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Ⅶ. 대화동맹(大和同盟)
1. 손영목, 나가자 황민대도(皇民大道)로 우리 청년 장년 동지는 궐기하라
대화동맹 상무이사 손영목(孫永穆) 씨 격(檄)
‘국정참여의 길로’ -이제 반도 2천 6백만의 황민화는 아름다운 결실을 맺어 정치적 처우라는 선물을받아 드릴 단계에 들었다.
국정에 참여하는 그 방법과 그 시기 등에 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발표되지 않았으나 머지않아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우리들로 하여금 다년간 바라고 바라는 소망을 이루는 날이 꼭 올 것만은 확실하다.
시정 30여년의 □□□□로서 머지않아 등장할 이 ‘국정참여의 길’에 대한 반도□□의 감사와 결의는 드높아 지난 11일 □□□을 복하여 경성에서는 내선일체의 총진과 대□□이 있음에 매진하려는 동지□□□로서 대화동맹(大和同盟)이 성대히 결성되어 감동 분기할 제일성을 발하였는데 이날 경성대회를 마치고서 동 대화동맹 상무이사 손영목(孫永穆) 씨는 ‘오직 전쟁을 이겨내기 위하여 특히 감투정신에 불타는 중견청장년의 결속과 분기로서 나가고 싶다’고 다음과 같이 결의를 말
하였다.
“이제 우리들이 뜻하는 바는 동지들의 결합으로 굳게 결속되었다. 중앙당국에서 장차 우리에게 어떠한 모양으로 정치 참여의 길을 열어 줄지 아직 예단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실현될 것만은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며 이번 당국의 이 획기적인 기도에 깊이 감사하는 동시에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자질을 미리미리 각자가 연마하여 두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감동을 가슴에 안고서 대동아전완수에 감투할 온갖 태세를 갖추고 돌격하는 것만이 우리의 본분이란 것을 자각하고 한층 감투하여야 할 것이라는 목적을 오늘 우리들은 동지적 결속으로서 ‘대화동맹’을 결성한 것이다.
이 동맹이 탄생되기까지는 각 방면의 원조와 동지들의 열렬한 지지도 있었지만 금후 이 단체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하여 감투정신에 불타는 중견 청장년층을 전면적으로 포용하여 실전에 매진하려고 하므로 특히 청장년층의 발분을 바라고 싶다.
우리는 정치처우에 대한 어떠한 요구를 하기 위하여 이 단체를 만든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황민된 자질을 더욱 연성하고 이 전쟁을 하루빨리 이길 수 있도록 발분감투함이 있을 뿐이란 것을 거듭 말하여두고 싶다”
<출전: 「나가자 皇民大道로 우리 靑年長年同志는 蹶起하라- 大和同盟常務理事 孫永穆氏 檄」,'매일신보', 1945년 2월 13일>
2. 김사연, 반도 참정의 감격과 요망, 중책완수에 헌신
정치훈련급무 추진력 될 우국지사들, 야나베 에이사부로(矢鍋永三郞) 씨 담(談)
반도에 국정참여라는 최상의 처우를 하게 된 것에서 감사의 감격을 새삼스럽게 말할 여지가 없다 그저 □□가 정치 참여이니만큼 아직 정치적 훈련이 부족한 반도에서는 한결같이 마음을 가다듬어 국정에 대한 연구의 훈련과 더욱 근본문제로서는 황민으로서의 자질을 완성하는데 전력을 바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국정에 실제로 참여될 때까지 부족한 점을 충분히 보충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을 의정단상으로 보내느냐는 것이 벌써 여기저기서 논의되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절대로 젊은 사람을 보내고 싶다.
소위 명사 축에 든다는 사람은 불가하다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국정의 전체를 붙잡아 나갈 만큼 진심으로 연구심이이 있는 □□□□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우국지사를 내어 보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여러 가지 객관적 조건을 생각할 것 없이 이런 사람이라야만 국정에 □추천함이된다는 것이다. (사진은 야나베 씨)
중책완수에 헌신 참된 지도인물을 선출, 김사연(金思演) 씨 담(談)
처우 개선의 첫 번 발표를 보자 나는 반도재주인들에게도 참정(參政)의 길이 열릴 것을 확신하였다.
과연 고이소(小磯) 총리 이하 정부측의 획기적 시책에 의하여 한국병합이래 전 반도가 갈망해 오던 현안이 실현된 것인데 이제 우리들을 오로지 황민된 긍지(矜持)를 가지고 중한 책임을 다하기에 몸을 바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제정된 이십□□을 뽑아 보낼 때는 사리사욕을 □□하여 민중을 사랑하고 국가의 흥망을 □□나을 책임감이 두터운 사람을 뽑아야만 할 것이다. □□ 지금은 새로운 세기의 역사를창조하는 전시이므로 전력□□□□□□ 될 수 있는 인물이라야 □□□□ □□을 먼저 태평양전국을 □□바라보고 깊이 □□하여 반도 등□□ 이끌어나갈 □□지도자라야 할 것이다.
(하략)
<출전: 「半島參政의 感激과 要望, 重責完遂에獻身-참된指導人物을選出, '매일신보', 1945년 3월 21일>
3. 윤치호, 성려황공(聖慮惶恐) 적성(赤誠)으로 봉부(奉副)하자
황공하옵게도 참정(參政)의 큰 길을 2천 6백만이 활보해 나갈 수 있는 조서를 내리옵심에 우리들 반도의 민초는 그 감격 황공함을 금키 어려운 바가 있다. 이로써 훌륭한 황국신민이 된 우리는 더 한층 성려에 보답할 길을 찾고 오직 황국의 훙륭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 이날의 감격과 각오를 대화동맹 이사장 이동치호(伊東治昊) 씨에게 들어보기로 한다.
대화일치(大和一致)로 정신(挺身)을, 이동치호(伊東治昊) 씨 담(談)
대화동맹(大和同盟) 이사장 이토(伊東致昊)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황송하옵시게도 조선재주민의 국정참여에 대한 대조(大詔)를 환발(渙發)하옵신 것을 성려(聖慮)의 성원하옵심으로서 진실로 고구 감격하온 바이다.
돌아보건대 시정 겨우 30여년으로 지난번에는 징병제가 실시되었고 이번 또 국정에 참여할 길이 열리게 된 것은 전혀 역대 총독이 성지(聖旨)를 받들어 정성껏 조선을 통치해준 덕택으로서 내선의 동조동근동운명(同祖同根同運命)의 열매는 이에 맺어진 것이다.
전국은 한순간이나마 안심을 허락하지 않는 공전의 국난에도 우리 2천 6백만은 대한일치전력을 다하여 황유(皇愈)를 익찬하여 받들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같이 순국의 정신을 가지고 1억이 한 덩어리가 되어 총후의 전 직역을 동원하여서 미영(米英) 격멸에 정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불초는 앞서 대화동맹을 결성하고 종전과 같이 손을 잡고 시난 극복에 매진하기로 되었는데 오늘 조서를 봉대하여 □충분기하여 하루라도 속히 성전완수에 정진하여서 성은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각오를 새로이 하는 바이다.
<출전: 「聖慮惶恐赤誠으로 奉副하자-伊東致昊 大和一致로挺身을, 心身을 바처 奉副-다만 實質向上에努力」, '매일신보', 1945년 4월 3일>
4. 활동 관계 기사
4-1)
다만 신뢰와 감사로 거두고온 성과 다대(多大), 처우감사위원 귀환보고 강연회 성대앞서 □□는 조선대만재주동포에 대하여 행정과 정치적인 처우 개선을 단행할 것을 단언하였다.
조선동포에 내린 ‘어버이의 마음’에 우리는 무엇으로써 보답하여 나갈 것인가. 이에 지난 1월 30일 반도2천 6백만을 대표하여 이동치호(伊東致昊)옹을 비롯하여 처우감사동상위원(處遇感謝同上委員) 일행 6명은 중앙 정부와 역대 총독과 총감 또는 조선과 관계가 깊은 요로자들을 역방하고 감격과 감사를 표명하고 24일 아침 무사히 돌아왔다. 이에 대화동맹(大和同盟)에서는 27일 오후 4시부터 부내 태평통 부민관 중강당에서 귀환보고 강연회를 열었다. 강연회에는 부내 내선(內鮮)의 유지의 유식층을 비롯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梨花女專)의 단체 청강 등 처우개선에 대한 감격의 찬 만당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노구로, 적기가 매일 같이 넘나드는 일본 곳곳에 가서 소임을 다하여 반도의 진의를 유감없이 떨치고오기까지의 세세한 보고는 한(韓) 조선연맹 총장의 개회사에 이어 82세의 좌옹(佐翁) 이도(伊東) 동상위원단 단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충심의 감사전달 이동(伊東) 단장
지난 1월 17일 이곳 부민관에서 전선대표의 처우개선 감사대회가 열리어 그때의 결의에 의하여 우리는 반도의 뜻을 대표하여 일본에 감사를 표명하고 돌아왔다.
이 기회에 이세(伊勢)신궁을 비롯하여 가지바라(□原)신궁 모모야마(□□)어능에 두루 참배를 하고 고이소 수상을 비롯하여 역대 총독 총감 민간 대표자들과 만나 반도의 진심에서 우러난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떠나기 전 후에야 처우개선의 범위와 종류도 모르는데 무엇을 감사할 것이냐는 □□을 들은 일이 있다.
그 □□ □□ 우리가 범위 또는 □□는가 □□되 뒤에 □사를 □□ 다함은 그것은 개선한 것에 □□ □사와 □□중앙 정부에
대□□또는 당국의 어버이 마음에 대한 감사가 아니기 때문에 □□는 □□에 감사하려□□□ 그러기 때문에 오직 □□□하였을 따름이지 □□□□지는 않았다.
수상관저에 갔을 적에 그때는 마침 고다마(兒玉)문부대신이 들어와 이날 정부처우 조사회 제1부회(귀족원관계)에서 처우개선위원안이 가결되었음을 말하였다. 이때 웬만하면 우리는 그 내용이 무엇인가 하고 들었을 것이나 아무도 묻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처우 개선의 큰 정신에 오직 감격과 신뢰하는 마음으로써 중앙당국 또는 요인들에 감사를 말하여 예기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고 왔다고 생각하고있다.
이는 곧 우리의 생각인 동시에 여러분의 생각인줄로 안다.
우리가 있는 동안 각 방면에서 아끼지 않고 끼쳐 준 친절은 일행에 뿐만 아니라 결국 반도 동포에 보내는 친절일 것으로 충직으로 감격하여 마지않는 바이다라는 이도 단장의 인사말에 이어 조선물류영단(朝鮮物類營團) 와다나베(渡邊□□□)이 사장으로부터 ‘사명을 다하고’라는 연제로
사명을 다한 광영 - 와다나베(渡邊) 위원
……(판독불가)……
가열한 결집 단체로 말미암아 아무런 반응이 없게 되어 오직 반도에 큰 주목을 가지고 있던 중 경성(京城)에서 전선대회가 열리고 다시 의원단의 □□하게 □에 있어서는 참으로 반가워하고 기쁨으로써 환영해 주었다.
