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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귀하게 쓰이는 그릇』(김현정)
디모데후서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이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히브리서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한다. 그냥 교회에 왔다 갔다 하고 세례를 받고 교회에서 무슨 직분도 좀 받고 일도 좀 하는척하고 이렇게 했으면 다 천국 가겠지 뭐 다 구원받은 거지, 천만에 말씀이다. 예수님 말씀은 참 무섭다.
마태복음 18:3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 아무리 교회 잘 다니고 헌금도 많이하고 일도 많이 하고 평생 교회를 떠나지 아니하고 예수님 잘 섬기고 살았는데, 그렇지만 착각하지 마세요, 예수님 말씀은 진리다. ‘너희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가지 못한다.’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는 ‘내가 율법을 폐하려 온 게 아니고 완전케 하려고 왔다’하십니다. 그것이 결론이다.
바리새인들은 이레에 이틀을 금식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들이다.
요한복음 3장에서는 니고데모에게 뭐라고 하시는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가지 못한다. 볼 수도 없다.” 마태복음 7장 산상수훈의 마지막 결론 부분에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12장 끝 50절에도 ‘누가 내 모친이고 누가 내 형제냐?’ 앞에 있는 제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시면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그 사람이 나의 모친이오 나의 형제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절대로 천국 못 간대요.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가.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 말씀을 다시 봐야한다. 수박 겉 핧기 식으로 하지 말고 세상 사람들이 가르쳐주는 소리 따라하지 말고 성경말씀을 다시 읽어야 한다.
지금은 마지막 때이다. 인간의 양심이 마비가 되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동성애가 횡행하고 그런 일이 없었다. 오늘 날 마지막 시대가 되니까 미국 대통령이라는 놈이 부활절 날을 동성애자의 날로 선포한다고 그 따위 소리나 하고 있고 말이다. 구라파는 다 그렇게 병들었다.
이사야 60장에서 설명하지 않아요.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는 내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 보라 어둠이 온 땅을 덮을 것이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시리니 여기서 너가 누굴까? 이스라엘이겠죠?
근데 이스라엘은 자격상실이다. 지금도 예수님 안 믿는데 무슨 여호와의 영광이 그 위에 임하겠는가?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여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와 마귀와의 전쟁터이다. 의인과 악인의 전쟁터다.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이 시합에 이 전쟁에 누가 이길지를 알고 있잖아요. 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이기느냐? 오늘 본문 말씀이 가르쳐준다. 깨끗해야 이긴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다. 조그만 아이성이 하나 있어 저까짓 거쯤이야 문제도 아니지, 그래서 쳐들어갔는데 참패를 당했다. 왜? 힘이 모자라서요? 힘이 없어서요? 자신감이 없어서?
왜 그렇게 되었는가? 아간이라는 놈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이놈이 도둑질을 했다.
단추에라도 하나 끼어있으면 그것이 나라를 망친단 말이다. 악인들은 그렇게 악하게 살다가 그렇게 망하는 거고,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날마다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은 안 써도 팔십 된 모세를 부르셔서 사십년이나 쓰셨다. 하나님이 쓰시면 된다.
근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쓰시느냐?
답은 오늘 본문에 있는 대로 끼끗해라 깨끗해라 세상의 악인들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저 악인의 모습이 내 모습이야. 나도 저 사람처럼 악할 수가 있어요. 그렇지 않는가? 아차 하는 순간에 나도 자빠지고 넘어지고, 그런데 이 세상에 악의 세력은 자꾸 커진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세상에서 약한 자를 들어 쓰셨다. 고린도전서 1장26절 ‘너희를 부르심을 보아라 너희 중에 능한 자가 많지 않고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고 강한 자가 많지 않고 하나님은 미련한 자를 들어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려고 하시고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려고 하시고 없는 자를 들어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이게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다. 내가 못났기 때문에 부르신 것이다. 내가 약하기 때문에 불러주신 것이다. 내가 무식하니까 불러주신 것이다. 이게 비밀이다. 그래서 여러분 자꾸 세상에서 높아지려고 하지 말고 잘난 척 하려고 하지 말고 더 낮아져야한다.
오늘 제가 전하는 말씀의 요지는 깨끗한 사람이 하나만이라도 있으면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다. 예레미야 5장1절에 너희는 저 예루살렘에 나가서 큰 길거리에서 찾아보고 알아라 누구를 찾아보라구요? 그 가운데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하나님께서 이 성을 사해 준다. 그런데 정작 바벨론이 쳐들어오고 나니까 다 무너졌다. 성전도 다 무너지고 불타 버렸다. 재물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땅에 의로운 백성들을 많이 일으켜야 한다. 이건 무슨 말씀인가?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의인 열 명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재료를 주셨다.
