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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학교 장년교과 보충교재(예언의 신 인용구들/Ellen G. White Notes)
(1) 이 자료는 대총회 안교부가 매기마다 안교 장년교과와 함께 매일의 공부 내용과 연결하여 새로운 통찰력과 신선한 관점을 얻도록 돕기 위해 출판하는 보충교재 [Ellen G. White Notes for the Sabbath School Lessons]-예언의 신 인용구들을 한글판으로 바꾼 것입니다. (아직 한글번역본이 없는 예언의 신 인용구는 게시자가 번역함)
(2) [활용방법] 매일의 교과를 공부한 후, 그날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결하여 묵상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5년 1기 –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God’s Love and Justice>
제5과 거룩한 사랑의 진노(The Wrath of Divine Love)
예언의 신 보충자료
<1월 25일/안, 서론>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멸망시키고 백성들을 속이고 하나님께 욕 돌리는 위선과 큰 죄악에 대하여 분개하셨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그럴듯한 기만적인 논법 가운데서 그분은 사단적 동작의 역사를 분간하셨다. 죄에 대한 그분의 탄핵이 날카롭고 엄중하였지만 그분은 보복적인 말씀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흑암의 왕자에 대하여 거룩한 의분을 가지셨으나 분노한 기분을 나타내지 않으셨다. 그와 같이 사랑과 자비의 아름다운 특질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리스도인도 죄에 대한 의분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를 욕하는 자들에게 격분하거나 욕할 감정을 갖지 않을 것이다. 거짓을 옹호하기 위하여 밑으로부터 오는 한 세력에 의하여 행동하는 자들을 만날 때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는 역시 조용하고 침착함을 유지할 것이다. (높임, 337)
◎ 하나님의 관용은 매우 크다. 우리가 그의 거룩한 계명을 계속 모독한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 관용이 얼마나 큰가에 대해 놀라게 될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속성을 억제해 오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의로운 요구를 그처럼 당돌하게 부인하는 악인들을 형벌하시기 위해 분명히 일어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은혜의 기간을 허락하신다. 그러나 그 기간에는 한계점이 있어서 그것을 넘어서면 하나님의 참으심도 끝나고 정해진 형벌이 분명히 따르게 된다. 주께서는 사람들과 도시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분노에서 구원하시려고 자비스럽게 경고를 주지만 더이상 자비를 위한 탄원이 들리지 않을 때가 올 것이며, 진리의 빛을 계속 거절하는 반역적 요소는 멸망 당할 것이다. 이것은 그들뿐 아니라, 그들의 모본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자비로운 처사이다. (선지, 276)
◎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부지런히 연구하자. 성경은 매우 평이하고 명백하기에 원하는 자는 모두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분의 귀한 말씀과 매우 많은 빛을 주는 그분의 영의 기별을 인해 주님께 감사하자. 우리가 신약, 구약을 더 많이 연구하면 할수록 그 둘이 상호간에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마음에 더욱 인상 지워질 것이며 그 거룩한 영감에 대한 증거를 더욱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둘의 저자가 오직 한 분이라는 사실을 더욱 명백하게 보게 될 것이다. 이 귀한 책들을 공부함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성을 드러낼 품성을 형성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3기별, 359)
◎ 구약성경이 … 옛날 사람들만을 위해서 기록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각 시대의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록된 것이다. 예수는 그분의 교훈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예언서에 예언된 메시아로서, 그의 신분을 확립해 주는 빛을 구하면서 구약성경을 부지런히 살피기를 바라신다. 신약과 구약은 따로 떼어 놓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둘 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화잇주석, 마 13:52)
<1월 26일/일, 죄악으로 슬퍼하심>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그럴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범죄하여 그의 기사를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 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 때에 저희가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그러나 그들은 성실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비록 원수들로부터 고통을 당할 때는 그들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였으나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시 78:32-35, 37-39) (부조, 410)
◎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사명이 끝날 때가 다가오고 있었고, 그때가 오면 예루살렘의 유예 기간이 끝날 것임을 알고 계셨다. 그러나 그분은 멸망의 말씀을 선포하기를 꺼리셨다. 그분은 3년 동안 와서 열매를 찾았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하셨다. 이 기간에 그분의 영혼에는 항상 한 가지 목표가 있었다. 감사할 줄 모르고 불순종하는 백성에게 하늘의 엄숙한 경고와 은혜로운 초청을 전하는 것이었다. …
그분은 그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다. 그분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셨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그분의 사역이 끝날 무렵 그분은 눈물을 흘리며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셔야 했다.
