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충신 충의공 엄흥도 묘(嚴興道 墓)
2023.7.22(토) 100대 명산 영월 태화산(1,207.5m) 산행을 종료하고
팔괴1리에 위치한 충신 충의공 엄흥도 묘소를 찾는다.
엄흥도 묘(嚴興道 墓)는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안장한
영월 호장(戶長) 충의공(忠毅公) 엄흥도의 묘이다.
엄흥도(嚴興道)는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해도 달게 받겠다.’며 시신 수습과 장례를 치른 후 영월을 떠나 평생 숨어 살았다.
후에 공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의공(忠毅公)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영월 창절 서원(彰節書院)에 배향되었다.
충신 엄흥도 묘(嚴興道 墓) 표지석
<엄흥도>
본관은 영월(寧越), 영월의 호장으로, 단종이 세조에 의하여 상왕(上王)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안치되었다가 시해되자,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신을 수습하였다.
단종이 승하한 이튿날 옥가(獄街)를 오가며 통곡하고, 관을 마련하여 아전과 백성들을 모아
영월의 북쪽 5리쯤 되는 동을지(冬乙旨)에 장사지냈다.
1585년(선조 18)에 종손인 정병(正兵) 엄한례(嚴漢禮)에게 호역(戶役)을 면제하고
노산군의 묘역을 수호(守護)하게 하였고, 현종 때 송시열(宋時烈)의 주청으로 자손을 등용하게 하였다.
숙종 때 공조참의에 증직(贈職)되었고, 영조 때 정문(旌門)을 내렸다.
뒤에 공조판서에 증직되었고, 사육신과 함께 영월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爲善被禍 吾所甘心(위선피화 오소감심)
엄흥도가 지은 여덟 성어이다.
청령포 차디찬 강물 위에 떠 있는 단종의 주검을 바라보면서 엄흥도는 이 여덟 성어를 가슴으로 토해 내며
드디어 3족의 멸함을 감수하고 단종의 시신을 거두기로 결심했다.
“옳은 일을 하다 화를 당한다 하더라도 나는 달게 받겠다”
엄흥도 비석(嚴興道 碑石)
엄흥도 묘로 올라가는 계단
영월읍 팔괴리 창평산 자락에 위치해 있는 엄흥도 묘(嚴興道 墓)
묘의 좌측엔 청룡을
묘의 우측엔 백호를 새겼다.
조선충신영월군호장증가선대부공조참판겸오위도총부부총관엄흥도지묘
(朝鮮忠臣寧越郡戶長贈嘉善大夫工曹參判兼五衛都摠府副摠管嚴興道之墓)
조선국충신영월군호장증자헌대부공조판서시충의엄흥도지묘
(朝鮮國忠臣寧越郡戶長贈資憲大夫工曹判書諡忠毅嚴興道之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