라마 '카이스트'에 출연하며 인기를 모았다. 영화 '오! 수정'으로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영화에도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활약했는데 특히 드라마
'불새'는 크게 성공하기도 했다. 이지적인 외모와 폭넓은 연기력으로 정상급 여배우로 사랑받았다.
임성민 (배우·1956 - 1995)
1977년 TBC 탤런트 18기로 데뷔.
1980년대의 대표 미남배우였다. 체육학과 출신으로 뛰어난 체격조건과 서구적 마스크로 사랑받았다.
장미희와 함께 영화 '사의 찬미'로 청룡영화제 남우,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드라마 '폭풍의 계절',
'사랑의 굴레' 등에 출연했으며 1995년 드라마 '사랑과 결혼'에 출연 도중 지병으로 하차했다.
터틀맨 (임성훈·배우·1972 - 2008)
2001년 3인조 혼성그룹 거북이로 데뷔.
인기 그룹 거북이의 리더였다. 2005년 4월 심근경색으로 한 차례 쓰러졌지만 2006년 바로 재기했다.
그룹 거북이는 유쾌하고 발랄한 멜로디와 가사로 사랑받아온 댄스그룹이었다. 터틀맨 임성훈은
그룹내에서 랩을 담당했으며 대부분의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했으며, 1집때부터 '사계', '빙고' 등이
많은 인기를 끌었다. 5집앨범을 내고 활동하던 중 지병인 심근경색이 재발해 숨졌다.
장덕 (가수·1962 - 1990)
1975년 '꼬마인형'으로 데뷔.
국내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알려져 있으며, 친오빠 장덕과 함께 듀오 '현이와 덕이'로 활동 했다.
중학교 2학년때 만든 '소녀와 가로등'은 1977년 진미령이 부르며 제1회 MBC국제가요제에서
입선하기도 했다. 연기에도 재능을 보여 10여편의 하이틴 영화에 출연했으며 솔로로 전향한 이후에는
정수라, 이선희와 함께 여성 가수를 대표했다. 1989년 발표한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유작앨범이 됐다.
장현 (가수·1955 - 1990)
1975년 '꼬마인형'으로 데뷔.
친동생인 가수 장덕과 함께 친남매 듀오 '현이와 덕이'로 활동했다. 데뷔 이전 부터 미8군 무대에서
동생 장덕과 함께 '드래곤 랫츠'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현이와 덕이'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장덕이
솔로가수로 전향한 후에는 코아기획이라는 음반 매니지먼트 회사를 세워 동생을 지원하는 한편
사업가로 변신했다. 설암으로 투병 생활을 했으나 끝내 병을 이겨내지 못했다.
장진영 (배우·1974 - 2009)
1992년 미스코리아 충남 진으로 데뷔.
1997년 드라마 '내 안의 천사'로 연기활동을 시작했으며 1999년에는 영화 '자귀모'를 통해
영화배우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특히 영화 '소름'과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두번 수상하며 연기파 배우로도 인정받았다. 2008년 위암 판정을 받고 1년여 동안
투병했지만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2007년에 출연한 드라마 '로비스트'가 마지막 작품이 됐다.
정다빈 (정혜선·배우·1980 - 2007)
2000년 SBS시트콤 '돈.com'으로 데뷔.
시트콤 '논스톱2', '논스톱3'을 통해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 등을 흥행시키며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맑은 이미지와 귀여운 외모가 특징으로 장래가 기대되는 주연급 여배우 중 한
명이었다.
정은임 (아나운서·1968 - 2004)
1992년 MBC 아나운서로 데뷔.
1992년부터 진행한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을 통해 라디오 DJ로 잘알려져 있다. 당시 PC통신에서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나운서를 위해 생긴 최초의 팬클럽이었다. 영화음악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사회문제를 소신있게 다뤄 많은 고정 청취자의 사랑을 받았다.
2004년 출근길에 차량 전복사고를 당해 숨졌다.
차중락 (가수·1942 - 1968)
1966년 그룹 키 보이스 리드보컬로 데뷔.
1961년에는 미스터 코리아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룹 키 보이스의 전성기를 이끌다가 1967년에 엘비스
프레슬리의 곡을 번안한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으로 큰 인기를 끌며 솔로 가수로도 성공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가수 배호와 함께 동시대를 양분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1년 여 만에 뇌염으로 숨졌다.
최병걸 (가수·1950 - 1990)
1970년대 최헌, 김훈, 조경수와 함께 최고의 트로트 가수였다. 1971년부터 살롱가에서 노래를
부르며 인기를 얻었으며 1972년 안혜경과 함께 포크 듀엣 '찹스틱(훗날 '늘 둘이'로 개명)'을
결성하며 데뷔했다. 1974년에는 '정성조와 매신저스'에서 싱어를 맡기도 했으며 1975년 '찬비'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미녀 탤런트 정소녀와 듀엣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1978년 '난 정말 몰랐었네
'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최진실 (배우·1968 - 2008)
1988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한중록'으로 데뷔. 데뷔 초 깜찍한 외모와 함께 CF퀸으로
불리며 주목받았다. 1990년대 영화와 방송을 넘나들며 출연하는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할 정도로
당시의 최고 여배우였다. '국민요정'으로 불리며 친근한 이미지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한때 침체기를 겪기도 했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도 주연 여배우로서 성공적으로 재기했다. MBC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마지막 출연작이 됐다.
추송웅 (배우·1941 - 1985)
1963년 연극 '달걀'로 데뷔.
극단 '자유극장'에서 활동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연기자로 불릴 만큼 연기력을 인정 받은 배우였으며
1977년 '빨간 피터의 고백'을 성공시키며 흥행성도 인정받았다. '빨간 피터의 고백'은 카프카의 단편
'어느 학술원에 제출된 보고서'를 각색한 모노드라마로 추송웅은 기획, 제작, 연출, 연기, 분장을
도맡아 1인 5역을 해냈다. 이 작품으로 추송웅은 국내에서는 모노드라마 붐이 일으키고 흥행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길종 (영화감독·1941 - 1979)
1972년 영화 '화분' 감독으로 데뷔.
1970년대에 활약한 천재 영화 감독. '바보들의 행진', '병태와 영자' 등을 흥행시켰다. 미국 UCLA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교수이자 평론가, 번역가, 영화운동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UCLA 졸업
작품으로 만든 '병사의 제전'은 MGM영화사의 '메이어 그랜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미국 영화과
학생 중 4명에게만 주는 상이었다.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된 '병태와 영자'가 상영 중이던 겨울
뇌졸중으로 숨졌다.
하수영 (가수·1948 - 1983)
1968년 '사랑은 홍역'으로 데뷔.
1976년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로 최고 디스크 판매 기록을 세웠다. 긴 시간을 무명의 가수로
살롱가를 전전했지만 데뷔 이후에는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로 많은 사랑받았다. 모두 4장의
음반을 남겼지만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가장 잘 알려져있으며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남편들의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