따라 우리는 의단 조선뿐 아니라 대만까지 □□ □그의 대표라고 하여 □ 과언이 아니었다.
이로써 처우 개선에 어떠한 태도이었는가 □□□에 충분히 알렸다고는 했다.
처우 개선에 대한 심의 내용은 각의에서 결성된 후 담담 각 방면에서 실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정치적 행정적 두 가지 처우 개선이 있을 모양인데 일본에 있는 반도 동포는 먼저 행정적 대우개선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 처우는 수상을 회장으로 한 조사회 안에 귀족원과 중의원관계의 □□은 위원회를 두고 이 문제를 토의 하여 원안을 결정하기로 되어 있다.
우리가 있는 동안 귀족원 위원회는 끝나고 중의원 측은 다 소심의가 늦은 듯 하였으나, 이도 근근 순조로이 진척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 내용은 알 수도 없고 말할 필요도 없다 이도 단장은 일본 곳곳에서 말하길
(가) 이번에 우리가 온 것은 정부의 고마움에 대하여 감사를 말하러 왔지 무슨 요구를 하러 온 것은절대로 아니다.
(나) 현재 우리 일본이 유사 이래의 숙난을 당하고 있는 이때 반도인으로서 처우에 대한 것을 요구한다면 이것은 불충일 것이다. 이것은 곤란을 겪고 있는 개인에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도덕상 어긋나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을 스스로 정부에서 고려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모르겠다.
(다) 따라서 조선 동포는 처우개선의 범위와 종류 등에 대하여 추호만한 불평과 불만이 있을 수는없다.
만약 우리의 기대에 맞지 않는 내용이라면 우리는 이에 대하여 불만을 말하기 전 우리를 다시한번 반성하□□□□□□□□ 나는 선배와 이 말에 오직 감격하여 마지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처우개선에 한 가지 내선인은 서로 생각하여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대국적인 견지에서 이해하고 협조하며 양보하여 나아가야하겠다.
이 처우 문제는 결코 요즈음 생긴 것이 아니라 메이지(明治) 43년(1910년)의 병합조서의 성지(聖旨)의 대정(大正) 8년(1919년)의 어조서에 일시동인(一視同人)이란 말씀의 어성지를 받들어 역대 총독, 총감 등이 이에 □□□□□□□□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아(大我)를 위하여 나아가야 할 줄 안다.
동양인으로서의 본분을 찾아 나아감이 의당 할 것일 줄로 알고 이런 생각이 우리들 중에 깊어가고 한편 일본 각 지에도 널리 오해 없는 이해가 있어야 할 것에 대하여 말하고 왔다
는 뜻의 억양 있는 말로 내선은 대화일지의 지성을 가져야겠다는 말이 있고 다시 가나가와(金川聖) 본사 사장이 ‘공습하의 한달’이란 연제로 등단하여
(후략)
<출전: 「다만信賴와感謝로거두고온成果多大, 處遇感謝委員歸還報告講演會盛大」,'매일신보', 1945년 3월 1일>
4-2)
신궁(神宮)에 감사 참배, 대화동맹서 조서(詔書) 봉독식
반도 민중에 대한 처우개선과 함께 일찍부터 반도의 유지명사들의 발기로 조선의 대화동맹(大和同盟)에서는 국정참여의 황감하옵신 조서(詔書)를 환발(渙發)하옵신 성은에 봉부(奉副)하고자 9일 오전 10시부터 이도(伊東) 이사장의 역원 등 20여 명이 조선신궁(朝鮮神宮)에서 참배, 조선봉대 감사 봉고를 한후 성지를 받들며 황은에 봉답할 것을 신전에 맹서한 다음 다시 11시부터는 장곡천정 공화당에서 조서봉독식 □□ □□□□ □□□□□□ 식상에서 민□ 궁성을 요배하고 ‘이도-’이사장이 조서를 낭독한 다음□□가 □□□□으로 식을 마치어도 □□□□맹의 □□회 황민으로서의 □□야 □□식으로 이□□□ 개□것을 □□하고 11시 반에 폐회하였다.
<출전: 「神宮에感謝參拜, 大和同盟서詔書奉讀式」, '매일신보', 1945년 4월 6일>
Ⅷ. 조선언론보국회
1. 설립 관계 기사
1-1)
언론보국회 결성, 재성(在城) 유지들이 합동발기인회
대동아전쟁 완수를 위하여 사상전의 투사로서 큰 사명을 지고 나서는 언론지도층의 임무는 오늘처럼 더 큰 것이 없다. 조국의 대이상을 드높이고 대동아건설에 몸을 바치기에 언론의 힘을 한데 뭉쳐 사상전의 승리를 꾀하고자 재성(在城) 유지 50여 명이 조선언론보국회 결성발기인이 되어 15일 오후 3시부터 태평통 체신회관에서 발기준비회합을 열었다. 이 발기인회는 요꼬미조(橫溝光暉), 카마다(鎌田澤一郞), 스즈키(鈴木武雄), 금촌팔봉(金村八峰)8), 쓰다(津田剛), 나까야스(中保與作), 송촌굉일(松村紘一),9)석전경조(石田耕造),10) 니와 세이지로(丹羽淸次郞), 정인익(鄭寅翼) 씨 등 20여 명이 모여 먼저 국민의례를 한 후 요꼬미조 씨를 좌장으로 추대한 다음 정인익 씨로부터 발기인을 대표하여 전시하 언론인들의 분기와 그 사명의 중대성을 설명하고 오늘에 이르러 조선언론보국회를 발기하게 된 취지를 말하는 인사가 있었다.
계속하여 석전경조(石田耕造) 씨로부터 발기인회를 열기까지의 경과보고가 있고 나서규약 설명이 있었다.
이어서 가마다 씨와 나까야스(中保與作) 씨로부터 규약과 사업에 관한 추후연구를 진행할 것에 대한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위원회와 발기총회 개최에 관한 것을 일단 준비위원을 정하여 위임할 것을 결정한 후 4시 반경 산회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선정된 준비위원은 다음 제씨로 결정하였다.
▲ 나까야스(中保與作) ▲ 쓰다(津田剛) ▲ 고전신일랑(高田信一郞) ▲ 석전경조(石田耕造) ▲ 금촌
팔봉(金村八峰) ▲안흥성환(安興晟煥)11) ▲ 박인덕(朴仁德) ▲ 스즈키(鈴木武雄) ▲ 카마다(鎌田澤一郞)
▲ 후츠우카이(鵜飼信成) ▲ 사이토(道祖土剛) ▲ 정인익(鄭寅翼)
<출전: 「言論報國會結成, 在城有志들이 合同發起人會」, '매일신보', 1945년 2월 17일>
1-2)
총력전에 선구(先驅)될 사상전사 필승의 진(陳), 어제 언론보국회 감격의 발회식
‘붓은 칼보다 강하다!?’ 본토 결전의 풍운이 어지러운 정세 아래 적 미영은 무력전과 아울러 사상모략의 형체 없는 폭탄을 우리에게 던지려 하는 이때! 조선언론계의 총력을 뭉쳐 2천 6백만 마음의 무장을 철벽같이 굳게 하려는 조선언론보국회의 역사적 발회식은 감격도 새로운 대조봉대일인 8일 오전 10시부터 부내 부민관 중강당에서 엄숙 성대히 거행되었다.
내빈석에는 엔도(遠藤) 정무총감, 조선군관구사
8) 김기진(金基鎭)의 창씨명.
9) 주요한(朱耀翰)의 창씨명.
10) 최재서(崔載瑞)의 창씨명.
11) 이성환(李晟煥)의 창씨명.
령부참모장 후꾸자와(福澤), 경성재근해군무관 니시히로(西廣) 경무국장, 아마가스(甘粕) 연맹12) 차장,구라시게(倉茂) 일본부인회조선본부 총장, 하다(波田) 중장 등이 열석하였고, 발기인측으로는 가산린(佳山麟)13) 씨, 요꼬미조(橫溝) 경일14) 사장, 사이토(齊藤) 상공 사장, 가나가와(金川, 김성근) 본15) 사장등 - 조선의 언론전선에서 활약하는 원로중진들 약 백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식은 먼저 국민의례, 국가합창으로부터 시작되어 이토(伊藤憲郞) 연맹총무부장 씨가 □가선전의 대조를 받들어 봉독하고 나까야쓰(中保) 경일 부사장의 간단한 인사가 있은 다음 좌장에 이도겐로씨를 천거하였다.
그리고 본회의 3대 강령과 규약을 만장박수로 가결하고 이어서 본회장에 가산린 씨를 추대하였다.
다음은 엔도 정무총감이 별항과 같은 고사를 읽은 후 다시 가산린 회장이 언론전선의 진두에 나서는 기백을 엿보이며 등단!전국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이때, 어느 모로 보든지 국민의 정신력이 강해야만 된다.
대동아 전쟁 이래 ‘일억일심’의 소리가 높이 외쳐 왔지만 그 ‘일억일심’의 참뜻은 결국 우리 국체 본의에 귀일하는 정신이다.
이번에 독일이 넘어진 원인은 무엇보다도 일본과 같은 국체가 아니라는데 있을 줄 믿는다.
독일의 전의의 중심이 된 ‘히틀러’ 총통도 한 사람의 영웅에 지나지 않았다.
한 때의 꽃으로 피었다 져버리듯 영원한 생명력이 없이는 세계를 지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언론’이라는 것은 총력전의 예리한 무기인 동시에 사상전에 석탄도 될 수 있고, 기름도 될 수 있다.
정당한 언론전을 펼치고 밖으로는 적을 물리치며 안으로는 내선일체의 이상을 구현하여 그 사명 달성에 매진하겠다.
나는 몸은 늙었으나 다시금 청춘으로 돌아가 온갖 정성을 기울여서 제군과 함께 전진하겠다고 열화같이 신념을 토로하여 만당의 감분을 자아내었다.
다음 정인익 씨로부터 역원의 이름을 발표하고 축사로 들어가 총리대신(中保 경일부사장 代讀), 정보국 총재, 조선군관구사령관, 진해경비부사령장관, 국민총력연맹 사무국총장, 일본언론보국회 도꾸도미회장 등 조선언론보국회의 씩씩한 장도를 비는 격려의 축사가 있은 다음 황군장병에게 보내는 ‘감사결의전문’을 만장기립으로 가결하고, 석전경조(石田耕造)16) 씨가 나아가 별항과 같은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끝으로 국민서사를 제송하고 우미유까바17)를 합창한 후 요꼬미조 경일사장의 선창으로 성수만세를 봉창하여 전 언론인의 필승결의를 폭발시키는 가운데 식은 끝났다. 역원의 씨명은 다음과 같다.
역원(役員)
▲ 회장 가산린(佳山麟)
▲ 이사장 나까야스(中保與作)
▲ 사무국장 정인익(鄭寅翼)
12) 국민총력조선연맹.
13) 최린의 창씨명.
14) 경성일보.
15) 매일신보.
