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大笒)
둥근 대금
저 소리는 보름달이었을 것이다.
구름에 안기듯
아스라히 잦아드는 소리
서걱이는 바람에
서러운 대나무
야윈 몸통 어루만지던
고운 달빛이었을 것이다.
금빛 대금
저 소리는 붉은 태양이었을 것이다.
무쇠도 끊어낼 듯
파열하는 소리
푸른 대나무 몸통
벌겋게 달구던
여름날 뙤약볕이었을 것이다.
석자 대금
저 소리는 세찬 소낙비였을 것이다.
말라버린 가슴 가르고
끈덕지게 흐르던 물소리
대통 품에 고였다가
사내의 숨결 닿자
솟구쳐 흐른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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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텅 빈 몸통을 훑고 허공으로 뻗친 대금 소리는 다시 미세한 공기의 흐름을 타고
가슴으로 스며듭니다.
안개가 소나무 숲에 스며들듯, 어둠이 산자락 갉아먹듯, 뉘엿뉘엿 너머가는 태양이 푸른 바닷물에
녹아들듯, 노란 달빛이 경포호수를 희롱하듯 구성진 대금 소리는 내 귓전으로 스며들어
두뇌를 돌아 마음 흥건히 젖어듭니다.
텅 빈 가슴에는 싸락싸락 눈처럼 쌓이고, 꽉 찬 가슴은 에테르로 녹여주는 대금 소리!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들의 가슴도 울렁거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습니다.
데드 마스크같은 얼굴에 핏기가 돌고, 뭉쳤던 근육도 흐물흐물 풀어지기 시작합니다.
더러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콧날이 시큰해지기도 합니다.
험한 세상, 바쁜 일상에서 흔적도 없이 퇴화한 줄로만 알았던 감정선들이 다시 살아나고
살아온 아득한 길이 구성진 그 소리 궤적을 따라 눈 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집니다.
석자 대나무에서 실타래처럼 뿜어져 나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상상력이 발동합니다.
도대체 저 소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대금의 소리는 뭐니뭐니 해도 대나무의 소리이겠지요.
한 여름 오직 푸른 결기 하나로 꼿꼿하게 하늘로 하늘로만 오르는 대나무 숲을 들어가면
우선 그 서늘함에 들떴던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맥박은 느려지고 호흡도 느려지고 걸음도 저절로 느려집니다.
핏발섰던 눈동자에도 푸른 기운이 돕니다.
어느덧 머리에서 세속 잡사는 사라지고 대나무를 스치는 소쇄한 바람이 그 자리에 하나 가득
들어찹니다.
그러니 대나무는 옛부터 우리 조상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군자의 나무였습니다.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대나무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철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어디 우리나라 뿐일까요.
대나무는 그 푸르름과 절개와 강인함으로 중국과 일본에서도 두루 사랑을 받았지요.
장수와 주술, 탈속과 풍류, 때로운 이상적인 인격체의 비유로
문인들이 즐겨 노래하던 대상이었고 생활 속에서도 즐겨 쓰인 나무였습니다.
온갖 망상과 번뇌와 근심을 깨끗이 몰아가는 바람 소리,
대금의 청아한 소리는 이 대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닮았습니다.
특히 진양조 느린 가락으로 유장하게 이어지는 소리, 끊어질 듯 이어지다, 이어질 듯 잦아드는
소리는 어둔 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대숲을 쓰다듬는 소리인 듯 합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달빛이 푸른 대통을 어루만지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대금 소리는 아무래도 덩두렷 보름달이 떠 있는 깊은 밤에 풀과 나무들이
곤히 잠들어 있는 숲 속에서 들어야 제 격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대나무통에는 이런 구성진 소리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경준 선생님께서 산조용 대금을 부는 순간, 광풍이 몰아치듯 힘찬 소리에 허공에는
느슨했던 연줄을 당기는 듯한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이 힘찬 소리, 무쇠도 끊어낼 듯한 이 강렬한 소리는 한 여름낮 푸른 대나무에 내리쬐는
이글거리는 태양빛이 아닐까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크지도 작지도 않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유장하게 이어지는 소리는
한 여름 끝도 없이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연상시킵니다.
텅 빈 대 통 속 하나 가득 모아진 빗방울은 연주자의 숨결 닿는 순간 넘쳐 흐릅니다.
꿈에도 그리던 낭군의 손길이 닿은 여인처럼,
우리의 전통 악기가 다 그렇겠지만 유연하면서도 장쾌한 대금 소리 역시 대나무와 바람과
달빛과 태양과 빗방울.....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낸 소리가 아닐까 합니다.
사람은 자연을 닮고, 소리도 자연을 닮았으니 대금 소리가 듣는 이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이 대금 소리는 옛부터 산 사람의 마음만 움직인 것이 아니라 혼백을 부르는 소리이기도 했고,
기적을 일으키는 신의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초자연적인 마법을 구사하는 이들은 요술피리를 가지고 다녔고, 이 소리가
마귀나 귀신을 부리기도 하고 물리치기도 했지요.
페스트로 마을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중세의 유럽에서 피리부는 마술사가 페스트를 옮기는 쥐를
몰아 강물에 빠져 죽게 하는 동화는 너무 잘 알려져 있지요.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에도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일화가 전해져 옵니다.