하나님 진노의 구름이 예루살렘 위에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도시가 포위된 것을 보셨다. 그분은 그 도시가 패배한 것을 보셨다. 그분은 눈물이 가득한 목소리로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라고 외치셨다. (This Day With God, 109)
◎ 하나님께서는 부주의한 삶을 살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영혼들에게 그분의 말씀에서 메시지를 보내셨다. 나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다.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사 40:27, 28) …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인간의 마음에 호소하시며,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인정하고 악의 원칙 대신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라고 명하신다. 이처럼 그분은 모든 시대에 인류에게 간청하셨다. 노아 시대에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대리자를 통해 사람들에게 말씀하셨고 죄에 속박된 사람들에게 전파하셨다. 그분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둘러싸여 이스라엘에게 오셨다. 광야에서 방황하던 그 큰 무리를 교육하신 분이 바로 그분이셨다.
이런 것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교훈은 오늘날 살아있는 모든 영혼이 이해해야 한다. (This Day With God, 278)
<1월 27일/월,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요나는 그 도시가 악함에도 불구하고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게 하심으로 그 성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알았을 때, 제일 먼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로 인해 기뻐했어야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자신이 거짓 선지자로 여김을 받을 가능성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평판에 눈이 멀어 그는 그 불쌍한 도시에 있는 영혼들의 무한히 큰 가치를 보지 못했다. 회개한 니느웨 성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동정을 요나는 몹시 싫어하고 성냈다. 요나가 여호와께 여쭈어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욘 4:1, 2)라고 하였다. …
그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은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그는 살아서 그 성읍이 구원받는 것을 보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났다고 느꼈다. 그는 불만족이 가득해서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라고 부르짖었다. (선지, 271)
◎ [요나에게 주신] 교훈은 오늘날 하나님의 사자들을 위한 것이다. 여러 나라의 수많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참으로 옛 니느웨 사람들처럼 참 하나님의 특성과 목적을 알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사자들은 대부분 잊어버리고 있는 더 높은 세계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거룩한 성경 말씀의 가르침에 따르면 영원히 존속하는 유일한 도성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조성하신 도성이다. 인간은 믿음의 눈으로 이글거리는 하나님 영광의 광채가 쏟아져 나오는 하늘의 문 어귀를 바라볼 수 있다. 주 예수께서는 당신을 섬기는 불후의 유업을 얻기 위하여 성화된 포부를 가지고 노력하라고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보좌 곁에 보물을 쌓도록 권고하신다. (선지, 274)
◎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셨던 것과 같은 부드러운 동정을 나타내도록 호소할 때 마음에 가장 감동적인 호소를 한다. 그의 형제에 대하여 이기심이 없는 사랑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사랑을 가진다. 참 그리스도인은 위험과 곤궁 가운데 있는 영혼을 경고하거나 돌보지 않은 채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과오를 범한 사람들을 멀리하고 그들이 더욱 더 불행과 낙담에 빠지거나 사단의 전쟁 마당에서 쓰러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부드럽고 사람을 이끄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생명의 샘으로 인도할 수 없다. 