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오후에 올드 마날리 계곡 건너 울창한 히말라야 삼나무 숲 속에 600년
전에 지었다는 둥그리 사원을 방문했다.
인도 전역의 힌두사원들은 모두 돌과 대리석으로 지어 졌는데 이곳의 사원은
목조 건물이다. 마침 소수민족들의 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구경꺼리가 풍성했다.
숲 속에서는 구자라트 민속춤과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다.
화려하고 독특한 민속의상을 입고 자기몸체만한 나팔을 둘러맨 악사들과
무용수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다가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는 구경하는
관객들을 하나하나 끌어들여 한 바탕 어우러져 신나게 춤추고 노는 것이 우리나라
강강술래와 노는 형태가 비슷했다. 그들과 함께 손잡고 신나게 뛰고 춤추다가 어둑해서야
숙소로 돌아오니 또 다시 한기가 들고 기운이 빠져나간다. 내일은 일어나야한다.
그렇게 기다리던 히말라야 로탕패스 트래킹 하는 날이다.
무조건 괜찮아야한다. 따뜻한 스프와 차를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들다.
5/22 아침 7시, 맘씨 좋은 호텔 매니저 아저씨가 소개 시켜준 산악 지프가 왔다.
식빵 한쪽과 짜이 몇 잔으로 아침을 떼우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히말라야로 향했다.
고도 2000m 이상 되는 아찔한 낭떨어지 돌길을 산악지프는 거의 부서지는 수준으로
2시간 이상을 올라갔다. 어찌나 길이 사납던지 머리가 차 천정에 계속 부딪쳐서
아마도 뇌세포가 수십억 개는 죽었을 거다.
해발 3000m가 가까워지자 구토증과 두통이 온다. 창을 열고 내다보는 풍경은
말문이 막혔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 필설로 형용 못 할 장엄하고 아찔한 협곡과
하늘에 맞닿은 거대한 바위에서 비현실적으로 흘러내리던 폭포줄기들,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구름속의 영봉들!
그 까마득한 산간 길을 끝도 없이 메운 지프와 사람들, 지금이 히말라야 트래킹
시즌이라 세계 각처의 여행자들이 히말라야로 다 모인 것 같았다.
지나는 길가에는 털옷과 부츠 아이젠을 임대해 주는 가판 상점들이 코스마다
늘어서 있고 셀파와 짐 싣고 올라갈 고산 말들과 야크들도 낙점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눈이 녹는 계절이라 계곡에는 빙하가 강처럼 흐르고 사람이 지나는 길은
눈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이 곳 히말라야 산간오지에도 문명의 길이 뚫려 자동차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무자비한 인간들의 발길에 신의 산 히말라야는 온통 매연과
쓰레기로 더럽혀지고 오염되고 있었다. 트레킹 코스에 도착해 내리니 지친 몸이
바로 고산증으로 무릎이 꺾였다. 해발 3500m였다.
우리나라 봄 야생화 양지꽃과 똑같이 생긴 노란 히말라야 꽃들이 산 가득 피어있었다.
눈앞이 캄캄해 지면서 심장박동이 떨어지고 속이 울렁거리면서 깨지는 듯 한 두통이 왔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았다 섰다를 반복 하면서 천천히 한발 한발 걸었다.
제 1캠프까지 약 1km를 가는데 두 시간 이상이 걸렸다.
겨우 1캠프에 도착하자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할 수없이 셀파와 고산 말을
랜트해서 기어이 4500m 마지막 목적지까지 올라가니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이미 정신도 몽롱해지고 몸은 둔탁해졌다.
로탕패스 마지막 캠프에서 만세 한번 부르고 천천히 내려오니 친구들이 난리가 났다.
모두 시작점에서 몇 시간을 떨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일 연로한? 노친네 혼자
말까지 타고 기어이 끝까지 올라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대나, 지금 생각하면
뭣 하러 그렇게까지 투지를 불태웠는지 모를 일이다.
모두들 내가 내려오길 기다리느라 아사 직전까지 가서 신경들이 있는 대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천막 스낵에서 라면을 쏘기로 했다. 얼큰하고 뜨거운 국물 맛을
기대하면서......
침을 삼키며 기다린 끝에 나온 라면이라는 게 글쎄 그냥 면을 삶았는지 볶았는지 물기라고는
한 방울도 없이 소금물에 건져낸 것처럼 소태처럼 쓰고 짜기만 하다.