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루고도 왜구의 침입이 염려되었던 문무왕 김춘추는 바다에 묻혀 해룡이 되었고,
김유신 장군 역시 하늘의 신이 되었지요.
두 분은 저승에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동해의 섬에 대나무를 보냈는데, 이 대나무는 낮에는 갈라져
둘이 되지만 밤에는 하나로 합쳐지는 기이한 나무였지요.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은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게 했는데, 이 피리 소리가 들리면
적군은 물러가고, 아픈 이는 씻은 듯이 병이 낫고 바람과 파도도 잠들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만파식적', 그러니까 모든 파도와 근심을 잠재우는 피리라는 뜻이지요.
이 피리가 정확히 대금의 기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던 우리 조상들 대대로 피리는 영험한
소리, 신의 소리로 받아들여졌던 것이지요.
그래서인가요? 어릴 적 밤에 피리를 불면, 어른들께서 귀신이 나온다며 꾸지람을 했던 기억도
있지요.
다른 우리 악기들은 엉터리일망정 소리를 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음정이 안 맞아도 가야금과 거문고는 퉁기는 대로 소리가 나고, 북과 장고같은 타악기도
정직하게 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대금은 어림 없습니다.
고도의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아예 소리 자체가 나지 않지요.
지난해 회사 선배 한 분이 대금을 취미로 배운지 석달이 됐다고 해서
어떤 노래를 대금으로 연주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대답하더군요
" 노래는 무슨, 이제 겨우 소리가 난다네."
하긴 신의 소리를 훔치는 일이 그리 간단하다면 그게 어디 신의 소리겠습니까?
그래서 대금을 부는 분들은 존경스럽습니다.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대금에 혼을 불어넣을 때면 무언가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대금의 그윽한 소리, 물 흐르듯 유장한 소리는 '풀림'의 문화라는 우리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기도 합니다.
이어령 선생은 우리의 문화를 이렇게 서양의 문화와 대비했습니다.
" 한국의 문화는 서양의 부동자세의 문화와는 정 반대이다.
즉 긴장으로부터 시작된 긴장이 아니라 거꾸로 그렇게 굳어버린 부동자세를 푸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한국인은 몸을 푼다.
이 '푼다'는 것은 그야말로 비생명적인 경화된 기계주의로부터 다시 생명을 회복하고
생명의 율동을 창조하는 방법이었다.
마치 산모가 아이를 분만할 때 몸을 푼다고 하듯이 한국인은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생산하는 것을
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체 그 풀이의 문화란 무엇인가!
이 맺혀 있는 것, 굳어 있는 것, 빡빡한 것을 푸는 힘이다. "
참으로 탁월한 사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풀이의 문화가 우리의 문화라면 해금의 소리야 말로 모든 형태의 긴장과 뻑뻑함과 굳음을 풀어버리는
풀이의 소리입니다.
가슴 속에 응어리진 슬픔과 분노, 고통과 눈물을 모두 풀어 버리는 풀이의 소리입니다.
그것도 그냥 마구 풀어 강물에 흘려보내는 소리가 아니라 정제된 한으로, 신명으로 그리움으로
승화시키는 창조적이고 탐미적인 풀이의 소립니다.
어경준 선생님의 대금 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이 풀림의 문화를 다시 복원할 수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사방을 돌아보면 지금 우리 사회는 구석구석 굳어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정치권도, 기업인과 노동자도, 학생과 선생님도.....
이 굳은 것들끼리 부딪치면서 내는 파열음에 온통 사회가 출렁입니다.
우리 몸과 영혼도 덩달아 뻑뻑하게 굳어 있습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고 감싸주는 부드러움은 온 데 간 데 없고,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극한경쟁이 난무합니다.
갈수록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가는 우리 사회를 유장한 대금 소리가 풀어주기를 기대합니다.
경쟁으로 뻣뻣해져가는 우리의 마음을 그윽한 대금 소리가 녹여주기를 기대합니다.
'만파식적!' 이 멋진 조상들의 대금 소리가 어떻게 신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지요?
지금 우리가 살아 쉼쉬는 이곳에서도 만파식적이 울려퍼지는 날이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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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지난 3월 이병욱 선생님과 협연하셨던 임재원 선생님과 지난달 다른 연주회장에서 들었던
어경준 선생님의 대금 연주를 듣고 쓴 시와 에세이입니다.)
어울 사랑 가족 여러분!
국악을 사랑하기에도 더 없이 좋은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5월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병욱선생님과 어울림 음악과 친해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주변에 널리 알리는 달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라일락 향기가 가던 발걸음 자꾸 멈추게 합니다.
- 여의도에서 goforest -
첫댓글 네 , 선생님, 그 찢어질듯, 끈어질듯 한 대금소리를 들으며 저도 많은세월을 보냈건만 그 속에 이런 깊이가 있었군요, 소리만 들어도 마냥 좋고 모든 망상과 잡념이 사라지게 하던 그 울림-------아름다운 5월이 모든분께 축복이었으면 합니다,
어젠가 읽었던..유익서님의 바람소리라는 소설이 떠오르네요..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