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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와 뉴욕에서의 한국불교 상세비교
글/김형근
미주땅에 한국불교가 선 보인지가 이제 50년이 되어간다. 그 동안 미주한국불교는 켈리포니아 주 로스 엔젤레스 지역과 뉴욕지역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었다. 이 두 지역이 중심이 되다 보니 두 지역의 규모나 내용, 또 두 지역간에 과연 어느 지역이 더 활발하게 하고 있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에 본지에서는 1970년대부터 이 두지역에서 한국불교가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현재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 지를 소개한다. 이 글은 필자가 직접 본 것과 또한 해당 사찰과 신행단체에 보낸 설문지를 토대로 작성한 것이다.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인들은 전 세계로 진출하여 살고 있다. 또한 한국에도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비롯하여 많은 나라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몰려 사는 곳은 미국의 로스엔젠레스(이하 L.A.로 표기)다. 켈로포니아 주 L.A. 지역으로 대표되는 이 지역은 토렌스, 비에나 팍, 가든그로드, 글렌데일, 아나하임, 세리토스 지역 등을 포함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지의 구독자 숫자도 이 지역이 가장 많다.
LA 코리아 타운은 동쪽으로는 후버에서부터 서쪽으로는 크렌샤워 북쪽으로는 베버리에서 남쪽으로는 피코까지로 보는 경우가 많다. 성인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간다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더라도 1시간이 넘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간다고 해도 1시간이 훨씬 넘는다.(코리아 타운을 서쪽으로 웨스트, 동쪽으로 버먼트, 북쪽으로 3가 남쪽으로 올림픽으로 코리아 타운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오렌지카운티에도 한인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뉴욕의 한인상가가 형성된 곳은 퀸주 지역의 플러싱과 베이사이드 일대, 맨하탄 브로드웨이와 32가 식당가 이고 뉴져지는 포트리 Broad 에비뉴 선상에 몰려있다. 한인타운의 규모로 보면 두 도시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정도로 L.A.가 크다. 당연히 한인들이 많이 사는 L.A.는 한국인들이 미국에 들어오는 관문이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한국에서 미국으로 진출한 대표적 언론사인 한국일보, 중앙일보의 본사는 LA에 있다. 또 한국과 미국을 연결하는 항공사인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사 역시 L.A에 미주본사를 두고 있다. 미국에서 한인들이 설립한 은행도 L.A.가 압도적으로 많다. 나라은행, 중앙은행, 윌셔은행 등이 L.A.에서 설립되었고 뉴욕에도 진출하였다. 뉴욕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BNB 은행은 켈리포니아에 진출하지 못했다. 라디오 방송도 L.A에는 라디오코리아, 한국일보에서 운영하는 방송국, 중앙방송, 기독교 방송 등 4개인데 뉴욕은 1개이다(이외에 기독교 방송은 수신기가 있어야 하고 차에서는 들을 수 없다)
위에서 본 것 처럼 한인 커뮤니티는 모든 면에서 L.A가 크고 강하다. 미주의 한인불교계도 L.A.가 당연히 중심이 되어 진행되어야 하는데 오늘날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L.A.와 뉴욕에서의 한국불교의 시작과 진행.
미국에서 한국불교의 시작은 서경보스님의 도미인 1964년이다. 서경보 스님은 뉴욕에서는 사찰이나 선원을 한 적은 없고 1965년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선을 지도한 기록이 나온다. 미주한국불교의 본격적인 출발은 북가주 카멜 삼보사였다. 1973년 1월 28일 삼보사 낙성식이 있었다. 삼보사는 이 한상 거사가 수 년에 걸쳐 대웅전을 짓고 화려하게 출범하였다.
L.A.에서는 삼보사 행사 일주일 후인 1973년 2월 3일(음력 1월 1일)에 숭산스님에 의해 세로 주택을 얻어 달마사 개원식을 하였다. 주지는 한계정스님이었다. 이 무렵에는 L.A. 불자들이 왕복 10시간이 넘는 삼보사를 다니면서 법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두번째 사찰은 당시 정달스님(현 법보선원 선원장 정정달법사)에 의해 1974년 3월 10일 관음사가 문을 열었다.
