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보내는 편지(72)
샬롬!
하늘이 맑아 청옥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저만치 어깨 내민 산등성이에는 어느 듯 새악시 얼굴 마냥 붉은 홍조가 일고, 시월의 가을은 그렇게 말없이 익어 갑니다. 이 때는 조용히 가을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빨간 단풍이 고운 나무 밑에도 앉아보고, 아름답고 고운 향수가 흐르는 추억 속에도 앉아보고, 돌아오는 길엔 해맑은 웃음을 가득 담고 가뿐한 걸음으로 조용히 나를 찾아가며 혼자만의 고독 속으로 빠져들어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가을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가을은 무심히 마셔도 좋은 식어진 커피같이 늘 고요하게, 고즈넉하고 은밀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한 여름의 작열하던 햇살이 점점 낮의 길이가 짧아져 일조량이 모자라 우울한 마음 생기고 그래서 가을을 타게 된다고 하는데 우리 선생님들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아침 햇살처럼 환한 웃음을 선생님들께 선물합니다. 오늘 하루도 많이 웃으시는 즐거운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문득 단풍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져 알아보았습니다.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월동준비에 들어갑니다. 밤이 길어지고 낮이 짧아지면 나무들은 본능적으로 겨울을 감지하게 되고 이때 잎에는 떨켜층이 생성됩니다. 나뭇잎을 몸에서 떼어내기 위한 작업인 셈이죠. 떨켜층이 생기면 잎은 뿌리에서 공급되는 수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태양은 남아 있으니 광합성은 계속합니다. 이 과정에서 영양분이 생기지만 역시 줄기나 뿌리로 공급이 되지 않고 잎 속에 축적돼 엽록소를 파괴합니다. 이쯤에서 엽록소에 가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붉은 색의 안토시아닌과 노란 색의 카로틴, 크산토필이 도드라지게 보이면서 단풍 색이 생겨나는데, 단풍 색이 얼마나 고와지는지는 비와 일교차에 달려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수분공급이 충분치 못해 잎이 건조해지고 먼지가 끼어 고운 색이 나오지 못하고, 일교차가 클수록 단풍 색이 선명해집니다. 너무 일찍 추위가 찾아오면 제 색깔이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단풍이 알고 보니 줄기에서 떨어지는 아픔의 과정에서 생겨난다고 하니 우리 인생의 아름다움도 젊을 때가 아니라 모든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노을이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서글퍼 보인 것이었나 봅니다.
특별히 한없이 드높고 푸른 코발트색 가을바다는 어떤 의미를 따지기 전에 쳐다만 보아도 인생의 여유가 느껴집니다. 여름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경망한 느낌까지 들지만 사색이 깊은 가을바다는 참된 인생의 의미를 깨닫도록 쉼과 평안을 안겨다 줄 것 같습니다. 가을 바다는 그 많은 사람들이 떠나간 후에 이제는 아무도 봐 주지 않는 파도가 갈매기와 함께 흥분을 가라앉히며 다 말하지 못한 보따리를 풀고 진지하게 말을 건네옵니다. 보석처럼 아름다웠던 지나간 꿈과 애틋하게 가슴 적시게 했던 한여름 밤의 격정들을... 거울 앞에서 나를 보듯 겨울을 앞두고 약간 싸늘하게 느껴지지만 가을 바다에서 이런 여유를 온 몸으로 느껴보고 싶어 틈날 때마다 가을바다를 찾아 나섭니다.
창피하고 철없는 생각인지 모르지만 솔직히 저는 누가 안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약간 싸늘하고 추운 가을바다와 겨울바다를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추울 때 안아주고 안기기가 쉽기 때문이지요. 저더러 엉큼하다고 말해도 상관없습니다. 정말 아무런 말없이 조건없이 누가 살며시 보듬아주면 좋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저도 사랑과 애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간과하고 겉으로 드러난 것만 가지고 말하려하니 쉽게 정죄하고, 사람들은 그럴수록 더욱 속으로만 그리워하여 병이 되는가 봅니다. 안기고 싶다거나 안아주세요 라는 말은 너무 힘이 듭니다, 날 좀 도와주세요, 위로가 필요합니다, 외롭습니다 라는 말일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안전하고 포근하게 품어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주님의 넓으신 품에 주여 저를 꼬~옥 품어주옵소서. 주님의 강한 팔로 꼬~옥 안아주옵소서. 인간적인 외로움이 주님을 더욱 깊이 만나는 축복의 기회가 되게 하시고 하늘의 위로와 격려로 부족한 저의 삶이 아름답게 회복되게 하시고, 저로 하여금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사랑과 넓은 가슴을 주옵소서.
