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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산의 본래 이름은 비슬산(琵瑟山)이었다.
북릉 상의 선유봉~옥녀봉~탄금봉 산세가 마치 선인이 거문고를 타고 옥녀가 비파를 다루는 형국이라 그렇게 불렸다고 하는데,
조선 인조 때 학명대사의 옛 기록에 따라 연꽃을 닮았다하여 연화산(蓮花山)으로 바꾸었다.
지금 꽃 화(花)자를 쓰지않고, 빛날 화(華)자를 쓰는 건 알 길이 없다.
전설에 ‘물무덤이' 아래에 있는 샘은 숫샘이고, 옥천사 대웅전 뒤 옥천(玉泉)은 암샘이라고 전해지는데, '물무덤이'는 연화산 정상을 일컬으므로
이 산을 '물무덤이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1983년 고성군 4개 면(개천면, 영오면, 영현면, 대가면)에 걸친 면적 28.72㎢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지만 도립공원이기에는 아무래도 0.1% 부족감은
지울 수 없다.
다만 신라 때 창건된 고찰 옥천사(玉泉寺)가 있어 그나마 이름 값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연화산(蓮華山 528m)은 낙남정맥 상의 성지산(聖智山·456m)에서 북서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이 시루봉(541m)에 이르러 '∨'자로 갈라진다.
남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은 혼돈산(混沌山·499m)과 어산(御山·534m)을 빚은 다음 영천강(永川江)에 가라앉고, 북동진한 능선이 들어올린 산이 연화산이다.
여기에서 다시 북으로 뻗어나간 능선은 선유봉-옥녀봉-망선봉(일명 탄금봉)을 빚은 다음 개천면 소재지 앞 계류에 이르러 맥을 다한다.
연화산 주능선은 일단 북서쪽으로 휘면서 연화1봉(488m·일명 매봉)을 들어올리고, 서쪽으로 휘돌아나가면서 연화2봉(478.1m)을 빚은 다음
갓골산(181.4m)과 당항산(唐項山·139m)을 살짝 들어올려 놓곤 영오천과 영천강으로 가라앉는다.
필자는 이웃한 선유산 대신에 이 산자락 언저리로 산길을 잡았다.
산행코스: 영천중-성곡교-금산-밤,감나무밭-임도-편백숲-석문-제2연화봉-봉화대(U턴)-연화1봉-백련암-옥천사-일주문-옥천소류지 주차장(8km,천천히 4시간)
GPX
7.97km에 천천히 4시간(옥천사 탐방 포함)
고도표
참고 개념도 및 산행기 ☞ http://blog.daum.net/bok-hyun/336
한마음산악회의 선유산 산행일이다.
필자는 작년 딱 이맘때 선유산 산행을 하였기에 오늘은 이웃한 연화산(연화2봉)을 가기로 하였다.
산행은 국제신문 근교산의 반대방향으로 진입하여 선유산 주차장에서 버스가 대기하기 위해서 양월마을 선양재를 들머리로 선택하였다.
선유산은 드날머리 간 아스팔트 도로를 생략하므로해서 산행거리가 아주 짧기 때문에 산행 후 옥천사 탐방을 하여 그 곳에서 뒷풀이를 하기로 하였다.
필자는 바로 옥천사 주차장으로 내려가면 되므로 아주 편리하게 되었다.
부산에서 마창대교를 경유하여 먼저 양월마을 선양재 입구에서 모두 내리게한 후 선유산주차장에서 대기할 것이다.
필자는 버스기사에게 부탁하여 영천중학교와 '성곡교'가 있는 지점까지 태워 달라고 하였다.
빨간 동그라미의 영천중학교 안내판.
성곡교를 건너면서...
(성곡교)
돌아본 영천중학교와 이정표.
성곡교 아래 갈대가 뒤엉킨 영오천 너머로 연화산이 올려다 보인다. 우측 쌍봉우리가 연화2봉과 봉화대인 거 같고, 좌측 봉우리가 연화1봉 같다.
다리를 건너서 만난 버스 정류장은 금산.
이제 영오천을 좌측 겨드랑이에 끼고 뚝길을 걷는다.
곧 만나는 갈림길에서 이제 뚝길을 벗어나 우측으로 방향을 잡는다.
