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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8일 화요일
[(홍)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승에 따르면, 루카 복음사가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현재는 터키의 안타키아) 출신이다. 바오로 사도의 전교 여행에 함께하였던 그는 주님의 복음과 복음의 선포 상황을 기록하였다. 곧 루카 복음과 사도행전이다. 루카는 다른 복음사가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부분을 성모 마리아와 함께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성모 마리아를 최초로 그린 화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그의 직업이 의사였다는 전승이 있는데, 예수님의 치유의 기적들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루카만 나와 함께 있다며,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해를 많이 입혔으니 그대도 조심하라고 이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전하게 하신다(복음).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4,10-17ㄴ 사랑하는 그대여, 10 데마스는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가고, 크레스켄스는 갈라티아로, 티토는 달마티아로 갔습니다. 11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마르코는 내 직무에 요긴한 사람이니 함께 데리고 오십시오. 12 티키코스는 내가 에페소로 보냈습니다. 13 올 때, 내가 트로아스에 있는 카르포스의 집에 두고 온 외투와 책들, 특히 양피지 책들을 가져오십시오. 14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행실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입니다. 15 그대도 그를 조심하십시오. 그는 우리의 말에 몹시 반대하였습니다. 16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9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걱정과 격려, 희망이 뒤섞여 있습니다.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다는 예수님의 표현에는 복음의 가치를 모르는 사악한 세상에 아직 덜 익은 제자들을 보내는 예수님의 걱정 어린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는 말씀은, 행여 선교의 여정에서 내가 지닌 여유로움이나, 내 인맥의 편안함으로 인해 복음 선포의 간절함이나 절박함을 잃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기쁘게 맞이하는 이들에게 평화를 약속해 주시고, 제자들이 일에 대한 품삯을 정당하게 받도록 격려하십니다. 그들에게 병자의 치유와 복음의 기쁨이 선포될 것이라는 희망의 격려도 잊지 않으십니다. 복음 선포의 열정을 끝까지 잃지 않은 바오로 사도의 편지에도 이런 예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인간적인 부탁과 더불어, 선교를 방해하고 음해한 이들에 대한 인간적인 속상함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라는 고백은, 그 모든 인간적인 실망과 좌절에도 복음을 전하는 기쁨이 주님께서 함께 계심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고통이 복음 선포를 완수하는 희생의 산 제물이 된다는 확신에 있음을 담대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용감하게 전하고 있습니까? 내 작은 희생과 자선, 이웃을 향한 미소와 손길까지도 신앙인의 향기를 내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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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오지중의 오지 도착하려면 비행기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언제나 수하물이 제대로 인수되기를 간절히 기도해야하는 나라로 선교를 떠났던 한 형제가 휴가차 귀국했었습니다. 공항 입국장을 걸어 나오는 그의 모습을 보고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불과 일 년 반전의 그 당당하다 못해 풍성했던 풍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바짝 마르고 노쇠한 중늙은이가 한명 꾸부정하게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일 년 반 만에 체중이 30킬로나 빠졌답니다. 그러면서 장난삼아 돈 안들이고 자연 다이어트에 성공했으니 꽤 돈 번거라며 자랑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과도비만으로 고생하시는 분들 선교지로 초대하겠답니다. 너무 갑작스레 왜소해지고 노쇠해져 적응이 잘 안 되는 형제를 바라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그래 해외선교사들이야말로 이 시대 순교자들이로구나!’
그와 함께 여기저기 같이 다니면서 전해들은 더위와의 싸움은 정말이지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항상 더우니 잠자는 것이 그렇게 힘들더랍니다. 그나마 쪽잠이라도 자기 위해서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서둘러야 된답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잔뜩 뜨거워진 매트리스에 미리 물을 한 사발 부어놓는답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열기가 사라져 머리를 눕힐 만 하다네요. 자다가 몇 번이고 일어나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해야만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답니다.
철저하게도 문명세계와 단절된 곳, 흙바닥에 스레트 지붕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곳,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국지전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다시 떠나는 형제의 환한 얼굴이 참으로 고맙고 대견스러웠습니다.