마음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강권하는 능력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대화에 있어서 부드럽고 동정적인 정신으로, 저희가 교제하는 사람들의 생애를 향상시킴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내게 한다. 그들의 일에 성공하는 그리스도인 일꾼들은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며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는 그분의 사랑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일꾼으로서의 그들의 적합성을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고 그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는 능력으로 측정하신다. (행적, 550-551)
<1월 28일/화, 의로운 분노>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예수]는 천천히 [성전] 계단을 내려가며, 손에 왕의 홀처럼 생긴 채찍을 들고 거래하는 사람들에게 성전의 신성한 경계를 떠나 물건을 가져가라고 명령하셨다. 그는 높은 열의와 전에 결코 보여주지 않았던 엄격함으로 환전상들의 상을 뒤집어엎었고, 동전이 떨어져 대리석 바닥에 날카롭게 울렸다. 가장 완고하고 도전적인 사람도 그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지만, 성전의 고위 인사들, 투기하는 사제들, 가축 상인들, 중개인들은 즉시 순종하여 그의 면전에서 달려 나갔다. …
그리스도의 신성이 가려지는 것을 느낀 군중은 공포에 질렸다. 군중이 그 자리에서 곤두박질치며 달려 나가자, 수백 명의 창백한 입술에서 공포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예수께서 그들을 채찍으로 때리지 않으셨지만, 그들의 죄스러운 눈에 그 단순한 도구는 번쩍이는 분노의 칼처럼 보였고, 사방으로 돌며 그들을 베어버리려고 위협했다. … 주님의 임재가 산을 거룩하게 했다면, 그분의 임재는 그분의 영광을 위해 세워진 성전도 똑같이 신성하게 만들었다. (예언의 신 2권, 118)
◎ 그 거대한 무리가 한 사람의 권위에 얼마나 쉽게 저항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분의 신성의 힘은 혼란과 죄책감으로 그들을 압도했다. 그들은 세상의 구세주의 신성한 권위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 하나님의 성소를 모독한 자들은 하늘의 위엄에 의해 그 문에서 쫓겨났다.
성전이 정화된 후, 예수님의 태도는 바뀌었다. 그의 얼굴의 끔찍한 위엄은 가장 부드러운 동정심의 표현으로 바뀌었다. 그는 슬픔과 연민으로 가득 찬 눈으로 뛰어 도망치는 군중을 바라보았다. 그의 존재가 주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의 끔찍한 위엄에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들의 마음은 사랑과 희망으로 그에게 이끌렸다. 이 사람들은 위대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그들의 위엄으로 예수님을 감동시키길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이었다. (예언의 신 2권, 119)
◎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정당한 분노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수치를 받으시고 당신의 사업이 누명을 쓰는 것을 볼 때에 또는 무죄한 자가 억압당하는 것을 볼 때에는 의분이 심령을 격동시킨다. 그런 예민한 도덕감에서 나온 분노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여하한 도전에 대해서도 분노나 적개심을 품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사단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하늘과 조화되기를 원한다면 원한과 증오심이 심령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
많은 사람이 저희와 형제들 사이에 화해해야 할 불행한 알력을 그대로 지닌 채 종교적인 봉사에는 열심을 낸다. 하나님께서는 화합을 되찾기 위해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요구하신다. 이렇게 행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봉사를 받으실 수 없다. 이 문제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명백히 지적되어 있다. (소망, 310-311)
<1월 29일/수, 고난은 하나님의 의도하신 것이 아님>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예수께서 성전과 청중들에게 미련이 있는 듯한 시선을 던지실 때 하나님 아들의 얼굴에는 거룩한 동정의 표가 나타났다. 마음의 깊은 고민과 쓰라린 눈물 때문에 목이 메인 음성으로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라고 부르짖으셨다. 이것은 이별의 몸부림이었다. 그리스도의 애통에서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흘러나왔다. (높임, 337)
◎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인간들을 고의적으로 괴롭히거나 슬프게 하시지 않으신다.