금산마을회관 앞 주차장에서 좌로 꺾어면...
(우측에 있는 금산새마을회관.)
금방 커다란 공터 겸 주차장을 만난다.
산자락을 보고 마을 과수원길로 들어간다.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매달린 배나무.
귀가 찢어질 듯 짖어대는 견(犬)공들.
은행나무 잎사귀 노오랗게 깔린 임도급 산길은 밤나무와 감나무 과수원길.
밤 감나무 밭을 벗어나면서 능선 자락에 붙는다.
이 후 산길은 대체로 거친 편.
무덤 두 기를 만난다.
'유인창녕성씨지묘'는 새로 단장하였지만 산짐승들의 난장판이 되었으니...ㅉㅉ
임도를 만나 곧바로 묘지쪽으로 올라보았지만 길이 없어 임도 좌측 방향으로 따라가야만 하였다.
어라~ 이 분들. 아직 점심시간이 멀었는데 점심자리를 펴고 계신다. 길을 찾지 못해 그만 점심을 먹고 내려갈려고 하였단다.
인사를 건네면서 컵라면과 커피도 얻어 먹었다. 덩달아 가져간 생탁도 몇 잔 마신 후 그만 코가 끼이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녀들은 모녀지간에다 자매지간이니 이모조카로서 가족들이였다.
혼자 나선 산행길에 일행이 불어 4사람이 산길을 걷는다. 임도가 우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좌측 산자락으로 올라 붙는다.
이정표나 시그널이 전무하지만 묵은 옛길은 그대로 남아 길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걷는다.
편백숲도 지나고...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하다...
나무가지 사이로 살짝 트이는 조망.
육산의 산길에 시루떡바위가 나타난다. 어라~ 대략난감! 모세의 기적은 바다가 갈라졌지만 바위 중앙으로 길이 뚫렸다.
석문(石門)이다.
석문을 올라서니 트이는 조망. 세 모델들이 나란히 섰다.
그리고 다시 묵고 거친 산 길.
정수리에 올라섰더니...
연화2봉이다.
중앙엔 어머니, 좌측엔 따님, 우측엔 이모. 이들을 앞세워 보내놓고 필자는 이정표상 300m 거리의 봉화대를 향했다.
봉화대는 의외로 가까운 거리에서 만난다.
봉화대를 지나면 갓골산을 지나 영천강과 영오천의 합수지점으로 내려서게 된다.
봉화대에서 되돌아와 세 분의 가족들을 다시 만난다.
이 후 평이한 산길을 걸어 연화1봉 아래의 이정표에 닿는다.
연화1봉에 얼추 다 올라와 돌아보는 연화2봉.
연화1봉 턱밑의 앉을 쉼터.
돌무더기가 있는 연화1봉.
연화1봉의 이정표에 연화2봉은 1.96km이니 약 2km를 걸어온 셈.
두 분은 자매지간.
기념사진을 찍고...
이 분들과 함께 백련암으로 내려선다. 이 길은 상당히 가파른 길.
맞은 편 남산과 선유, 옥녀, 장군봉 능선. 필자는 저 능선을 돌기로 하였지만...
간벌을 하곤 가지런히 정돈이 되어 있으니, 도립공원이 맞긴 맞는 모양.
안부에 내려선다. 계속 능선을 이어가면 우리 버스가 대있던 주차장으로 가게된다.
우측 백련암으로...
내려서는 길은...
다시 낙엽쌓인 가파른 길.
백련암 뒷편으로 내려선다.
곱게 물든 은행나무가 너무 곱다.
나무에 매달린 잎새도 아름답지만 땅바닥에 나뒹구는 낙엽도 아름답긴 마찬가지다.
은행잎과 돌확.
'모든 정신상태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마음은 그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근원이다 -법구경-
가을은 고요한 절마당에도...
해우소 기와지붕에도 가만히 내려앉았다.
백련암으로 들어가본다.
왼쪽 계단을 올라서면 약사전이 있고...
옥천사를 중심으로 적멸보궁과 청련암, 백련암, 연대암 등 7개의 말사와 암자가 있다.
