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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은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선린대학교 문예창작과정의 탁영은 선생님께서
2026년 격월간『에세이스트』통권168호에
수필「멍, 나비로 피다」외 4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셨습니다.
수필가로써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드리며
건필하시고 아울러 문운이 함께 깃드시기를 바랍니다.
멍, 나비로 피다
탁영은
송곳을 쥔 손가락이 발갛게 부어 있다. 뾰족하고 차가운 금속이 물건 만드는 도구인지, 아니면 기억을 후벼 파는 침인지 잠시 헷갈린다.
끈목의 거친 결에 쓸리고 눌린 자리에 아무래도 굳은살이 자리를 잡을 것 같다.
강사가 팥죽색 끈 한 가닥을 밀어 넣으며 말했다. “외도래부터 시작하세요. 모든 얽힘은 이 작은 고리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외도래매듭은 끈목을 제 몸에 한 바퀴 감아 안으로 통과시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투박한 손가락 사이에서 끈은 자꾸만 미끄러운 뱀처럼 빠져나갔다. 겨우 고리를 만들어 송곳을 찔러 넣었을 때, 매듭이 지닌 기묘한 고집을 보았다. 살짝만 힘을 주어도 제멋대로 비틀리고, 조금만 늦추어도 형체를 잃고 풀어져 버리는 예민함이었다.
“너무 조급하게 당기지 마세요. 실도 숨을 쉴 틈이 있어야 제 모양을 찾습니다.”
강사의 지시에 따라 숨을 고르며 천천히 끈목을 당겼다. 손끝에 예리한 마찰열이 번지는 찰나, 헐거웠던 루프가 조여지며 완성된 외도래매듭은 작고 단단했다. 아직 피어나지 못한 채 웅크린 꽃봉오리 같기도 하고, 목소리를 삼킨 누군가의 목울대 같기도 했다.
지난가을 우연히 들른 공예전시회를 계기로 매듭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레일조명아래 일정한 간격과 대칭 속에 촘촘히 얽힌 비단사는 묘한 평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도래매듭, 나비매듭, 연봉매듭, 국화매듭이라는 작품들이 만들어낸 질서 앞에서 나는 한동안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장인과 우연히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작품을 가리키던 손이 내 시야에 들어온 순간, 기묘한 전율을 느꼈다. 작품의 유려한 곡선과는 대조적으로 장인의 손가락 마디마디는 뒤틀려 있었고, 지문조차 희미해진 자리에는 굳은살이 층층이 박여있었다.
내 시선이 계속 손에 머물자 장인은 손을 앞뒤로 뒤집어 보여주며 말했다.
“이렇게 굳은살이 배이고 나서야 손끝에 실의 마음이 전해집디다.”
그 말을 들으며 잠시 순이를 떠올렸다. 가족이라는 이름아래 풀 수도 끊을 수도 없는 상처들로 굳은살 박인 순이의 매듭은 어떤 모양을 만들고 있을까.
외도래를 어느 정도 익히고 난 다음 도래매듭을 배웠다. 두 가닥의 끈목을 엇갈려 조이면 목뼈처럼 단단한 마디가 생긴다. 도래매듭을 조일 때면 담장 낮은 순이네 집, 술에 취한 아버지가 현관문을 거칠게 발로 차던 모습이 떠오른다. 골목이 들썩거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고함소리가 나면, 마루 밑으로 들어가 몸을 공처럼 웅크리고 두 눈만 껌뻑거리던 동생 꼭지를 다독이는 건 순이의 몫이었다.
그리고, 작은 봉오리를 닮은 연봉매듭은 몇 주씩 거듭되었다.
끈을 여러 번 안으로 감추어야 완성되는 연봉매듭에서는 순이 어머니의 침묵이 그려졌다. 삐져나오는 비명을 안으로 말아 넣었지만, 푸르스름한 멍은 끝내 숨겨지지 않았다. 끈목을 안으로 밀어 넣을 때마다 순이 어머니가 평생 동안 삼킨 말들은 무엇이었을까 되뇌고, 나비매듭을 만질 때면 중심을 잃고 흩어진 순이네 가족의 시간이 자주 겹쳐졌다.
좌우로 날개를 펼친 나비매듭은 중심이 단단히 묶여 있지 않으면 날개가 금세 균형을 잃고 추락한다고 했고, 도래매듭을 맺을 때 끈목이 뒤엉키자 강사는 무리하게 당기지 말고 송곳 끝을 밀어 넣어 공간을 만들라고 했다.