16) 최재서의 창씨명.
17) ‘바다로가면’, 천황에 충성을 바치며 죽기 전에 부르는 노래.
▲ 상무이사 후츠우카이(鵜飼信成), 석전경조(石田耕造) 희다의(喜多毅), 소원창삼(篠原昌三), 쓰다(津田剛), 안흥성환(安興晟煥),18) 산중대길(山中大吉)
▲ 이사 천성활란(天城活蘭),19) 적원천남(荻原淺男), 금촌팔봉(金村八峰),20) 고전신일랑(高田信一郞), 학산두헌(鶴山斗憲),21) 덕산백순(德山白洵),22) 영하인덕(永河仁德),23) 삼천태악(三川泰嶽),24) 류광렬(柳光烈)
▲ 고문 □□□□, 이동치호(伊東致昊),25) 금천(金川),26) 매신사장(每新社長),27) 감자(甘蔗)방송협회장, 창무(倉茂)소장 서광(西廣)경무국장, 송월성대(松月城大)28) 법문학부장, 산구(山口)인사부장(교섭중), 요꼬미조(橫溝) 경일(京日)29)사장
▲ 참여 안인식(安寅植), 이집원겸웅(伊集院兼雄), 김본동진(金本東進),30) 함상훈(咸尙勳), 공산부웅(公山富熊),31) □□□□ 고령흥우(高靈興雨),32) 광전종욱(廣田鍾郁),33) 박희도(朴熙道), 송촌굉일(松村紘一),34) 대암화앙웅(大岩和昻雄), 화전전오랑(和田傳五郞)
▲ 평의원 상전용남(上田龍男),35) 소창정태랑(小倉政太郞), 대조실신(大朝實臣),36) 차재정(車載貞),옥강선진(玉岡璿珍),37) 복택영자(福澤玲子),38) 성야상하(星野相河),39) 궁본정섭(宮本晶燮),40) 궁본윤종(宮本允鍾),41) 유진오(兪鎭午), 이충영(李忠榮), 이원영(李元榮), 국본창수(國本昌洙)42)
▲ 명예회원 안재홍(安在鴻), 석삼구미(石森久彌), 소전성오(小田省吾), 카마다(鎌田澤一郞), 가등염평(加藤廉平), 향산광랑(香山光郞)43), 국지겸양(菊池謙讓), 오촌승우(梧村升雨)44), 홍명희(洪命憙), 최남
18) 이성환의 창씨명.
19) 김활란의 창씨명.
20) 김기진의 창씨명.
21) 학산헌(鶴山憲)의 오기, 김두헌(金斗憲)의 창씨명.
22) 최백순(崔白洵)의 창씨명.
23) 박인덕(朴仁德)의 창씨명.
24) 신태악(辛泰嶽)의 창씨명.
25) 윤치호(尹致昊)의 창씨명.
26) 이성근(李聖根)의 창씨명.
27) 매일신보 사장.
28) 경성제대.
29) 경성일보.
30) 김동진(金東進)의 창씨명.
31) 이영준(李榮俊)의 창씨명.
32) 신흥우(申興雨)의 창씨명.
33) 이종욱(李鍾郁)의 창씨명.
34) 주요한(朱耀翰)의 창씨명.
35) 이영근(李永根)의 창씨명.
36) 박남규(朴南圭)의 창씨명.
37) 옥선진(玉璿珍)의 창씨명.
38) 송금선(宋今璇)의 창씨명.
39) 배상하(裵相河)의 창씨명.
40) 이정섭(李晶燮)의 창씨명.
41) 이윤종(李允鍾)의 창씨명.
42) 이창수(李昌洙)의 창씨명.
선(崔南善), 스즈키(鈴木武雄), 영천수남(鈴川壽男), 송진우(宋鎭禹), 장덕수(張德秀), 니와 세이지로(丹羽淸次郞), 화산대의(華山大義), 서원종린(瑞原鍾麟)45), 유억겸(兪億兼), 여운형(呂運亨), 와타나베(渡邊豊日子)
강령
- 조국(肇國)의 대 정신을 현양(顯揚)하고 성전 완수에 매진함
- 내선일체의 이상을 구현하고 대동아건설에 정신(挺身)함
- 언론의 총력을 결집하고 사상전에 감투함
모략격파(謀略擊破)에 정신(挺身)
선언
앞서 독일은 불행히도 그 웅도절반(雄圖折半)46)에서 패하고 ‘앵글로색슨’의 제국주의적 세계제패에 대한 하나의 유력한 제동기는 좌절되었다. 구주전쟁(歐洲戰爭)47)은 종료하였으나 우리의 희구하여 마지않는 신질서는 마침내 오지 않고 유럽은 역시 예측할 수 없는 혼미 중에 실락되었다.
물량으로 하면 어떠한 비도라도 통할 수 있는 교만불손한 적 ‘아메리카’는 그 여세를 거두어 우리에게 쇄도하고 있으나
신주의 절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이 절벽 앞에서 적이 붕괴되지 않는다면 ‘앵글로색슨’의 야만한 본능이 주저 없이 발굴되어 살육과 파괴와 착취와 능욕의 지옥도회(地獄圖繪)가 십억의 민족 위에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수 세 기간 문명과 질서와 도의와 윤리는 이 세계를 떠나 인류는 또다시 암흑 속에 그 정상한 발전이 저지 받을 것이다.
오키나와(沖繩) 공방전은 이제야 절정에 달하여 적은 그 주력을 여기에 던짐과 동시에 우리 전력을 파쇄하여 우리들의 전의를 상실시키려고 본토에 대하여서는 광폭한 무차별 폭격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적 미영들아! 알아라! 동양의 뜻은 결코 너희들의 물력의 앞에 굴치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현재 우리가 싸우고 있는 전쟁이 세계의 역사와 인류의 행복을 여하(如何)히 중요한 전의를 가지고 있는 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적 미영이여! 너희들은 오키나와(沖繩) 주변에서 우리 특별 공격전의 무서운 전력을 □□하였을 것이다.
몸소 □□에 타고도 흔연히 □□□의 위에서 □□하는 저 신취(神鷲)들의 정신력을!
그러나 이것이□□서만 있는 것이라고 □□하여서는 안 된다. 아등 일억 국민은 모두 이러한 정신으로써 여등에게 대
하고 있다. 무차별 공격에 의하여 아등의 전의가 좌절되리라는 것 같은 달콤한 생각을 버리는 것이 마
43) 이광수(李光洙)의 창씨명.
44) 이승우(李升雨)의 창씨명.
45) 이종린(李鍾麟)의 창씨명.
46) 웅대한 계획이 중간에 끝남, 즉 독일이 세계를 제패하지 못 했다는 것을 의미.
47) 제1차 세계대전을 뜻함.
땅할 것이다. 우리들의 도시는 혹은 화염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염념(炎炎)한 화염은 즉 동양의 분노의 화염으로 알아라. 그 분노의 화염은 여등의 살이 타고 뼈가 재로 될 때까지 타고 또 탈것이다.
돌아보건대 아등 언론인은 아름다운 황국의 전통을 지켜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왔다.
그러나 지금 아등은 애국의 지정(至情)을 막을 수 없는 것을 느낀다. 원래 애국의 지정(至情)이 스스로 발로하여 언론이 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국민 의사의 원동력이며 국민 조직의 유대이다. 국가 위급의 이때를 당하여 우리들 언론인은 우리 동포의 전의를 북돋우는 기름이 되고 일억 동포를 철석과 같이 굳게 단결시키는 기재가 되려고 하는 바이다. 또 만약 적의 모략이 우리 주위에 침범하여 오면 우리는 몸으로써 그 마수를 절단하여 버릴 터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전선의 특공용사의 뒤를 이어 사상전에 정신 감투할 것을 깊이 기(期)하는 바이다.
우(右) 결의함
1945년 6월 8일
조선언론보국회원 일동
황군감사결의문(皇軍感謝決議文)
이제 전국(戰局)의 위급은 나날이 그 도를 가(加)하여 오키나와(沖繩)의 전세는 역도(逆睹)를 불허하며 적기의 내습 또한 빈번하여 피아 결전의 □상은 더욱더 심각을 극하고 있다.
그러나 황군은 전선수만리, 육해공에 결사전투 수소(隨所)에 경적(勁敵)을 격퇴하며 큰 전과를 □함은 바로 감하, 황군장
병 지성진충의 무□(武□)에 의한 것으로 전 국민의 감사감격을 불조(不措)하는 바이다.
금일 조선언론보국회 결성식에 즈음하여 참회자 일동 육해군 특별공격대의 충성을 본받어 분격(憤激)을 새롭게 하여 언론보국에 노력하고 써 황군 비궁(匪躬)의 충절에 감하여 속히 성전의 목적을 달성키를 기한다.
이에 중의(衆議)로써 제국 육해군의 위훈에 대하여 심원한 감사의 뜻을 표함과 동시에 아울러 충왕의 마귀신을 통곡시키는 기다숭고(幾多崇高)한 장병에 대하여 성간(誠懇)한 경조(敬弔)의 □를 표한다.
우(右) 결의함.
1945년 6월 8일
조선언론보국회원 일동
<출전: 「總力戰에 先驅될 思想戰士必勝의 陳, 昨日 言論報國會感激의 發會式」,'매일신보', 1945년 6월 9일>
2. 활동 관계 기사
2-1)
마음을 총무장, 멸적에 열화의 사자후
(전략)
조선언론계를 총망라하여 결성된 조선언론보국회에서는 15일 오후 7시 반부터 부내 부민관 대강당에서 결성 후 최초의 언론총진격대 강연회를 열고 동회장 가산린(佳山麟)씨를 비롯하여 동회 이사 제씨의 □□□□하는 듯한 분격의 (중략) 청중에 보다 큰 감격과 감명을 주었다. 먼저 향산광랑 회장은 (중략) 이 비상한 때를 맞이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마음의 준비를 굳게 할 필요가 있음을 절실히 느끼는 바로 이제 다음의 세 가지에 대한 말을 하여 여러분의 필승신념을 촉구하고자 하는 바이다.
첫째, 우리는 좀 더 고난에 견디어내야겠다. 우리는 여러 가지의 고난을 받고 있다고 하겠지만 앞으로는 전국의 진전에 따라 일억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전선에 나서게 되는 일이 있을 것인데 이제껏 생각하던 곤란 이상으로 개인의 고난은 더할 줄 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리부터 고난을 감내할만한 기백을가져야 한다.
감내하기 어려운 고난을 이겨내어야 비로소 성공이 있는 것이다. 생명을 대의에 순하여야 하는 이때에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곤란이 있더라도 처 물리치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희생을 아껴서는 안 된다. 반도인 사회를 보면 아직도 개인만을 생각하는 생각 또는 자유주의가 남아 있다느니 보다도 그대로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희생은 성공과 표리가 같은 것으로 희생이 없는 곳에 성공이 있을 수는 없다.
