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113/200315]남녘 ‘번개투어tour’의 맛
솜리(익산)에 사는 사돈이 엊그제 ‘광양 홍쌍리매화마을’을 다녀와 사진만으로 편집한 동영상을 보내왔다. 백운산 자락 5만여평을 뒤덮은, 거의 만개한 하얀 매화꽃에 넋이 빠졌다. 아무리 하수상한 세상이라 해도 ‘올해는 한번 가보자’고 작심했다. 운봉 친구에게 기차여행을 권했다. 마침 순천 해룡면(우리나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면面. 인구 3만이 안되는 군郡들도 태반인데, 신대지구를 중심으로 6만명에 이른다)에 사는 친구에게 순천역 마중을 부탁했다. 모두 기다렸다는 듯, 오케이다.
어찌 ‘번개팅’만 있으랴. 우리는 남도南道 ‘번개투어tour’닷! 기차야말로 빠르고 싼 ‘서민들의 발’임을 고향에 내려와 처음 알았다. 50분 걸리는 오수∼순천역 5300원. 쉬는 역이라해야 남원역, 곡성역, 구례역, 그 다음이 순천역이다. 친구는 남원역 승차. 무궁호를 타시거든, 꼭 4호차에 가보시라. 카페 역할을 하는 한 량 전체가 양쪽 창가로 좌석이 지하철처럼 주욱 배열돼 있다. 통유리 넓은 창, 시원한 공간(코로나 때문일까),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농촌풍경이 지극히 한가롭고 넉넉하다. 남도는 이미 봄이 와 있었으니, 군데군데 피어 있는 노오란 산수유와 매화꽃이 우리를 반긴다. 매화꽃 천지비까리를 볼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어찌 가을의 만산홍엽滿山紅葉만 구경거리이랴. 초봄 광양의 동백꽃 군락지나 지리산 산동의 산수유, 황매산의 진달래, 진해의 벚꽃, 초여름 바래봉의 철쭉꽃, 겨울의 태백산 눈꽃도 ‘꽃 중의 꽃’인 것을. 언제 봐도 훠언한 얼굴의 상남자上男子가 마스크를 쓴 채 역입구에서 활짝 웃으며 반긴다. 이름을 모르는 들꽃이 있으면 그에게 물어보시라. 살얼음을 뚫고 맨먼저 피어나는 눈곱처럼 작은 꽃, 개불알꽃이다. 일본인들이 지었고 어감語感이 좋지 않다하여 순화시킨 우리말 이름이 봄까치꽃. 흔한 꽃인데, 우리는 눈뜬 장님이다. 제비꽃, 돼지똥풀… 풀이면 풀, 나무면 나무, 약초면 약초, 척척 식물박사이다. 1억이 훌쩍 넘는다는 아우디 승용차로, 오늘의 번개투어 5시간 반 동안 편히 모시겠단다.
금강산도 식후경. 먼저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끝줄기’인 화개장터 ‘조양갈비’에서 점심을 먹다. 식당 바로 아래로 보이는 깨끗한 강물을 내려다보면서, 재주 많은 가수 조영남의 노랫말처럼 ‘고운 정 미운 정 주고받’고 지역차별 없는 이웃사촌으로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씁쓸한 기분으로 생각해 보다. 순전히 옥호屋號 때문에 들어간 곳이다. 한자로 ‘아침 조朝 양기 양陽’이라고 쓰는 지는 모르겠으나, 예전에 선비들이 새벽에 ‘텐트’치는 것을 ‘조양’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침에 만나면 인사가 ‘진지 드셨습니까?’ 대신 ‘요즘도 조양은 여전하시죠?’라고 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흐흐. 우리 6학년 4반쯤 되면 대부분 ‘조양 콤플렉스’가 있지 않는가 말이다.
곧바로 ‘삼신산三神山 쌍계사雙磎寺’로 향했다. ‘시내 계’자로 알았는데 ‘돌 석石’변이다. 삼신산은 금강산, 한라산, 지리산을 말한다. 724년(신라 성덕왕 23년) 의상대사의 제자가 육조혜능의 정상頂相(초상화)를 모시고 와 ‘눈 속에 칡꽃(설리만화처雪裏萬花處)’이 핀, 두 계곡물이 만나는 이곳에 봉안했다고 한다. 쌍계사하면 고승 진감선사眞鑑禪師를 기억해야 한다. 대웅전 전면에 국보 47호의 ‘진감선사대공탑비’가 있기 때문이다. 887년에 세워졌다는,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쓴 유일한 필적. 내용은 짐작조차 못하는 비석은 이리저리 깨지고 마모가 되었지만, 국보國寶라니까 그럴싸 그러하다. 절에서 3km도 안된다는 ‘지리산 10경’ 불일폭포를 보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쉽다. 단청丹靑을 보고 탱화幁畵라는 하는 친구를 보고, 우리 정신이 이렇게 까막까막해질 때가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나는 왜 쌍계사를 박경리『토지』에 나오는 ‘연곡사’로 기억하는 걸까? 윤씨부인이 김개주를 통해 낳은 아들 김환(구천), 그는 동복同腹형의 아내인 형수 별당아씨를 보쌈하여 지리산에 숨어 산다. 그 아씨를 위해 진달래화전을 부쳐준다는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토지』를 완독하면서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 쌍계사와 평사리 최참판댁이었는데, 오랜 소원을 풀었다. 이제 평사리로 향한다.