백련암은 청련암과 함께 숙종 4년(1678)에 묘욱선사가 초창한 작은 암자로서 숙종 27년(1701) 경현스님이 중건했고, 정조 5년(1781) 순문스님이 고쳐 지었다.
백련암 편액은 거제 출신 성파 하동주(星坡 河東洲 1879~1944)의 글씨이다. 성파선생은 영남지역을 순방하면서 많은 글씨를 남겼다.
제일 오른쪽 끄트머리에 있는 염화실(捻花室). 염화실은 염화미소에서 나온 말이다.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다가 연꽃을 들어보였으나, 오직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지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마음과 마음을 서로 전함, 불경의 글 이외의 가르침 등을 뜻하게 되었고, 이 말에서 따온 것이 염화실이다.
가을 은행나무가 아름답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뜻밖의 만추지경(晩秋之景)은 그저 황홀의 극치.
포장도로를 따라 낙엽을 쓸고 조금 내려오니...
옥천사가 나타난다.
백련암은 200m의 거리.
날렵한 3칸 팔작지붕의 삼천불전(三千佛殿)의 열린 문 안을 합장하고 들여다 보니...
삼존불이 모셔져있고, 그 뒤 양옆으로 빽빽하게 삼천불상이 모셔져 있다.
3층 건축물인 보장각(寶藏閣)은 옥천사의 박물관.
무우당(無憂堂) 앞엔 청담스님 사리탑이 있다.
정면 7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에 옥천사 편액이 걸린 자방루(玉泉寺 滋芳樓)앞에 섰다.
기둥 사이를 모두 두터운 문으로 막고 오직 앞마당과 면하는 전면만을 개방하여 큰 성채를 방불케 한다.
옥천사는 고성군 연화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서 676년에 의상대사가 지었다. 그 후 신라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의 중창이 있었다.
국가의 숭유억불정책이 가중되면서 한동안 도둑의 소굴로 변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1639년에 학명대사가 중창했다.
1657년에 용성화상이 다시 지었으며, 그 후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 경내에 달고 맛있는 물이 끊이지 않고 솟는 샘이 있어 절의 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고 부르게 되었다.
옥천사는 임진왜란 · 정유재란 때는 구국승병의 군영 역할을 했던 호국사찰이다. 그 때문에 이곳을 점령한 일본군이 사찰을 불태우고 폐허로 만들었다.
안내판
절마당쪽 자방루에 달린 편액은 옥천사(玉泉寺)
자방루(滋芳樓)란 ‘꽃다운 향기가 점점 불어난다’는 말이며, 불도(佛道)를 닦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건물 내부는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러한 건물 형식은 단순히 불교신도를 위한 설법용이나 불구(佛具)를 두기 위한 공간이 아님을 보여준다.
자방루는 1764년(영조 40) 뇌원대사가 처음으로 지었으며 1888년(고종 25)에 중수한 누각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들보 6개 중 왼쪽에서 네 번째에는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비천상이 쌍방으로 그려져 있고 세 번째에는 비룡(飛龍)이 그려져 있다.
4개의 기둥 중 2번, 3번의 기둥머리에는 용두(龍頭)가 쌍방으로 조각되어 있다.
사찰의 누각은 대체로 2층 누각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으나 옥천사 자방루의 경우 처음 지을 당시 300여 명의 승군(僧軍)에게
군사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단층 누각으로 건립했다.
이후 이 누각은 승려들에게 불경을 가르치고 초파일 같은 큰 행사 때 법화를 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임진왜란 직후 조정에서는 전략 요충지에 비상시를 대비한 군사적 목적의 사찰을 건립했는데 옥천사도 그중의 하나이다.
군사용 회합장소로 넓은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고 사찰과 주변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용 성채와 군사훈련을 위한 장소로 필요했을 것이다.
승병 교육 및 지휘본부라고 할 수 있는 자방루 건물 정면의 넓은 앞마당은 승군들이 훈련하던 연병장이었다.
승군은 훈련할 때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었으며 동편장은 통정대부, 서편장은 판사(무관직 5품종)의 벼슬을 제수받은 스님들이 지휘했다.
자방루 좌측 출입문엔 '연화산 옥천사' 편액.