우리의 모든 것은 국가의 것인 만큼 국가의 것을 쓸데없이 아낀다는 것은 비국민의 태도이라고까지 극단적으로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성전완수에 바쳐야 할 때는 온 것이다. 희생을 두려워 말고 총후는 나서야 한다.
그리고 셋째로는 국가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라. 듣건대 머지않아 조선에도 국민의용대가 결성된다는데 이에는 특히 국민 된 자는 모름지기 규율을 지켜 국가의 지상명령에 절대 순종하여야하겠다.
엄격한 규율 아래 군관민 일억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일사봉공의 특공정신을 발휘하도록 하여야 한다.
끝으로 한 말할 것은 옛날 지나의 철학자 노자는 말하길 (중략)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짓이라고 한 말이 있는데 이는 중용을 잃은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한 말이다. 그
러므로 우리들 언론보국회 보다 더 중정(中正)한 필승의 진리만을 힘 있게 말하여 어리석음이 없는 언론으로 적격멸에 나서려 한다.
언론보국회의 힘찬 발족과 아울러 군관민일체로 나아갈 것을 힘있게 외치고 이어 동회 이사장 나까야스(中保與作) 씨가 ‘본토결전의 신기는 온다’라는 연제로 다시 동회 이사 야스오끼(安興晟煥)48)씨가 ‘국민의용대에 대하여’, 끝으로 성대교수 스즈끼(鈴木武雄) 씨가 ‘우리들 몸소 싸우리’라는 제목으로 적의 폭악성을 말하고 나아가 적을 반드시 쳐부수기 위하여 전 국민이 출격하는 특공대의 마음으로 생산에 보급에 총력발휘에 있는 힘을 다 바쳐 나서지 않으면 안될 것을 조리있게 말하고 동 9시가 지나도록 설전을 전개하여 청중의 다대한 감격을 자아내었다.
<출전: 「마음을 總武裝, 滅敵에 熱火의 獅子吼」, '매일신보', 1945년 6월 17일>
48) 이성환(李晟煥)의 창씨명.
2-2)
본토결전설봉진(本土決戰舌鋒陣), 전선에 언론전사파견
조선언론보국회에서는 각 지방 신문사와 공동주최(강원도와 충북은 본사와 경성일보 공동주최)로 20일경부터 경기도를 제외한 각 도의 주요한 도시로 언론전사 40여 명을 파견하여 ‘본토 결전과 국민의용대 대강연회’를 개최하고 ‘미영의 야망과 동아의 운명’, ‘본토 결전과 국민의용대의 사명’에 대한 제목으로 동아 10억 민중의 짊어진 국민의용대의 새로운 사명을 외칠 터이다. 그런데 연사와 개최지는 다음과같다.
▲ 충북도(청주, 충주, 조치원) 석삼구미(石森久彌) 안흥성환(安興晟煥)49) 상전용남(上田龍男)50)
▲ 충남(대전, 논산, 강경, 공주) 가등염평(加藤廉平) 정인익(鄭寅翼)
▲ 전북(전주, 남원, 이리, 군산) 화전전오랑(和田傳五郞) 국본창수(國本昌洙)51)
▲ 전남(광주, 순천) 나까야스(中保與作) 고견현일랑(高見玄一郞) 대조실신(大朝實臣)52)
▲ 경북(김천, 대구, 경주, 안동) 적원천남(荻原淺男) 금촌팔봉(金村八峰)53)
▲ 경남(미정)
▲ 황해(해주 재령 사리원 황주) 옥강선진(玉岡璿珍)54) 학산헌(鶴山憲)55)
▲ 평남(평양 진남포 순천) 좌등태순(佐藤泰舜) 석전경조(石田耕造)56)
▲ 평북(미정)
▲ 강원(철원, 춘천, 강릉, 삼척) 히로에(廣江澤次郞) 덕산백순(德山白洵)57)
▲ 함남(원산 함흥 흥남 단천) 고전신일랑(高田信一郞) 천야도부(天野道夫)58)
▲ 함북(성진 청진 회령 나진 웅기) 영목무웅(鈴木武雄) 후츠우카이(鵜飼信成) 차재정(車載貞) 동생일웅(桐生一雄)59)
<출전: 「本土決戰舌鋒陳, 全鮮에 言論戰士派遣」, '매일신보', 1945년 7월 19일>
49) 이성환(李晟煥).
50) 이영근(李永根).
51) 이창수(李昌洙).
52) 박남규(朴南圭).
53) 김기진(金基鎭).
54) 옥선진(玉璿珍).
55) 김두헌(金斗憲).
56) 최재서(崔載瑞).
57) 최백순(崔白洵).
58) 현영섭(玄永燮).
59) 인정식(印貞植).
Ⅸ. 황도학회
1. 움직이는 지식부대 -황도학회 발회식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실천하자면 우리는 먼저 일본정신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하겠고 일본 정신을 깨닫자면 먼저 그 본원이 되는 ‘황도’를 받잡아 알아야 하겠다 하는 생각 아래에서 공부한 지식인들이 모여서 지난 12월 25일 오후 3시 경성 부민관 소강당에서 황도학회 결성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날 부민관 집회실에는 정각 전부터 학계, 문단, 영화, 음악, 교육 방면에 있는 저명한 여러분이 모여들고 내빈으로 시오바라(塩原) 학무국장, 우가와(鳥川)총력연맹총무부장, 가와고에(川越)조선군참모,마츠모토(松本) 성대(城大)1)교수, 가쓰라(桂) 총독부사회교육과장, 가바(蒲) 조선군보도부원 이하 여러내빈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정각이 조금 지나 회장에 착석한 일동은 궁성요배, 묵도, 황국신민서사 제창이 있은 다음 발기인 대표로 향산광랑(香山光郞)2) 씨의 학회설치의 취지와 경과보고가 있고, 취지와 규칙을 심의결정한 후 역원 선거를 마치고 내빈 제씨의 축사와 마쓰모또 교수의 강화가 있었으며 시오바라 국장의 발성으로 만세를 삼창 한 후 산회하였습니다.
창립된 황도학회는 곧 제1차 사업으로 이번 1월 18일부터 부내 죽첨정(竹添町) 대화숙(大和熟)에서 황도강습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는데, 매일 저녁 두 시간씩(1주 4일 개강) 강좌를 베푸는데 강사는 이 방면의 권위 제씨를 망라하여 마쓰모도 교수, 오다까 교수 등 성대 교수와 총독부 조선군 방면에서도 대표자의 강의가 있을 것이라 하는 바, 희망하는 이는 부내 죽첨정(竹添町) 3정목(丁目) 대화숙(大和熟)으로 기별하면 참가 수속을 알려드릴 것입니다.
이에 발기 취지와 발기인, 역원 제씨의 이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황도학회 취지서
내선일체는 이미 작성된 사실입니다마는 그 다음으로 생각하는 바는 반도인 우리들이 일본정신, 즉 황도(皇道)를 배워 깨닫는 것이올시다. 본시의 조선사람 그대로는 우리는 황국 신민이 될 수가 없습니다.
황도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우리는 참으로 황국신민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이 먼저 황도를 깨달아 받잡고 또 신도(臣道)를 실천하며, 힘을 합하고 직분을 분담하여 2천 6백만에게 황도가 철저해지도록 노력하지 않으며 안 되겠습니다. 이 일은 대단히 긴급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들 동지자가 서로 모여 황도학회를 발기한 바올시다.
반도의 지도자 되시는 여러분으로부터 힘써 참가하심을 바랍니다.
본회의 목적은 황도의 학습에 있으므로, 첫째 회원 자신을 위한 강습회, 강연회를 열어서 고사기(古事記)·일본서기(日本書紀)·축사(祝詞)·선명(宣命)·성칙집(聖勅集) 등 일본 정신의 근원이 되는 국전(國典)과 국사(國史)·국문학(國文學) 등의 강좌를 듣기로 합니다.
둘째로는 일반 민중에게 이 정신을 보급시키기 위한 사업을 합니다.
1) 경성제국대학을 뜻함.
2) 가야마(香山光郞), 이광수(李光洙)의 창씨명.
셋째로는 신궁신사의 참배를 스스로 실천하며 또 장려합니다.
이상, 세 가지 다 본회의 사업입니다.
그런데 위에 말씀한 황도학습은 참으로 긴요절실한 바로서 이 사업의 지속 여하에 의하여 내선일체의 완전한 실현의 지속이 결정될 것이며, 또 고도국방국가(高度國防國家)의 국민으로서 반도인이 응분의 총력을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도의 지식계급, 지도계급의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지지 마시고 이 운동에 참가하시기를 바라는 바이며 이미 황도에 통하신 분도 다른 동포를 위하여 참가하심을 바라는 바입니다.
아직 황도에 관하여 수양이 없으신 분은 나이나 사회적 지위의 여하를 불문하고, 또 남자 여자를 불문하고 가장 겸손되고 경건하며 진지한 학습자로서의 기분으로 참가하시기를 바라는 바올시다.
1940년 12월 1일
여러분께
황도학회 발기인(無順)
송산세정(松山世禎)3) 신도순(辛島純)4) 서원성(瑞原聖)5) 이선행(李善行) 박순천(朴順天) 박현환(朴賢煥)곽행서(郭行瑞) 야촌홍원(野村弘遠)6) 오장환(吳章煥) 최옥희(崔玉禧) 안전진웅(安田辰雄)7) 김동준(金東駿) 상전용남(上田龍男)8) 이창용(李創用) 하옥주일(夏屋朱一) 연원광태랑(延原光太郞) 동원인섭(東原寅燮)9) 백산청수(白山靑樹)10) 백산계주(白山啓周) 송촌요한(松村耀翰)11) 이윤재(李允宰) 허연(許然) 이궁묘묵(李宮卯默)12) 복전용택(福田龍澤)13) 계용묵(桂鎔黙) 향산광랑(香山光郞) 안전 채(安田 蔡)14) 고목정광(高木正光) 신정박(新井 博) 쓰다 세츠코(津田節子) 이규환(李圭煥) 방촌향도(芳村香道)15) 최효정(崔孝貞) 승산아부(勝山雅夫)16) 안윤숙(安允淑)17) 석원육삼(石原六三) 사전영(寺田瑛) 금강동원(金岡東元)18)대산인화(大山仁化)19) 심형구(沈亨求) 안회남(安懷南) 송미룡(松尾龍) 이재명(李載明) 김택용(金澤勇)
3) 이세정(李世禎)의 창씨명.
4) 신봉조(辛鳳祚)의 창씨명.
5) 노성석(盧聖錫)의 창씨명.
6) 손홍원(孫弘遠)의 창씨명.
7) 안종화(安鍾和)의 창씨명.
8) 이영근(李永根)의 창씨명.
9) 정인섭(鄭寅燮)의 창씨명.
10) 김동환(金東煥)의 창씨명.
11) 주요한의 창씨명.
12) 이묘묵의 창씨명.
13) 오용택(吳龍澤)의 창씨명.
14) 안석영(安夕影)의 창씨명.
15) 박영희(朴英熙)의 창씨명.
16) 최영주(崔泳柱)의 창씨명.
17) 모윤숙의 창씨명.
