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희열의 생활음악 프로젝트 두 번째 트랙 ‘아주 사적인 밤’이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NnjqRhGSKrU
국내에도 어느 정도 알려진 Ryuichi Sakamoto의 ‘Aqua’를 표절했다는 논란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s5oxzWUEHo
cf. 류이치 사카모토(1952-) : 일본의 작곡가/피아니스트/음악프로듀서. 1987년 영화 <마지막 황제> OST를 (데이빗 번, 콩 수와 함께) 맡아 골든글로브&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했다.
이에 대해 유희열의 소속사에서 공식입장을 전했다. 골자만 뽑아보면
"'음악적인 분석 과정에서 볼 때, 멜로디와 코드 진행이 표절이라는 범주에 부합되지 않는다’라는 점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신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님에게 감사와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류이치 사카모토 측에서도 입장문을 발표했다. 핵심은
“유사성은 있지만 ‘Aqua’ 보호를 위한 법적 조치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나의 악곡에 대한 그의 큰 존경심을 알 수 있다.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 거기에 독창성을 5-10% 정도 가미한다면 그것은 훌륭하고 감사한 일이다”
두 곡을 번갈아 들어보니
초반부가 정말 흡사하다. 심지어 마디로 떼어 살펴본 5음절은 정확히 일치한다. 음악에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표절 시비가 일어날 만하다. 그간 부드럽고 자상한 이미지로 다가왔던 유희열이라 일반이 느끼는 씁쓸함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cf. 표절이란? 타인의 저작물을 자신의 것처럼 공표하는 행위. 표절로 인해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하게 되면 형법상 ‘저작권 침해’의 범법 행위가 되기도 한다.
음악 분야에서의 표절 논란은 왕왕 있어왔다.
이하는 표절로 확인된 사례들. 참고로 공연윤리위원회의 기준에 의하면, 8마디 이상이 일치하면 표절로 본다고 한다.
cf. (악보의) 마디란? 세로줄에 의해 구분되는 최소 단위로서의 동기를 말한다. 한 마디 안에는 주어진 박자만큼의 음표가 들어가게 된다. 글에 비유하자면 띄어쓰기로 구분되는 한 덩어리의 단어라고 보면 된다.
* 음악 분야의 표절 논란
홍수철 ‘보고싶다 친구야’
1991년 발표한 노래. 나가부치 쯔요시의 히트곡 ‘톤보(とんぼ)’ 통으로 베꼈다. 홍수철은 가요계에서 퇴출당했다.
김민종 ‘귀천도애’
1996년 영화 '귀천도'의 OST 겸 정규 3집 타이틀곡. 일본 그룹 TUBE의 ‘SUMMER DREAM’을 표절. 김민종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가요계를 잠정 은퇴했다.
드라마 <마지막 승부> OST ‘마지막 승부’
테라다 케이코의 Paradise Wind라는 곡을 완전히 베꼈다. 이 때문에 드라마 방영 중간에 주제곡을 바꾸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룰라 ‘천상유애’
1995년 3집 타이틀. 닌자(忍者)의 ‘오마쓰리 닌자’를 거의 베낀 수준이라서 충격이 컸다. 리더 이상민 자해, 김지현 탈퇴 등 내분의 도화선이 되었다.
민해경 ‘내 인생을 찾아서’
정규 6집 타이틀곡. 혼다 미나코의 ‘살의의 바캉스’를 베꼈다는 이유로 금지곡 판정을 받았다.
변진섭 ‘로라’
작곡가는 윤상. 1993년 공륜에서 사이토 유키의 '정열 情熱'을 표절하였다고 판정했다.
이상은 ‘사랑할거야’
1989년 2집 타이틀곡. 쿠와타 케이스케의 ‘Just a Man in Love’와 전체적인 곡 구조와 코드진행이 같았다고 한다. 이상은이 방송활동을 접고 유학을 떠났다.
FT아일랜드 ‘사랑앓이’
표절 의혹 이후 저작권자가 요시마타 료로 변경되었다.