우리의 몸뚱이를 깨끗게 하는게 아니라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데 어떤 재료를 주셨는가? 5가지 재료를 주셨다. 첫째, 에베소서 5장26절에 보니까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시고, 물은 무엇인가? 물은 회개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 물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하나님이 주시는 물은 내속에 선한 양심이 살아나요, 회개를 통해서 선한 양심이 살아나는데 그래야 깨끗해진다고 한다. 양심이 살아나야 인간은 깨끗해 질 수가 있다. 둘째는 시편 119편 9절에 여호와의 말씀으로 깨끗해지는 것이다. 말씀을 사랑하고 이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깨끗해진다는 것이다. 말씀이 나를 씻는다. 요한복음1장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이신 그 하나님을 내가 내 속에 모시고 산다는 건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 예수님을 모시고 산다는 말이다.
셋째는 성령, 넷째는 불,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이 오셔서 공생애 3년반 사역을 하셨지만 이 불이 붙지를 않는다. 그러니 예수님이 답답하다고 하시는 것이다. 불은 곧 능력이다. 그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고 우리 속에 불이 있으면 활동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다섯째는 보혈, 그 피가 마음속에 큰 증거 뙨다. 오순절이라는 유월절 양 피를 바르는 이야기가 있다. 문설주에 바르고 인방에 바르고 그러면 재앙이 왔다가 들어오지 못하고 넘어가리라, 세상에는 무시무시한 환난이 온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실상은 내 기도가 어마어마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작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볼 때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존귀한 사람이다. 내가 너를 장차 귀하게 써주겠다 이런 약속을 받아가지고 사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우리 눈에 많은 지체가 있다. 그런데 이 몸의 많은 지체 중에도 제일 깨끗해야 하는 지체가 하나있다. 눈이다. 우리가 배워야한다. 깨달아야 한다.
우리 맘에도 자꾸 더러운 게 들어온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맘에도 장치를 만드셨다. 아까 다섯 가지 얘기했다. 우리를 청결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의 재료들, 그래서 마음에 이 다섯 가지가 들어와 있어야 한다. 첫째 물, 회개 빨리 깨닫고 주님 잘못했습니다.
둘째 말씀이 딱 내 마음에 있으면 이런게 왔다 갔다 하다가도 쫓겨난다. 셋째 성령과 그다음에 불,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혈, 그 피가 마음속에 큰 증거 됩니다. 이런 나쁜 것이 들어왔다가도 보혈이 흘러서 싹 씻어버리고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이 훈련을 잘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겠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성령을 보내셔서 새 역사를 이루신다. 주님 앞에 우리가 이렇게 깨끗이 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고 놀라운 새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분 』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분, 우리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가?
마태복음 1장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래서 우리가 이 구원이라고 하는 말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인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구원을 위해서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 구원을 위해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서부터 우리 구원을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충만함을 받으면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되는 것이다.
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다가 이제 인류의 마지막 때에 예수님은 영광스럽게 이 땅에 재림하시게 될 것이다. 그 때에 드디어 구원의 완성이 되는 것이다. 이 큰 역사를 이루시는 이 모든 것이 전부 구원이라고 하는 한 단어 속에 나타난다. 또 예수라고 하는 이름이 구원을 뜻한다.
그런데 구원가운데도 어떤 구원이냐?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해내실 분이라. 그래서 예수라고 하는 이름은 다른 많은 것에 구원이 필요하지만 특별히 죄에서 구원하신다 하는 말씀인 것 이다. 특별히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구원은 양식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라든지 또는 질병에서부터 구원해 주신다든지, 전쟁의 포화 속에서 건져내주신다 든지 이런 모든 것이 다 포함되는 거지만 특별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은 보다 근본적인 것, 죄에서부터 구원하시는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래서 죄에서부터 우리를 구원해 내시면 다른 모든 것은 다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그래서 죄에서 구원해 내시면 마실 것, 입을 것, 육신의 질병 또는 세상에 전쟁이라 던지, 이런 모든 재난으로부터 구원하는 것 다 그 속에 포함된다. 그런데 다른 것에서 다 구원을 받았어도 죄로부터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하면 이것은 너무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인간은 육신만 가진 것이 아니고 영원히 있기 때문에 영혼까지 구원받을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육신의 구원도 물론 일으켜 주시고 더 중요한 것이 우리의 영을 구원하셔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도록 이렇게 복을 내려주신다.