18) 김동인의 창씨명.
19) 이인화(李仁化)의 창씨명.
황도학회 역원
회장-신도순(辛島純)
이사-송산세정(松山世禎), 구자옥(具滋玉), 사전 영(寺田 瑛), 야촌홍원(野村弘遠), 김택용(金澤勇)
<출전: 「움즉이는 知識部隊-皇道學會發會式」, '新時代' 第1卷 第2號, 156~157쪽>
2. 황도학회 발회식
‘우리는 먼저 일본정신의 본원인 황도를 우러러 받들어 신도(臣道)를 실천해야 한다’며 반도 유식자를 중심으로 황도학회가 결성되어 지난 25일 경성부민관 소강당에서 발회식을 거행하였다.
특히 권유하여 회원을 획득하지 않고 진정으로 황도를 학습하여 훌륭한 신민이 되겠다는 겸허, 경건, 진실한 사람만을 목적으로 삼았다. 모인 사람은 발회인과 지도원 약 60여 명으로 가라시마(辛島)20) 회장으로부터 진지한 인사말이 있었다. 이어서 각 내빈의 축사와 마츠모토(松本) 경성제대 교수의 강연이 있은 다음,
시오하라(鹽原) 연맹 훈련부장의 발성으로 만세삼창을 한 다음 폐회하였다.
<출전: 「皇道學會發會式」, '國民總力' 第3卷 第2號, 1941년 2월, 98쪽>
3. 황도학회 최초의 행사 -일본정신강습회를 열다
황국신민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일본정신의 본원인 황도를 우러러 받들어 신도(臣道)를 실천하는 것에 있다며 작년 12월말 경성부민관에서 결성식을 성대하게 거행한 황도학회에서는 제1회행사로써 1월 18일부터 2월 16일까지 약 1개월이라는 장기에 걸쳐 일본정신강습회를 개최하여 시국 하반도의 지식인들의 분기를 촉구하였다. 강사는 모두 그 분야의 중진으로 경성제대의 마츠모토 시게히코(松本重彦) 교수와 오타카 아사오(尾高朝雄) 교수, 야마우치(山內) 군참모, 가와코에(川越) 고급참모,구로키(黑木) 해군대좌, 다나카 하츠오(田中初夫), 쓰다 세츠코(津田節子) 여사, 가마츠카(鎌塚) 시학관(視學官), 사이토(齊藤) 검사 등이었다.
<출전: 「皇道學會初の行事-日本精神講習會を開く」, '國民總力' 第3卷 第3號, 1941년 3월, 105쪽>
20) 辛鳳祚.
4. 설립 관계 기사
4-1)
황도정신을 보급, 오는 25일 황도학회(皇道學會)를 결성하기로
국민총력운동(國民總力運動)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오늘 내선일체의 완전한 실현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 반도인이 고도국방국가 국민으로서의 응분의 총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일본정신 즉 황도(皇道)를 배우고 실천할 것을 목적으로 한 황도학회(皇道學會)가 탄생하여 힘찬 첫걸음을 내어 놓게 되었다.
송산세정(松山世禎) 씨 등 반도 각계의 명사 50명은 2천 3백만 동포가 참된 황국신민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일본정신을 체득하고 이를 실천하여야 하다는 정신 아래 황도학회를 결성하기로 하고 얼마 전부터 부내 인사정(仁寺町) 119번지에 창립 사무소를 두고 준비를 거듭하여 오던 중 드디어 오는 25일 오후 3시부터 부내 태평통(太平通) 부민관(府民館) 소강당에서 황도학회 발회식을 성대히 거행하기로 된 것이다.
발회식에는 총독부 고천(古川) 보안과장, 계(桂)21) 사회교육과장을 비롯하여 경성제대 마츠모토(松本) 교수 외 수명도 참석하기로 되었고 시오하라(鹽原) 학무국장과 조선군관계자도 황도학회의 빛날 장래를 축복하는 축사를 베풀기로 되었다.
그런데 동회에서는 발회식이 끝난 후 신춘부터는 강습회·강연회를 열어 일본 정신의 근원인 국전(國典)·국사(國史)·국문학의 강의를 하여 일반 민중에게 황도 정신을 보급하기로 되었고 신궁신사참배는 물론 제사(祭祀) 등도 스스로 실천하여 학회 사업에 매진하기로 되었다고 한다.
<출전: 「皇道精神을 普及, 來卄五日 皇道學會를 結成키로」, '매일신보', 1940년 12월 24일>
4-2)
황도학회(皇道學會) 어제 부민관에서 발회
황도학회는 25일 오후 3시부터 태평통 부민관 소강당에 유지가 모여서 그 발회식을 거행하였는데 석상에는 시오하라(鹽原) 학무국장, 천월(川越) 조선군 참모, 포(蒲) 소좌, 마츠모토(松本) 경성제국대학교수, 오천(烏川) 총력연맹 총무부장, 계(桂) 총독부 사회교육과장, 정수(井守) 총독부 보안과 사무관 등 내빈 다수가 참석한 자리에서 우선 궁성요배와 묵도를 드린 뒤에 황국신민서사를 제창하고 이어서 발기인을 대표하여 향산광랑(香山光郞) 씨로부터 학회를 설치하는 취지와 오늘까지의 경과보고를 한 다음 취의서와 규칙을 심의 결정하고 역원을 선거한 결과,
▲ 회장: 신도순(辛島純) ▲이사: 송산세정(松山世禎) 동원인섭(東原寅燮) 방촌향도(芳村香道) 천야도부(天野道夫) 사전영(寺田瑛) 구자옥(具滋玉) 야촌홍원(野村弘遠) 김택용(金澤勇) 씨로 결정되고 신도회장으로부터 신도(臣道)를 강구할 길과 각오에 대하여 축사가 있고 이어서 마쓰모또 교수의 창도와
21) 계광순(桂珖淳)의 창씨명.
신도에 대한 강연이 약 40분간 있은 후 시오하라 학무국장의 선창으로 만세를 봉창하고 오후 4시 50분에 산회하였다.
<출전: 「皇道學會-昨日府民舘에서 發會」, '매일신보', 1940년 12월 27일>
5. 활동 관계 기사
5-1)
일본정신을 수련 황도학회(皇道學會)에서 강습회
황도정신(皇道精神)을 탐구하여 내선일체의 정신적 결합을 촉진하는 목적으로 결성된 황도학회(皇道學會)에서는 그 첫 사업으로 6일부터 16일까지 열하루 동안 경성부내 죽첨정(竹添町) 2정목 8번지의 대화숙(大和塾)에서 제1회 일본정신수도강습회(日本精神修道講習會)를 열기로 되었다.
강사들은 조선군 참모며 흑목(黑木) 해군대좌를 비롯하여 총독부 시학관이며 검사와 경성제대 교수 등 사계의 권위들이
어서 훌륭한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데 이제 그 자세한 일정과 강사 및 강습 제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6일(木) 오후 7시 고도국방국가(高度國防國家)에 대하여 - 조선군 산내(山內) 참모
7일(金) 오후 7시 군인칙유(軍人勅諭) 모□(謀□) 조선군 천월(川越) 조선군 참모
8일(土) 오후 7시 제목 미정 해군무관부(海軍武官府) 해군대신 흑목위정(黑木爲楨)
9일(日) □□□□□□을 중심으로 부인좌담회
10일(月) 오후 7시 □□ □□□□ 본부□□관 □□□
11일(火) 오전 10시 □원수□□□□참배
12일(水) 오후 7시 □□□□
13일(木) 오후 7시 □□경제□□제와 일본정신 □□□□
14일(金) 오후 2시 황국신민도대의(皇國臣民道大義) 성대교수 마츠모토(松本重彦)
15일(土) 오후 2시 우동□□(右同□□)
16일(日) 오전 10시 폐회식
<출전: 「日本精神을 修練-皇道學會서 講習會」, '매일신보', 1941년 2월 7일>
5-2)
근로보국의 정신대(挺身隊) 20여 종교·사상단체에서 태세 정비
‘일하지 않는 사람은 황국신민이 아니라’라는 외침 아래서 힘차게 전개되는 국민개로(國民皆勞)운동에 적극적으로 협심해야겠다고 경성에 있는 내선 종교 교화(敎化)사상 20여 단체 대표자 70명이 15일 오후 2시부터 부내 장곡천정(長谷川町)의 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협의한 결과 장차 전선 각지의 관계 각 단체를 한 덩어리로 솔선하여 이 운동에 참가함으로써 임전체제하 한반도의 정신적 국민운동을 힘차게 일으켜 나갈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하고 오후 5시경 산회하였다. 회장에는 천안(川岸) 연맹 사무총장, 창무(倉茂) 군 보도부장, 산지내(山之內) 군참모, 오천(烏川)조선연맹 총무부장, 고천(古川) 본부 보안과장, 임(林) 본부 노무과장이며 관계 각 단체의 대표로 중앙기독교청년회의 이동치호(伊東致昊), 경
성기독교청년회의 인곡보태랑(寅谷保太郞), 유림(儒林) 연합회의 박택상준(朴澤相駿) 명륜학원(明倫學院) 안인식(安寅植), 조선불교총본산의 광전종욱(廣田鍾郁), 수양단조선연합회의 하시모토(橋本武雄),녹기(綠旗)연맹의 야마자토(山里). 주자□□□□, 황도학회(皇道學會)의 신도순(辛島純), 조선임전보국단의 향산광랑(佳山麟) 씨 등 50여 명이 몰렸다. 처음 창무 군보도부장과 산지내 참모로부터 최근의 변화무쌍한 국제정세와 이에 대륙국민의 각오를 강력히 피력하여 특히 국민 개로운동의 □□생산을 설파한 다음 최근 반도의 애국운동에 대하여 고천 보안과장의 설명이 있었다.
이어서 임 본부 노무과장과 오천연맹총무부장으로부터 국민개로운동 전개에 대한 설명과 개선 의례(儀禮) 기준 실시에 대한 오천 부장의 설명이 있었다.
여기서 천안 총장이 일어나서 이 운동에 대한 민간정신관계 단체의 협력을 요망하는 간곡한 인사가 있은 다음 각 대표자들이 협의한 결과 전선 각지의 종교 교화 사상 각 단체에서는 총력연맹별로 근로보국대를 조직하여 근로작업에 솔선참가하는 것으로도 각 소속단체의 집합을 이용하거나 또는 강연회 등을 열어 일반 민중들에게 널리 개로운동의 취지를 선전하며 산업전사를 위문하고 근로모범 인물의 창덕회(昌德會)를 열기로 방침을 결정하였다.
다음 개로운동에 관한 지도강연의 제정이며 매년 근로제(勤勞祭)를 전선 각지에서 시행하여 국민개로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근로도장을 건설하여 수감자 및 유민들을 수용훈련하여 일반 노무자(勞務者)의 지위를 향상시킨 각급 시설을 보급시킬 즉 노무자의 대표를 노무관계의 각 기관에 참여하게 하고 공사(公私) 교화기관에서는 적당히 노무자와 접촉하며 또 노무자에 대한 표창시설로 근로장(勤勞章)이나 상금제(賞金制)를 설정할 것을 조선연맹당국에 건의안(建議案)으로 제출하여 실행하여 주도록 요망하였다.