1975년 11월 조계종 총무원으로부터 관음사 주지 임명장을 받고 도안스님이 L.A. 도착 하였다
1976년 도안스님의 제안으로 캘리포니아 지역의 삼보사, 관음사, 달마사 3개 사찰이 공동주최하여 ‘3사 합동법회’를 L.A. 소극장에서 열렸다.
세번째 사찰은 1976년 10월 달마사 주지로 있던 한 계정 스님에 의해 수도사가 개원하였다.
1979년 3월 19일 관음사가 한인방송국 KBC 방송망을 통해 미주에서 첫 불교방송 시작(당시에는 한국에도 불교방송이 없었음.)하였다. 매주 월요일 1시간 방송하고 저녁에 재방송 하였다.
1979년에는 도안스님 주도로 5월 20일 L.A. 관음사, 달마사, 수도사 합동 세계평화와 조국통일 기원법회를 개최하여 약 800명이 참석하였다.
1980년 오렌지 카운티에 정정달 법사, 권대광명, 청운거사 등이 주축이 되어 정혜사가 개원하였다. 고려사는 1980년 12월에 개원하였다.
1981년 여름 달마사 주지를 역임한 지명스님에 의해 반야사가 창건되었다.
1981년 8월 16일 L.A. 관음사 주최로 본국 명성여고 합창단 초청공연이 레이크공원에서 인간문화재 이동안, 이매방, 공옥진 이종만씨와 10여명의 기능보유자와 함께 기념 공연을 하였다.
1981년 10월L.A에 영산법화사 개원하였고 1982년 L.A. 신행단체인 상록회 시작되었다.
1983년 효선(지산)스님에 의해 L.A. 태고종 정희사 개원되었다.
1983년 한미불교봉사회는 도안스님, 최동수, 임종하씨 등이 이사로 하여 켈리포니아 주정부로 부터 허가를 받았고 그리고 1984년 8월 L.A. 관음사 사회복지 비영리법인 한미 불교봉사회 설립하였지만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못했다.
1984년 10월 개천절 기념하여 서부승가회(회장 도안스님) 주최로 세계평화 조국통일 국가안녕 기원법회를 L.A. 맥아더 공원 특설 광장에서 개최하였다.
뉴욕은 L.A.보다 한국 불교의 출발이 늦다. 뉴욕 불교의 터를 닦은 법안스님은 숭산스님의 도미와 비슷한 시기인 1972년 봄에 뉴욕주 시라큐스대학교로 공부하러 왔다.
1974년 봄 맨하탄 식당에서 한국 신도들을 우연히 만나 이들의 요청으로 플러싱에서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하였다. 행사가 끝난 후 절을 만들자는 신도들을 숭산스님에게 소개하여 숭산스님에 의해 원각사가 맨하탄에서 개원하였는데 초대 주지는 숭산스님의 제자인 구윤각스님이 맡았다. 그리고 2대 주지를 숭산스님이 맡다가 법안스님이 1976년 8월에 3대 주지로 취임을 한다.
버클리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삼보사에서 한 달에 한번 설법을 하던 박성배 교수가 1977년 9월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 부룩캠퍼스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
1977년에 맨한타 31가에 숭산스님이 조계사를 창건하였는데 주축신도는 최명심행, 이순배, 강자구 씨 등이었고 초대 주지는 맨하탄에 1988년 불국사를 창건한 성해스님이었다. 이후 하와이에서 활동하였던 자은스님 등이 조계사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80년 2월 태고종단의 혜등스님에 의해 뉴욕 플러싱에 전등사 개원하였다. .
1981년 4월 뉴욕 만하탄에 도철스님 성불사 개원. 이후 1986년 뉴져지 성불사로 이전하였다, 1982년 비구니 혜영스님에 의해 연국사 창건되었고, 1984년에 이르러서 혜성스님 뉴욕과 인연이 시작되었고 1985년 백림사를 개원하였다. .
현재의 상황
위에서 보듯이 미주한국불교는 도안스님이 중심이 된 L.A와 법안스님이 중심이 된 뉴욕 원각사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중에서도 도안스님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L.A. 가 훨씬 활발하였다. 도안스님의 활동에 비해 법안스님은 뉴욕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절의 운영을 사제인 총무 혜관스님에게 많이 맡겼다. 그리고 1988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이후 법안스님의 활동은 중지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뉴욕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성사되기까지 많은 역할을 하였지만 1991년 남.북 불교도인들이 한 자리에서 법회를 했던 남북 해외도 동포 불교인 합동법회 행사도 L.A.에서만 하고 뉴욕에서는 결국 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많이 변했다. 이제는 미주한국불교의 중심축은 뉴욕으로 기울었다. 만행의 저자 현각스님 초청 행사가 2000년 9월에 뉴욕과 L.A.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행사를 시작한 것도 뉴욕이었다. 뉴욕행사를 하니까 L.A.도 뉴욕 다음에 하라고 권유하여 성사된 것이다.