이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우리가 깊이 깨닫고 이 구원을 위해 사모하고 힘쓰는 사람들이 되어야겠다.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다고 하는 이말씀이 어떻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말씀같고 평범한 말씀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마음에 깊이 깨닫고 나는 과연 구원을 받았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툭별히 이 말세에는 사람들이 구원의 문제를 가볍게 여깁니다. 육신의 구원받는 데에는 신경을 많이 쓰고 그걸 위해서는 노력을 하지만 정말 우리 영혼이 구원받는 이 거룩한 일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너무 관심도 없고 힘쓰지도 않고 이것이 오늘의 이 불행한 현실인 것이다.
옛날 기독교 국가라고 했던 예수를 잘 믿던 저 구라파의 여러 나라들이 이제 다 믿음이 식어진다. 미국도 얼마나 기독교 문화를 꽃피우고 세계를 지도하고 이끌고 나갔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미국도 신앙이 식어지고 그러니까 죄악이 들끓게 되고 학교 안에서 총을 가지고 오는 녀석들이,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총으로 쏴서 죽이기까지 하는 불행한 일들, 일반 사회에도 너무 도둑들이 많고 그래서 우리가 한시도 마음을 놓고 살아가기가 어려운 때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바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육신의 구원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우리의 영이 구원받아야 된다고 하는 이 거룩한 사실을 꺠닫지 못하고 이 거룩한 일에 힘쓰지 않기 떄문에 그래서 육신은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특별히 동성애 같은 것을 인권이라고 치장을 해가지고 인권을 보호해야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다보니 겉으로는 인권이 잘 되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수 없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서운 질병으로 때리시고 환난으로 때리시고
세상이 점점 어두워지고 세상에 온갖 재앙이 일어나고 이렇게 불행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인간들은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볼 때 우리가 첫째로 생각해야 될 것은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면서 마지막에 그렇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해주시옵소서, 첫째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셨고 그 다음에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이 시험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죄로 들어가는 길이다. 죄의 길목이다. 그래서 이 시험을 물리치고 시험을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셋째로 다만 악에서 구해주옵소서 이 악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이 악의 세력으로부터 침략 받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고 자빠질 수밖에 없고 이렇게 큰 불행을 만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러니 주기도문의 내용을 보면 이 앞부분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세 가지 기도가 있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는 기도가 있고 그 다음에 세 가지는 죄의 용서와 시험에 드는 것 그리고 앞에서 부터의 구원 이런 세 가지 이게 전부 다 우리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을 바꿔주신다.
아브라함을 갈데아 우르에서부터 떠나게 하셔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주시켜 주신다. 똑같은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 들어가 400년 동안 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부터 그들을 건져내신다. 모세를 통해서 다 건져내신다.
그래서 어둠의 땅 사망의 땅 우상숭배의 땅,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의 땅 여기에서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내시더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놀라운 건지심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나가신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처음에는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려내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몽둥이를 깨끗하게 하시고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이행하시면서 육신의 구원문제로부터 출발을 하셨지만 나중에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이 영적인 구원, 우리 영이 구원을 받아야한다는 것, 우리 육신을 잠깐 살다가 죽으면 끝나는 거지만 그러나 우리의 영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영의 구원을 소홀히 여기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심에 전념하시고 이 육신의 질병고치는 그런 일은 많이 절제를 하신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고쳐주시지 않고 또 예수님이 실제로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지만 그것도 그냥 아무나 닥치는 대로 다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고쳐주실 만한 사람들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하고 고침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셨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토해서 깨달아야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내시는데 처음 어떻게 구원하시느냐?