이 세상사는 시련과 근심과 슬픔의 장면이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시험을 견디어야만 한다. 우리의 모든 더러운 것이 타버리고 고난의 풀무에서 우리가 정화된 순금으로 나올 때까지 풀무의 불은 켜 있어야만 한다. … 이 흑암에서 빛이 나올 것이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 1:21). 이것이 그대 마음의 언어가 되게 하라. 자비의 구름은 가장 어두운 시간에서까지라도 그대 머리 위에 배회하고 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는 메마른 땅을 적시고 그것에 생기를 주기 위하여 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무수하다. 하나님의 자비는 그대 위에 있다. …
그대의 눈이 열려 질 수만 있다면 그대는 하늘 아버지께서 그대를 향하여 사랑으로 허리를 굽히고 계신 것을 볼 것이다. 또한 그대가 그의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고통과 고난으로 엎드린 그대에게 동정의 음성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써 굳세게 서라. 그리하면 그대를 위한 안식이 있다. (하늘에, 272)
◎ 불과 몇 년 안으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왕을 회개하지 않는 유다에게 내리는 당신의 분노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었다. 예루살렘은 거듭거듭 느부갓네살의 공격군에게 포위되고 침입을 당할 것이다. 계속해서 여러 무리들-처음에는 다만 몇 명이나 후에는 수천수만 명-이 시날 땅으로 사로잡혀가 거기서 강제적인 유랑 생활을 할 것이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이 모든 유다 왕은 차례로 바벨론 통치자의 신하가 되었다. 모두 차례로 배반할 것이었다. 반역한 나라에 매우 격렬한 징벌, 더욱더 쓰라린 징벌이 주어지고 마침내 온 나라는 폐허가 되고 예루살렘은 황폐되고 불타 버리게 될 것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큰 위험이 따랐던 이 변화의 시기에 많은 하늘의 기별이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어졌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유다 자손들에게 애굽과 얽혀 있던 동맹 관계에서 벗어나 바벨론의 통치자와의 마찰을 피할 충분한 기회를 주셨다. 무서운 위험이 임박했을 때 예레미야는 일련의 행동화된 비유를 통하여 백성들을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깨닫고 바벨론 정부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도록 격려하고자 하였다. (선지, 422-423)
<1월 30일/목, 긍휼을 보이심>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만약 사단이 그리스도로 가장 작은 죄 한 가지라도 범하도록 유혹할 수 있었다면 그는 구세주의 머리를 상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말했듯이 그는 주님의 발꿈치를 상하였을 뿐이다. 만약 그리스도의 머리를 상하게 할 수 있었다면 인류의 소망은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아담에게 이른 것같이 그리스도에게도 임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교회는 완전히 소망을 잃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인성의 완전한 죄 없음에 관하여 의혹을 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신앙은 지적인 신앙이어야 하며 대속물인 주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심과 전적인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영혼이 흑암에 둘러싸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요긴한 일이다. 거룩하신 대리자께서는 의아해하는 우주 거민에게 당신의 인성에 나타난 완전하고 전적인 겸비와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보이셨으므로 가장 미천한 인간까지라도 구원하실 수 있으시다. 거룩한 능력을 인간에게 주셔서 인간이 거룩한 성품의 참여자가 되게 하셨으며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게 하셨다. 이러한 이유에서 회개하고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로 여기신 바 될 수 있다. (1기별, 256)
◎ 모든 면에서 경험이 똑같은 사람은 거의 없다. 한 사람의 시련이 다른 사람의 시련과 같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친절하게 동정하고 예수께서 모든 형제에게 나타내신 거룩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때때로 엄하게 책망하셨고,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책망한 사람들의 정확한 상태, 즉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책망의 정도와 그들의 잘못된 길을 바로잡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지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불행한 사람을 위로하고, 약한 사람을 격려하는 방법도 알고 계셨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분은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방법을 알고 계셨다. 그분은 모든 사람의 정확한 동기와 독특한 시련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불쌍히 여기며 책망하셨고, 자신이 책망한 사람을 거룩한 사랑으로 사랑하셨다.
