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7.12.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창 21:1~13
*제목; 창세기 읽기(23) 신앙이란 무엇인가?
1.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그리스신화에 보면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괴물이 나온다. 이 괴물은 쇠침대를 가지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아서 자신의 쇠침대에 누이고 그 사람이 그 침대보다 작으면 늘려서 죽이고, 크면 잘라서 죽인다고 한다.
영남대학교 교육학과 박철홍교수는 이것이 우리 나라 현교육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한다. 모두 자신을 잃어버리고 획일화된 교육 속에서 찍어져 나온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교육은 각자의 ‘생긴 대로’(특질)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우는 것이고,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바른 눈을 가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국 교육이 얼마나 이상하게 되었는지를 다음 이야기를 통해서 비꼰다.
“농무”라는 시를 쓴 유명한 시인인 신경림씨가 경상도의 한 중학교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국어선생들이 짖굳은 마음이 들어 교과서에 실린 신경림씨의 시에 대한 국어문제를 풀어보라도 줬다고 한다. 결과는 100점 만점에 ‘30점’이 나왔다. 자신의 시에 대한 문제를 자신이 거의 틀린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교육의 현실이다. 한국 교육은 ‘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시에 관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죽은 교육이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 자신도 참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 목회하고 있는가? 성도들에게 ‘신앙’을 알려주고 있는가? 아니면 ‘신앙의 방법’만을 알려주고 있는가? 신앙 없이 신앙의 방법만을 배우고 행하니 그 신앙이 얼마나 재미없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저린다. 진정한 의미에서 재미가 없으니, 신앙의 삶이 늘 파도를 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모든 신앙의 방법들을 멈추고, 진지하게 신앙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신앙하고 있는지부터 먼저 점검해야 하겠다.
목회를 하는 나도 신앙의 방법을 가르치는 일을 집어치우고, 단 한 사람에게라도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목사가 되어야 하겠다.
신앙이 서면, 그 신앙에 따른 신앙의 방법을 스스로 결정해 가는 것이다. 물론 교회가 그 방법에 대한 자세한 가이드가 필요하지만 그 가이드가 본질은 아닐 것이다.
2. 말씀대로 된다.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모든 것이 “말씀대로 된다”는 것이다. ‘1~2절’이다.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창 21:1~2)
오늘 화두와 같은 “신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의해서 다시 생각해보면, ‘신앙이란 말씀대로 인생과 역사가 진행된다는 고백’이다. 말씀이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이다.
그렇다면 신앙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첫째로 말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집중하게 된다. 신앙을 잘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이해한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이 내 삶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신앙이다.
결국 이러한 신앙인은 그 약속의 성취를 경험한다.
또한 아브라함의 신앙이란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살펴보자.
오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하나님은 믿음의 자녀들이 아픔으로 다가가신다. 그리고 그에게 아들을 약속하신다.
아들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을 통해서 세상을 이끌어 가실 것을 약속하신다.
이것이 바로 신앙이다.
이러한 믿음은 나에게, 우리에게 이렇게 적용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으로 다가오신다.
그리고 그 아픔을 회복시키시며, 그 아픔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신다.
그러므로 믿음에서 아픔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이다.
이것이 바로 신앙이다.
3. 갈등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브라함이 믿음이 부족해,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낳았다. 이후 사라를 통해서 주신 이삭과 그 이스마엘이 서로 갈등하는 것이다.
인간의 갈등과 삶의 문제는 결국 이처럼 우리의 욕심과 그로 인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음을 통해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참 의미가 깊다. ‘12~13절’을 보자.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 21:12~13)
하나님의 계획은 역시 이삭이다. 이는 변함없다.
그러나 인간의 어리석음을 통해서 태어난 이스마엘에게도 하나님의 새로운 계획이 부여되는 것이다.
이삭은 언약대로이고, 이스마엘은 사랑대로이다.
이삭이 공의라면, 이스마엘을 긍휼이다.
신앙이란 의미로 본다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계획과 뜻대로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그러나 사랑으로 이를 보완해 가신다.
아주 중대한 신앙의 요소가 등장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랑과 병행해 간다는 것이다.
이를 믿는 것이 바로 신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한다.
첫댓글 신앙에 대해서 아는 것과 신앙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신앙하는 방법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 신앙해야 구원에 이른다. 그렇다면 "신앙"이란 무엇인가?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역사하심을 믿고 그 분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고백하는 것, 즉,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를 알고도 우리가 그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욕심"때문이다. 그 욕심이란 없는 것부터 헤아리는 마음이다. 믿음은 주신 것부터 헤아리는 마음을 말한다. 그러면 그 위에 은혜와 평강이 임하는 것이다. 우리 이렇게 신앙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