2010년 조계종 총무원장 방문행사를 L.A.와 뉴욕에서 했지만 뉴욕중심의 행사였다. L.A.는 주중에 관음사에서 200명 미만이 참석한 가운데 총무원장이 설법하는 법회를 하였지만 뉴욕은 일요일에 연회장에서 700명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조계종에서 해외교구 설립을 추진하여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는데 이 역시 뉴욕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현재 L.A.와 뉴욕지역 사찰은 18개와 16개로 L.A.가 두 개 더 많다. 하지만 법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600-700명 사이로 추산되는데 거의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뉴져지 소심사는 미국인 스님들이 미국인들 위주로 운영한다. 재가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는 사찰이나 선원은 L.A.는 법보선원, 마하선원이다. 안국선원도 수불스님의 수행법을 따르지만 상주스님은 없다. 뉴욕은 금강선원을 신자들이 운영한다. 스님은 L.A.지역이 약 20여명 뉴욕.뉴져지는 30여명 정도로 뉴욕.뉴져지 지역이 훨씬 많다.
종단으로는 L.A.가 조계종, 태고종, 보문종, 진각종, 영산법화종 등이고 뉴욕은 조계종, 태고종, 현해종, 일관도 등인데 두 지역 모두 조계종이 절대 다수이다. L.A.에는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사찰과 신행단체가 여러 개가 있지만 뉴욕에는 없다.
현재 미주한국사찰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은 일요일 날 하는 정기법회이다. 대부분의 사찰이 정기법회만 하고 있다. 정기법회 출석 인원의 숫자가 사세의 크기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미주에서 매주 정기법회에 참석하는 신도가 100명 가까이 혹은 그 이상인 사찰은 5개이다. 뉴욕의 불광선원, 원각사, 한마음선원, L.A. 정혜사, 그리고 카나다 밴쿠우버의 서광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L.A.는 정혜사 한 곳이고 3개가 뉴욕에 있다. 상주대중스님도 뉴욕불광선원 7명 뉴욕 한마음선원 4명으로 이 두사찰 스님들만으로도 10명이 넘는다. 프로그램은 뉴욕 불광선원이 가장 많다. 현재 미주 전 사찰중에서 뉴욕불광선원이 가장 많은 프로그램과 이벤트성 행사를 하고 있다. 뉴욕 한마음선원은 대웅전 불사관계로 프로그램 운영에 제한을 받고 있고 원각사는 신도들의 주거지역과 사찰이 위치가 멀리 떨어져 있어 주중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전체적으로 뉴욕이 L.A. 지역보다 사찰의 프로그램이 많고 행사도 많다. 또 한국불교계와 교류도 훨씬 많다. 조계종의 해외특별교구도 뉴욕이 먼저 시범적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재가신자들의 경우는 L.A.가 뉴욕보다 압도적으로 활동량이 많다.
이렇게 사찰현황을 통계 수치로 보면 L.A.는 뉴욕.뉴져지 지역에 비하여 뒤쳐진다. 사찰통계가 이렇게 나오니 자연이 뉴욕불교계가 L.A불교계보다 앞서가는 것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재가단체
종교에서 중요하게 기록되고 평가받는 것이 스님, 신부 목사이지만 신도 없는 종교는 없다. 미주한국불교는 이민사회를 기반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스님들보다도 신도들이 먼저 미주땅에 왔다. 어떤 학자는 이민 보따리 안에 ‘종교’도 한데 들어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언어도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이 생소한 이국 땅에서 불안한 이민생활을 하는 불교신자들은 사찰과 스님이 없더라도 정신적으로 불교에 의지하며 이민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불교인들을 만나면 함께 예불도 하다가 스님들을 만나 절을 만드는데 동참을 하였다. 또 미주한인불교계는 스님들의 수가 부족하여 이 부분을 역량있는 재가신자들이 메웠다.
