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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회갱신성경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정의영
삼상5:1-12절) 다곤 신전의 여호와의 궤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터에 가지고 왔다가 전쟁에 패하는 바람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블레셋 사람에게는 이것보다 더 신기한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과거 애굽에 재앙(災殃)을 내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지신 능력의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포로가 되어 있으므로, 이제 블레셋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강한 족속이 없게 되었다고 착각(錯覺)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 하나님의 언약궤만 가지고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꼼짝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수중에 있는데,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어떻게 감히 블레셋을 공격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올 수 없고, 블레셋을 물리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중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블레셋과 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중 단 한 사람의 도움도 없이 블레셋의 다곤 신(神)을 치시고, 블레셋 사람들을 치셔서 결국 하나님께 굴복하게 하셨습니다.
Ⅰ.다곤 신전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 옛날, 전쟁은 *신(神)들의 전쟁(戰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전쟁 중, 상대편의 신상(神像)을 빼앗아 오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긴 쪽에서는 가져 온 적군(敵軍)의 신상(神像)을 빼앗아 오면, 이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긴 쪽에서는 가져 온 적군(敵軍)의 신상(神像)을 자기편 신전(神殿)에 두었습니다. 신(神)을 포로로 잡았기 때문에 다시는 대항할 힘이 없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빼앗은 하나님의 궤(軌)를 아스돗의 다곤 신전(神殿)으로 가져가 다곤의 곁에 두었습니다. 5:1-2절)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브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형상(形像)이나 짐승의 형상(形像)으로 된 우상(偶像)을 섬기지만,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만 그런 형상(形像)이 없었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무로 궤(軌)를 만들고, 그 궤(軌)를 금으로 입히게 하셨습니다. 이 궤(軌)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그 뚜껑에는 날개 달린 천사가 마주보고 있는 아주 특이한 궤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궤(軌)로 하나님을 대신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리실 때, 언약궤 뚜껑에 있는 천사들 사이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천사는 죄인들의 접근을 막는 거룩한 천사인데, 그룹 천사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보좌인 셈입니다. 다른 왕(王)들은 높은 자리를 만든 보좌위에서 백성들을 다스리지만, 하나님은 네모난 궤(軌)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셨던 것입니다. 이 궤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①궤 안에 들어있는 모세의 두 돌비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있었고, 만나 항아리도 있었지만, 다 없어지고, 십계명이 기록된 돌비(石碑)만 남아 있었습니다.
모세의 돌비(石碑)는 하나님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는 약속(約束)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궤를*법궤(法櫃)*라고도 하고 *언약궤*라고도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만 하면, 절대로 하나님의 축복(祝福)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의 지위(地位)를 잃지도 않는다는 약속인 셈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궤는 ②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보통 왕(王)의 보좌는 무겁고 커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궤(軌)는 움직일 수 있어서 하나님이 어느 한 장소에 고정되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함께 하셔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축복(祝福)을 나타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진격(進擊)할 때, 이 언약궤를 메고 진격(進擊)했고, 그때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 성(城)이 무너졌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진격(進擊)하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인도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언약궤는 너무나도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안을 들여다보거나, 손으로 만지면,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귀중한 하나님의 언약궤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두 가지 의미로 보일 수 있는데 ①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신 것과 ②이방인이 뛰어난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없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지고, 하나님의 궤(軌)를 빼앗긴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실 자격(資格)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신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냥 떠나신 것이 아니라, 원수(怨讐)인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가셨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축복(祝福)의 기회였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겸손했더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축복(祝福)이 그들에게 주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결코 겸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겼다고 착각(錯覺)했고, 빼앗은 하나님의 궤(軌)를 전리품(戰利品)처럼 자기들의 다곤 신전(神殿)안에 두었습니다. 이것은 다곤 신(神)이 여호와 하나님을 포로로 잡았다는 뜻입니다.
