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민동락 인턴 최주희입니다.
카카오 오류 났을 때 살짝 밀린 후로 아득해져서 적지 못하고 있었는데... 벌써 내일이 마지막 출근이라니요.
이러다 끝까지 적지 못할까 무서워 제 나름의 대안을 강구해 보았습니다.
2, 3주 차의 업무와 제 생각 등등을 범주 별로 기록하겠습니다.
동료 인턴분들께도 선생님들께도 송구하지만 한 편의 글이라도 열심히 적어 볼게요!
1. 지역자원조사
1) 장암산
2) 운당마을, 운암마을
3) 영촌마을, 당산마을
마을 어르신, 어린이의 관점에서 우리 묘량 지역 인프라를 이해하고 수정, 보완할 점을 제안하기 위해 짬이 날 때마다 지역자원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외지인의 시선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필요를 헤아리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ㅜ
우선, 아이들의 여름철 통학이 걱정되었습니다. 모두 통학버스를 이용하면 다행인데 혹여나 걸어 다니는 친구가 있다면 너무너무 더울 것 같아요. 지천에 식물이 파르러니 살고있지만 그늘을 드리울 나무는 없는 길이 제법 있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놀 공간이 없어 아쉽습니다. 물론 온 골목이 놀이터겠지만,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이 학교 밖에도, 마을에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팔각정은 몇 곳 있지만 벤치가 없는 것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여그저그 다니시다 간간이 앉아 숨 돌리실 의자나 벤치가 있다면 더욱 편하게 생활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고보니 참 사소합니다. 이렇게 사소한 부분만 눈에 띈다는 것은 그 동안 열심히 지역을 가꾸셨기 때문이겠지요. '소멸위기지역'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듣고 상상만 하던 모습과 사부작 땅을 밟아가며 직접 보는 묘량은 참 많이 다릅니다. 예린이언니가 제안한 카페처럼 마을을 둘러보고, 잠시 멈춰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묘량에 이주할 마음을 갖는 사람이 늘어날 것 같습니다.
2. 농작업
1) 배추밭, 상추 물주기
2) 낫으로 벼 수확해 콤바인 진입로 만들기
3) 상추 영양제
4) 수확한 논에 피 종자가 남지 않도록 후처리
농업하려고 복지하는 게 아니라, 복지하려고 농업하는 여민동락! 부족하게나마 일손을 보탤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문제는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대학에 만 3년 다니며 해본 농작업을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다는 게 참 무색했는데 여민동락에 오면서 저의 쓰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삽과 낫을 잡아보니 손은 느려, 학교에서 배운 병해충은 기억나지 않더라고요. 잠시 겸연쩍고 말면 다행이지요. 참된 문제는 제 거창한 포부에 있습니다. 뭐나 해봤다고 내가 좋아하는 일로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다, 현장에 가까운 정책을 만들고 싶다 등등 장황한 꿈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학사니 석사니 하는 그런 자격을 차치하고서도, 제가 가진 지식은 쓸모조차 가늠할 수 없는 한 줌 재 정도라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만약 이대로 여민동락 구성원으로 들어온다면?'을 상상해봤는데... 농업전공자로서 농업에는 걱정 없으시게 믿음을 드리는 게 아니라 계속 선생님들께서 신경 써 주셔야 하는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습니다. 비단 여민동락 뿐 아니라 어딜 가도 마찬가지로 전문가는 커녕 준전문가 몫도 못할 것 같아... 휴학했습니닷! 조금 극단적인 액션이지만 제게 부족한 점을 채우려면 이 편이 맞다고 생각해요. 이번 휴학으로 세이브한 학기까지해서 남은 2학기는 농업전공 대학생으로서 채울 수 있는 지식을 빵빵하게 채워보려 합니다.
3. 여민동락 선생님들과 면담, '기적 아닌 날은 없다' 평 나눔
1) 동락점빵 김강선, 권슬기, 최효심 선생님
2) 깨움 마을학교협동조합 이민희 대표님
3) 소생활권 이성호 팀장님, 김동광 선생님
어르신들의 건강권, 생활권, 이동권을 지키는 마을의 든든한 점빵,
묘량 주민의 존엄성을 끝까지 지키며 생애주기별 복지를 제공하는 주간복지센터,
주민에게 진짜! 필요한 사업을 질문하고 기획하는 소생활권까지.