이렇게 국민개로운동의 봉화는 힘차게 일어나게 된 것인데 이에 참가하는 단체는 다음과 같다.
중앙기독청년회, 경성기독교청년회, 장로회총회, 조선감리교총리원, 장로교경성노회, □□□□□, 천주공교회(天主公敎會), 성공회, 구세군본부, 조선□회□□□, 유림연합회, 조선불교총본산□□□, 조선□□□□□□, 천도교회, □□□□□, 대경일진회, 진명구락부, □□□□, 대동민우회, 황도학회, □□□□□□□□, □□□□, □□□□□□□, □□□□□□□.
<출전: 「勤勞報國의 挺身隊」, '매일신보', 1941년 9월 16일>
Ⅹ. 녹기연맹
1. 강령, 녹기연맹 안내
강령
1. 우리는 사회발전의 법칙에 따라 인류의 낙토건설에 기여한다.
2. 우리는 일본국체의 정신에 따라 건국의 이상실현에 공헌한다.
3. 우리는 인간생활의 본질에 의거하여 각자의 인격완성에 노력한다.
녹기연맹 안내
1. 사업의 요지
녹기연맹은 강령의 취지 달성을 목적으로 합니다.
2. 연혁
1925년 기원절(紀元節)에 발회한 경성천업청년단은 1930년 5월 녹기동인회로 개칭하였고, 이를 모체로 1932년 기원절에 본 연맹이 결성되었습니다.
3. 사업의 내용
1) 일반사회교화로서 강연회, 강좌, 수양회의 개최 및 강사의 파견을 실시합니다. 또 월간 교화잡지'녹기(綠旗)'를 발행하며 수시로 팜플릿을 발행합니다.
2) 사상연구를 위해 녹기연구소를 설치하고 또 녹기문고에는 도서 약 5천책을 소장하여 일반 관람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3) 중견인물양성을 위해 남자는 학생부에 대학 및 각 전문학교의 회를 소속시키고, 여자는 청화여숙(淸和女塾)에 여학교 졸업생을 수용하며 성인부와 부인부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4) 후생시설로써 예방주사 등을 실시하며 성광각(晟光閣) 공제부에 가입하면 경성부내의 우량상점으로부터 염가로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보험부에서는 메이지생명보험회사와의 특약을 통해 가입자의 편의를 도모하고, 대리부에서는 상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4. 연맹원
위의 취지에 찬성하는 자는 연맹원이 될 수 있습니다. 연맹원에게는 월간 '녹기'를 무상 배포합니다.
가입 희망자는 주소, 씨명, 직업 및 연맹비 부담연액을 기입하여 연맹 이사장 앞으로 엽서로 신청하면 됩니다.
연맹비는 연 2원 이상 각자 임의이지만, 유지비는 연 12원 이상입니다.
5. 녹기연맹본부
주소 경성부 초음동 200번지
본부의 건물을 성광각이라고 칭합니다.
전화 본국 1284
구좌 경성 16002
성광각 건너편에 청화여숙 숙사가 있습니다.
6. 경영 및 자산
경비는 연맹비, 기부금, 국고의 보조금 등으로 이에 충당하고 연간 경비는 약 1만 원입니다.
자산으로는 건축물(성광각 및 여숙), 설비비품 도서 합계 15,000원 있습니다.
<출전: 「綱領, 綠旗聯盟 案內」, '綠旗' 第1卷 第1號, 1936년 1월>
2.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 녹기연맹강령 해설(1~3)
2-1)
녹기연맹 강령 해설, 일본국체의 정신에 대해서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
1. 현실로부터 생겨난 기준
녹기연맹 강령 제2조인 “우리는 일본국체의 정신에 따라 건국의 이상 실현에 공헌한다”에 대한 해설을 위해 먼저 '녹기 아래에(綠旗の下に)' 제57호 이후 네 번에 걸쳐 「일본국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본지에서도 강령을 계속해서 해설하기로 했음으로 저번 호에 이어 ‘일본국체의 정신’에 대해서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일본국체의 정신에 따른다.’는 그 다음의 ‘건국의 이상실현에 공헌한다.’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떠한 정신에 의거하여 행동할 것인가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한 것입니다.
‘일본국체의 정신’은 ‘일본국체’라는 현실적인 실체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은 모두 현실을 기초로 합니다. 현실에 근거를 두지 않는 것은 한낮 공상에 불과합니다.
설령 “……의 정신을 지니자”, “……해야 한다”, “……일 것이다”라는 말을 아무리 호언장담하여 선전하더라도, 또 “……의 정신”, “……이어야 할” 기초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머리에서만 만들어진 공상입니다.
이는 거의 꿈과도 같은 것입니다.
사회, 국가, 인생에 있어서 현실에 뿌리를 두지 않는 모든 공상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 연맹 강령은‘인류의 낙토건설에 기여한다.’, ‘건국의 이상실현에 공헌한다.’ ‘각자의 인격완성에 노력한다.’라는 세 개의 커다란 이상을 내걸고 있습니다. 과거의 인류가 가장 이상으로 삼았던 모든 것은 이 세 가지를 지양하고 있습니다.
종교, 도덕, 철학, 정치, 모든 문화건설의 최종 목표는 이 세 가지에 포용됩니다.
세상에 이 정도의 대언장어(大言壯語)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커다란 이상을 추구함과 동시에 현실의 대지를 강하게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것을 절대로 한각(閑却)해서는 안 됩니다.
현실에서 이상을 연결하는 기준을 지녀야 합니다.
현실, 먼저 사회, 국가, 인생을 봅시다. 현실적인 응시로부터 ‘어떠한 정신을 지녀야 하는가.’, ‘어떻게해야 하는가.’라는 과제가 생겨납니다. 이러한 현실로부터 계획된 정신이 생겨나고, 현존하는 이상이 생겨납니다.
과거 진시황은 자기의 생명을 영원히 전하기 위해 불로불사의 약을 찾다가 여의치 않자 자기 자손이 영원히 제위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을 시황제라 칭하고, 자기 자손을 제2세 제3세로 만세무궁하게 전하려 했습니다만, 불과 15년 만에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나폴레옹이 일개 포병사관에서 출세하여 순식간에 전 유럽을 석권하면서도 불과 백일천하에 센트 헬레나로 유배되는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는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일본에 돌연 러시아와 같은 종류의 공산주의를 실현하려던 사람들이 속속 이론의 현실성이 없음을 폭로하고 전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오로지 힘과 이론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은 것에 커다란 오류가 있었습니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것은 패퇴한다. 이는 과거의 역사가 분명히 알려주는 바입니다.
우리는 일본이 걸어온 과거와 현실의 모습을 통해 앞으로 일본이 나가야 할 길을 찾고자 합니다.
현실을 근거로 한다고 하지만, 현실에도 이런저런 것이 있습니다. 망해가는 민족에게 그 현실에 따라망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패퇴하는 문화를 그 현실 그대로 파묻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황태(荒怠)한 인생을 그대로 침체시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본질은 항상 많은 모순을 극복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인류사회의 본질은 항상 다양한 양식의 문화를 종합하여 발전하려는 것입니다. 일본은 건국 이후 실로 이러한 본질적인 것을 바탕으로 걸어온 전형적인 나라입니다.
과거 일본의 문명에 대해 프랑스 파리의 솔로본 대학의 교수 미쉘 블루봉 박사는 다음과 같이 비평하였습니다.
“지나의 문명은 외관이 장대하지만, 3천년 이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진보하지 못했다. ……일본은 그 역사를 읽어보건대 일대 진보적 국민의 발달의 상규(常規)를 멈추지 않고 분명한 보무(步武)를 나아간 흔적, 원시 초미(草味)의 시대부터 최근의 전승에 이르기까지 그 사적을 각 부분에서 잘 엿볼수 있다.
사회학적 원칙이 적용에 따라 그 효과를 나타내는 장대한 모습을 ‘사회학의 활동’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고, 천하의 일대 기묘한 모습이다.” 일본과 같이 예전부터 타민족에 침략당하지 않고 일관되게 그 발전을 계속한 나라가 과연 다른 곳에 있을까요?
일본과 같이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고 동화하여 종합적인 문화를 창조해온 나라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일본과 같이 힘과 더불어 정의와 애정으로 역사를 꾸려온 나라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사회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진행하여 사회발전의 다양한 원칙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이를 현실적인 역사상의 국가에 적용할 때, 여러 외국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 것일까요? 쓸데없이 요순(堯舜)의 세상만을 동경하면서 현실은 24사1)의 흥망을 반복하는 지나를 보면서 과연 발전하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난만(爛漫)한 문화를 지녔던 과거 3천년의 인도를 지금의 인도와 비교하여사회학의 활동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이밖에도 이집트, 그리스, 로마, 잉카 등 과거 인류사상에 화려한 시대를 구축한 이들 나라가 이후 사회학적 발전을 이루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분규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구미열강이 상호 힘으로 다투는 ‘쟁투(爭鬪)의 역사’를 반복하고, ‘평화스러운 유럽’,‘발락(勃落)의 구주’에 헐떡이는 쇠약한 모습 그 어디에서 사회의 본질적 진보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일본은 작지만 실로 견실한 발전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작은 생명이 점점 힘차게 성장하는 것처럼, 이는 실로 “사회학적 원칙이 적용에 따라 그 효과를 나타내는 장대한 모습을 ‘사회학의 활동’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연맹 강령 제1조에서 ‘사회발전의 법칙에 따른다.’는 입장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고려할 때, 이는 실로 ‘일본국체의 정신에 따른다.’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것입니다.
이상을 현실로 품은 일본, 사회발전의 법칙을 실제로 행동하는 일본, 이러한 현실을 근거로 일본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2. 일본국체와 일본국체의 정신
일본국체의 정신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일본국체를 근간으로 삼습니다. 다나카 지카쿠(田中智)선생은 이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국체정신이란 ‘국체를 자기의 마음’으로 삼는 것으로……‘국체를 체달(體達)한 국민정신’으로 해석한다.”(일본국체 신강좌 제1호 「일본국체란 무엇인가」)
국체는 주관적인 상상이나 책상 위의 사색이 아니라, 객관적인 실체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있다거나 혹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관념상의 구성과는 다른 현실적 존재입니다. 누군가가 머릿속으로 부정하려고 애쓰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학문 연구가 진전되어 그 신비성이 아무리폭로되더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국체입니다.
국체에 대해서는 종전의 ‘일본국체란 무엇인가’의 해설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그 국체의 연구를 “아, 그렇습니까?”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연구의 결론만을 열기하여 이것이 국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이는 인생사회와 유리된 하나의 이론에 불과합니다.
일본국체를 하나의 객관적 사실로 바라보지 않고, 이를 자기의 마음과 체달한 국민정신으로 삼는 것이 국체정신입니다. 국체를 지식적인 것만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국체적으로 살아나가려는 신념에 이르렀을 때, 그것이 국체의 정신입니다.