숨을 죽이고 엉킨 실타래를 풀어 보았다. 저항은 완강하다. 아무리 애써보아도 송곳으로도 건드릴 수 없는 옹이를 만난 순간이었다. 과감하게 가위를 집어 들었다. ‘서걱’거리며 비단 끈목이 잘려 나가는 소리는 생각보다 맑고 투명했다.
그 겨울의 끝자락, 평생을 도래매듭처럼 완강하게 가족을 결박해 오던 순이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십 년 들어왔던 그 비명들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 소리는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썩어버린 끝을 덜어내고 남아 있는 줄을 살리려는 수선과 같은 것이라고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모든 매듭이 다 풀려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상처는 도려낸 채로 간직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생이 시작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또한 매듭의 최고 난이도는 화려한 기교에 있지 않다. 실이 숨을 쉴 틈을 내어주면서도 결코 헐겁지 않게 조여 내는 일이다.
비록 더디고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아프지 않을 만큼의 힘으로, 그러나 결코 놓치지 않을 적정한 온기로 다음 매듭을 향해 천천히 송곳 끝을 밀어 넣는다. 너무 세게 당겨 상대를 질식시키지도, 너무 느슨해 관계를 흩뜨리지도 않는 그 예민한 장력을 손끝의 감각으로 익혀가는 중이다.
■ 당선소감
대학시절부터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책 귀퉁이나 표지에 적어두었습니다. 문제는 글의 기억을 되찾아야 할 때마다 여러 권의 책을 뒤적거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장을 뒤지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노트를 마련하고,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친한 친구를 찾아 책과 사람을 통해 만난 이야기들로 밤늦도록 토론을 벌이기도 했지만, 나를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 아닌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몇 권이나 적었던지, 이사 때마다 책더미 속에 낀 노트들이 무게를 더했고, 모아둔 기록들을 펼쳐보며, 이러저러한 때에는 이러저러한 생각에 빠져 있었구나를 살피기도 했지요. 단순히 옛 기억의 소환이라기보다는 내면의 변환기를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의 흐름이 정체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마침내 그 노트들을 분해하고 말았습니다. 분해될 수밖에 없는 상황 또한 못내 아쉽기도 했습니다.
퇴직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자, 묻어두었던 감정과 생각들을 단정히 갈무리하고 싶어졌습니다. 혼자만의 고립된 독백이 아닌, 글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도 싶었습니다.
직접 대면해서 글 지도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곳을 검색했지만, 문예창작수업은 대부분 낮이었고, 직장인을 위한 야간 수업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지역대학 문예창작과정에 저녁수업이 가능한지 문자를 남겨 두었지요. 한참 동안 답은 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연결된 한 통의 낯선 전화가 지금까지 글공부를 이어오게 해 주었습니다.
비온 뒤 말간 공기 입자가 톡톡 터지는 것 같은 아침, 노란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엄마의 손을 잡고 유치원 차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았습니다. 야트막한 울타리를 휘감고 올망졸망 고개를 내민 빨간 전구같은 줄장미가 매혹적인 출근길이었지요. 때마침 당선에 대한 소식을 들었고, 마침내 마음속 전구에 불이 켜졌습니다.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불을 켜야 하는지 한참을 매만졌는데, 드디어 불빛 하나가 켜진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유명작가 두 분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치 뇌리를 한 바퀴 감고 폐부 깊숙이 내려앉는 듯한 말소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신체 구조상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건 마치 삶의 희노애락을 다 겪고 숙성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소리, 그 말소리가 글이 되고 문장이 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숙성된 표현을 꾸준히 연마하면서, 폐부 깊숙이 담아두었던 나만의 감성과 눈빛을 글이라는 도구에 담아 그런 말소리를 낼 수 있는 작가를 꿈꾸어 보렵니다.
울타리를 따라 줄장미가 이어져 흐드러집니다. 내 삶의 줄장미를 감아올릴 수 있도록 울타리가 되어 주신 에세이스트에 무한히 감사드립니다.
또한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부족한 글을 아낌없이 지도 편달해 주신 유진교수님과 합평을 함께 해 준 글벗들에게 소중한 마음을 담아 감사드립니다.
■ 심사평 : 박일천
탁영은이 응모한 5개의 작품 중 「멍, 나비로 피다」를 등단작으로 선정한다. 작가는 매듭을 배우면서 이웃집 순이네 가족을 떠올린다. 모든 매듭은 외도래매듭, 작은 고리 하나에서 시작하는데 살짝만 힘을 주어도 비틀리고 조금만 늦추어도 형체를 잃고 풀어져 버리는 예민함이 있다.