악한 환경에서부터 건져내신다. 내가 좋아하고 즐겨하던 그 땅에 정착해서 살게 하지 아니하시고 그 땅에서 다른 땅으로 옮겨주신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 와서 꼭 배워야하는 것은 미국이 어떻게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는가? 그 비결은 미국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보셨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아야하는 것이다. 육신의 만족만을 찾고 살다가 죽어버리면 어떻게 천국에 갈수 있겠는가? 더 큰 구원을 맛보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놀라운 복을 우리가 받아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야지만 하겠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첫째 예수님을 믿으라 하는 말씀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전폭적으로 믿으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으면 전능하신 그분,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를 다 이루어 주시는 분 무엇 하나도 걱정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그런 아름다운 백성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앞에 6.25사변, 일제 36년 억압을 받았고 해방되자마자 또 전쟁이 터져서 두 쪽이 나고 이렇게 많은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만, 그렇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그 가운데 있어서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은 더 무섭게 발전했고 세계 모든 나라에서 빛나는 나라가 되고 특별히 우리 성도들은 깨어서 열심히 기도함으로 오늘날 세계에서 제일가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다. 이 사실에 감격하면서 우리가 새롭게 살아가야지 하겠습니다. 둘째로 요구하시는 것은 나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21장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말씀을 무려 세 번씩이나 물으시면서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할 것을 명령하셨다.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날마다 새로운 은혜가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
오늘은 예수님은 누구신가 제5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요한복음 1장29절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말씀을 본문으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모습이 몇 가지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유월절 어린양이 나오고 또 속죄 제물로서의 어린양이 나오고 모리아산에서 이삭대신에 하나님 앞에 드려져서 죽는 그런 어린양도 나타나고, 대속제일에 드려지는 아사셀이 있다. 오늘은 이 모든 것을 전반적으로 모아 말씀을 전하겠다.
먼저 우리는 속죄 제물로서의 어린양을 생각할 수 있다. 에베소서 5장2절에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속죄를 위한 제물은 제사 가운데 네 번째 제사이고, 또 다섯 번째 제사인 속건제가 있는데, 다 속죄를 위한 제물이다. 예수님은 속죄제 제물로서의 어린양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지셨다고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9장12절에 그리스도는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번제와 속죄제를 완성시키셨기 때문에 이제 다른 짐승 잡아가지도 드리는 그런 거는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 이샤아 53장 10절에 예수님을 가리켜서 속건제물로 자신을 드리셨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이 이렇게 모든 제물이 되는데 신약성경에 많이 나타나는 것은 화목제물이란 것이다.
로마서 3장25절 요한1서 2장2절, 요한일서 3장10절 이런데 예수님은 화목제물이라고 나타나고 있다. 또 뿐 아니라 예수님은 대속죄 일에 두 염소를 택해서 그중에 하나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가 되고 또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되는데 여호와를 위한 염소로 택함 받은 그 염소는 죽임을 당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는 속죄의 제물로서의 어린양이 있고 둘째는 유월절 어린양이다. 고린도전서 5장7절의 유월절 어린양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었다고 사도바울은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학자들이 도무지 풀지 못하고 있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죽임을 당하지 않고 노임을 받아서 광야로 보내진다. 이것이 대체 뭐냐? 하고 연구하지만 아직까지도 시원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또한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공부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또 화목제물로서의 어린양이다. 조금 전에 이야기 했지만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을 가리켜 화목제물이라고 설명하는 말씀이 3번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속죄제물로 드려지는 제물로 소나 염소가 있는데 예수님이 우리의 속죄를 위한 제물로 드려지셨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한 어린 양이 되셨다 이것을 믿고 주님 앞에 감사하면서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유월절 어린양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한 가정 단위다. 그래서 한 가정에 온 가족들을 위해서 들여진,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다. 유월절 어린양은 그 고기를 식구들이 다 먹어야 한다. 다 먹지 못할때는 버려야 되는 거지만 최대한 이 양의 고기를 온 식구가 다 먹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셋째로는 모리아 산에서 이삭 대신에 죽은 어린양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고 이삭을 데라고 모리아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이삭을 결박하고 나무 위에다가 올려 놓고 칼을 들어서 막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갑자가 아브라함아~ 부르시고 네 아들 네 독자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마라 하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살아났다. 그리고 놀라서 뒤를 돌아봤더니 수풀에 어린 양 한 마리가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여기서 여호와 이레라고 하는 ‘하나님이 예비하신다’는 말이 나왔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얘비해 놓으셨는데 우리 육신의 눈에 잘보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도무지 걱정 근심 하나도 하지않고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우리 눈에 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밤잠못자고 괴로워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사실은 그런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섭리가 있다. 우리가 어린 양을 보면서 하나님이 다 예비해 놓으셨다고 하는 이것을 확실히 믿고 어떤 어려운 일이 생겨도 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의심하거나 이렇게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그래서 첫째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우리 눈에 보여도 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대속제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여호와를 위한 양이다.
이것도 두 개의 염소를 취하는데 한 염소는 여호와를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다. 이 둘 중에 여호와를 위한 염소로 택함 받은 그 염소는 분명히 예수님을 상징한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는 확실한 이야기다. 그런데 아사셀을 위한 양으로 택함 받은 것은 또 뭐냐? 더 자세히 공부를 하도록 하자.
다음으로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드려진 그런 어린양이다.
