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화단을 정리하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점심때쯤 뒷산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런 것들은 미운오리새끼처럼 갈곳없는 우리들에겐 통하는 하루의 일상이다. 가까운 국수집에서 깁밥 3인분을 시겼다. 국수집 주인과는 어느새 걷절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언젠가(분위기를 살펴) '먹고 살만한것 같은데, 뭣하려 장사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하긴 요즘 세상에 몇천조를 가졌다고 만족해 하겠는가?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집에서 대책없이 노는 나같은 부류들에 비하면 현명한 처사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오가는 낮은 등산로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따라 시원한 바람이 불어 야외 회합의 분위기를 돋군다.
친구는 지자체에서 금융기관을 통한 지원금 지급에 관한 안내문자가 자꾸 날아와 해당 사이트에 접속하였으나 계속해서 에러가 난다며, 그깟 돈 받으려다 기분만 상한다고 분개를 하였다.
나는 그러한 정책에 대하여선 처음부터 부정적이니 조금도 기대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하필 선거를 앞두고 정부나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시행되는지, 구체적으론 어느선까지 어떻게 지급되어야 하는데에 대하여는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러한 돈풀기는 그렇지 않아도 환율이 오르고, 화폐가치가 추락하였는데도 더욱 더 그 가치를 하락시킴으로써 물가가 올라 가난한 사람을 더욱 어렵게 하는 정책을 써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크다. 적은 돈으로 정말 어려운 사람들만 선별 지원하면 어떨까?
좋은 정책이란 소수의 생각이 세상을 지배하지말고, 누구라도 그럴(그래야) 것이란 확신이 들어야 한다.
나는그 돈푸는 것을 두고 '임꺽정 정책'이라 말하고 싶다. 이유야 어떻든 재정자립도가 현저히 낮으면서도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번 사람들의 재산(소득)을 앗아(세금) 다른(무위도식 하는...까지) 사람들에게 돈을 공짜로 나누어 주니 하는 말이다. 그래서 가진자들은 빼앗기지 않으려 울타리(이민)를 넘는다.
초창기엔 장래 자식들의 등골을 뺀다고 말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안찾아 먹으면 바보라며 표정을 감춘다.
저소득자에게 경제적 지원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갈수록 빈부 격차가 심해지니 더 확대해야 할 일이다. 다만 그 정책에서 세금을 내는 사람도 보람을 느끼고, 지원을 받는 사람은 더욱 명분이 확실하며, 실질적 도움이 되게 투명하게 지원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요즘들어 사람들이 모두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부에서는 회사가 돈을 많이 버니 자신의 역량이나 기여에는 관계없이 무조건 내어 놓으라는 투쟁에 나선다. 돈에 환장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근로자는 회사와 근로계약을 할때 일정 요건의 근로조건과 임금에 관한 사항을 협약한다. 그래서 그 조건내에서 노동을 제공하고, 약정된 임금을 받으면 일단의 근로계약 조건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천운의 기회가 와서 회사가 떼돈을 벌었다고, 회사더러 거액의 돈을 내어 놓으라고 하는건 그 어떠한 계약조건에서 해석되는 것일까? 물론 회사가 막대한 이익을 얻었으니 그 이익을 생산에 종사한 직원들에게 성과를 따로 나누어 배려하는 것은 별개의 해석이다.
반대 논리로 회사가 경영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제적인 여건 등으로 적자경영을 가져와 노동자들에게 임금 일부를 반납하라고 요구하면 어느 노동자가 그것에 수긍하겠는가?
그러한 이익을 투자자만 나누어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다. 회사의 장래를 위한 재투자 계획에 사용되거나 합리적인 배분계획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어느 특정회사의 사례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막가자는 식으로 흘러가다보니 무엇인가 원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뿐이다. 다만 나의 생각으론 이 사회는 이미 정의가 사라지고, 하이에나처럼 언제든 상대에 달려들어 먹이를 강탈하는 정글로 변한 것 같다.
평범한 사람들은 무엇에 길들여지면 웬만하면 피리부는 사나이가 이끄는대로 따라가기 싶상이다.
나도 이젠 자식세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은 가셨다. 내가 지키고 싶은 세계가 있고, 그들이 가는 세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를 믿고, 무엇을 정의로 내세우는 것은 우리의 현실을 벗어나 버렸다. 약육강식에 각자도생이란 용어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것 같아 서글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