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이 왜 이때 있었는가?(눅9:28-36)
갈등
1.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신 3년 동안에 제자들이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위해서요. 오늘 본문도 제자들을 위해서 매우 유익하고 꼭 필요한 경험을 누리게 하셨어요. 오늘 본문은,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일어난 일이라고 하며 시작합니다. 팔 일 전에 주님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에서 제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자기를 누구라고 하는지 제자들에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각기 들은 이야기를 주님께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엘리야라는 이도 있고, 옛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구나. 그러면 나와 함께 하며 나를 본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어요. 이때 베드로가 유명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 본문 눅9에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메시야)이심을 밝히셨어요. 자신이 유대 종교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도 제자들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세 차례 수난 예고 가운데 첫 번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이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난 예고에 이어지는 제자도입니다.
2. 예수님이 공생애에서 중요한 일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심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스승이신 주님이 희생당하시고 죽으실 것이고, 자기들도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하셨으니 부담이 되었어요. 제자들이 당시에는 아직 무슨 말인지도 몰랐습니다. 주님은 잠시 당황한 제자들에게 꼭 필요한 시간을 제공하셨습니다. 이 자리에는 열두 제자들을 다 데리고 가시지 않았어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 데리고 가셨어요. 수제자로 불리는 세 제자만 데려가셨습니다. 주님이 이곳-다볼산에 가신 것은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28절)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제자들을 향한 최고의 가르침은 기도였습니다. 주님이 세상을 떠나시면 그들이 기도를 많이 해야 주님 대신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볼산에서 주님이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어요.(29절) 이때 주님만 변화되시지 않았어요. 두 사람이 주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였어요.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세가 언제 때 사람입니까? 모세가 죽은지 1,000년이 훨씬 넘었어요. 엘리야가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 올라간 지 수백 년이 지났어요. 왜 예수님은 이 때에 구약 시대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 두 사람을 불러서 이곳 다볼산에서 말씀하셨을까요?
갈등 심화
3.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가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이곳 다볼산에 올라갔던 세 제자는 이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다니며 몸이 지치고 곤하여 깊이 졸고 말았어요. 몸이 피곤했던 것은 이해한다고 하지만, 이 중요한 시간에 그들이 졸고 말았어요. 깊이 졸다가 순간 깨어난 제자들이 주님의 변화된 영광과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습니다. 세 제자가 그동안 주님과 동행하고 합숙을 해왔지만-24시간 함께 했지만,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은 오늘 처음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두 사람이 모세와 엘리야인 것을 금방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체험을 주실 때는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욉니다. 하나님께 금방 알게 하세요. 33절 베드로가,“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이스라엘 전통에서 귀한 손님이 방문하면, 그들을 위해서 초막을 지어서 대접해왔어요. 문제는 베드로가 졸다가 깨어나서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고 말했어요. 제자들은 지금 주님이 어떤 일을 하시고,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하신 것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4. 제자들이 비몽사몽 가운데 있을 때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었습니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며 귀한 말씀이 선포되어습니다.“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35절) 이 말소리와 함께 오직 예수님만 보이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참 신비한 순간이 이어졌어요. 성경은 하나님을 위해 쓰이지 않고 우리를 위해서 쓰여졌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도 주님을 위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위해서 일어났습니다. 오늘 이 사건이 왜 제자들 앞에서 일어났을까요? 왜 하나님은 이때 세 제자만 있는 곳에서 이때 이 일을 행하셨습니까?
실마리
5.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모든 일을 즉흥적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능력과 인격에 있어서 부족함이 완전하십니다. 항상 모든 일을 미리 계획하시고 때가 되면 역사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일도 마찬가지에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이 가시는 대로 따라갔지만 어리버리했어요.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몰랐잖아요. 주님은 정확한 때에 정확하게 행하셨습니다. 주님이 이때 제자들 앞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불러서 대화를 하신 일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자이고, 엘리야는 예언자들을 대표합니다. 구약성경은 크게 율법서와 예언서로 나뉩니다.(역사서-시가 등도 있지만) 구약성경을 대표하는 두 사람과 예수님이 나눈 대화는 31절,“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람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했어요.”구약성경-율법과 예언서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했어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과 십자가 고난, 부활, 그를 통해서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까지요. 하나님은 이 일들을 오래 전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해 주시고(예언-약속) 때가 되어 이뤄가셨습니다.(성취)
6.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예루살렘에서 별세-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별세는 세상과 이별을 의미해요. 원문에는 엑소더스로 되었어요. 길을 떠나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애굽에서 길을 떠났듯이, 주님께서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길을 떠나셨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은 고난 받기 위해 가신 길입니다. 막10:32-33,“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도,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이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주님은 모세와 엘리야와 이 중대한 이야기를 말씀하시는데, 왜 평상시 모습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셨을까요? 오늘이 바로 예수님의 변모주일입니다. 예수님이 변화산-다볼산에서 변화되신 날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그리고 수요일에 사순절이 시작됩니다.(재수요일) 하나님은 이 일을 세 제자 앞에서 보이시고 말씀하신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어요. 이 일이 이뤄진 것은 순전히 제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 일이 성경에 기록되고 시대를 떠나서 성경을 읽는 모든 이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는 당시 세 제자만이 보고 들었습니다. 세 제자는 당시 현장에서는 어리버리했지만, 훗날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후 이 모든 것을 깨달았습니다.
7. 아, 그때 주님이 변모하셔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난 것은 이런 큰 의미가 있었다고요. 그 의미는 예수님같이 영광스러운 분-하늘에서 들린 음성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단지 여러 성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시고 부활하셨다고요. 세 제자가 지식으로 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주님의 실체를 눈으로 보았어요. 주님의 어떤 모습이나 형상이 아니라, 광채가 나더라. 빛이신 주님의 모습을 그들이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주님은 백인이나 황인종이 아니에요. 주님은 빛이십니다.
복음 제시
8. 하나님은 아직 어리고 연약한 세 제자를 위해서 이런 방식으로 나타나시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세 제자는 이 일들을 다른 제자들과 나누고 훗날 성경 기록을 통해서 우리에게까지 전해주었어요. 현장에서 경험한 것은 세 제자이지만, 이 경험은 모든 인류들이 함께 경험하는 것이에요. 예수께서 누구이신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론으로만, 책으로만 알 수 없어요.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의 세 제자와 같이 우리 눈을 열어주셔서 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기대
9. 오늘 말씀을 읽으며, 우리도 도전 갖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은 잘 모르고 확신이 없는데 제게도 세 제자와 같이 눈을 열어주세요! 저도 분명히 주님을 뵙고 만나기를 원합니다. 세상에는 이런 갈급한 마음 가운데 사는 이들이 많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읽으며,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 맞게 믿고 확신하게 하십니다.
눈으로 보지 못해도 그냥 믿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성령께서 내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며 믿어집니다. 이렇게 해서 믿지 못하는 자들은 세 제자와 같이 눈을 열어주시기도 하고요. 지난 시간에 이사야의 거룩한 경험 이야기를 나눴듯이, 주님을 깊이 만나고 경험하게 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서 찬송하며 오늘 말씀을 따라 기도합니다.(오늘 찬송: 온 세상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