초대 교회 선교사였던 바오로 사도와 루카 복음사가의 삶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티모테오 2서에 그들이 복음 선포 과정에서 겪은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었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굳게 믿었던 동료들로부터의 배신과 따돌림으로 인한 상처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 와중에 주님, 그리고 루카 복음사가만이 끝까지 등을 돌리지 않고 큰 힘이 되어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마스는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가고, 크레스켄스는 갈라티아로, 티토는 달마티아로 갔습니다.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티모테오 2서 4장 10~17절 참조)
루카복음사가는 이방계 그리스도인이었으며 상당한 학식을 갖추고 있었던 인물로 추정됩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예수 그리스도 육화 사건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각적 효과를 활용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그는 여러 상황들을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함을 통해 독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51년경에 있었던 바오로 사도의 제2차 전도여행 때 그를 수행하였으며, 57년까지 필리피 교회 공동체에 머물면서 사목활동을 수행했고, 바오로 사도의 제3차 전도여행 때에도 수행했습니다. 그는 바오로 사도가 투옥 중이던 61~63년까지 로마에 머물면서 큰 의지요 힘이 되어 드렸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세 번째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로 추정됩니다. 그는 사도행전을 통해 초대교회 공동체 생활상과 복음전파 과정을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그가 집필한 루카 복음은 사랑과 자비의 복음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를 따뜻한 시선으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인간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죄 많은 여인 이야기, 돌아온 탕자의 비유, 우도 직천당 사건 등입니다.
고통 받는 환우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던 사람들을 향한 연민의 마음으로 가득했던 루카 복음사가의 복음서는 2천년 세월이 지나온 오늘 우리에게도 한없는 하느님의 자비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지녔던 고통 받는 한 인간을 향한 한없는 측은지심과 따뜻한 동료애가 오늘 이 시대 다시 한 번 메아리쳐지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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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게노 이펙트
유명 연예인이 죽으면 그 영향이 주위에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다고 합니다. 이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여인을 잃고 고뇌하다가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마는 주인공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 ‘베르테르 효과’라고도 합니다. 당시 젊음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이 따라 죽었기 때문입니다. 또는 ‘모방 자살’이란 말을 쓰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최진실씨가 자살하고 한 달 사이 우리나라에서 평균보다 600명가량이나 더 그 수가 늘었다고 합니다. 마를린 먼로가 죽었을 때는 313명이 그녀의 뒤를 따랐습니다.
학자들은 유명 연예인, 특별이 배우일 경우 그 사람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커지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대신 충족시켜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화면에 비춰지는 그 사람의 모습을 그 사람 자신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배우의 역할과 그 배우의 사생활은 아주 다를 수도 있는 데 말입니다. 어쨌든 그런 꾸며진 모습의 배우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세상의 힘듦을 위로받고 있는데 그가 자살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나마 그 사람에게서 힘을 얻던 사람들은 “저런 사람도 자살하는데, 나는?”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거의 33분당 한 명꼴이라고 합니다. 주위엔 아무도 없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젊은 베르테르도 아마 자신이 사랑했던 로테라는 여자로부터 자신의 사랑이 거절당하자 더 이상 살아갈 힘을 찾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어쩌면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자리는 내가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인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내가 안정감을 가지고 살아가다가 언젠가는 발 디딜 자리가 하나도 없음을 느끼고는 허공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고통 속에 버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와의 고통은 자녀를 낳는 것에서 시작하고 남편으로부터도 지배받는 것입니다. 지배받는다는 것은 영향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이제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얻고자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얻고자하고 자녀로부터도 만족감을 얻고 싶어 합니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는 우울증에 걸리고 맙니다. 그러나 내가 그 사람들로부터 힘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지배당하게 됨을 알아야합니다. 내가 세상 누구로부터 힘을 얻어서 살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긴 이유가 바로 죄 때문인 것입니다. 남편과 자녀의 사랑을 희망하게 되는 것이 곧 죄에 대한 벌인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을 통해 행복해지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상대를 이용하는 것인데, 아무리 이용해도 나를 채워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남자가 땅을 일구어도 소출을 제대로 내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사랑해서, 내가 행복해서 그 행복을 나누어주고 싶어 사람을 만나야지 상대를 통해 내가 만족하려고 만나면 반드시 그 사람들에게 지배를 받게 되고 그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면 커다란 절망감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게 됩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도 모두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것을 한탄합니다.