화목제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내가 더 가까워지기 위한 제사이다. 그래서 화목제인데 사실 화목제라고 하는 것은 말로 화목제라고 한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내가 더 가까워져야 되는 것이다. 마음을 먹고 하나님 내가 하나님께 더 가까워지기로 작정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더 가까이 모시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똑같다. 내 속에 죄를 없애고 내 속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오르고 그래서 모든 죄와 나쁜 생각도 다 버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게 될 때 거기에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말씀 한 말씀을 더 우리가 생각하고 넘어가야 한다.
히브리사람들은 제사를 드릴 때 피와 함께 기름과 콩팥이 중요한데, 콩팥을 화제로 드리게 된다. 구약에서는 콩팥이 무엇을 뜻하느냐! 감정과 생각과 양심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심장에는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이고 콩팥에는 양심이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히브리 사람들은 양심을 마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과 좀 다른 걸로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리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는 것이라 또 개혁개정판에서는 선한 양심이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하는 호소라고 번역을 했다. 이것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양심이 살아나야 된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느냐! 세례를 받음으로 일어난다.
다른 말로 바꿔하면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서 우리가 새 사람으로 변화를 받게 되면 우리의 양심이 살아나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놀라운 생명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다. 그래서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말씀은 작게는 나 개인의 죄를 해결하는 속죄의 제사로부터 나가서 유월절 어린 양이 내 가정에 죄를 없애는 것이고 더 나아가 속죄제사가 되면은 그것은 민족 전체가 죄를 지었을 때 그 백성 전체를 위한 제물로 소를 잡아서 바쳤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개개인을 위한 제물도 되시지만 내 가정을 위한 제물도 되시고 더 나아가서 이 나라 이 민족 전체 더 나아가서는 온 세계 인류를 위한 속죄의 제물로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되고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더 큰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고 우리의 죄를 씻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보혈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오늘도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예수님의 이 큰 구원의 역사가 우리 속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아름답게 성취되는 복을 다 받으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
사무엘하 20장입니다. 사무엘하 20장 14절에서 19절까지만 보겠습니다. 말씀의 제목은 18절에 있는 대로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이 말씀으로 전합니다. 먼저 성경을 읽죠 14절부터 보겠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먼저 좀 설명을 드려야 됩니다. 사무엘하는 굉장히 어두운 내용의 이야기가 있는 장입니다. 제일 처음에 이제 다윗이 죄를 범하죠.
이렇게 해서 충성된 장군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하고 이래 가지구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결국 장군을 전쟁터에 내보내서 죽이고 그리고 그 일로 말미암아 아들들 사이에서 분란이 일어나고 전쟁이 나고 아들들이 서로 죽이고 이런 불행한 일이 있고 그것도 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그래서 압살놈이라고 하는 아들이 왕까지 죽이려고 하는 다윗을 죽이려고까지 하는 큰 반역을 겪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평생 전쟁을 많이 한 사람이지만 전쟁마다 다 이기고 어려움이 없었는데 아들이 반역을 일으키고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니까 아들과 같이 싸우지는 못하고 아들을 피해 가지고 도망을 다니잖아요. 이렇게 도망을 다니는 불행한 이야기, 그런 속에서 하나님 앞에 얼마나 기도했겠습니까? 기도하면서도 다윗의 마음은 그래도 저걸 자식이라고 하나님께서 저 자식을 해치지 말아주시기를 빌면서 이렇게 했지만, 결국 압살놈은 다 멸망을 받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겨우 이게 평정이 됐나 했는데 또 문제가 일어나죠.
무슨 문제가 또 일어납니까 이번에는 오늘 본문에 있는 얘기가 그겁니다.
압살 놈의 난은 겨우 평정을 했는데 이렇게 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 가지고 세바라고 하는 자가 이스라엘 모든 집합 가운데 두루 다니면서 싹다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반역을 또 일으켜서 어 다윗을 몰아내고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이런 짓을 해요. 그러니까 답이 또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급히 요압을 토벌군으로 장군을 세워서 토벌하라고 내보냈는데 이들이 가서 있는 곳이 아벨이라고 하는 성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제일 북쪽 끝에 아벨이라고 하는 성이 있는데, 거리로 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세바가 거기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요합 장군이 가서 성을 포위하고 그냥 다 무너뜨리려고 이렇게 작정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성문을 꼭꼭 잠가놓고 그러고 있으니까, 토성을 쌓아가지고, 이렇게 해서 성보다 더 높이 이케 토성을 쌓아서 쳐들어가려고 이렇게 계획을 하고 이런 일들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그 성의 지혜로 좋은 여인이 하나가 있어 가지고 성경에는 이름도 안 나와요. 이 여인이 나타나 가지고서 내가 요압 장군을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요압 장군을 좀 이리로 오시라고 해라 이렇게 해 가지고 요압 장군이 그래도 또 그 말을 듣고, 우리 같으면 웬 미친년이 날 부르느냐 하고 상대도 안 할 거예요. 그런데 요압이 겸손했던 거죠. 그래서 그래 혹시 무슨 좋은 방법이 있을까? 사실은 요압도 이 성을 이제 무너뜨리고 이 세바라는 놈을 잡아서 없애버려야 되겠는데 반역군을 다 진압을 해야 되는데 이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이 궁리했을 거예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장에 뾰족한 수가 나타나는 거는 아니잖아요.