밖에 걸어가는 야크라도 잡아먹고 싶을 정도로 배가 고픈데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물 한 병으로 주린 배를 채우는데 라면 요리한 녀석 엉덩이를 걷어 차 버리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숙소로 내려오니 한 밤중이다. 그래도 미리 알아둔 한국 식당에 찾아가서
김치찌개 비슷한 거 한 냄비 시켜서 모두 밥 두 그릇씩 아주 전투적으로 먹어 치우고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옆 사람 돌아 볼 여력이 내게 없었다.
미처 다 못 넘긴 음식을 마지막으로 삼키면서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래도 다시 갈꺼야, 히말라야로! ‘우리 어떡하냐! 저 언니 제정신 아니야...’
친구들의 탄식과 수군거리는 소리가 꿈속처럼 들려왔다. 정말로 내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분은 좋았다. 몸에 에느지를 마지막 한 알갱이까지 다 소진해 버리면
이상하게 정신이 환하게 충만해지는 묘한 상태를 나는 여러 번 체험하게 되었다.
적당한 휴식을 통해 몸은 다시 원상복구가 되고......
5/
오늘 일정은 쉬면서 동내 한 바퀴, 느긋하게 천천히, 게스트하우스 발코니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아래로 푸른 사과나무 숲과 위로 멀리 구름에 가려진 히말라야를
바라보는 여유로운 호사를 누리면서 몸과 마음을 릴렉스 시키다.
스치는 바람조차 향기로운 이 곳 마날리, 약간 무뚝뚝하지만 진실하고 소박한
마을 사람들, 티벳계 사람들이 많은 이곳은 모습 자체가 우리와 아주 흡사하고
음식이나 감성도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베짜는 네팔 아가씨, 어찌나 부끄러워하고 얌전하던지 사진찍기를 끝내 거부하였다.
게스트하우스 앞 첫 번째 빵집 총각이 이쁜 홍미에게 반해서 며칠째 애틋한
눈길을 보내더니 오늘 드디어 데이트 신청이 들어왔다.
여행 중 처음 있는 연애 사건이라 우리 모두 흥분했다. 옷 중에 제일 화려한 옷을 골라 입히고
그 동안 사 모은 장신구들을 다 꺼내서 가장 비싸고 좋은 걸로 치장 시켰다.
나는 자이푸르에서 산 화려한 장식이 되어 있는 낙타가죽 샌들을 꺼내서 친정 엄마?같은
심정으로 홍미 발에 신겼다. 약간 작은 감이 있었지만 신으면 늘어난다고 우기면서
샌들에 발을 맞추어서 내 보냈다. 한국에 애인이 있는 홍미는 고민스러우면서도 설래이고
호기심도 나는 모양이다, 발그레 상기된 얼굴이 어찌나 귀엽고 예쁘던지 우리들은 모두
응원하며 부러워했다.
모두 내 보내고 혼자 조용하게 차 마시며 무심하게 풍광 감상을 하고 있는데
어제 밤에 우리 옆 방에 새로 들어 온 서양 커플 아이 둘이 발코니로 나오더니
그냥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고 애무를 하고 난리가 아니다, 문화가 그러려니 이해
하는데도 왠만해야지, 으흠 으흠, 기침을 해도 소용없고 빤히 쳐다봐도 한 눈으로
나한테 윙크까지 날리면서 몰입해 있다. 아니 넓은 방 놔두고 꼭 사색하는 사람 앞에서
라이브로 그 영화를 찍어야 하냐구! 하여튼 웃기는 짬뽕들이여! 에라이! 그려, 내가졌다.
쫒기 듯 나와 동네 한 바퀴 돌면서 환전도하고 햄버거도 사 먹고 상점마다 들려 구경한다,
며 칠 됐다고 낮익은 얼굴들이 하이 산자야! 하고 인사한다. 그러면 나도 먼 뻐료! 소마!
수버딘! 나마스떼, 아저씨!하면서 가볍고 명랑하게 인사한다. 맑고 푸른 하늘아래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져 행복하게 인사하고 웃는다! 아, 여기는 천국!
데이트 나갔던 홍미가 점심시간도 못되어 돌아왔다. 모두들 어찌나 궁금했던지
그녀 입만 쳐다보고 있는데 신겨서 보냈던 내 낙타가죽 샌들은 보이지 않고 맨발이었다.
