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글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재상인 서애(西厓) 유성룡이 임진년(1592)의 왜란을 겪고 난 다음 해 어가를 모시고 도성으로 돌아온 뒤 지은 시의 한 구절이다. 위 시에서 유성룡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비옥한 강토를 피폐하게 만든 참혹했던 전화를 회고하면서 임진왜란의 원인과 경과 그리고 자신의 잘못과 조정의 실책 등을 진단하였다. 그중에서도 조정의 대비와 조치가 백약이 무효였던 근본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기강이 이미 풀렸으니 만 가지 계책 허사로다 많은 병사가 시급한 것이 아니라 장수 하나 얻기 참으로 어려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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維綱旣解紐 萬計歸虛擲 千兵非所急 一將眞難得
| 즉 조정 관료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위정자의 용인(用人)이 실패함으로 인해 왜란을 미연에 방비하지도 초기에 막아내지도 못하여 전 국토가 병화에 휩싸이고 생령이 도탄에 빠진 것은 물론 임금이 의주까지 몽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다시는 그 같은 전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뜻에서 “양을 잃고 우리를 고친다[亡羊補牢]”는 고사를 인용하여 끝맺고 있다.
‘망양보뢰(亡羊補牢)’는 ‘어떤 일을 실패한 뒤에 뉘우쳐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로 그 뜻이 변용되어 쓰이기도 하지만, 본래는 ‘어떤 일을 실패한 뒤라도 재빨리 수습하면 그래도 늦지는 않다’는 뜻의 성어이다. 국가든 개인이든 양을 잃기 전에 미리 그 기미를 알아차려 우리를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국가의 정책이나 제도, 법령에 관계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양을 잃은 뒤에라도 우리를 고치는 것이 차선책이라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을 잃은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다.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는 올바른 해결책이 나올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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