지구촌 역병疫病은 ‘박경리 문학관’도 문을 닫게 만들었다. 최참판댁에서 바라보는 악양들판은 생각보다 넓었다. 성불구자로 질투의 화신인 최치수가 살던 사랑채와 별당아씨가 꽃같은 딸 서희와 살았던 별당채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솟을대문을 지나 중문채,행랑채, 문간채, 뒤채, 사당들을 보며, 그집에서 어우러진 수많은 이야기들을 그려본다. 아, 여기가 ‘용이네’집이었구나(정치인 김대중 선생은 ‘용이와 월선’의 이루지 못한 사랑부분을 읽으며 우셨다했다), 여기는 영팔이네, 이평이네, 김훈장댁과 김평산네, 관수네, 야무네, 칠성네, 정한조네, 막딸네, 봉기네, 오서방네, 우가네, 서서방네, 오서방네……. 아-아-,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며 살았구나. 이곳은 참으로 재미있는 곳이구나. 시간만 조금 있다면 주막에서 꼭 한잔을 하고, 객주집에서 일박을 하면 더욱더 좋으련만. 와보기를 정말 잘했다. 대작가 박경리는 평생 ‘사마천’같은 심정으로 살면서 글을 썼다지만, 어찌 상상으로 쓴 소설 속 마을이 이리도 평사리를 빼박았을까? 신이 내리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이야기들의 모음집, 한국 문학사에 기리 남을 기념비적인 작품『토지』의 배경지,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조만간 아내와 손잡고 꼭 한번 와보리라. 도란도란 데이트를 하며 우리의 사랑도 훨씬 원숙해지리라. 박경리 선생의 마지막 시 구절이 떠오르는 것은 왜인가? <모진 세월 가고/아아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최참판댁을 지나 매화마을로 가는 섬진강변은 말 그래도 ‘펑사리 공원’. 해변도 아닌 강변에 멋드러진 모래사장이 거의 4km나 길게 펼쳐져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소나무숲은 여름철 ‘해수욕’은 저리 가라할 정도로 ‘강수욕’에 딱일 듯했다. 환타스틱한 이곳도 아내와 꼭 한번 걸어보리라. 매화마을은 강을 가로질러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토요일인지라 승용차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어, 엄두를 낼 수 없었다. 하여, 목적지를 광양 백운산(해발 1222m) 자락인 백계산의 옥룡사지玉龍寺址 동백숲으로 바뀌었다. 원래 옥룡사는 우리나라 도참사상의 비조鼻祖인 도선국사가 35년간 머물다 입적한 유서 깊은 절이었다. 땅의 기운을 북돋운다며 심은 동백나무들이 숲을 이뤘다. 수 백년에서 수 천년 이상 된 7천여 그루의 동백冬栢 군락지. 아마도 국내에서는 최고, 최대를 자랑할 듯, 유명한 관광지였다. 붉디 붉은 ‘동백꽃 터널길’은 벚꽃터널길과 또다른 색다른 맛이 있다. 향기는 비록 없지만, 크고 넓은 동백꽃은 남도의 향취香臭를 흠뻑 안겨주고도 남는다. 강진 다산초당과 백련사 사이의 동백숲을 보신 적이 있으시리라. 땅에 투욱툭 뭉텡이째 순식간에 떨어져버린 동백꽃은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꽃말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한다. 멋지지 않은가.
고창 선운사의 동백숲에서 손가락 두 마디 크기만한 동박새를 보면서 ‘자연의 섭리’에 대해 감탄한 적이 있다. 동백잎이 두꺼운 까닭이 너무 작고 재빠르며 찌익찍 날카롭게 끊임없이 울어대는 동박새가 넓고 반질반질한 잎에 잠깐 앉아 수정受精하도록 한 것이라는데야, 할 말을 잃었다. 하여, 동백꽃을 ‘조매화鳥媒花’( 바나나, 파인애플, 선인장처럼 새를 통해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는 꽃)라고 한다. 가을에는 장성 축령산의 문수사 단풍丹楓이 으뜸이듯, 2∼4월 남도 힐링코스로는 이곳 동백숲이 최고가 아닐 듯싶다. 졸지에 이뤄진 번개투어 5시간반은 참말로 ‘뽀땃했다’. 산자락을 뒤엎은 듯 피어난 매화마을의 매화꽃 구경을 못한게 아쉽다. 평일에 나 혼자만이라도 살맹이 댕겨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