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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0일(화) 고린도전서 11:17~34 “올바른 성만찬”
오늘은 본문 고린도전서 11:17~34 말씀을 중심으로 ‘올바른 성만찬’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고린도 교회 내에 ‘주의 만찬’을 먹을 때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책망합니다. 자기 만찬을 먼저 갖다 먹어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배부른 경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성만찬’을 위해서 성도들이 교회에 모이는데, 교회에 모이는 것은 단순히 예배당에 모이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교회로 모이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교회에 모이는 일과 서로 분쟁하는 일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에서 다툼과 분쟁이 있는 것은 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성찬은 지금처럼 예식화되지 않고, 교회에 모여 식사하는 일 자체를 성찬으로 기념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부자들이 음식을 따로 가져와 자기들끼리 먹는 일이 생겼는데, 이는 가난한 성도들에게 수치심을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일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부자들이 따로 모여 식사하는 것을 결코 칭찬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머리되신 교회의 하나됨을 깨뜨리는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 ‘주의 만찬’을 나누지만, 먹고 마시는 것이 교회에 모이는 본래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올바른 성만찬은 무엇입니까? 성만찬에 대해서 특히 오늘 본문 23~26절에 설명해 주고 있는데요.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유월절 식사를 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떡을 제자들에게 나누면서 24절에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식사를 하신 후 다시 잔을 나눠주면서 25절에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며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성만찬이야기를 전하면서 마지막에 덧붙입니다. 26절에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찬은 우리에게 무한한 유익을 주는 예식입니다. 성찬은 우리에게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은혜를 더 잘 알도록 인도합니다. 그래서 성도로 하여금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 십자가의 능력을 깨닫게 하고,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삶의 은총을 누리게 하는 예식입니다. 성찬의 목적은 첫째로, 우리 성도들로 하여금 죄용서의 은총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떡을 떼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놓는 것입니다. 즉 성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하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만찬에 참여할 때마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고 또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원인이 된 우리의 죄, 나의 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로 나의 죄를 고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살을 찢기신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돌아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정결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둘째 성찬의 목적은 주님과 새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25절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성경에서 ‘새 언약’이라는 말은 대표적으로 예레미야 31장 31-33절에 나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옛 언약은 십계명 돌비에 써서 기록한 말씀이지만, 새 언약이란 성도들의 마음 속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한 것입니다. 옛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적인 행위를 규제하는 율법이지만, 새 언약은 주의 자녀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사랑에 의해 움직이는 역동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항상 주님의 말씀을 통한 은혜로 인해 움직이는 삶을 살아갑니다. 성도는 언제나 기쁨과 자원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도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하게 됩니다. 셋째로 성찬의 목적은 이 성찬을 통해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26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주님의 성만찬을 행하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포함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단순한 죽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죽음의 목적’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죽음의 목적은 우리를 죄 가운데서 살리시며, 그 분과의 새 언약을 맺음으로 새로운 삶의 동기로 살아가도록 함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성찬을 통해서 그 분이 죽으셨을 뿐 아니라 또한 부활하셨고, 다시 오실 것을 확신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성찬예식에 참여할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의 목적을 살펴보아야 하고, 우리의 믿음의 삶의 동기를 점검해야 하며, 또한 다시 오실 주님을 온전히 맞을 준비가 되었는지를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죽으심을 성찬식을 통해서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해서 기념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그의 몸의 실체를 볼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 땅의 성찬식처럼 주님의 몸의 상징을 기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 대신 그 때는 성만찬 대신에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배설될 것입니다(계19:7-8). 그런 의미에서 성만찬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주의 죽으심에 대한 기념인 동시에 미래의 영원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대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주님의 만찬은 복음의 영광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주며, 동시에 복음의 영광을 아직 모르는 영혼들에게 이를 전파하라는 의욕과 다짐을 새롭게 불어 넣어주는 예식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만찬은 주님이 만드신 희생의 제사요, 은혜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는 중에 주님께 나아가야 하고, 주님은 이 성만찬을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성만찬을 통해서 우리의 가슴 속에 나를 구원해주심에 대한 감사가 넘쳐나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부활케 하시는 능력이 성찬식을 통해서 새롭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만찬을 할 때마다 이런 은혜가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성찬식을 통해서 주님께 회개하는 마음으로 참여함으로 우리 안에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얻게 하시고,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며, 이를 증거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