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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순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주 예수님을 닮은 삶 “겸손”에 이어 오늘은 우리 예수님을 닮은 삶 두 번째 영혼사랑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 월요일 QT 사랑방에 올린 글을 보신 분도 계시지만 가정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지난 2월 3일 한 달 조금 지났습니다. 처갓집 둘째 처남댁 딸이 서울 연세대 동문회관 웨딩홀에서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조카 결혼식주례를 처남댁 동생이 목사이기에 사랑하는 조카 결혼식 주례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황망 하게도 조카 결혼주례 후 한 달 만에 주례하신 목사님이 52살 생애를 마감하시고 별세 하신 겁니다.
우리가 지금 숨 쉬며 살고 있지만 주일예배이후 예배마치고 제 갈 길로 가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겠습니까? 같은 동역자로써 결혼식장에서 딱 한 번 멀리서 보기만 하고 제대로 인사하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아쉽기만 했습니다.
별세하신 목사님 경남 합천에서 목회하셨는데 결혼은 하셨지만 고질적인 지병으로 자녀도 갖지 않았어요 혹시 자녀에게 가족력은 있지 않을까? 고민하셨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 교회를 섬기셨는데 목사님이 무엇을 성도들에게 강조하셨겠습니까? .......육신의 몸 덩어리로 사는 것이 아닌 영혼구원이었습니다......그래서 자나 깨나 성도들에게 한 영혼에 대한 소중함을 강조하셨을 겁니다.
누구든 만남이 이루어지면 늘 아쉬움이 있어요 별세하신 목사님 한 줌 흙으로 남지만 주님 오시는 그날 부활하실 때 다시 만나면 인사하고 싶은 마음뿐이라는 글을 남긴 겁니다.
우리 예수님 생전에 사역하실 때 무엇보다 사람의 생명을 천하와 비교 했습니다.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목숨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은 그만큼 생명이 귀하다는 것을 강조하신 우리예수님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생명의 귀함에 있어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단순히 육체적 생명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몸 육체덩어리가 아닌 구원받아야 할 한 영혼의 생명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성도여러분!! 생명가진 피조물 아무리 귀엽고 예쁜 애완동물이라도 영혼이 없습니다. 영혼이 없는 것들은 다 한줌 흙으로 끝납니다. 소나 개가 죽어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다 끝납니다. 우리 인간이 좀 소유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돋보이는 것 같지요 가진 것 한 순간입니다. 죽으면 다 빈손입니다. 그리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어디 사람뿐입니까?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언젠가는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거대한 천하라고 할지라도 물질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신 영을 가진 영혼은 영원합니다.
인간에게 육체 아닌 영혼이 있어서 가치가 있는 것이지 영혼이 없어 보세요. 동물과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아요
사람들은 부모님을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일단 죽어보세요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누워있는 방에 들어가기도 싫어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가 사람이 뭐냐고 해서 한자에 사람 ‘인(人)’ 자를 쓰고 사람은 이와 같이 너하고 나하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영과 이 땅에서 취한 육체가 서로 하나를 이룰 때 이것이 완전한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영이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나면 거기에 갇혀있던 육체는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땅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영혼이 있기 때문에 귀합니다....... 천국에 가는 영혼만 영생합니다.
전도서 3:21...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얄랴
마10: 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우리 예수님 이 사실을 믿고 확신하셨기에 사람을 볼 때 껍데기 몸 덩어리만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만나든 한 사람의 영혼을 보셨어요 그래서 우리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시며 세상에서 사역하실 때 한 사람 한사람 그 사람의 곁 모습 육체덩어리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마음 영혼을 보셨기에 세상이 다 불쌍히 보이는 거예요
우리 예수님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실 때마다 언제나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그때마다 각색병자를 고치실 때 예수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말씀이 있어요
마9:35-36...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우리 예수님 무리를 바라보실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개역성경에서는 “민망히 여기시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민망히 여겼다는 말은 헬라 원어로 '에스프랑니스데'라고 하는데 이 말은 창자를 의미하는 생리학적인 용어로 창자가 뒤틀려 아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슬픈 일을 당했을 때 그런 말을 하지요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아프네!!~~그런 마음으로 목자 없이 방향감각 잃은 양 같은 한 영혼을 바라보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이 우리 예수님 한 영혼을 목자가 양을 사랑하는 마음에 비유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목축업이 성한 나라입니다. 목자는 양을 끌고 하루 종일 풀을 찾아다니면서 먹입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지정된 우리로 양떼들을 몰고 옵니다. 목자는 막대기로 우리 문 앞에서 기다리며 한 마리씩 그 막대기 밑으로 통과하게 만듭니다. 양들은 제 차례를 기다리다가 목자가 들어가라고 하면 우리 안으로 들어갑니다.