다곤 신(神)이란 물고기 신(神)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블레셋 사람들은 해양(海洋)민족이었고, 다곤이란 말도 물고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다곤 신(神)이 곧 물고기 신(神)일 것이라고 추측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손과 발이 없으시고, 도와줄 이스라엘 백성도 아무도 없으셨지만, 하나님은 혼자 블레셋 신(神)과 그 백성들과 싸우셨습니다. 만약 블레셋 사람들이 출애굽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했더라면, 감히 다곤 신전(神殿)에 여호와의 궤(軌)를 넣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패배(敗北)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罪)를 징계(懲戒)하기 위해서인데, 그들은 자기들이 잘나서 이긴 줄 알고, 하나님을 자신들의 인질(人質)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당장 블레셋에 큰 재앙(災殃)을 내리실 수도 있었지만, 블레셋 사람들이 깨닫도록 조금씩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첫 번째, 다곤 신상(神像)을 쓰러뜨려 얼굴이 땅에 닿게 하셨습니다. 3절)아스돗 사람들이 이튼 날 일찍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이것은 하나님께는 너무나 간단한 방법입니다. 말씀 한 마디만 하시면, 신상(神像)이 쓰러질 수 있고, 한 천사가 와서 다곤 신상(神像)을 쓰러뜨렸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감히 하나님 앞에 생명(生命)도 없는 우상(偶像)이 고개를 쳐들고 있지 말라는 뜻입니다. 4절)그 이튼 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 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신상(神像)이 하나님 앞에서 쓰러져 얼굴을 땅에 대고 있는 것을 보고서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신상(神像)을 일으켜 다시 세워 놓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다곤 신상(神像)은 아예 완전히 분해(分解)되어 있었습니다. 즉 머리와 두 손은 꿇어져 문지방에 있고, 몸뚱이는 그 자리에 남아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아예 다곤 신상(神像)의 머리와 손목을 잘라서 옮겨놓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하나님이 하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신(神)의 머리와 두 손이 닿은 문지방을 신성(神性)시하고, 그 후로 문지방을 밟지도 않고 뛰어 넘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그들의 신(神)의 머리가 그곳까지 옮겨졌는지를 생각하지도 않고, 문지방만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偶像崇拜)자의 심리(心理)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사람을 파리채로 한대 때리셨다면, 왜 맞았는지?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파리채를 숭배(崇拜)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다곤의 신상(神像)이 넘어졌습니까? 하나님의 천사가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아마 살짝 건드리기만 했는데, 넘어지면서 머리가 떨어져 나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포로로 붙들린 것 같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으시고, 그들의 신(神) 다곤을 넘어뜨리기도, 또 머리와 손목을 자르기도 하셨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할 사람이 없을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배짱을 부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사역(事役)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오히려 더 잘하실 수 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의 다곤 신(神)을 위대하고,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나, 다곤 신(神)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곤 신(神)을 마음대로 요리(料理)하셨습니다.
즉 얼굴을 땅에 처박고 쓰러지게 하셨고, 머리와 손목을 잘라서 문지방에 갖다 놓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으십니다.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예배를 더럽힘으로써 하나님을 잃어버렸을 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잘 잃어버립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의 언약궤와 같은 곳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강대상(講臺床)입니다. 이 위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곧 하나님이 *생명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강대상(講臺床)이 너무나 오염되어 마치 언약궤를 블레셋에 빼앗긴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지 못하고, 패배하게 되고, 세상 사람들은 재앙(災殃)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Ⅱ.블레셋에 임한 하나님의 재앙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실 때는 무든 사람들이 축복(祝福)을 받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하지 못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무서운 재앙(災殃)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擇)하시고, 또 제사장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진노(震怒)를 축복(祝福)으로 바꾸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진노(震怒)하셔서 열 가지 재앙(災殃)을 내리셨습니다. 나중에는 모든 장자(長子)를 다 죽이는 재앙(災殃)까지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런 재앙(災殃)이 내리지 않았고, 오히려 홍해가 갈라지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들을 인도하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스라엘 자손들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신앙이 없는 불신자(不信者)들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이 하나님의 궤(軌)를 자기들에게 가져간 것입니다. 6절)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하나님의 법궤가 아스돗에 있게 되면서 그곳 사람들에게 독종(毒腫)의 재앙(災殃)이 임했습니다. 이 재앙(災殃)은 피부병(皮膚病)이라고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애굽 사람들에게 생긴 독종(毒腫)이 피부병(皮膚病)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아스돗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軌)가 들어온 후부터 괴질(怪疾)이 퍼졌으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진노(震怒)케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올바로 모실 수 있는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 그중에서도 제사장이라는 것을 무식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이스라엘 제사장을 데려 오는 방법이 가장 좋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미 출애굽 할 때, 하나님의 재앙(災殃)은 괴질(怪疾)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재앙(災殃)은 열 가지, 아니 수백 가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軌)를 돌려보내기가 아까워 다른 도시 인 가드로 옮겼습니다.
9절)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란을 그 성읍에 더 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가드 사람들은 아스돗 사람들이 보내는 여호와의 궤(軌)를 덥석 받았습니다. 그것이 일종의 호기심이었습니다. 즉 *도대체 하나님의 궤(軌)라고 여기저기서 말들을 하는데, 그것이 어떤 것일까?* 궁금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가드 사람들에게 아스돗 보다 더 큰 재앙(災殃)을 내렸습니다.
