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교수님 및 함께 수업을 듣는 여러분
제가 그 동안 본의아니게 취업 준비를 한답시고 수업에 불성실했습니다.
항상 마음이 편하진 못 했지만 정말 좋은 조원들을 만나서 마음의 부담을 덜고
결국 취업에 성공을 했답니다!!^^ 축하해 주세요.
사죄의 의미로 제가 구직을 하면서 작성했던 자기 소개서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이것이 잘 쓴 것인지 못 쓴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취업을 준비할 여러분들께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수업에 불성실했던것을 사죄드리는 마음으로 올리겠습니다.
제가 올려드리는 자기소개서들은 모두 서류는 합격한 것들입니다.
삼성생명은 최종 합격을 하였고 대우건설은 면접전형 진행 중에 있습니다.
LG전자는 아쉽게도 일정 중복으로 면접에 참가하지 못 했습니다.
일단 저만의 노하우를 알려드리자면
1. 자기소개서 분량이 너무 적은 삼성생명 같은 경우 :
되도록 많은 내용을 실어야 합니다. 객관적인 사실과 자신의 경험과 경력을 최대한 많이 나열함으로써 면접시에 자기소개서를 보고 할 질문을 예상할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2. 자기소개서 분량이 너무 많은 LG전자의 경우 :
많은 경험과 경력사항을 알리되 그 경력이 회사에서 앞으로 어떤 식으로 유리한 작용을 할 것인지를 이야기해줍니다.
3. 공통 :
지원하고 있는 회사에 대해 정말 많은 공부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야만이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을 알수 있고 그에 맞는 방향으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회사의 비전과 최근의 현황 중점 추구 사업등에 대한 정확한 사전 파악이 중요합니다.
이런 점들에 중점을 두고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부끄럽지만 공개하겠습니다.
노파심에서 말씀 드리면 제가 작성한 자기소개서 양식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 자기소개서는 모두들 소제목을 달고 있지만 저는 소제목을 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소제목을 다는 것이 훨씬 명료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것을 참고하시고 자기만의 자기소개서를 훌륭히 작성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아래에 자기소개서를 붙입니다.
<삼성생명>
자기소개
믿음이라는 물로 자신감이라는 나무를 키웠습니다. 부모님께서 저에게 주신 믿음은 제가 어떤 일에 임하더라도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자신감과 함께 도전한 산악자전거 대회, 자전거 전국일주 그리고 프랑스 대사관 추천 파견 학생 선발에서 성공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학교생활에서는 두 마리 토끼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흔히 공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동아리 활동과 학생회활동을 같이 했고, 학업지장을 이유로 다들 학생회장직 맡는 것을 꺼릴 때 자진해서 그 일을 맡아 그것이 편견에 불과했음을 증명했습니다. 군복무도 즐겁게 할수 있다고 믿고 복무한 결과 사단장표창 2회, 대대장표창1회를 받아 복무 중에도 성취감을 맛보았습니다. 프랑스 어학연수 후에는 비엔날레 참여작가 통역, 2007 드림프로그램 통역 담당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저의 능력을 확인함과 동시에 봉사의 보람을 알게 됐습니다.
장점
자신감과 적극성 또 유쾌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저의 보물입니다. 이런 성격 덕에 고교시절부터 오락부장을 도맡았습니다. 운동을 좋아하지만 운동신경이 좋지는 않아 체육대회 때 선수로 뽑히지는 못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응원단장을 맡았고 단 한 번도 응원상을 놓쳐본 적이 없습니다. 또 주변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연성은 글로벌 시대에 걸 맞는 저의 특기라 생각합니다.