어찌된겨? ‘말도 마시요! 뭔 신발이 백 미터도 못가서 줄이 다 터져 버리고 서너 걸음 더 떼니까 마지막 발꾸락에 낀 줄까지 다 떨어집디다. 데이트고 나발이고 맨발에 쪽팔리고
발 아프고 아주 죽는 줄 알았네!, 온갖 상상을 다 하며 썼던 우리들의 홍미 연애 시나리오는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버리는 것 같았다 나의 낙타가죽 샌들과 함께.
잘 생긴 저 총각은 네팔에서 홀로 내려와서 장사를 한다고 했다. 홍미를 좋아했던 저 청년은
지금쯤 장가 갔겠지!
그런데 홍미는 마날리를 떠나오는 날까지 그 빵집 총각과 애틋하게 지내면서 같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도 틈만 나면 그 가게에서 쥬스도 사 먹고 그 집 빵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마지막
마날리를 떠나던 날,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놓지 못하던 그들은 이미 사랑이 싹터있었다.
그렇게 짧은 사랑은 기약 없는 이별로 서로 손을 흔들었지만.....
열 번째 이야기 올립니다.
늘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학우님들이 계셔서 띄엄띄엄이라도 올리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멋진 여행기.. 또한 마냥 부럽네요
감사합니다.
넘 재미있게
많이 부럽게
잘 읽고 갑니다.
이런글 읽을때마다.....
나도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설산님, 보고 싶네요.
현지인 옷이 잘 어울려요.
글도 참 재미있고.
감사합니다. 축제 때 만나요.
나도 높은데 올라가서 현기증을 느끼고 싶어지네요.^^
한 번 느껴봐! 다시는 그런 소리 안나오게ㅋㅋㅋㅋㅋ
ㅎㅎㅎㅎ 넘 재미있어요..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산에 핀 노란 양지꽃 보고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그때 노트갈피에 끼워 말린 그 꽃이 지금도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폰으로만 몇번을 봤지만, 이제서야 댓글을 씁니다. 컴으로 제대로 다시 보고 감동 적으려고 했는데...
그 힘든 고행길이라면 고행길인데, 두통에 구토...다신 경험하기 싫을지도 모르는 그 고행길을 또 가고 싶어함은 대체 어떤 느낌이시길래...
하며 궁금해 집니다. 저는 글만 읽어도 그 통증이 밀려오는듯...멀미가 나려 하는데...ㅠ.ㅠ
네팔은...인연맺은 아이가 사는 곳이라 꼭 가보고 싶은 나라이기도 하지만, 여러가지 여건이 되어주지 못해서 못가볼지도 모르는 곳이지만, 산자야님의 글로 대신 그곳의 모습을 보게되어 대리만족 했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저도 요즘은 일정 때문에 학교에 자주 못들어옵니다.
맞아요 고산증의 그 고통은 다시 경험하기 싫어요. 그러면서 또 떠나는 이 방랑벽은 제 자신도 못말립니다 :^^:
또 어떤 산이 나를 가로막을지 모르지만 넘고 달릴겁니다. 그래서 또 재미있는 이야기로 나은님 즐겁게
해 드려야지요 ㅎㅎㅎㅎㅎㅎㅎ
제가 여러차례의 인도 여행 중 가장 많이 머물렀던 곳이 고아와 함께 이 마날리입니다.
거의 살았다라고도 할 수 있는데, 산자야님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그곳의 풍광이 떠오릅니다.
우기엔 셀 수 없는 실타레같은 폭포가 걸리던 그 아름답던 산들과 파르바티계곡, 전 세계의 수많은 히피족들이 오밤중에 산속에 모여 철야 테크노파티를 벌이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좋은 글 올려주신 덕택입니다, 감사합니다.
마날리의 그 알싸하던 공기와 담담하게 친절하던 마을 사람들,
그리고 히말라야 로탕페스에서 흐르던 깊고도 영감을 주던 맑은 계곡,
아, 너무나 그리워집니다.
저는고대 하던 글 을 이제사 읽었습니다
어찌나 감동이 찐하던지 한동안 생각에 잠겼었습니다.
좋은글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이제는 끝난 여행기, 이슬비님의 격려와 응원이 큰 힘이 되었지요. 고마워요.
말탄 모습 짱입니다. 역쉬 대륙을 말달리던 기마민족의 기상이 느껴집니다.
그 말에서 어찌나 냄새가 심하던지 왠만하면 못탑니다.ㅋㅋㅋ
참 좋은 글 읽고 감동받고 갑니다. 부럽기도 합니다. 간접 여행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다시읽으며 혼자서 내가 여행을 한듯만족감에 젖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