출입문을 이용 'ㅁ'자형의 경내로 들어왔다. 괘불대와 작은 당간지주(幢竿支柱)를 닮은 4쌍의 석주가 절마당을 메우고 있다.
대웅전은 동향(東向)을 취하고 있으며 좌측에 적묵당(寂默堂)을, 우측에 탐진당(探眞堂)을 각각 배치하고, 맞은편에 자방루(滋芳樓)를 두어 아늑한
마당을 형성하였다.
대웅전 앞 안내판 뒤 가려져 있는 건 노주(?)
옥천사 댕웅전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정면 3칸, 측면 2칸인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 건물이다.
안내판
대웅전 좌측의 명부전과 굴뚝, 그리고 석물들.
명부전 안내판
명부전 열린 문 안으로 합장.
명부전 내부 모습. 시왕도(十王圖)는 원래 이곳에 있었던 불화였다는데...
나한전은 16나한을 모신 전각.
조사전은 이 사찰의 개산조 의상대사와 조사스님들을 모신 전각.
그밖에 독성각, 산령각 등 오밀조밀한 당우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현수막에 그려진 시왕도 10폭 중 도난당했다가 찾아온 '제2초강대왕도' 그림 하단의 지옥을 묘사한 장면이다.
팔상전(八相殿)은 석가여래의 일대기를 8부분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탱화가 걸린 전각이다.
옥천샘이 있는 옥천각. 옥천사의 유래가 된 곳이다.
옥샘(玉泉)
오밀조밀한 사찰 내부.
안에서 바라보는 자방루 중앙의 현판은 '연화옥천(蓮華玉泉)'. 자방루 편액은 이 우측에 걸려있다.
잃어버린 '제2초강대왕도'를 찾았다는 현수막.
<자료사진> 시왕도 10폭 중 '제2초강대왕도'
40년 전 도난당한 '경남 고성 옥천사 시왕도 (十王圖)'의 일부가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옥천사 시왕도 중 한폭인 제2초강대왕도(第二初江大王圖)를 프랑스의 개인 소장자로부터 환수해 9월 23일 서울 종로구
불교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이라고 28일 밝혔다.
범종각엔...
범종을 비롯하여 목어와 법고, 그리고...
구시가 있다. 구시는 초파일 같은 큰 행사시 국이나 밥을 담았던 대형 목식통(木食桶)으로 싸리나무로 제작됐다.
범종각의 내부 모습.
무우당 앞 '청담대종사사리탑비'
무우당(無憂堂) 편액. 낙관엔 '신묘춘정인화(辛卯春鄭仁和)' 무우당은 근심걱정이 없는 집이라는 뜻.
화정 정인화(禾丁 鄭仁和)선생은 은초 정명수(隱樵 鄭命壽 1909-1999)선생의 아들로 아버지를 따라 서예가의 길로 들어섰다.
옥천사 앞으로 흐르는 맑은 계류.
일주문을 지나...
돌아본 '연화산옥천사' 편액은 '청남오제봉서(菁南吳濟峯書)'
서예가 청남 오제봉(1908-1991)선생은 경상북도 금릉(金陵) 출생으로 1923년 일찍이 인생무상을 느껴 출가, 진주 의곡사(義谷寺) 등지에서 37년간
승려생활을 하며 글씨를 익혔다.
우측으로 장군봉 가는 길이 있고...
옥천소류지가 보이는 곳에 왔다. 주차장은 바로 좌측.
일행들은 선유산을 산행하고 옥천사를 탐방한 뒤 이곳에서 뒷풀이를 하고 있다.
- 은행나무 아래서 -
길을 가다
은행나무 아래 멈춰 섰다
떨어진 노란 잎 하나 주워 들자
손끝에 찌릿하게 전해오는 전기
가을이 지는 신호다
어디로 가야하나
떨어진 낙엽들 속에 서성이는
허기진 그리움의 주소는
여전히 미확인 상태
가야한다
손끝의 온기 식기 전에
애정이 목마른 그대 찾아
가을이 지는 소리
전해야 한다
찬바람 불어
손끝이 시려 와도
놓지 못하는 나뭇잎 하나
쓸쓸함이 우르르 떨어지는데
아, 어디로 가야하나
<사공 김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