성을 튼튼히 걸어 잠그고 그리고 대응하고 있으니 이거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고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있고 만약에 전쟁을 하게 된다면 많은 사람이 다칠 수밖에 없고 죽을 수밖에 없고 그렇지 않아도 압살놈의 반역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겠습니까? 이러고 나라가 비폐해 졌는데 또 이러한 반역이 일어났으니 이거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요압도 많이 고심을 했을 텐데... 웬 여인이 나타나 가지고 요압 장군을 만나고 싶다. 하니까 요압이 만나러 갔어요. 당신이 요압입니까? 그렇다 내가 요압이다. 아 그랬더니, 오늘 그 여자가 구절 말씀에 이렇게 말하잖아요.
18 절에 먼저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아벨에게 가서 무를 것이다. 이게 대관절 무슨 소리인가 그러니까 이 말씀은 하나의 속담인데 이 말씀으로 이렇게 미루어 볼 때에 아벨이라고 하는 도시에 지혜로운 사람이 옛날부터 많이 일어났다 그래서 무슨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아벨에 가서 거기에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가지고 이러이러한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상의했고 그러면 그 지혜로운 사람들이 대답을 주어 가지고 결국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이제 그런 얘기죠
그러니깐 이 아벨이라고 하는 도시는 옛날부터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나왔던 그런 도시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이 아벨에 쳐들어와가지고 여기를 다 둘러싸고 멸망시키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혜자들이 있는 성은 무너뜨리면 안 된단 말이에요. 지혜자들이 있는 곳에 가서는 지혜를 배워보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받아야 되는 것이지. 그것은 무너뜨려서는 안되는 곳이다. 그랬더니, 요합장군이 대답을 하잖아요.
그게 이제 20절 이하에 나타납니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이 일이 그런 것이 아니니라, 그렇지 않다는 말을 3번이나 반복하죠. 그러면서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그의 이름을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서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그만 내주면 내가 이성에서 떠나가리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랬더니, 요압에게 여자가 말하기를 그의 머리로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던지리다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는 가서 여자가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감에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서 요압 앞에 던졌다 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요압이 그 세바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나팔을 불어 무리를 다 모아, 무리가 다 그 성벽에서 물러나서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반역을 진압했다. 하는 것입니다. 자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필요한가? 중요한 건 그겁니다. 마지막 때에는 세계재앙이, 예수님 예언하신 그대로죠. 지진이 많이 일어나고 그리고 전염병이 돌고 기근이 오고 그리고 전쟁의 소문이 끝없이 일어나고 이렇게 어려운 때를 만나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금 2년 넘도록 계속이 되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크라이나가 항복할 것도 아니고 푸틴이란 놈이 또 항복할 것도 아니고 자기 위신이 있고 체면이 있는데, 그래 가지고 결국은 자칫하면 이제 핵무기도 쏘겠다고 어 이렇게 공갈 협박을 하잖아요.
이렇게 어려운 문제가 있고 대만도 지금 중국과 대만의 문제도 이게 전쟁이 과연 터질 것이냐 안 터질 것이냐 이런 문제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 전 세계에 나라가 나라를 대적해야 하고 일어나고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일어나고 이런 전쟁이 계속 시한폭탄처럼 전부 있어가지고 언제 어디서 어떤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세상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에 우리가 이거를 해결 받아야 되겠는데 어디 가서 해결을 받느냐 근데 여자가 말을 하잖아요.
옛날 사람들이, 우리 옛날 사람들이 다 말하기를 어디 가서 물어보라고요.