목자는 막대기 밑으로 통과하는 양을 일일이 살펴보면서 어디 다친 데 없나, 오늘 잘 먹었나, 어디 병이 나지는 않았나 하고 유심히 살펴보면서 들여보냅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일일이 세면서 들여보냅니다. 자기 양이 백 마리이면 마지막에 가서 백으로 셈이 끝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우리 문을 딱 걸고 우리를 지키는 사람에게 양 떼를 맡기고 자기는 집으로 쉬러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마리, 두 마리 전부 다 들여보냈는데, 백 마리여야 할 양이 아흔 아홉밖에 없는 것이 아닙니까?.......한 마리가 모자라는 것입니다. 잘못 세었나 싶어 전부 끌어내어서 다시 세어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하, 한 마리가 없어졌구나.' 그때부터 목자의 마음은 급합니다. 우리에 있는 아흔 아홉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잃어버린 한마디에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어디 있는지....... 캄캄한 밤에 혼자 떨어져 벌벌 떨며 헤매고 있는지...... 온통 한 마리에 마음이 다 가 있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집에 돌아갈 생각도 잊어버리고 피곤에 지친 가운데서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마리 양을 드디어 양을 찾은 거예요
성도여러분!!...... 잃어버린 물건 하나 찾으면 얼마나 귀하게 여집니까?.....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핸드폰을 베트남 공항에서 잊어버리고 한달 만에 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오래된 폰이기에 버릴 수 있지만 한 달 만에 돌아오다니요 보관해 두었는데 며칠 전 케비넷을 정리하면서 본 적이 있어요.....목자가 양을 찾는 마음에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목자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5-6절.....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목자가 그렇게 애타게 부르며 찾는 양을 드리어 찾을 때 그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어디 피가 나는 데는 없나하고 살펴서 피나 는 곳을 닦아주고, 잘 기다렸다며 너무 좋아서 어깨에 메고 휘파람을 불며 신나게 돌아옵니다. 배고픈 것도 모르고 친구들을 다 불러 놓고 "찾았어, 찾았어." 하면서 기뻐하는 목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런 목자의 마음이 곧 우리 예수님 마음입니다.
지금 시대는 하루 밤 만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다르게 변해 있구나 내가 모르고 있어도 뉴스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시대가 그만큼 빠르게 변화 합니다. 얼마 전 친구목사가 이미지를 보내왔는데 사람 없는 트랙터가 밭에서 기계혼자 밭을 갈고 있는 거예요.... 어제 지방뉴스인데 부산항 바다에 정박해 있는 무역선에 두론이 치킨배달을 배달한 장면을 본적이 있어요 지금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말합니다. 우리 인간도 현 시대에 따라가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말들을 합니다. 그런데요 그렇게 세상이 변한다면 우리 인간의 마음은 어떠습니까?
지금 AI시대에 살고 있는데 첵 GPT를 검색하면 척척 알아야 답을 가르쳐 줍 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성터치 감성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소망이 있다고 이 번 목사계속교육 때 한 강사가 강의한 내용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인간의 마음을 터치하는 것은 기계가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지금 예수님이 AI시대에 오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사역하실까요?....... 첵 GPT에 물어보실까요?............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우리 예수님 마음은 한 영혼이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오면 천국에서 회개할 사람 99명 보다 더 귀하게 여기신 영혼 사랑하는 마음은 과거나 지금이나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7절,,,,,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이 말씀 만이 영혼 사랑의 진정한 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예수님 영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잃은 양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죄인 한사람 그 대상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예수님 식사공동체 자리에 세리와 죄인이라고 왔다고 했는데 그들만 해당 되는 것일까요?.........종교적 기득권을 가진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죄인이 아닙니까?........ 우리는 죄인이 아닙니까?
당시 예수님 식사자리에 동석한 세리와 죄인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로부터 죄인이라고 취급을 받아 따돌림을 당한 소외당한 무리들입니다. 당시 유대사회가 이들을 상종해 주지 않았습니다...손가락질을 합니다.... 저! 죄인은 못된 짓 했어 돌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무리 죄인이라고 지적한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죄인이 아닙니까?..... 오직 형식과 외식에 얽매인 율법주의자로 항상 모세의 자리에 앉기를 좋아했습니다.(마23:2) 그리고 말을 많이 하고 말한 대로 실천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 저와 여러분은 어떠습니까?.......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내가 의인이요 내가 최고요 내가 무슨 죄인이냐며 다른 사람을 향하여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이 나를 위해 십자가지신 예수님을 만나고 제일 먼저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처음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한 것을 잊어버리지 않아요 그리고 부끄럽습니다. 청년 때 교회에서 심방 왔는데 예배드리지 않고 집에서 뛰쳐나와 하나님 앞에 사 때질 한거예요 하나님을 믿을려면 내 주먹을 믿으라고 하나님 앞에 대들었어요?
혈기 당당했던 사울이 그랬어요...... 예수쟁이들을 잡는다고 이집 저집 다니며 예수 믿는 사람 명단을 작성하고 다녔어요 강팍한 그 순간 예수님께 붙잡혔지요 나중에 고백한 것이 죄인중에 우두머리하고 참회하지 않았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다 그런 사람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 말씀을 듣고자 온 세리와 죄인들이 바로 오늘 나입니다.
그러나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우리예수님은 영혼사랑에 대한 마음은 끝까지 변함이 없어요
7절,,,,,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요6: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성도여러분!! 지금 우리 앞에 한 영혼이 변화되어 새 사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믿고 천국백성이 되었다면 저와 여러분이 어떤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겠습니까?........여기 목자처럼 양을 양 어깨에 메듯 새사람 된 사람 붙잡고 덩실덩실 춤을 출 수 있겠습니까?..... 누가 예수믿겠다고 내 앞에 고백한다면 함께 춤을 추며 돌고 싶은 마음 입니다.
스펄전목사님이 영혼구원에 대해...... “한 영혼이 구원받을 때 하늘의 예루살렘 거리는 주님의 기쁨의 눈물로 강물이 되고 천사들과 성도들은 그 강물에서 함께 헤엄칠 것이다.” 라고 설교 했습니다.
사순절 우리예수님!!~~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마음을 닮아 한 영혼을 지극히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