예수께서는 실수하실 수 없지만, 인간의 판단은 잘못될 수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사람들은 동기를 잘못 판단할 수 있다. 그들은 겉모습에 속을 수 있고, 잘못을 책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때 너무 지나쳐서 심하게 비난하여 치유하고자 하는 곳을 다치게 할 수 있다. 또는 지혜롭지 못하게 동정심을 행사하고, 무지함으로 합당하고 시기적절한 책망을 방해할 수도 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뜻에 복종하고, 그분을 섬기는 일에 구별되기를 원하신다. 이기심은 우리의 성품에 있는 다른 모든 결점과 함께 버려야 한다. 매일 자아에 대해 죽어야 한다. 바울은 이런 경험을 했다. 그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말했다. 그는 매일 새로운 회심을 했고 매일 천국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고자 한다면 거룩한 삶에서 매일 승리해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긍휼이 많으시며, 자비가 풍성하시다. 그분은 우리의 약점과 필요를 아시며,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기만 하면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실 것이다. (영문 시조, 1887년 3월 3일)
<1월 31일/금, 더 깊은 연구>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예루살렘의 멸망” (쟁투, 21~22)
희망과 사유의 시간은 신속히 지나가고 오랫동안 지체되어 온 하나님 진노의 잔은 거의 찼다. 배교와 반역의 각 시대를 통하여 쌓여 온 저주의 검은 구름은 형벌 받을 백성에게 바야흐로 내려 덮이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임박한 멸망에서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하신 그분은 멸시와 모욕과 거절을 당하셨으며, 얼마 안 있어 십자가에 못 박힘을 당하게 되실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면, 그 때로부터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받는 나라로서의 이스라엘 시대는 끝나게 될 것이었다. 단 한 사람의 영혼일지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온 세계의 이득과 보화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실 때 한 때 하나님의 택하신 곳이요, 특별한 보배가 되었던 그 성과 그 온 백성의 멸망이 그분의 앞에 나타나 보였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배교와 죄로 말미암아 초래된 무서운 파멸 때문에 울었다.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의 딸들이 죽임을 당하고 여호와의 양 무리가 사로잡힘을 인하여 주야로 울었으며, 자기의 눈이 눈물의 샘이 되기를 원하였다(렘 9:1, 13:17 참조). 하물며 예언적 안목으로 몇 년뿐 아니라 여러 세기의 미래를 내다보시는 이의 슬픔이 어떠하였으랴! 그분께서는 멸망시키는 천사가 검을 들고 참으로 오랫동안 여호와의 거처가 되었던 성을 향하여 서 있는 것을 보셨다. 감람산 위에서, 그분께서는 감람산 골짜기 저편에 있는 성전과 주랑들이 티투스(Titus)와 그의 군대에게 점령당하는 것을 보셨고, 그 성벽들이 외국의 군대에게 포위당하는 무서운 광경을 눈물 어린 눈으로 내다보셨다. 그분께서는 싸움을 위하여 행진하는 군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셨다. 그분께서는 포위당한 성 중에서 어머니들과 아이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다. 그분께서는 그 아름다운 성전과 궁전들과 탑들이 불꽃에 싸이고 한 때 그것들이 서 있던 그 장소에서 마침내 연기나는 폐허의 무더기가 되어 버리는 것을 보셨다.