L.A.지역에는 신심있고 능력있는 신자들이 아주 많다. 이 지역에서 절을 세 개나 개원한 정정달 법사를 비롯하여, 한성한의원 이정규 박사, 고려사 원주 대도행 보살, 본지에서 제정한 ‘모범신행상’ 1회 수상자 서 혜정 보살, L.A. 해인회를 창립한 황묘련화 보살, 불사모의 이 원익 법사, 김진모 거사, 나란타 불교대학의 학장 김 소연 약사, 박재욱 법사, 조계종 미주포교사단의 단장을 역임한 이 철우 포교사, 김 영숙 포교사, 현 단장 강 덕림 포교사, 연합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김영균 지휘자와 써니 박 회장, 마하선원 김재범 법사, 상록회 회장 이강준법사, 고대 불자회 손범락 회장, 달마회 회장 최무식 회장, 본지 L.A.후원회장인 무주심 보살, 재불련 불교방송 진행자 법성화 보살, 우담바라회의 송도광거사 등 20여명이 L.A. 불교계에 잘 알려진 사람들이다.
조직으로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상록회’다. 상록회는 1981년 9월에 당시 김정법화 보살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김 보살은 나중에 타종교로 개종하였다.
1985년 1월에 창립된 ‘남가주불교청년연합회’는 단체 활동을 활발하게 한 단체이다. 한때는 전용 사무실을 만들어 정기법회도 하고 뉴스레터도 만들었다. 신상철, 임병호, 백인용, 황금서 씨등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하였는데 도중에 활동이 중지된 것이 못내 아쉽다.
현재 이 지역의 재가단체는 상록회, 해인회, 남가주불교연합합창단, 조계종 L.A. 포교사단, 달마법우회, 우담바라회, 미주불교문학회, 불사모, 나란타불교대학, 재불련, 미주불교법사회 등이 있다.
최근에는 2007년 10월 21일 출범식을 한 ‘재미한국불교신도연합회’-이하 재불련으로 표기가 주목을 받았다. 이원익, 신용균, 문월봉, 김수근 거사가 주축이 되어 시작한 이 모임은 출발부터 월세로 전용사무실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이 모임은 ‘우리는 화합한다. 우리는 정진한다. 우리는 봉사한다. 우리는 전법한다.’라는 뚜렷한 목표를 정한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하였다. 이 단체는 핵심 멤버들이 일주일에 평균 4-5일을 만나고 수련회때는 50-60명 이상을 동원하기도 했다. 불교공부도 열심히 하고 사회참여도 활발히 한 이 단체의 분열은 너무 아쉬운 미주불교사의 한 장면이었다. 현재는 세가 많이 약화되었는데 문월봉 거사가 주축이 되어 이 강준 법사가 운영하던 불교방송을 하고 있다.
L.A. 지역의 강점은 재가단체들이 매주 모임을 갖고 단체의 특성에 맞게 활동을 하는 것이다. 불교합창단, 불사모, 나란타불교대학 등이 매주 모임을 갖는다. 이 단체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평가할 수가 있다. 이 세 단체가 회원들을 늘려 불교계의 외연을 확장하는데 역할을 하고 나아가 불교정신을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해준다면 L.A. 불교계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이 밖에 달마회, 해인회, 포교사단이 매월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 불사모와 나란타 불교대학은 일주일에 두 번의 강의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뉴욕에서는 도솔법사가 이끌던 달마스쿨이 있었지만 지금은 수년 전에 중단되었고, 플러싱의 대관음사에서 일주일에 두번, 불광선원에서 일요일에 불교교리 강좌가 있다. 즉 L.A.는 불교교리 강좌를 재가신자들이 하고 있고 뉴욕에서는 스님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합창단을 보면 L.A.는 써니 박 보살이 회장으로 있고 김영균씨가 지휘를 하는 연합합창단이 미주에서는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뉴욕은 한마음선원 합창단이 오래 전부터 활동하였고 원각사 불교합창단이 올해 창단 되었다.
