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이란 무엇인가 - 1
철학의 맥 ......................................................... 엘리트 글쓰기 논술 교실 / 다음카페 eea
☃ 016-9334-4876
철학은 내일의 양심과 미래를 위한 당파성이나 또는 희망에 관한 지식을 가지게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어떤 지식도 가지게 되지 않을 것이다. - 에른스트 블로흐
1. 철학이란 무엇인가
누구든지 철학을 처음 접하게 되면,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하게 된다. 사람들은 철학을 한마디로 설명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 것이다. 대부분의 철학자와 철학 교수들도 이러한 물음에 쉽게 답하지 못하고 곤혹스러워 한다. 특히 철학개론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하고 나서 도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가르쳤으며, 학생들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반성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학생들이 써놓은 답안지를 읽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철학을 한심하게 가르쳤는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철학은 교수가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고,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고 자위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철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보다 심각하게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철학은 우리가 그토록 고통스럽게 공부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철학은 우리의 삶을 더욱더 복잡한 것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는가?
철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물음들로서 우리는 결국 철학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철학개론은 원로교수가 가르치는 것이 상식화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철학개론은 실제로 철학의 여러 분야를 섭렵하고서 그 위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가르쳐야만 되기 때문이다.
철학(Philosophie)은 어원적으로 고대 희랍어의 ‘지식’(sophia)과 ‘사랑’(philos)이라는 두 단어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말이다. 지식이나 지혜에 대한 사랑이 바로 철학에 대한 어원적 정의인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혜는 모든 것에 관하여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사랑은 신적인 사랑처럼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이성간의 사랑처럼 주관적 애착도 아니다.
‘필로스’는 친구들 간의 우정을 뜻하는 사랑이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중도적이고 객관적인 선호성의 척도가 된다. 신에 대한 사랑이나 신적인 사랑에 너무 깊게 빠지면 이성적 사고가 마비되고 신비적, 광신적 차원으로 전락한다. 이성에 대한 사랑에 너무 집착하면 정신과 육체가 손상된다.
그러나 지식에 대한 사랑은 우리를 더욱더 이성적으로 인도하여 광신주의와 정염주의의 차원을 넘어서서 고차적인 쾌락을 가져다준다.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서의 철학은 우리가 인간과 자연과 신과 같은 모든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묻고 생각하면서 구체화된다.
폴크만 쉴룩은 희랍사람들이 철학을 시작하였던 사실에 착안하여 철학을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로 철학은 제1의 시작과 근원을 찾는 것이다.
최초의 철학자들이 물었던 아르케 물음이 철학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둘째로 철학은 그것이 존재하는 한에서의 존재자에 대한 학문이다.
아르케 물음의 전통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1철학으로 다루었던 존재론의 문제인 것이다.
셋째로 철학은 진리를 고찰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철학은 진리론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넷째로 철학은 죽음을 갈망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소크라테스의 세계관이나 실천철학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의하면 우리 인간은 이데아의 세계에서 현 세계로 추락하면서 순수한 영혼이 육체 속에 갇히게 되었고,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게 되었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철학이란 이데아의 세계에 대한 기억을 되찾는 것(상기설)이고, 이것은 우리의 영혼이 육체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이른바 죽음에의 연습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된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신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바르게 철학하는 것이다.
다섯째로 철학은 신적인 것과 동일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참된 진리를 터득한다는 것은 신적인 세계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도덕적 수행을 통하여 신과 일치하는 것을 이상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철학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철학이 어떻게 시작되고 성립되는가를 살펴보기로 할 것이다.
2. 철학은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철학은 물음(Fragen)으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가능한 물음들, 그리고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그 자체가 철학의 대상인 것이다.
철학은 바로 묻는 행위이다.
우리는 철학 속에서 모든 것에 관하여 모든 것을 묻게 된다.
철학은 물어볼 수 있는 존재자, 그리고 문제를 제기할 줄 아는 존재방식을 가진 인간에게만 고유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면 누구든지 철학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면 누구든지 의심을 가질 수 있으며, 어떤 문제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하고 또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 한다.
누구든지 물어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철학은 철학자들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물어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든지 철학활동을 영위할 수 있다. 그리하여 철학은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일상인들이 생활에 필요한 단순한 문제들에 관해서만 물어왔다면, 철학자들은 조금 더 세밀하고 전문적인 물음, 곧 자연과 인간과 신에 관한 물음들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왔던 것이 다를 뿐이다.