“너무 조급하게 당기지 마세요. 실도 숨을 쉴 틈이 있어야 제 모양을 찾습니다.” 지난가을 우연히 들른 공예전시회를 계기로 매듭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장인이 작품을 가리키던 손이 내 시야에 들어온 순간, 기묘한 전율을 느꼈다. 작품의 유려한 곡선과는 대조적으로 장인의 손가락 마디마디는 뒤틀려 있었고, 지문조차 희미해진 자리에는 굳은살이 층층이 박여 있었다. 내 시선이 계속 손에 머물자 장인은 손을 앞뒤로 뒤집어 보여주며 말했다. “이렇게 굳은살이 배이고 나서야 손끝에 실의 마음이 전해집디다.” 그 말을 들으며 잠시 순이를 떠올렸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풀 수도 끊을 수도 없는 상처들로 굳은살 박인 순이의 매듭은 어떤 모양을 만들고 있을까.
도래매듭은 두 가닥의 끈목을 엇갈려 조이면서 목뼈처럼 단단한 마디가 생긴다. 도래매듭을 조일 때면 담장 낮은 순이네 집, 술에 취한 아버지가 고함 지르면 마루 밑으로 들어가 동생을 다독이는 순이가 생각난다. 여러 번 안으로 감추는 연봉매듭은 빠져나오는 비명을 속으로 밀어 넣어 삼키는 순이 어머니의 침묵과 숨겨지지 않는 푸르스름한 멍이 생각났다. 수필 문학은 이처럼 기억을 의미화로 이끌어 작가의 내적 사유를 투영하여, 사실 속의 진실을 끄집어내는 성찰이다. 작가는 나비매듭을 만질 때면 중심을 잃고 흩어진 순이네 가족이 떠오른다고 회상한다.
나비매듭은 중심이 단단히 묶여야 날개가 추락하지 않는다. 풀 길 없이 엉킨 매듭은 옹이로 남기에 가위로 잘라 내야 했다. 도래매듭처럼 완강하게 가족을 결박하던 순이 아버지는 어느 겨울 끝자락, 세상을 떠났다. 엉킨 매듭을 잘라낼 때 수십 년 동안 담장 하나 두고 들어왔던 비명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작가의 머릿속에 순이네 가족의 처연함이 얼마나 깊은 상처로 살아 있으면 그토록 생생할까.
작가는 매듭과 순이네를 연상하며 인생에 있어서 아름다운 매듭은 나비가 되어 날아가지만, 삶의 악연이 옹이 되어 여러 사람을 속박할 때는 과감히 곪은 상처를 도려내듯이 엉킨 매듭끈을 잘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선택은 남아 있는 줄을 살리려는 ‘수선’과 같은 것이다. 작가는 매듭을 배우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삶의 지혜를 깨우친다. 고뇌와 성찰을 통하여 일상에서 내적 의미를 드러낸 철학을 발견하는 작가는 인생의 진실을 깨우쳐 가는 철학자의 모습을 닮아 있다.
모든 매듭이 다 풀려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상처는 도려낸 채로 간직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생이 시작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또한 매듭의 최고 난이도는 화려한 기교에 있지 않다. 실이 숨을 쉴 틈을 내어주면서도 결코 헐겁지 않게 조여 내는 일이다. … 너무 세게 당겨 상대를 질식시키지도, 너무 느슨해 관계를 흩뜨리지도 않는 그 예민한 장력을 손끝의 감각으로 익혀 가는 중이다.
작가는 매듭을 만들면서 삶의 정도를 알아 간다. 세상 이치는 어느 한쪽 길이 열리면 다른 한쪽은 어느 정도 닫힌다. 수필 문학은 성찰을 빌려 일상을 형상화시켜 자신의 생을 돌아보고 혜안을 얻는 ‘헤테로토피아’다. ‘디스토피아’ 현실에서 잠깐 느껴 보는 이상향 유토피아다. 우리가 어떤 순간에 잠깐 느끼는 자유로움이나 통찰에 의한 깨달음도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의 일종이다.
탁영은 작가는 매듭을 배우면서 ‘상처는 도려낸 채로 간직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생이 시작된다’고 정문일침(頂門一針)으로 역설을 던진다. 작가는 자신만의 신념을 담아 개성적인 언어, 즉 낯설게 하기로 결미를 맺는다. “너무 세게 당겨 상대를 질식시키지도 너무 느슨해 관계를 흩뜨리지 않는” 삶에 있어서 중용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등단작으로 손색이 없는 수작이다. 탁영은 작가의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더욱 정진하여 우리 수필 문단의 별이 되길 바란다.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더 더욱 정진 하세요~~
감사합니다.
많이 덥지요. 건강 잘 챙기시고요.
이열치열..... 좋은 글 많이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