보완점
가까운 사람에게 곤란한 말을 잘 못 합니다. 친구들과 자전거 전국일주를 할때 팀장을 맡았는데 당시 제가 가장 경계했던 것은 멤버들 간의 불화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극도로 경계한 나머지 대화부족이 발생했고 결국 저는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개선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싸움도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할말은 할수 있도록 신중한 사람의 이미지를 주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원동기 및 포부
기본에 충실하자!! 최근 삼성생명의 보장자산바로알기캠페인은 경쟁사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보험 본연의 의미에서 벗어나 수익성 상품을 주로 판매하던 생보업계에서 고객에게 사탕발림하는 것 대신 삼성생명이 과감히 주도한 이 캠페인은 제게 큰 감명을 줬고 보험의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제 신념과의 합일점을 봤습니다. 시대에 편승하지 않는 용기와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기본에 충실하는 우직함을 가진 삼성생명이야말로 제가 몸담을 곳이라고 생각해 지원을 결심했습니다. 입사 후에는 삼성생명의 비추미가 되겠습니다. BM은 FC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해리의 강인하고 믿음직함과 달리의 따뜻하고 상냥함 그리고 별리의 순수함을 두루 갖춰야한다고 생각합니다. 1년 동안 경험한 학생회장 직책은 리더쉽이란 앞에서 따라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닌 조직원과의 관계 속에서 믿음을 주고 그들이 편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해줬습니다. 저는 FC를 저의 고객섬김의 대상으로 여기고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것이며 보험학 공부를 통한 관련자격 획득으로 전문성을 갖춘 듬직한 리더가 될 것입니다.
사회경력 : 알리앙스
표창 : 중앙대 그랑프리, 분교대 우수 사단장 표창, 군전투장비 지휘검열 사단장 표창, 산악자전거 대회 2위
학교 : 동아리-노란자전거
교내학회 - 샹송연구회, 멘토링프로그램
해외연수 : 프랑스 어학연수 부르고뉴 대학
취미/특기 : 산악자전거 / 자전거묘기
존경하는 사람 : 스티브 잡스 (혁신을 위해 기존의 것을 과감히 떨치는 결단력과 시대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열린 마인드)
<대우건설>
귀하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지원하게 된 동기에 대해 서술해 주십시오. *
[100자 이상 500자 이내]
進取!! 고교시절 내내 외치고 다녔던 모교의 교시입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계속해서 접한 이 단어는 어느새 지금 저의 모습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어주었습니다. 작은 택시 회사에서 시작해 진취적 마인드로 순식간에 재계에서 주목 받는 거인이 된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모습과 아직 어리지만 큰 꿈을 지닌 저의 모습에서 합일점을 보았습니다. 특히 업계 1위의 경쟁력 창출을 위한 노력과 그를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 꾸준한 모습은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가능성과 그 잠재력이 얼마나 무한한가를 다시 한 번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아직도 금호아시아나는 더 치열한 경쟁속에서 이루어 나가야할 수 많은 목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대기업들의 문어발 확장을 지양하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어 특화된 관련 산업을 하나씩 정복해 튼튼한 다리를 가진 거인으로 성장한 금호아시아나 그룹에 저의 열정과 젊음이라는 에너지를 공급하고 싶습니다.
5~10년 후에 귀하의 경력 목표는 무엇이며, 그것을 추구하는 이유를 서술해 주십시오. *
[100자 이상 500자 이내]
“Merci beaucoup!!” 저는 5~10년 후 진출 국가의 정부로부터 감사패를 받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대우건설의 세계 건설은 단순히 다리를 놓고 빌딩을 올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단순한 외화벌이와 이익창출의 수단을 넘어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들의 힘찬 도약을 지원하고 우리나라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는 또 다른 의미의 건설입니다. 대우건설의 사업이 쭉쭉 뻗어나가는 것은 기업의 기쁨임과 동시에 개발도상국의 희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기업을 외치는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추구하는 보람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주어진 일만 한다면 그것은 언제까지나 꿈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대우건설 해외 사업의 선봉장으로 경제신문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그 날을 위해 뛰겠습니다.
