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4월 16일 월요일 맑음
아산으로 출발했다. 좋은 일은 아니다.
엄마가 몸이 안 좋으시단다. 걸으실 때마다 아랫배가 아파서 걷기가 어려우시다네. 동생들이 온양에 천안을 다니며 진찰을 해도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찾지를 못한단다. 내과, 정형외과 산부인과까지 들러보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다니 답답한 일이 아닌가.
CT 촬영까지 다 해봤지만 오리무중이란다. 산부인과에서 ‘혹시 젊으셨을 때 끼웠던 루프를 아직 빼지 않아 그 게 말썽을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 됐단다. 만약 그렇다면 몇 십 년이 지난 그 놈이 살로 파고들 수 있어서 잘못하면 대수술까지 가야 한다니 보통 일이 아니지 않은가 ?
엄마 연세나 건강상태로 봐서 큰 수술을 하시기 어렵다.
여전히 걷기가 어려우시고.... 우리 엄마 건강하셔야 하는데, 걱정이 크다.
‘그럼 대전 병원으로 모셔보자’ 엄마와 대전 병원에 가기 위해서다.
“어디쯤 오는 겨 ?” 궁금하신가 보다. “예 지금 가고 있어요. 옷 입고 기다리셔요” 정산에서 아산까지 한 시간 거리지만 때때로 급할 때는 멀기만 하다.
엄마가 마당에 나와 계셨다. “엄마 빨리 가요” “아녀. 뭐가 그리 급하다고....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자” 우기신다. 아프시다고 걸음을 떼기 어려워 하신다.
‘이 거 큰일이다’ 급하게 커피를 마시고 보따리를 들었다. 만약에 입원을 하시게 되면 입을 옷도 챙겼다. 괜시리 걱정이 커 간다. 그래도 엄마 맘이 편하시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했지. 가면서 여러 얘기도 나누면서 즐거운 척 했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호두과자도 사 드렸고....
충대병원을 목표로 정했는데, 영표가 하나로 병원으로 가라네. 거기가 더 잘 보는 의사선생님이 계시다고.... 집하고 가까워서 좋긴 한데....
주차장에서 병원까지 가는데 많이 힘들어 하신다. “엄마 내가 업어드릴게요”
등을 디밀었지. “아녀. 아녀. 천천히 가면 되어” 그냥 고집이시다.
웬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세상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다행히 미리 예약까지 해 놔서 쉽게 진찰을 받았다. “CT, 촬영을 하고 오세요” 의사 선생님께서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네. “이 약은 속이 편하리고 먹는 약인데 만약 안 듣는다면 산부인과에 가 보세요” “이 병원에는 산부인과가 없나요 ?” “아뇨. 4층에 있어요. 지금 가 보시던지....” ‘대전까지 오시기도 어려운 거 한 번에 끝내자’ 4층 산부인과로 갔다.
젊은 남자 선생님이 맞으신다. 산부인과에는 잘 어울리시지 않는 것 같더라.
전에 진찰 받았던 얘기, 오늘 내과에 다녀온 이야기, 루프 얘기도 했지. “그럼 빼보지요” 의외로 쉽게 얘기를 하신다.
엄마는 처치실로 들어가시고 나는 간절히 기도를 했지.
“너무 시간이 오래 돼서 안으로 들어가 버려 빼낼 수가 없었어요. 염증이 있어 약을 넣었고, 염증약을 닷새 치 드릴 테니 드셔 보시고, 그래도 안 들으면 다시 오셔서 수술을 하시지요” “수술이 어려운 가요 ? 지금 할 수는 없나요 ?”
엄마를 고통에서 빨리 꺼내드리고 싶었다. “그 게 원인인지 염증이 원인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우선 약을 드셔보세요. 수술은 반신마취를 한 후 수술기구를 넣어 빼야 하니까 쉬운 것은 아니지요” 대수술이라는 얘기를 안 하는 것만 해도 마음의 긴장이 훨씬 덜하다. 엄마도 얼굴에 어스름이 낀다. 걷지도 못할 만큼 분명한 아픔이 있는데, 몇 군데 병원을 들렸어도 원인은 알 수 없으니 얼마나 걱정이 크실까 ? 그래도 자식들 고생시킨다고 미안함이 먼저시니 내 맘인들 편하겠나. 할 수 없이 병원을 나섰다. “얘, 걸음이 조금은 편해졌어”
내 귀가 번쩍 뜨이더라. “정말요 ? 엄마. 조금만 더 걸어보세요” “인제 약 먹으면 날 테지” ‘제발 그랬으면.... 수술까진 가지 않았으면....’
“엄마, 점심 뭐 드실까 ?” “짜장면” “에이 겨우 짜장면이야 ? 다른 건 ? 삼계탕 잘하는 집이 있는데...”
“싫어 짜장면이 제일 좋아” 다 싫다시니 별 수 있나 ? 짜장집으로 갔지.
“엄마, 오늘 하루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 가요” “마늘밭 매야 되는디....”
“아이 며느리, 손자 보고 가야죠” “손자 ! 그려 그럼 낼 가자” 손자가 왜 그리 좋은지 손자 소리 듣고서야 고집을 꺾으신다.
지금은 며느리, 손자 다 보시고 곤히 주무신다.
‘우리 엄마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