먼 장래를 내다보실 때, 그분께서는 언약의 백성이 거칠고 쓸쓸한 바닷가에 깨어진 배 조각들처럼 각지에 흩어져 있는 광경을 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릴 현세의 보응은, 그들이 마지막 심판의 때에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마셔야 할 진노의 잔에 비교하면 겨우 한 모금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보셨다. 그리하여 거룩한 동정과 애끓는 사랑은 드디어 비통한 어조가 되어 그분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오, 어떤 나라보다 더욱 많은 은혜를 받은 나라여, 네가 권고하시는 날과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다면 다행이었을 것을! 나는 의의 사자로서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었고, 너희가 회개하도록 호소하였지마는 허사가 되었구나. 너희가 거절하고 배척한 이는 단순히 종이나 대리자나 선지자가 아니요, 진실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곧 너희의 구속주이시다. 만일 너희가 멸망당한다면, 그 책임은 다만 너희에게 있다.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 하는도다”(요 5:40).
그리스도께서는 불신과 반역으로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하나님 보응의 형벌을 재촉하고 있는 이 세상을 예루살렘이 상징하고 있음을 보셨다. 타락한 인류의 신음소리는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고민의 부르짖음이 그분의 입에서 새어 나오게 하였다. 그분께서는 인류의 불행과 눈물과 피흘리는 일에서 죄의 기록을 보셨고, 세상에서 괴로워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무한히 동정하셨다. 그분께서는 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갈망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손으로도 인류의 저주의 물결을 물리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곧 인류의 유일한 도움의 근원인 그분을 찾아 구하는 자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당신의 영혼을 즐거운 마음으로 죽음에 내어 주고자 하셨지마는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그분께로 나오는 자들은 별로 없었다.
하늘의 대주재께서 눈물을 흘리시다니!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마음에 근심하시고 고뇌에 눌리시다니! 그 광경을 보고 온 하늘은 놀랐다. 그 광경은 죄가 얼마나 사악한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전능하신 분에게 있어서도 죄인을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린 결과에서 구원해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타내 준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를 내다보시고 예루살렘을 멸망으로 이끌어 간 그 같은 속임수에 온 세계가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보셨다. 유대인의 큰 죄는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것이었고, 그리스도교의 큰 죄는 천지를 다스리는 하나님 정부의 기초가 되는 율법을 배척하는 것이 될 것이다. 여호와의 계명은 멸시받고 무시당할 것이다. 죄에 속박되어 사단의 종이 된 무수한 자들이 둘째 사망을 받을 운명에 놓여 있으면서도 권고하시는 날에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맹목이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쟁투, 20-23)
◎ “고통을 통하여 향기로워짐” (하늘에, 273).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후 1:4)
가장 큰 슬픔을 지닌 자들은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종종 남에게 가장 큰 위로를 가져다주며 햇빛을 가져다주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그들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시련을 받아 향기로워진다. 괴로움이 그들을 엄습할 때 그들은 하나님 안에 있는 확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대신에 그의 보호하는 사랑에 더욱 가깝게 매어 달리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빛은 물론 흑암을 지으셨으며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를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친절한 돌보심에 대한 산 증거이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시다. 그 안에는 어두움이 없다. 슬픔과 불평에 대하여는 잘 있거라고 말하라. 주 안에서 언제나 기뻐하라.
깨어진 희망에 대하여 슬퍼하며 가정을 어둡게 하는 필요 없는 슬픔에 몰두되어 귀중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이기심이다. 우리는 다소간 우리에게 행복이 의존된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서만이라도 명랑해야만 한다. … 모든 것에 최대의 힘을 다하며 사물의 아름다운 면을 바라보는 습관을 배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청청한 푸른 하늘이 다시 나타나며 복된 햇빛이 재연될 때까지 인내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우리를 어둡게 하는 구름이 지나가게 하자. … 그리고 가능한 한 자아를 잊어버리고 명랑함을 배양하며 남의 생애를 밝게 하도록 애쓰자. 그리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운명을 불평하고자 하는 욕망이 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고난당하는 자들이 용기를 가지며 실망하는 자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데, 이는 그들이 예수님 안에서 동정하는 한 친구를 찾은 까닭이다. 우리의 모든 괴로움과 슬픔을 그의 동정의 귀속으로 쌓아 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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