'더불어 잘 사는 공동체'란 하나의 가치관을 공유하되 각각 존재하는 유기체로서 여민동락의 이야기를 들어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편협한 뜻에 갇히지 않고 흐르고 싶다는 말씀이 마음을 오래 울립니다.
이 글 하나로도 간파하셨듯 저는 쉽게 두려워합니다. 시작선서부터 지레 겁 먹는 바람에 쉽사리 시작하지 못해요.
그래서 더욱, 모두를 모으셨다는 강위원 선생님이, 여민동락의 시작을 여신 세 가족 모두가, 이은경 선생님이, 차근히 합류하신 선생님들이, 오늘의 여민동락이 궁금했답니다.
두 해 전엔가.. 우연히 얻은 여민동락의 책을 탐독하며 가졌던 가장 큰 궁금증도 '옳다고 생각하는 삶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아는데도 뛰어드는 이 굳센 마음에는 어떤 비결이 있을까?'였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작금의 사회는 '신자유주의' 한 단어로 대변되는 개인, 분열, 파편, 불안한 시대인데! 이 곳은 오히려 공동체를 추구하고! 더 나은 내일을 생각하며 나아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시는 모습에! 호기심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책 속 표현을 인용하자면, '삶과 분리된 지적 유희로 세월을 허송하지 않는' 태도를 어떻게 견지하실 수 있으셨는지 가장 자주 뵌 은경선생님, 동광선생님께는 두 번, 세 번씩도 여쭤봤던 것 같아요. 멋진 자동차보다도 예쁜 옷보다도 탐나는 것이라 '분명 비결이 있을 거다! 배워가자!!!!'하는 마음에서였는데 노상 '그냥'이라는 답만 돌아왔지요..
이제는 그래. 그냥이군! 받아들였지만 첫 주에는 정말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냥일 수 있구나. 학교에서 배운 사회만 있진 않구나. 적셔지는 데에 꼬박 3주가 걸린 셈이네요.
여민동락에 온 첫 날, 아주 당돌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회적 농업 정책을 보면 5년 뒤엔 자립하라는데 이게 꼭 복지를 민간에 이양하려는 시도같아서 싫다'였는데요, 이 때 이은경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에 여민동락 선생님들과 나눴던 대화가 더해져
1. 민간에서 주도할 때 복지가 더욱 생활 면면에 밀접히 스며들 수 있구나
2. 민간에 복지자원을 지원했을 때 여민동락처럼 고고한 마음으로 농익는 곳이 있기에 믿음을 갖고 정책을 시행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음.. 그럼에도 '사회적 농업' 이름으로 5년 뒤에도 재원이 투입되면 좋겠지만요...!
4. 아름다운 전라도 말 자랑대회
우리 할머니 말고 다른 어르신들과는 처음 나서는 나들이었습니다. 웃어른을 '인솔'한다는 게 낯설어 그냥 우리 할머니랑 놀듯 재미지게 놀고 돌아왔습니다.
묘량에 돌아와서 '인솔'한다는 마음이 어려웠다고 토로하자 동광선생님께서 "인솔한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실상 어르신들은 버스 어딨는지 다 아시고 혼자 잘 하시는데 '도우려'하니 어렵지"하며 마음가짐을 짚어주셨는데, 아주아주 부끄러웠습니다. 언젠가 사회적 농업 하시는 분이 "중독자 한 명이 농장에 끼치는 재정적 손실이 얼마인지 아느냐. 나는 그럼에도 그들을 돌본다"는 말씀을 하셨고, 선민의식에 몸서리쳤는데... 나는 무에 다른가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광쌤 읽고 계신가용! 감사합니다^^
단테가 길이 사라진 어두운 숲에서 이윽고 만났다는 베르길리우스가 제겐 여민동락 선생님들이여요. 졸업 전에, 한 학기라도 더 듣기 전에 제 문제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수익에 대한 걱정이랄지 고민되는 것이 많으시겠지요. 어린 후배 마음에 평생 박일 원점을 심으셨다는 사실이 그래도 앞으로 가시는 길에 두고두고 응원이 되길 바라며 꾹 눌러 적어보았습니다. 한 분 한 분 편지로 뵙고 싶은데 그러질 못해 아쉽네요ㅜㅜ
남은 한 주도 즐겁게 보내고, 사방으로 넓고 깊게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지리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