아벨에 가서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경에 보면 우리가 아벨이라고 그러면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 있죠. 가인과 아벨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 가운데서 아벨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사를 드렸다가 그만 형이 형 가인에게 맞아 죽은 이런 아들 의인 아벨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 한글로 쓰면은 아벨 아벨 똑같지만 히브리 글자로 보면 스펠링이 다릅니다. 이렇게 해서 글자가 2개가 같은 뜻은 아니에요. 아벨이라고 하는 말의 원래의 뜻은 허무하다는 말이고 숨이라고 하는 말이고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사람이 숨을 쉰다 사람이 허무하다 인생이 허무하다 이것이 지혜라고 하는 거죠. 인생의 지혜는 어디에 있느냐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는 데서 오는 거다 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어도 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쥐고, 쥐락펴락하고 이렇게 해도 그게 결국은 다 허무한 것이다. 헛된 욕심을 갖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 잘 섬기면서 살아야 된다. 이것이 참 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지혜를 배워야 되는데 아벨은 자기가 죽어서도 우리에게 이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어요.
근데 이제 글자는 조금 다른 스펠링은 다르지만 여하간 우리 한글로는 우리말로는 똑같이 아벨이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아벨인데 역시 우리는 아벨에게서 그런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인생이라고 하는 거는 사실 하나님 잘 섬겨야 되는 것이지. 헛된 것에 마음 뺏기면은 안 된다. 하는 것이고. 이와 비슷한 이름이 하나가 나오는데 아벨, 헤벨 그 아담의 아들 아벨은 사실은 히옷소리가 좀 나요? 그냥 아가 아니고 하벨 이렇게 나는데 히옷 소리가 워낙 약하게 나는 거기 때문에 이제 보통 우리가 히브리어 배울 때에는 그 히옷 발음을 안 합니다.
우리가 숨이라고 하는 거, 이거를 루아 라고 하는데 원래 루하 시옷 발음 잇는 이제 글자가 돼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루하라고 읽지 않고 루아라고 어 읽는 것입니다. 이렇게 또 프랑스 사람들은 히옷 발음 못 하잖아요. 그래서 시옷 에취자를 써놨어도 시옷을 발음하지 않고 보니까는 이 스페니쉬도 마찬가지예요. 에취자가 나오는데 에취자는 발음을 안 하고 그냥 넘어가더라구요. 그 사람들은 어 그렇게 해서 여하간 이 시옷 발음 나오는 거 아벨 헤벨 우리는 헤벨이라고 돼 있죠. 헤벨이 누구냐 그것이 샘의 아들 아르박삭, 그다음에 아르박삭 다음에 셀라 그다음에 셀라 다음에 나온 아들이 해벨이에요. 이 해벨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하나님은 헤벨 온 그 자손의 하나님이라 그러셨으니까... 이 노아의 후손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도 하나님은 에벨 이 헤벨의 자손들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헤벨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이 멜렉이고 둘째, 아들이 욕단입니다. 멜렉에서 아브라함이 나왔고 그 다음에 이 욕단에게서 우리 한국 백성들이 단군이 나온 거죠. 이렇게 나왔다. 혹시 욕단이 단군일 수도 있어요. 그 단자가 있는 걸 보니까는 욕단이 바로 혹시 그때까지 오래 장을 순수하셔서 이분이 계속 동쪽으로 자손들 데리고 이렇게 이동해 가지고 백두산만에 오고 그리고 동쪽 우리로 치면은 동해바다지만 태평양이라는 거죠. 이 동해 바다에 해 뜨는 곳까지 와서 이제 더는 갈 곳이 없으니까 거기에다가 나라를 세웠는데 그 나라가 바로 고조선이라고 하는 나라다 이런 나라를 세웠다고 우리가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요. 여하간 이 헤벨이라고 하는 사람 아 이 사람도 어 아벨이라고 하는 이름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인데 모두가 다 아주 좋은 뜻을 가진 훌륭한 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아들 아벨이나, 셈의 후손으로 태어난 헤벨이나 이런 분들 하나님 잘 섬기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분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지혜를 내어주셨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이 아벨이라고 하는 성도, 이 성의 자세한 정보는 없어요. 그 성이 얼마나 큰 곳이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았는지는 우리가 잘 모르지만 그 성에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성이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아베라에 찾아가서 거기 가서 물어봤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거기에 지혜로운 사람들이 있어가지고 그 문제는 이렇게이렇게 해결해라 하고 가르쳐 줬다고 하는 거죠.