현재 뉴욕은 재가신자들이 언론활동을 많이 하고 있고 재가신행단체는 많지 않다. 하지만 뉴욕은 원래 재가신행단체가 조직적으로 활동하였다. 1986년 7월에 박성배 뉴욕주립대 교수를 지도법사로 하는 ‘보현보살회’가 출범하였다. 이 단체는 원각사에서 신도회장, 이사장, 이사 등을 역임한 사람들과 정신과 의사들의 모임이었던 ‘한길회’ 출신들이 주가 되어 시작한 단체이다. 그러나 이 단체는 노선 차이로 9월에 ‘보현보살회’와 ‘민족불교연구회’로 나누어졌다. ‘민족불교연구회’에서는 박성배 교수가 지도법사로, 한길회 출신 정신과 의사, 유학생, 원각사 청년회원인 이경식, 김연문 등이 참여하고 동국대 출신 정효정 보살과 필자 등이 이 단체의 실무를 맡았다. 이 단체는 경전공부를 하면서 현실참여를 불교교리에 입각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모색하고 또 절에서 주말 수련회를 하기도 하였다. 당시 전두환 정부시절에 민족불교연구회에서는 뉴욕영사관 앞에서 한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기도 했는데 불교단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단체는 박 교수가 지도법사를 더 이상 하지 못함에 따라 1987년 말에 해산되었다.
뉴욕불교상조회 2001년 4월 8일 현재는 없어진 플러싱 도선사에서 창립식을 하였다. 임우재 씨가 회장을 맡은 이 단체는 본지 주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되었는데 ‘회원들의 신행활동 및 경조사를 돕고, 불자들의 상부상조와 화합, 그리고 봉사활동 및 생활불교의 기치를 들고 출범하였다. 삼사순례도 하고 회원 가족의 장례식이 있을때는 장의원 사장이 깜짝 놀랄정도로 조직적인 동원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단체도 3년 정도 활동을 하고 말았다. 이 단체 이후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는 조직적인 신행단체는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한미불교진흥재단은 현재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불교영어를 가르치는 조일환 교수와 올해 뉴욕원각사 신도회장으로 선임된 부인 조순자 보살의 원력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주한국불교신자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이 부부가 출연한 재정으로 운영되는 이 재단은 1995년부터 2003년 5월까지 불교방송을 하였고 그 외에도 잡지 발행, 대학교에 불교학생회 결성 지원, 대학교와 공공 도서관에 ‘한글대장경 전질 기증운동 등 다방면에 걸쳐 하였다. 이 부부는 2007년 11월에 경주캠퍼스에도 발전기금으로 50만원을 기증하였고 2008년 말에 컬럼비아대학교에 한국불교학 개설을 위해 150만 달러를 기증하였다. 한미불교진흥재단 산하의 만우장학회에서는 2010년부터 매년 10만 달러를 들여 경주캠퍼스에서 학생들을 선발하여 전액 장학금으로 언어연수를 시키고 있는데 올해는 8명이 컬럼비아대학교에서 8주간 연수를 하였다. 또 본지에도 매월 $500씩 오랜 기간을 후원하고 있다. ‘뉴욕 한국학교 이사장을 11년을 역임하기도 한 조 일환 교수는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올해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재미한국불교장학회는 2002년에 고 최무직 거사에 의해 창립되어 매년 10명 혹은 11명에게 $1,000씩 장학금을 지원하였다. 현재는 최 회장의 부인인 최영숙 보살이 자녀들과 함께 이 단체를 이끌고 있다.
뉴욕불교신도회는 회장이 재가신자이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사원연합회와 밀접한 관계에서 출범하였다. 2008년에 당시 사원연합회 회장 원영스님이 주도적인 노력을 하여 출범하였다. 이 단체에서는 하는 큰 행사는 뉴욕사원연합회와 조계종 총무원의 도움을 받아 청소년들을 한국에 문화연수를 시키는 프로그램의 운영이라고 볼 수 있다. 초대 김정광 회장에 이어 2010년에 2대회장으로 불광선원 신도인 고창래씨가
일하고 있다.
현재 재가신자들이 모여서 하는 단체로는 금강선원이 있다. 약 15년 전에 출범한 이 단체는 한약방과 ‘광개토개발’이라는 건축회사를 운영하는 김동욱 거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김황영, 전민규 씨 등이 처음부터 함께 하고 있다. 이 단체는 미주한국불교계로서는 드물게 자체 건물을 가지고 있다. 이 건물에서 회원이 살고 있으면서 자원봉사자로 이 단체 일을 돕고 있다. 이 단체는 현재 김황영씨가 대표로 있는데 매주 화요일 모임을 하고 있다. 15명 정도가 모이는 이 단체는 회비는 없고 운영은 핵심 회원들이 맡아서 한다. 매년 맨하탄에서 열리는 국제봉축퍼레이드에 이 단체에서 나무로 만든 탑을 행사장에 설치하여 퍼레이드 행사를 크게 돕고 있다.