허성도의 [도시를 걷는 낙타]란 책에 금붕어를 기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글에 의하면 금붕어 기르는 일은 쉽지 않다고 합니다. 금붕어 알이 부화되면 수많은 금붕어 새끼가 깨알처럼 어항 속을 헤엄쳐 다니고, 주인은 항상 어항을 쳐다보면서 금붕어들이 잘 자라는지 살펴봅니다. 주인은 수많은 고기 속에서 병든 고기를 찾아내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병든 금붕어가 주인의 눈에는 금방 눈에 띤다고 합니다. 병든 고기가 발견되면 주인은 그것을 따로 떠내어 약을 먹이는데 약값은 금붕어 값보다 훨씬 비싸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가 주인에게 “차라리 새끼 금붕어를 포기하는 게 더 경제적이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주인은 “새끼 한 마리를 살리려는 정성이 없으면 다른 금붕어도 살리지 못합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금붕어를 기르는 사람의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복음중등부 선생님! 우리 하는 일은 힘들고 귀찮고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비경제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영혼을 일깨우는 교사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아십니다. 우리가 감당해야할 일에 정성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계이름 도레미파솔라시도는 구이도(Guido․995~1050)라는 사람이 "당신의 종들이 당신의 훌륭함을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도록 입술에서 모든 더럽혀진 죄악들을 씻어주소서. 오 거룩하신 이여"란 기도문의 첫 글자인 Ut Re Mi Fa Sol La를 따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후에 Ut가 Do로 바뀌었는데 Do는 라틴어 Domine의 준말로 '그리스도' 또는 '주님'이란 뜻입니다. 종교를 초월해 지구상의 모든 이들이 사용하는 계명의 첫 글자는 도(Do)이고 그 의미가 주님을 뜻한다는 사실은 모든 음악의 시작이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우리 인생의 모든 기초에 주님으로부터 시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도(주님)로 시작한 음악이 감동과 아름다움을 선물하듯 우리들의 인생이 모두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는 선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 기업가가 우연히 한 농부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농사를 꽤 많이 짓고 있는 모범 농가였으므로 그 농가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농부가 막 심으려고 밭도랑에 놓아둔 씨감자들이 하나같이 쭈글쭈글하고 상한 것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기업가는 왜 이렇게 불량하게 보이는 씨감자를 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감자를 많이 수확하려면 씨감자에 햇빛도 쬐고, 차가운 겨울 바람도 쐬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시달리다 보면 감자 꼴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에 시달려 볼품없게 된 씨감자가 더 많은 감자를 생산한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는 우리 어머니들의 볼품없는 손을 생각하게 합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우리 아이들이지만 자식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어머니의 손과 같은 희생이 더해진다면 우리 아이들은 분명 귀한 씨감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육신을 지니고 사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이 있어야 하지만, 희망을 갖고 사는 이들에게는 열정이라는 것이 하나 더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열정을 부어주는 농부같은 교사가 되어지길 희망합니다.
고운 글은 고운 마음씨에서 나옵니다. 고운 마음으로 글을 쓰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고운 마음이 그대로 옮겨가서 읽는 사람도 고운 마음이 되고, 하나 둘 고운 마음들이 모이면 우리 주위가 고운 마음의 사람들로 가득 찰 겁니다./ 글에도 얼굴이 있습니다. 예쁜 글은 웃는 얼굴에서 나옵니다. 즐거운 얼굴로 글을 쓰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정겨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읽는 사람도 웃는 얼굴이 되고, 하나 둘 미소짓는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 주위가 활짝 웃는 사람들로 가득 찰 겁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더라도 직접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비록 한 줄의 짧은 답 글이라도 고운 글로 마음을 전하며 읽는 사람에겐 미소를 짓게 하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광수)
저의 부족한 편지도 오광수님의 글처럼 선생님들의 마음을 환히 비쳐주고, 때로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같이 시원함을 주고 싶습니다. 보아야 할게 너무 많지만 구름 한점 없는 파란하늘도 보고, 삶과 죽음에 순응하는 자연의 아름다움도 보고, 매혹적인 바람의 사랑얘기도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영혼도 매만져주시고 때로는 안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