“데마스는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가고, 크레스켄스는 갈라티아로, 티토는 달마티아로 갔습니다. ...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이는 우리 믿는 모든 이들의 운명입니다. 언젠가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나를 모른다고 할 날이 올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믿어왔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자신에 대해 주먹을 들 때 우리가 어떤 느낌을 받을 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압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모든 이들로부터 버려질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아버지가 계시니 혼자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발판이 아버지인 것입니다. 당신의 믿음이 아버지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의 주님께 의지하는 사람이라야 모두가 나를 떠난다고 하더라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물론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따르던 사람들이 다 도망가 버리면 매우 가슴이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버틸 수 있으면 그 사람들이 이젠 떠나지 않는 나의 가족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라도 배신을 당해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어야합니다. 그 힘이란 바로 홀로 주님 안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능력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소에 기도로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는 법을 터득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루카 10,1-9(16.10.18)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루카 10,2)
St. Luke, Evangelist
♣ 모두를 바쳐 충실히 선포하는 복음 ♣
루카는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난 그리스인 의사였습니다(콜로4,14). 그는 스승인 사도 바오로의 전교여행에 동행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바오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는 물론 데마스가 현세를 사랑하여 바오로에게서 떠나가고, 알렉산드로스가 바오로에게 해를 입히고, 첫 변론 때에 모두가 바오로를 저버렸음에도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2티모 4,11).
루카는 이렇듯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 바오로를 수행하였고, 어려움을 겪는 바오로 곁에 머물렀습니다. 복음이 선포되도록 어떤 상황에서든 복음을 선포하는 바오로 사도와 함께한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한 개인의 힘만으로 선포되는 것이 아닙니다. 임마누엘이신 하느님의 사랑은 삶과 고통을 ‘함께함으로써’ 전해지는 것이지요.
루카는 사도 바오로를 동행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오로의 제2차 전교여행에 수행하였다가 57년까지 필리피에 머물면서 그곳의 공동체를 지도하였습니다. 67년 바오로가 순교하자 그리스로 건너가서 아카이아에서 전교합니다. 그렇게 그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로 모든 교회에서 칭송을 받던”(2코린 8,18)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도 성 루카 복음사가처럼 나 자신이나 내가 지닌 재물과 지위나 능력으로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정의와 선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칭송받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은 나를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전하는 것이고 주님의 평화와 선을 나누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선포란 예수님의 말씀처럼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며, 평화를 빌어주는”(루카 10,4-5)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지니지 않는 절대 가난의 상태, 곧 ‘소유 없이’(sine proprio) 오직 하느님만을 소유할 때 주시는 주님의 평화와 기쁨을 선포하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루카는 언제 어디서든 말과 행동, 기록 등 모든 방법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고 주님을 전하려고 고난을 감수했습니다. 파견된 이는 “이리떼 가운데 보내지는 양들처럼”(10,3) 주님의 일을 위해 불안정과 불확실한 미래에 보내집니다. 복음선포의 길은 그런 가운데서 고통과 박해와 위협을 뚫고 가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한편 루카 복음사가는 자신이 보고, 듣고, 체험했던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으로 전해주었습니다. 구원의 역사, 사랑의 역사의 체험을 생생하게 전해줌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고, 기억한 것을 현재화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또한 루카는 복음서를 통해 순례하는 예수그리스도, 가난한 이를 특히 사랑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을 전해줌으로써 그런 길을 가도록 촉구합니다. 우리도 루카 복음사가를 본받아 주님께 철저히 의지하며, 주님의 일에 집중하여 어떤 고통과 박해가 닥쳐온다 하여도 헌신적으로 가난한 이를 섬기고 복음을 선포하는 주님 포도밭의 일꾼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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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사가 성 루카(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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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인 성 루카(Lucas, 또는 루가)는 에우세비우스(Eusebius)와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에 따르면 안티오키아(Antiochia) 출신의 그리스인 의사였고(골로 4,14), 51년경에 있었던 사도 바오로(Paulus)의 제2차 전교여행 때 그를 수행하였으며, 57년까지 필리피(Philippi)에 머물면서 그곳의 공동체를 지도하였고, 바오로의 제3차 전교여행 때에도 수행한 듯 보인다. 또한 그는 바오로가 수감 중이던 61-63년까지 로마(Roma)에 있었으며, 재차 투옥되었을 때에도 함께 있었다.
St Luke Painting the Virgin and Child-동정녀와 아기를 그리는 성루카
66년 바오로의 서거 때부터 그는 그리스로 건너간 듯 보인다. 믿을만한 전설에 의하면 그는 예루살렘에 계시던 마리아를 뵈올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마리아의 초상화를 여러 개 만들어 섬겼다고 한다. 그가 언제 어디서 복음서를 기술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아마도 70-90년 사이에 그리스에서 기록한 듯 하며, 사도행전은 35년부터 63년까지의 교회 성장기를 서술한 것이다. 그는 84세의 일기로 보에시아에서 운명한 듯하지만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는 화가와 의사의 수호성인이며 문장은 소이다.
*자료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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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오로의 2차,3차 선교 여정에 함께 했으며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술한 그리스인 의사
성 루카 님이시여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읽을 때마다 성령의 빛이 저희를 이끌어 주시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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