귀하가 지원한 직무는 무엇이며, 지원한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본인의 경험에 기반하여 내세울만한 강점 혹은 개성을 바탕으로 서술해 주십시오. *
[100자 이상 500자 이내]
무일푼으로 자전거만 가지고 떠난 전국 일주는 저에게 지금 당장 아프리카에 던져 놓아도 살아 돌아올 수 있는 끈기와 생명력을 안겨주었습니다.프랑스 어학연수와 프랑스 대사관 선발 문화교류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불어를 공부하고 생활에 적용하였습니다. 특히 얼마 전에 참가한 2007 드림 프로그램에서는 토고, 세네갈, 꼬뜨디부아르, 카메룬, 기니, 모로코 등의 국가 참가자들의 통역을 맡아 프랑코 아프리칸들의 숨결을 곁에서 느끼며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고 행사 끝에는 아쉬움의 눈물을 함께 흘리는 진정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저는 운동을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운동신경이 좋지 않아 체육대회 선수로 뽑히진 못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고 거기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것은 응원이었고 저는 단 한 번도 응원상을 놓쳐본 적이 없습니다. 끈기와 열정 그리고 카리스마는 아프리카를 누빌 대우건설의 미래에 큰 힘이 될수 있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예상치 못했던 문제로 인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끝까지 업무를 수행해내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던 경험이 있으면 서술해 주십시오. *
[100자 이상 500자 이내]
학과회장을 맡을 때의 일입니다. 4박 5일이나 되는 긴 일정으로 농촌 봉사 활동에 과후배들을 이끌고 갔습니다. 농촌에 대한 이해와 농촌 체험을 통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떠난 뜻 깊은 행사 였습니다. 하지만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내린 비는 삼일동안이나 그치지 않고 내렸고 우리 농활대는 할 일없이 마을회관에서 시간이나 때우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당초 목적과도 빗나갈 뿐 아니라 마을 어르신들에게까지 좋지 못 한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고민 끝에 집행부와 회의를 거쳐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농촌 어린이들의 학습지도와 노인 세대의 청소 봉사를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비록 농촌의 실상을 몸으로 느끼는 것은 할 수 없었지만 농민들과 조금 더 가까이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비는 집으로 돌아오는 다섯째 날에야 그쳤지만 우리는 '내년에 꼭 또 오라'는 농민들의 작별 인사를 들으며 집으로 향할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어려움과 희생을 각오하고 윤리적, 도덕적으로 행동했던 경험이 있다면 서술해 주십시오. *
[100자 이상 500자 이내]
전역 후의 학과회장 활동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줬습니다. 제가 전역했을 당시 학생회는 와해 직전에 있었습니다. 개인주의의 만연과 취업에 대한 부담으로 학생회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학업지장을 이유로 그 누구도 학생회장직을 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애정을 가지고 몸 담았던 학생회가 불과 2년 여 만에 힘을 잃은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학업이 걱정스러웠지만 희망을 품고 갓 입학한 신입생들을 선배 없는 고아로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저라도 총대를 메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1년 동안 난파선의 키를 잡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학업도 포기 할수 없었기에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학생회를 부흥시켜 말미에는 교내 신문사로 부터 학생회가 잘 운영되는 힘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터뷰를 했고 한 해를 마무리 짓는 과축제에서는 1년을 회상하는 영상물을 보며 모두 아름다운 눈물을 흘릴 수가 있었습니다.
<LG전자>
1. 자신의 열정에 대해
자신감과 패기! 이 두 단어 덕분에 저를 간단하고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그리고 저의 열정을 보여줄 수 있는 예를 들 수 있어 또 다행입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저에게 언제나 체육대회는 기다려지는 행사였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저의 운동신경은 저의 열정을 따라주지 못 해 선수로 뽑히는 걸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속한 학급 또는 학과가 우승을 하는 과정을 구경만 하는 것은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응원이었습니다. 스스로 응원부장을 자청해 목이 세도록 응원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단 한 번도 응원상을 놓쳐본 일이 없습니다. 대학 입학 후에는 산악자전거라는 새로운 취미생활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로 산에 오르며 또 자전거 묘기 연습을 하며 선의의 경쟁을 했습니다. 때로는 손바닥의 굳은살에서 피가 나기도 했지만 즐거워하는 일에는 열정이 절로 따라 붙는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산악자전거 전국대회에 출전해 상대적으로 저가의 자전거로 고가의 자전거들을 제치고 2위에 입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가진 열정의 가장 큰 자랑은 그 것이 저에게서 끝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전공 공부를 게을리 하는 불어불문학과 풍토 속에서 저는 외롭게 프랑스어 공부를 했고 같이 공부할 사람을 찾지 못 해 결국 프랑스 어학연수 길에 올랐습니다. 6개월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나서 돌아온 학교의 모습은 그대로 였습니다. 초기 학습이 어렵다고 해서 1학년부터 전공 공부를 포기해 버리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신감을 잃어가는 후배들에게 뭔가 해 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보기로 하고 스터디 그룹을 조직했습니다. 처음에는 후배들에게 좋은 이야기나 해주자고 시작했지만 한 번 시작한 일은 대충 마무리 지을 수 없는 성격에 오히려 저에게도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학과 교수님들께서도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었고 후배들은 지난겨울에 모두 프랑스 교환 학생으로 파견되었습니다. 熱情!! 뜨거움과 함께하는 끈끈한 정. 그것이 바로 제가 가진 열정입니다.