뉴욕에는 L.A. .불교계에는 없는 ‘자비원’이라는 복지기관이 있다. 자비원은 원래 미주현대불교 후원자들이 주축이 되어 1999년 6월에 출범하였다. 본지 후원자들이 준비를 하여 등록까지 마치고 사원연합회 회장인 휘광스님을 이사장으로 모셔 사원연합회 산하로 출범하였다. 현재 본지 운영위원들인 김오연보살이 원장을, 보현화 보살이 재무, 본인이 총무를 맡았다. 불교의 자비사상을 사회에 실천하기 위해 출범한 이 기구는 2002년에 사원연합회에서 한마음선원으로 운영주체를 바뀌었는데 현재는 이경희 원장이 중심이 되어 일하고 있다.
올해 L.A. 한국불교계가 한 행사를 보면 지난 6월 말에 봉원사 주최로 열린 ‘영산재’이다. 이 영산재 행사는 1,200명이 동원된 성공적인 행사였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는 매년 정기적으로 하는 행사인데 뉴욕은 사원연합회 주최행사와 맨하탄에서 하는 국제봉축행사 2개를 하였는데 올해는 뉴욕사원연합회에서는 행사를 하지 않았다. 대신 사원연합회에서는 스리랑카 UN대표부에서 주최하는 UN 행사에 동참하였다. 뉴욕에서는 사원연합회에서 ‘청소년 여름 캠프’를 주최 하였다. 이 캠프는 미주 여기저기서 단위 사찰별로 하는 곳이 많았다. 이것을 본지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여 2008년에 첫째 명상, 둘째 한국전통문화, 셋째 사교를 주제로 하여 범휴스님을 지도법사로 하고 이 외에 외부에서 강사를 초청하여 뉴욕 백림사에서 3박4일간 하면서 크게 성공하여 전미주에 큰 규모로 확산되는 계기가 된 행사였다.
뉴욕불교계 역량만으로 하는 행사는 아니지만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와 유니온 신학대학교에서 ‘진제대종사’초청으로 9월 15일, 16일 대규모 행사를 한다.
결 론
이 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주한국불교계를 이끄는 지역은 L.A.와 뉴욕인데 1970년대는 확연하게 L.A. 불교계가 앞서가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엇비슷해졌다. 그러다가 도안스님이 입적한 2006년 부터는 뚜렷하게 뉴욕에게 뒤쳐지기 시작했다. 그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스님들의 숫자에서부터 뉴욕에 뒤지고 있다. 또 스님들의 연령층도 뉴욕에 비해 노년층이 많아 활동력이 떨어진다. 이렇게 되니 절에서 하는 프로그램에서 이제 L..A는 뉴욕과 비교할 수가 없다. 뉴욕을 따라가려면 역량있는 젊은 스님들이 10여명 이상 영입되어야 할 것이다. 재가 불교신자들의 활동은 언론 분야만 빼고는 L.A.가 월등하게 앞서있다. 이 점이 현재는 유일한 위안거리이다.
그러나 이 재가단체들의 운영상태와 재정상황을 들여다 보면 열악하기 그지없다. 렌트비를 내면서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단체는 불사모와 재불련 뿐이고 포교사단은 단장의 가게 한쪽에 사무실을 만들었다.
풀타임으로 상주하면서 일을 보는 사람이 있는 단체는 한 단체도 없다. 이런 구조하에서 단체가 발전하기는 매우 어려운 처지다. 불교의 중심지가 사찰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보시금이 사찰로 들어가지만 이런 재가단체에도 보시하는 뜻있는 기부자들이 많이 나와야 재가단체가 지속적으로 활동을 할 수가 있다.
전체적인 한인 인구가 많기 때문에 불교신자도 L.A.가 휠씬 많다. L.A. 불교계가 하루빨리 젊은 사람들과 소통이 되고 현대적인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젊은 스님들이 넘쳐나서 미주한국불교계의 중심역할을 하는 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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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11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