자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성경의 역사를 쭉 살펴보면서 그래 지혜라고 하는 게 이렇게 중요한 거로구나 지혜 지혜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구약성경에서는 대표적인 인물이 솔로몬이죠. 솔로몬이 지혜를 가지고 있었더니, 세계의 모든 나라의 왕들이 솔로몬을 찾아옵니다. 그냥 얼굴만 볼라고 찾아오겠습니까? 얼굴 봐봤자지 뭐 그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무슨 차이가 크게 있겠어요. 그러나 솔로몬을 찾아오는 것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그냥 단순히 얼마나 지혜롭게 얘기하나 그런 걸 들으려고 하는 게 아니고, 왕들마다 다 고민거리가 있잖아요. 나라를 다스리려고 할 때에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이 문제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저 문제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그런 어려운 문제들을 가지고 솔로몬을 찾아와서 물어보면 솔로몬이 그들에게 다 시원한 대답을 주었다고 하는 거죠. 이렇게 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사실 이 마지막 때에 이렇게 세상에 재앙이 많고 전쟁이 일어나고 질병이 창궐하고 그냥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때에도 이 아벨 성 같은 .... 이런 나라도 될 수 있고 한 도시도 될 수 있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지혜로운 사람들을 모아놓은 그런 나라가 있을 것이다. 그런 도시가 일어날 것이다. 이것을 우리에게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그게 어느 나라가 돼야 할 것이냐 옛날에는 미국이 아벨 성이 되었던 거죠.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어려운 문제들을 가진 그런 왕들이 미국을 찾아와 가지고 이 문제 좀 해결해 주세요. 이 문제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했더니, 미국이 물론 좋은 방법으로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특별히 군사력을 가지고 전쟁을 해서 막 때려부수고 악인들을 징계하고 이렇게 해서 구원해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전쟁이라고 하는 방법이 아닌 다른 좋은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해 내시는데 그런 방법이 과연 어디에 있겠느냐 그래서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에도 이런 은혜를 베푸셔 가지고 한국이 아벨 성이 된다. 그 말이야. 한국이라는 나라가 아벨이라고 하는 성이 된다. 아벨이라고 하는 나라가 된다.
그래 가지고 한국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 이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서 세상 이상의 왕들이 한국을 찾아와서 이 문제 해결받기 위해서 물어보고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답을 주시고 이렇게 해서 세상의 평화를 이루어 나갈 수 있게 하시는 이런 복을 내려주시지만 또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한국의 지혜로운 사람들을 많이 일으키셔서 전 세계로 보내서 이분들이 가서 지혜를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서 세상의 평화를 찾아오게 만들게 하신다 그래서 지혜의 왕이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지혜의 왕이잖아요. 그리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 그래서 이 2가지가 항상 같이 가야 돼요.
지혜만 가면 안 되고 능력이 없는 지혜가 되면은 사실은 세상 사람들이 비웃어요. 근데 능력을 가진 지혜가 돼야죠 그러니까 능력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거고, 능력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거고, 능력이 있는 걸 보니까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그들이 이 지혜 앞에 굴복하게 되는 거고, 이렇게 해서 세상의 평화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한국을 이렇게 높이 써주시고 귀하게 써 주시는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은혜를 늘 구하면서
특별히 우리 한국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우리 교회가 아벨과 같은 교회가 돼야 되고, 우리나라가 이런 아벨과 같은 나라가 되고 이렇게 해서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어 나가야지 할 것입니다.
지혜를 가지면 막 굴복하게 된다. 지혜를 가지면 전쟁이 필요가 없다. 이 땅은 참 평화의 나라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도 전쟁을 통해서 나라를 평화롭게 만드는 게 아니고 지혜를 통해서 우리나라를 새롭게 만들어야 되겠다. 하나님 우리 땅에 지혜로운 사람을 보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미국에도 지혜로운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그래서 이 지혜로운 사람이 나와야 되는데 이 지혜로운 사람이 어디에서 나오느냐 하나님 잘 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훌륭한 지혜자가 나오게 되는 거고, 하나님 경외하는 사람들 하나님 잘 섬기는 사람이 줄어들면 지혜로운 사람들도 자꾸 줄어들죠 이런 사람이 하나님 경외하는 사람이 없으면 지혜로운 사람도 나타나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 씨도 중요한 거고, 토양 흙도 중요한 거고, 다 그런데 이 땅에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아지면 토양이 전부 옥토로 변하고 그래서 거기에 숨겨진 지혜가 잘 자라서 이 땅에 지혜로운 일꾼들을 많이 길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 가정 가정이 이 지혜의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고, 우리 교회 교회가 지혜로운 사람들로 가득해지고, 이렇게 하면 이 나라가 변하고 세계가 변하고 이 땅에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혜를 더욱 간절히 구해야지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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