2. 성취
제가 이룬 가장 자랑스러운 성취는 전역 후의 학과 학생회장 생활입니다. 제가 전역했을 당시 학생회는 와해 직전에 있었습니다. 개인주의의 만연과 취업에 대한 부담으로 학생회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학업에 지장이 된다는 이유로 그 누구도 학생회장직을 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애정을 가지고 몸 담았던 학생회가 불과 2년 여 만에 힘을 잃은 모습을 보자 누군가는 나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학생회장직을 맡을 것을 선언하면서 모두에게 학업에 지장을 준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학업과 함께 어떤 단체를 이끌어 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학생회에서 피상적인 인간관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집행부 및 학우들과 마음으로 교감을 나눈 결과 교내 체육대회 1위, 봄 농촌활동 최다인원 참가, 학생총회 최다인원 참가와 같은 결과들을 학우들과 함께 지켜볼 수 있었고 교내 신문사로부터 학생회가 잘 운영되게 하는 힘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축제에서는 1년을 회상하는 영상물을 보며 모두 아름다운 눈물을 흘릴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다짐 했던 대로 회장직을 맡은 2학기 내내 전액장학금을 받아 학업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 편견일 뿐이었음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름다운 성취는 바로 이런 활동들을 통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후배를 얻은 것입니다. 힘든 시절을 함께 나눈 소중한 사람들은 몸이 떨어져 있을 지라도 마음이 통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3. 실패
나를 죽이지 못 하는 시련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저를 가장 강하게 만들어준 시련은 바로 입대 초기의 군생활 입니다. 입대 후에 저는 육군 보병부대에서 보급계원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업무를 가르쳐주는 선임병이 있어야 정상이었지만 사정에 의해 저는 업무인수를 받지 못 한 채로 복무를 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저의 업무에는 순서도 없고 규칙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바보스럽게도 '나는 배운 것이 없으니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검열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검열관의 질문에 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 했고 검열관의 노트에는 지적사항이 빼곡히 적혀가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결과는 참담했고 제가 받은 수많은 지적 사항을 이유로 저의 상관이 불려가기에 이르렀습니다. 책무를 다하지 못 한 죄책감과 꼴찌라는 부끄러움은 저를 한 없이 조그맣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은 비록 입에는 아주 썼지만 몸에 좋은 약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약을 먹고 체질 개선에 돌입했습니다. 저에게 반성할 시간을 제공해 주었고 문제점이 무엇이고 해결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했습니다. 결론에 이른 후 저는 상급부대를 제 집처럼 다니며 계원들을 지독히도 못 살게 굴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흔쾌히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어쩔 땐 사무실에서 하릴없이 1시간이 넘게 기다린 적도 있었지만 그 시간이 검열관 옆에서 쩔쩔매는 시간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통으로 업무를 배워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배워갔습니다. 그 결과 그 시련은 저를 강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가장 큰 시련이었던 만큼 가장 강한 저를 만들어주었습니다. 후에 있은 군 전투장비 지휘검열에서 검열 우수 유공자로 선정되어 사단장 표창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이 사건이 없었다면 저는 어쩌면 아직도 남의 탓을 하는 바보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시련 속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4. 역량
이제는 사람이 경쟁력인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에 입학해 저의 인생에서 소중한 한 획을 그어준 자전거 동아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광주 지구의 날 기념행사, 5.18 자전거 순례 진행, 광주일보 주최 마라톤 레이스 패트롤, 여수 세계 박람회 기원 자전거 행진을 비롯한 일일이 열거하지 못 할 수많은 행사에 참여와 진행을 하며 그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상황들에 대한 대처법과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체득했습니다. 학과 학생대표자를 통하여 몸에 익힌 강한 추진력은 어떤 임무를 부여 받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첫 단추부터 하나하나 끼워나갈 수 있는 역량을 심어 주었습니다. 6개월간의 광주 프랑스 문화원 알리앙스 프랑세즈 근무 경험 역시 문화원장님을 보조하며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프랑스 대사관 추천 파견 학생 선정, Les Jeuness et des sports 프로그램 참여와 귀국 후의 광주 비엔날레 참여작가 통역, 2014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기원 드림프로그램 통역 봉사 활동은 세계를 향한 저의 Global Mind를 잘 나타내 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복수전공으로 이수하며 특히 마케팅과 인적자원관리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준비된 사회인이 되고자 더욱 정진하고 있습니다.