MC몽 ‘너에게 쓰는 편지’
그룹 더더의 ‘It's You’를 표절. 현재까지는 법원 판결로 표절이 인정된 마지막 사례다.
표절 사례의 대부분이 일본 노래를 베낀 걸 보면 한국과 일본의 음악적 정서가 그렇게나 비슷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원작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표절은 음악 외의 분야에서도 많이 있었다. 유명인들이 학위를 따기 위해 발표했던 논문부터 음악, 영화, 소설, 시 등까지 창작 활동이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장르에서 표절 시비가 있었다.
* 소설 분야의 표절 논란 예('표절 판정’을 키워드로 나무 위키 참조)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키오, 김후란 옮김, 『金閣寺, 憂國, 연회는 끝나고』, P.233.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 신경숙, 『오래전 집을 떠날 때』, P.240.
* 시 분야의 표절 논란 예
정다혜 ‘빠져나간 자리’
설거지하다 그릇 속으로 그릇이 끼었다
세제를 넣고 부드럽게 달래 봐도
서로가 서로를 놓지 않는다
움직일 틈새도 없이 저리 오래 껴안고 있다니
나는 저 팽팽함이 두려워진다
꼭 낀 사기그릇 한참 만지작거리며 길을 찾다
하나를 살리기 위해 하나를 버린다
이것들 제 몸 부서질 줄 알고도
꼭꼭 끼어 있었단 말인가, 깨어져
한 그릇이 한 그릇에서 빠져나간 그 자리
그릇의 피가 흥건해진다
내가 살기 위해 너를 부셔내야 했던
어미의 옹이 진 자궁이 그날처럼 핏빛이다
내게서 빠져나간 것이
나를 할퀴고 있다
이성이 ‘어떤 사랑에 대하여’ - 2008 영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설거지를 하다 그릇끼리 끼었다
하나가 등 뒤에서 껴안은 상태인데
흔들어도 보고 세제를 발라 살살 달래 봐도
도대체 떨어지지 않는다
오롯한 집중, 자세히 보니
신기할 정도로 꽉 붙어버렸다
서로 다른 그릇이 이렇게 부둥켜안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서로의 몸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을 게다
오랫동안 서로를 찾았을 것이다
싱크대 모서리에 깨지지 않을 만큼 탁탁 쳐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게 포개지는
불안조차 더 큰 결합으로 만들어버리는
숨찬 저들의 포옹
더 이상 그릇 구실을 못하게 된
결사적 포옹이 눈부시다
꼭 낀 유리그릇 한참 만지작거리다가
옆에 그대로 놔둔다
때로는 사랑만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다음날인가, 둘은 저절로 떨어졌다)
대개의 경우
그저 그런 사람에 의한, 그저 그런 창작물에 대한 표절은 딱히 문제될 게 없었다. 무관심 속에 공표된 창작물은 용도가 끝난 폐기물처럼 방치되는 예가 많았고, 원작자는 자신의 창작물이 베껴지는지 알 수도 없었으며, 표절을 발견했다 해도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할 바엔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논란은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니거나, 혹은 그저 그런 창작물이 아닌 때에 주로 발생한다.
금번 ‘아쿠아’/‘아주 사적인 밤’의 예처럼
지명도 있는 인물이, 완성도 있는 창작물인 경우엔
높은 확률로 논란이 발생하게 된다.
(다행이 ‘아주 사적인 밤’ 논란은 당사자 간 빠른 인정과 쿨한 양해로 잘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창작물은 영감 혹은 공부의 산물이다.
천재의 경우엔 순간의 영감만으로 걸출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오랜 시간 갈고닦은 공부의 결과로 나오는 것이 창작물이다. 공부를 하다보면 창작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타인(작품)에게 영향을 받는다. 공부가 길어지고 깊어지면 타인에게 동화되기도 한다. 따라서 오랜 공부에 의한 영향&동화가 창작물에 스며드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창작자의 책무 중엔 ‘공표 전 각별한 주의’가 포함된다. 영원히 남의 것으로 무언가를 이룰 의도가 없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