일본은 건국 이후 만세일계 천양무궁의 천황을 혈연적이고 신앙적인 중심으로 숭앙하면서 발전해왔습니다.
이(異)민족은 이에 동화하고 이문화는 이에 통융(通融)하여 모두 천황에게 모임으로써 내부의 사회모순과 외부의 강적도 극복해왔습니다. 그러한 국체의 사실을 단순한 역사적 과거의 발걸음이나 연구의 결론으로 간주하지 않고, 이를 의식적인 신념으로까지 고양시켰습니다.
일본국체의 정신이란 만세일계 천양무궁의 국체를 기초로 더욱이 만세일계 천양무궁을 계속하려는 정신입니다.
다양한 민족문화를 동화통융(同化通融)한 국체에 의거하여 더욱 넓은 동화통융을 실행하
1) 중국역대 왕조의 정사로 인정되는 24종류의 사서.
려는 정신입니다.
사회조직의 변혁에 항상 중추가 되는 국체를 자각하고, 지금 정체된 사회조직을 변혁하려는 정신입니다.
외부의 강적에 대해서 모든 것을 천황에게 바치고 지켜온 조국(祖國)의 앞날을 천황 중심의 단결을 더욱 확고히 함으로써 외부모순의 극복에 매진하려는 정신입니다.
따라서 ‘일본국체의 정신’은 평범한 일본주의자가 말하는 의미의 ‘일본정신’과는 다릅니다.
일본이 지닌 정신 전체를 막연히 지칭하거나, 역사상 출현한 사상 중에서 그 특징만을 추출하여 논하는 정신과는 명확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일본정신을 만들어낸 기본적인 국체를 자각하는 것, 즉 더욱 천황 중심의 의식을 확고히 지니면서 적극적인 태도로 나아가는 정신입니다.
또 ‘일본국체의 정신’은 ‘국수주의’와도 다릅니다. 일본이 지닌 것은 무엇이라도 좋다는 배타적 입장에서 자국을 주장하는 것은 국체에 반한 사고입니다. 과거에 다양한 민족문화를 통융한 관대하고 통일적인 힘을 더욱 의식적으로 고조시키면서 모든 세계문화를 포용하고 체계화하여 그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려는 것입니다.
1932년 5·15사건이 일어났을 때, 저널리스트는 ‘일본에도 파쇼가 일어났다’는 것을 세계를 향해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파쇼의 원조 무솔리니는 ‘파쇼는 수출품이 아니다’라며 분연히 반박했습니다.
자국의 것만을 최상으로 믿고 자국의 힘의 광대함만을 생각하는 주의(主義)가 타국화(他國化)되었을때, 이는 그 주의의 자살입니다. 파쇼는 수출품이 아닙니다. 무솔리니는 분명 옳은 말을 했습니다.
일본의 국가정신이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파쇼와 결코 함께 될 수 없습니다.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버려 지상의 모든 문화를 통합 발전시키려는 역할을 지닌 일본국체의 정신은 결국 세계에서 으뜸가는 힘을 지닌 것입니다.
훌륭한 세계의 수출품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본이 지닌 존귀한 정신을 잃어버리고 ‘수출하고 싶다’는 파쇼 원조의 말을 무시하면서까지 모조품을 만들어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실로 한심한 일입니다.
또 일본국체의 정신은 자본주의 제도를 그대로 시인하는 소위 반동적 입장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과거에 국체는 사회제도 위에 서서 그 모순이 고차화(高次化)했을 때는 과감히 파괴하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역대 천황은 항상 민초를 소중히 생각하고, 백성을 착취 억압하는 지배계급을 훈계하였습니다.
착취적 자본가나 지배자와 완전히 똑같은 이전의 러시아나 타국의 사례는 일본국체와 관련해서 말한다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일본국체의 정신에 입각하여 빨리 현재의 사회제도의 모순을 제거하고 이후의 보다 좋은 사회의 건설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3. 일본국체 정신의 체현자로서의 천황
일본국체의 정신은 일본국체와 더불어 일관되게 영속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국체의 내면적 정신으로 역대 천황은 이 정신을 확고히 지니면서 언제나 그 체현자였습니다.
천황이 만세일계 천양무궁의 황위에 즉위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지배자로서 즉위에 오르신 것이 아닙니다.
건국 이후 계속된 일본국체의 중추로서 그리고 그 정신실현의 지도자로서 즉위하신 것입니다.
폐하의 마음에는 한 조각의 사심이 없습니다. 항상 민초의 안락한 행복만을 바라고 축원하셨습니다.
역대 천황의 인자한 말씀을 일일이 말씀드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일본의 역사는 이렇게 커다란 광영을 입고 2500년을 지내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더구나 폐하의 마음은 결코 야마토(大和)민족,일본민족만을 고려하는 편협한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사방의 바다 모두 한겨레라고 생각하는 세상에 어찌 파도와 바람으로 이토록 시끄러운 것인가.”
이는 러일전쟁 중에 메이지 대제의 말씀입니다. 러일전쟁은 일본이 어쩔 수 없이 싸울 수밖에 없는 입장에 내몰려 일어난 전쟁이었습니다. 폐하의 마음은 적이 된 러시아를 증오하고 이를 괴멸시키려고 생각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해의 모든 형제, 세계일가의 심경 앞에서 전쟁은 실로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위의 말씀의 번역을 읽은 미국대통령 루스벨트가 감격하여 자진해서 강화를 중개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최근 일본은 국제연맹을 탈퇴했지만 여전히 그러한 소신으로 매진하고 있습니다. 단지 일본의 행동만을 보고 말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탈퇴할 수밖에 없었던 전후의 국제정세를 살펴보고, 더욱이 다음과 같은 ‘국제연맹 탈퇴에 관한 조서’에 나타난 국제평화의 확립을 바라는 깊은 마음에 경의를 표해야합니다.
“이제 연맹과 손을 놓고 제국의 소신에 따르고자 한다. 하지만 원래부터 동아에 치우쳐 우방의 의(誼)를 멀리하려는 것이 아니다. 짐은 더욱 신(信)을 국제에 두텁게 하고 대의를 우내(宇內)에 현양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러한 사심이 없는 마음, 민초를 자식으로 생각하고 타민족을 형제로 생각하는 마음, 이 굉대한 정신을 지니신 천황을 중심으로 믿고 따름으로써 다양한 민족문화의 동화가 가능했습니다. 항상 모순을 극복하고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천황을 중심으로 모이고 황통을 만세에 이어감으로써 일본의 영원한 행복이 약속되고, 또한 세계의 절대적 평화가 약속됩니다. 우리는 착취와 주구에 눈물짓는 백성, 투쟁으로 역사를 종시하는 국가를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온유한 천황의 마음으로 구제해야 합니다.
저는 ‘일본국체의 정신에 따른다.’는 것에 대해 이론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만, 일본국체의 정신에 따르기 위해서는 그 이론을 하나하나 규명하여 암기해둘 필요는 없습니다. 국체를 의식적으로 파지(把持)하기 위해서는 그 체현자이신 천황에게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마음을 지니면 됩니다.
모두가 천황의 슬하에 모이고 천황을 위해 들고 일어서면 됩니다.
천황의 슬하에 모일 때야말로 천황의 굉대한 마음과 세계평화의 실현을 지향하는 일본국체의 정신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천황을 위해 들고일어섰을 때야말로 국체정신에 입각한 생활이 있고, 그 실현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세간에 천황을 섬기는 일은 군인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정말로 유감입니다.
천황 중심의 군대조직, 군인정신을 더욱 널리 일반사회에까지 확장시켜야 합니다.
학자는 천황을 위해 학문하고, 노동자는 천황을 위해 일하고, 정치가는 천황을 위해 정치에 관여하고, 교육가는 천황을 위해 교편을 잡는……모든 계급과 사람의 마음이 이 한 점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군인이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며 죽는 것처럼, 우리도 자연스럽게 임종 시에는 ‘폐하를 위해 죽겠다’는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일치할 때야말로 사회의 암흑은 사라지고 조직의 모순은 일소됩니다. 진정한 세계문화의 종합, 명랑한 이상사회의 건설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본국체의 정신을 예전부터 ‘도(道)’라고 부릅니다. 이 도를 처음으로 제시하신 분은 황실의 영원한 선조인 신(神)입니다. 또한 이 도에 합치하여 도의 체현자 천황을 지켜주신 분도 고래신(古來神)으로 숭앙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神)과 군(君)과 도(道)의 관계에 대해서는 본지에 게재된 쓰다 사카에(津田榮) 선생의 논문 「국체 신념에서의 삼존일체론」에 설명되어 있고, 건국신화에서의 신에 대해서는 다음 호의 해설에 게재할 것임으로 여기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지금 사회조직과 사상에는 암운저미(暗雲低迷)한 사귀(邪鬼)가 배회하고, 진정한 국체가 빛을 발하려고 합니다.
국체명징을 주창해야할 때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사상의 입장에서 일본국체의 정신을 선양하고, 일본이 나아가야 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근거로 삼는 일본국체를 파악하고 기준으로 삼는 일본국체의 정신을 확고히 지녔을 때, 앞길은 분명히 커다란 이상으로 빛나 보일것입니다. 즉 일본건국의 이상입니다.
연맹 강령의 ‘일본국체의 정신에 따른다’의 해설은 이로써 마치고, 다음 호는 ‘건국의 이상실현에 공헌한다’를 해설하겠습니다.
<출전: 森田芳夫, 「綠旗聯盟綱領解說 -日本國體の精神に就いて」,'綠旗' 第1卷 第1號, 1936년 1월, 4~9쪽>
2-2)
녹기연맹 강령 해설, 일본건국의 이상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
1. 건국이야기(建國話)에 대한 다양한 견해
“우리는 일본국체의 정신에 따라 건국의 이상실현에 공헌한다.”
녹기연맹 강령 제2조의 앞부분 ‘일본국체의 정신에 따른다.’의 해설은 저번 호에 게재하였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더욱이 이 기준에 의거하여 실천해야 할 최고 목표로써 내건 ‘건국의 이상’에 대해 해설하겠습니다.
‘건국의 이상’이란 말할 필요도 없이 ‘일본건국의 이상’입니다. 일본건국의 이상은 고사기와 일본서기 등 일본 최고(最古)의 국사에 담긴 건국이야기 속에서 탐구됩니다. 그런데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모두나라(奈良)시대, 즉 황기 1372년과 1380년이라는 훨씬 후대에 편찬된 것이고, 더욱이 건국의 유래는 신화이야기를 통해 전해졌기 때문에 그 기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점에서 종래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소학교 시대에 신화를 그대로 가르쳤기 때문에 국체의 절대적 존엄을 교육받은 자가 청년기에 들어와서는 이를 비판적으로 생각하여 건국이상을 말하면 웃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저는 먼저 우리가 말하는 건국의 이상은 어떠한 태도로 파악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마디 하겠습니다.