5. 성격
자신감과 적극성 그리고 유쾌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저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런 성격으로 인해 고등학교 시절부터 오락부장 전담이었습니다. 저와 이야기하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아 인간관계를 으뜸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또 저의 적극적인 성격으로 끌려 다니는 사람보다는 함께 가자고 독려하며 어느 집단에서나 분위기 메이커가 될 수 있었습니다. 대중 앞에 서는 것을 겁내지 않아서 각종 행사에서 사회를 맡으면서도 떨지 않는다는 것 역시 저의 강점입니다. 학교 축제 때에 동아리 자전거 묘기 공연에서 사회를 보았습니다. 그 공연을 지켜 본 많은 사람들이 저를 외부에서 돈을 주고 섭외한 사회자로 봤다고 합니다. 좌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는 작은 체구에도 저를 남자답게 보이게 할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이 때로는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참을 수 없는 성격이라 농담을 즐겨하고 그로인해 자칫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가벼운 사람의 이미지를 주기도 합니다. 또 자신감의 표현이 지나칠 때가 있어 거부감을 줄 때도 종종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점들은 저의 됨됨이가 얼마나 성실하냐에 따라 해결 여부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제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고자 노력합니다. 또 끊고 맺음을 확실하게 하자는 생활신조를 바탕으로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고치고 싶은 약점은 가까운 사람에게 약하다는 것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약 30일간 자전거 무전 전국 일주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팀장을 맡았는데 제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멤버들 간의 불화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반대 방향에서 나타났습니다. 다툼을 너무 경계한 나머지 대화 부족이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난 것입니다. 우리는 싸우지는 않았지만 불만족스러운 점에 대한 개선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대화와 때로는 다툼도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후 저는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해야 할 말은 할 수 있도록 신중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의 이미지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6. 10년 후 포부
Tu es nationaliste!! ( 넌 국가주의자구나!!) 결국 저는 프랑스 어학연수 중에 이 말을 친구들로 부터 듣고야 말았습니다. 휴대폰을 비롯한 각종 전자 제품만 보면 '역시 한국 제품이구나' 혹은 '왜 한국 제품을 쓰지 않는 거니?'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프랑스의 샤를 드골 공항에 첫 발을 디뎠을 때 저를 처음으로 맞은 건 프랑스의 유명 브랜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놀랍게도 우리나라 LG전자의 벽걸이 TV로 된 공항 상황판 이었습니다. 낯선 이국땅에 처음 내린 두려움은 이내 곧 한국인임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바뀌었고 그것은 프랑스 체류 기간 내내 지속 되었습니다. 저는 불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LG전자에 입사한 10년 후의 모습은 바로 저 같은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움을 심어주는 역할이고 싶습니다. 지금은 아직 프랑스어 수준이 완벽한 단계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프랑스어 공부와 마케팅 공부를 꾸준히 계속해나가 10년 동안의 국내 영업 경험을 바탕으로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북아프리카 지역 곳곳에 LG전자의 심벌이 보이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 10년 후에는 저는 이런 말을 들을 것입니다. Tu es LGist!!(너 LG주의자구나!!)
첫댓글 교수님 수업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빠뜨렸습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수업입니다. 자기소개서 작성과 면접 준비시에 정말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책에서 얻을 수 없는 수 많은 것들을 얻었습니다. 교수님 정말 명강의 감사드립니다.
우와- 많이배워갑니다 ^^
만희야 개과천선 했구나 ㅋㅋ
축하드려요~!! 많이 배워 갑니다.~!!
좋은 내용입니다 ^^ 참고 잘하겠습니당! 축하드려요 ^^
와 정말 소중한 자료.. 선 뜻 내놓기 힘든건데 너무 감사드려요..
오빠 취뽀한거 축하해용... ^^
ㅎ 오빠 좋은 자료 감사해요~~ㅎ 다시금 추카드리구요~~^^~
만휘형 축하드려요~ 자료 감사하구요 ^^
만희 좋겄네 ㅠ 한방 쏴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