이런 일 후에도 블레셋 사람들은 궤(軌)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지 않고, 다시 에그론으로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에그론 사람들은 궤(軌)를 보자마자 자기들을 *다 죽이려고 한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축복(祝福)인지를 몰랐습니다.
오늘날 믿지 않는 식구들 중, 한 사람이라도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축복(祝福)이 되는지를 모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큰 복(福)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핍박하고, 이제 기독인 3/1국회와 정부까지도 일제 강정기 때 만든 악법(惡法)을 그대로 두어 막가파 토공의 성과금 탐심으로 공동체를 흩어 실족시키고, 가난한 개척 교회들을 없애고 있으니, 대형 참사와 외세, 탄핵, 정치, 경제, 문화 등 온 나라가 계속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진노(震怒)와 징계로 인한 재앙(災殃)입니다. 국회가 악법을 고치지 않으면 더 큰 환란이 있을 것입니다.
Ⅲ.하나님의 궤를 돌려보내기로 결정 11-12절)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란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결국 블레셋 사람들은 많은 희생을 치른 후에야 자기들은 이스라엘 하나님을 감당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의 궤(軌)를 보내지 않고, 자기들이 갖고 있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블레셋에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감당할 수 없고, 어느 도시도 하나님의 법궤를 모실 수가 없습니다. 이제 블레셋 사람들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①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하심 여호와 하나님은 다곤 신전(神殿)에 가둘 수 없었고, 어떤 성(城)에도 가둘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신(神)이 여호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②이스라엘 백성들의 특별함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을 며칠도 감당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법궤가 머무는 곳마다 괴질(怪疾)이 퍼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법궤를 수백 년간 모시고도 죽지 않았으니, 얼마나 특별한 사람들입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양심에 티끌만한 죄가 있어도 견디지 못해 다 토(吐)해내지만, 세상 사람들은 죄를 먹고 마시면서도 잘 살아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누군가가 그들의 죄를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목사나 선교사 한 명 없이도 모든 우상(偶像)을 부수고, 모든 악(惡)한 자들을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비굴(卑屈)하게 굴복하는 것보다는 말씀으로 설득되고, 변화되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믿게 하실 수 있지만, 억지로 하기 보다는 자발적인 깨달음과 순종을 더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면서 복음(福音)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십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길 순 있었지만, 하나님의 궤는 이길 수 없었습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부족한 것을 보고, 하나님을 업신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결코 어느 누구로부터도 업신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戰爭)에서 패배(敗北)한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징계(懲戒)하셨기 때문이었지, 결코 블레셋 사람들이 잘해서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부모가 자녀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매를 드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다른 민족에게 매를 주셔서 이스라엘을 때리게 하십니다. 그렇다 해서 막대기로 사용한 민족이 절대로 잘했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교만(驕慢)할 때, 곧바로 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전쟁(戰爭)에서 패배(敗北)했지만,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전쟁(戰爭)에는 이겼지만, 하나님의 징계(懲戒)로 많은 사람들이 괴질(怪疾)로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위 사람들을 돕는 방법은 그들이 나쁘게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懲戒)의 도구(道具)로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불신자로 하여금 교회를 욕할 핑계를 주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저주(咀呪)하면, 그들은 멸망(滅亡)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악(惡)하고 강(强)한자라도 마치 장난감 인형처럼 그들을 넘어지게 하거나, 부서지게 하실 수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신성(神性)시하던 다곤 우상(偶像)이 하나님 앞에서는 생명이 없는 나무토막에 불과 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다곤이 넘어지고, 부서지는 것을 보면서도 우상(偶像)의 허무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의 *왕 같은 제사장 벧전2:9절)*으로 삼으셨습니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바로의 재앙(災殃)을 물러가게 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기도와 예배를 통하여 이 땅위에 재앙(災殃)이 오히려 축복(祝福)으로 변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제사장*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룩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쉽지 않기에 이스라엘 제사장들이 타락(墮落)했을 때, 이스라엘도 망(亡)하고 이방인 블레셋도 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잠시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언제나 거룩한 제사장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은혜를 잘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없이도 얼마든지 우상(偶像)을 무너지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동참(同參)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사용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祝福)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주어진 직분(職分)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천국(天國)의 가장 귀한 상급(賞給)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讀者)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事役)에 쓰임 받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을 할 때, 겸손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고전15:58절)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찬송가 240장 *주가 맡긴 모든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