철학자들은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별다른 의미 없이 던져지고 있는 상식적 물음들을 논리적 과학적으로 논구하여 보다 전문적으로 체계화하면서 철학적 물음의 고유한 영역을 개척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철학자들이 묻는 전문적인 물음들만이 철학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상생활 속에서의 호기심으로부터 던져지는 물음들도 보다 철학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물음이 보다 더 철학적인가를 구별하는 것은 실제로 무의미하게 된다. 모든 물음이 철학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이와 같은 물음을 가지게 하는 것은 바로 ‘놀라움’(Staunen)이다.
인간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연과 세계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기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들에 관하여 관심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은 관심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 현상과 사회 현상에 대하여 충격을 받게 되고 경이와 놀라움을 갖게 된다.
놀라움과 경이란 바로 내가 밖으로부터 받은 ‘존재론적’ 또는 ‘의미론적 충격’이다. 사람들은 이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와 같은 충격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저녁마다 수많은 상품들에 대한 광고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품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하면 그 새로운 상품으로 인하여 나의 내면에 충격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 속에서 그 상품에 대한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생기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그 상품에 관하여 보다 더 자세하게 알기를 원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나는 그 상품의 품질과 용도 및 가격 등, 모든 것에 관하여 철저하게 알려고 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과 세계는 도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졌으며,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또한 어디로 가는지를 통 채로 알고 싶어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외부세계로부터 받은 놀라움과 충격들은 모든 물음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고 있다.
3. 철학은 생각하는 것이다
철학은 물음과 더불어 시작된다.
그러나 모든 물음들이 철학적으로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물어진 것들은 우리들의 생각들(Denken)에 의하여 다시 정리된다. 우리가 거의 날마다 내던지고 있는 물음들 가운데서 바로 대답되어진 것들을 제외하게 되면 풀려지지 않은 문제들만이 남게 된다. 우리에게는 아직 풀려지지 않은 수없이 많은 물음들이 있다.그리하여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들을 처리할 것인가를 고심하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던져진, 그리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물음들을 다시 체계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물음은 이제 우리의 생각을 통하여 보다 더 정교하게 다듬어지게 된다.
이처럼 생각하는 힘은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묻고 생각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생각의 힘을 통하여 자신이 물었던 문제들을 보다 합리적으로 처리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하여 새로 알게 된 상품이 나의 실생활에 필요한 것인지, 또는 다른 상품이 그것보다 더 나은지를 꼼꼼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우리는 지금까지 축적한 지식들을 바탕으로 어떤 새로운 것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의 힘을 통하여 어떤 새로운 것을 기준으로 하여 지금까지의 모든 지식들을 평가하거나 대체해 버릴 수도 있다.
사유는 넘어서는 것이고 전복하는 것이다(Denken heißt Uberschreiten: Ernst Bloch).
생각하는 것은 바로 기존의 것을 뒤집어엎고 넘어서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가진 이성의 힘은 생각과 사유의 지평 위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물어진 것들 가운데서 무엇이 생각해 볼만한 것들인지를 가리게 된다.
우리가 가진 생각의 힘은 모든 것에 잇대어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것에 관하여 말할 수 있고 또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은 모든 것에 관하여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관심에 따라 생각의 방향과 내용은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물음이란 것도 사실 알고 보면 어떤 특정한 관심에 의하여 유발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철학은 주관적인 또는 주체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외부적인 충격과 놀라움은 각자의 삶의 정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며, 물음의 해결 방식도 주관적인 관심과 판단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각해 볼만한 것들을 선택하는 일은 적어도 철학적 사색을 전개하려는 사람의 고유한 관심에 의하여 결정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관심들 모두가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관심들 중에서도 도저히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궁극적 관심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진리를 탐색하려는 나의 관심, 도덕적 세계를 설계하려는 나의 실천적 행위, 그리고 우리 시대를 바르게 살 수 있도록 가치관을 모색하려는 끝없는 탐구정신이 우리를 철학으로 인도하게 된다.
그리하여 탈레스는 물질적으로 풍요한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세계의 근원을 탐색하려는 관심에 우선적인 가치를 부여하였다. 또한 소크라테스의 경우에서도 그는 비판적 태도를 포기할 경우에 보장될 수도 있는 시민적 삶에 연연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삶을 통하여 최소한 철학적 태도가 무엇인가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철학은 세속적인 타협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궁극적 관심을 개진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은 도대체 어떤 물음들을 궁극적인 것으로 탐색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