일찍이 일본의 건국이야기에 대한 비판적 태도의 필요성을 역설한 자는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2)선생이었습니다. 선생은 그의 저서 '고사통독법(古史通讀法)'에서 “본조(本朝)의 상고의 사(事)를 기록한 책을 보면, 그 의(義)를 어음(語音)에 구하여 그 기록한 바의 문자에 구애받을 수밖에 없다”는 태도위에서 '고사통'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선생은 다까마노하라(高天原)3)를 지상의 상륙(常陸)으로 단정하여 이자나기(伊奘諾尊)4)와 이자나미(伊奘冉尊)가 하늘의 부교(浮橋) 위에 서서 천상의 누호코(沼矛)5)로 넓은 바다(海原)를 찾아 오노고로시마(淤能碁呂島)를 얻은 이야기를 이 두 신(神)이 전함을 타고 바다에 떠올라 섬 하나를 찾고 그곳에 창을 세워 점령의 표식으로 삼았다고 이해하였
습니다.
또 두 신이 좌우로 돌면서 부부가 되어 히루코(水蛭子)를 낳아 배에 실어서 물에 띄워버린 이야기를 이자나기가 좌군(左軍)의 대장, 이자나미가 우군의 대장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지만 우군의 절도(節度)를 받지 못해 약간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좌군이 늦어 기회를 잃고 섬 하나를 점령하였지만 결국 그 섬을 포기한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이가 모토오리 요리나가(本居宣長)6) 선생이었습니다.
선생은 '칡(くず花)'에서 “모든 신의 소행(所行)은 심상(尋常)의 이(理)를 갖고 있어 사람이 쉽게 헤아려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사람의 지(智)는 아무리 현명하더라도 한정되어 있어 그 밖의 일은 알수 없다”며 합리적 비판적 태도를 부정하고, “그런데 이 두 책(二典)에 기록된 것은 너무 분명하여 의심할 수 없다”('가마쿠시게(玉くしげ)')로 말합니다.
여기에서 모토오리 선생은 두 책, 즉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내용을 그대로 의심 없이 믿으려는 태도를 보입니다.
선생은 신대사(神代史)를 문자 그대로 믿어 그 기록과 같이 우주는 창조되었고, 다까마노하라를 천상으로 삼아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은 실제로 태양신으로 천석굴(天石窟)에 들어가 어두워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자의 견해는 지금의 사상계에도 널리 인용되고 있습니다. 하쿠세키 선생이 취한 같은 방법으로 다까마노하라를 야마토(大和), 부젠(豊前), 이세(伊勢), 오우미(近江)라고 바라보기도 하고, 반대로 조선, 지나, 남양 심지어는 멀리 인도로부터 바빌로니아 지방까지도 탐구의 눈을 넓히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약간 이전인 메이지 말기의 일입니다만, 기무라 다카타로(木村鷹太郞)가 집필한 '세계적 연구에 의거한 일본태고사7)'라는 책은 언어학상으로부터 서양의 고대신화와 일본신화를 비교 연구하여 일치점을 추구하여 결국 일본민족은 바빌로니아에서 발상(發祥)하였고, 그 황위는 일찍이 서양에 널리 알려졌다는 것을 수언만언(數言萬言)을 통해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는 너무나도 극단적인 예입니다만,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유사한 견해가 의외로 널리 퍼져있습니다.
우리는 일본건국의 이상이 터무
2) 에도시대의 국학자, 정치가.
3) 하늘나라.
4) 이자나기는 '고사기'에는 이장낙(伊弉諾)라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서기'에는 이사나기(伊邪那岐)로 기록되어 있다.
이장낙존(伊弉諾尊)으로도 불리며, 일본 신화의 창조신이다. 그는 이자나미의 배우자로 많은 섬들과 신들을 낳았고 일본의 선조이다. 이자나미가 푼수로 죽자 이자나기는 그녀를 요미(지하세계)에서 구출하려고 하였다.
그는 돌아와 왼쪽 눈에서는 아마테라스(태양의 여신)를 오른쪽 눈에서는 츠쿠요미를 그리고 코로는 풍신 스사노를 낳았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와 유사하다.
그러나 중대한 차이도 있다. 그는 또 마야문명의 이짬나와 익스첼 신과 흡사하다.
5) 신성한 창.
6) 신도(神道)와 고전문학 분야에서 활약한 일본의 유명한 학자.
7) '世界的硏究に基ける日本太古史'.
니없는 사람들에 의해 주장되고 있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요리나가 선생처럼 일본건국의 이야기를 그대로 분석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도 상당수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 신화의 자재가 여러모로 조합되고, 여기에 그 사람 자신의 사상이 곁들여져 다양한 신비적 철학이 창조되고 있습니다.
이는 최근 유행하는 신흥종교 속에 또 소위 일본주의라 칭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러한 태도의 사람들을 매우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또 이러한 입장과 전자의 합리적 해석을 뒤섞은 주장도 많습니다.
최근 저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권유를 받아 읽은 책에는 신화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오오쿠니누시노미고토(大國主命)는 첫째로 오호모노누시(大物主神)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이는 대자본가를 말합니다. 또 별명을 아시하라노시코오노가미(葦原色許男神)라고 아주 바람둥이(色男)입니다. 이는 현대의 애로 백 퍼센트 시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름은 야치호코노가미(八千矛神)라고 말합니다.
야치호코란 ‘칼 끝(鉾)’ 즉 군비가 왕성한 현대를 나타냅니다.
오오쿠니누시노미고토, 오호모노누시 등은 대국, 즉 미국식 캐피탈리즘 전제를 말합니다.
또 오오쿠니누시노미고토는 복(福)의 신이고, 금(金)의 경제시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질병을 고치는데 있어 의약만능시대의 말기의 현대는 바로 오오쿠니누시노미고토의 시대인 것입니다.
고사기는 이렇게 오오쿠니누시노미고토의 생애를 통해 현대의 출현을 예언하여 이를 올바로 말하고, 더욱이 그 다음에 다가올 신시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신시대란 실로 제2의 천손(天孫)이 강림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화의 신성시를 초월하여 과학적인 입장을 무시한 나머지 너무나 자기 마음대로 상상의 세계에서 좋게만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2. 건국이야기에 대한 우리의 견해
근대사학의 진보는 고사기, 일본서기의 문헌 분석부터 시작되어 기타 타민족의 언어, 신화, 풍습, 유물 등의 비교연구도 곁들여져 신비적인 표현 아래 숨겨진 정체는 첨차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일본건국에 관한 연대나 과정에 대해서도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문헌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이야기나 신앙적으로는 타당하지만, 역사적 사실로서는 부정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구적 입장도 이러한 학문적 연구의 성과를 긍정한 위에 서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학문적 연구라 하더라도 학문에는 스스로 범위가 있습니다. 학문적 연구를 통해서 모르는 것은 아무래도 모릅니다.
모르는 것에 대해 연구자가 아마 이럴 것이라는 하나의 억설을 제시하는 것은 좋습니다만, 단순한 자신의 상상만으로 마음대로 결론을 내는 것을 결코 피해야 합니다.
많은 좌익 역사가는 과학적이라고 자칭하면서 유물사관이라는 고정된 전제에 서서 그 설명에 타당한 자료를 찾아 신화의 사화(史話)로 해석을 내리고 있습니다만, 이는 예전의 하쿠세키 선생의 견해가 근대화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탐구에 다양한 힌트를 얻습니다만, 그 방법과 성과에 그다지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기술된 일본건국의 기사를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서는 믿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실로서는 다만 이들을 통해 파악된 과학적 연구의 결과를 믿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 기사가 만들어진 무렵의 일본인의 사상을 이야기하는 것으로서는 그 기사 전부를 그대로 긍정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건국의 이상을 발견하려는 것입니다.
가령 다까마노하라를 예로 들더라도 그 다까마노하라는 정말로 하늘에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또한 지상 어디라고 지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당시 사람들의 관념 속에 다까마노하라라는 곳이 있었다는 것은 거짓 없는 사실입니다.
이자나미의 국토생성의 이야기도 ‘그렇게 일본 나라는 만들어졌다’고 당시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대인(上代人)의 마음속에 먼저 들어갑니다.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고, 또 이를 극단적으로 신성시하는 일이 없이 솔직하게 그 이야기를 그대로 믿어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당시 상대인의 신념 속에서 그들의 국가관이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히 밝힐 수 있습니다.
건국의 설화 속에 그들이 무엇을 이상으로 삼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입각지에 서서 건국의 이상을 파악하려는 것입니다.
3. 일본건국 신화의 중심점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통해 신화의 골간을 이루는 것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즉,
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국토의 여러 신 및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낳게 되었다는 이야기.
② 스사노오(素淺鳴尊)가 다까마노하라에서 난폭을 일삼아 방축(放逐)된 이야기.
③ 오오쿠니누시노미고토가 국가를 지킨 이야기와 천손이 강림하는 이야기.
이 세 가지 이야기에 일관된 것은 황실의 먼 조상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최고 최상으로 이야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①의 이야기 가운데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국토를 만든 다음, “나는 대팔주국(大八州國) 및 산천초목을 만들고 천하의 주요한 자를 낳았다”고 숭앙되어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낳은바, 이 아이는 광채가 찬란하여 육합(六合)의 안을 밝게 비췄기 때문에 천상으로 보내졌습니다.
②의 이야기에서는 스사노오가 천상에서 아주 난폭했기 때문에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결국 천석굴에 들어간 바, 나라 안은 영원한 암흑에 빠져 주야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신들은 곤란해지자 석굴 앞에 모여 많은 재미있는 일을 벌여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유혹하여 나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원래대로 밝아지자 스사노오를 지상으로 추방하기로 되었습니다.
③의 이야기에서는 오오쿠니누시노미고토 하에 국토헌상을 위해 사신을 여러 번 파견하여 교섭이 성립된 다음,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황손 니니기노미코토(瓊々杵尊)에게 3종의 신기(神器)와 더불어 천양무궁의 신칙(神勅)을 하사하였고, 니니기노미코토는 이 명령을 받들어 히무카(日向)에 강림합니다.
건국신화 중에는 야오요로즈(八百萬) 혹은 야소요로즈(八十萬)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만, 그 신들은 자연히 하나의 중심 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절대주로 받들고 있습니다.
스사노오의 횡포를 꾸짖기 위해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천석굴에 들어가자 어둠으로 변한 야소요로즈의 신이 모여 그 선후책을 강구하였고, 또 니니기노미코토의 강림 전에 천안하천(天安河川)에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명령으로 야오요로즈의 신이 모여 누구를 국양(國讓)의 예비교섭에 파견할 것인지 상담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지위는 확정되었습니다만, 이는 결코 전제 위압적이 아닙니다.
아마 그 어떤 민족도 국토와 군주를 둘러싸고 그 유래를 말하는 신화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과 비교해볼 때, 일본의 신화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그 대표적인 신화를 두세 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중심적인 신은 크로노스(Chronos)입니다.
크로노스는 그의 아버지 우라노스(Uranus)를 몰아내고 나라를 차지하여 그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지를 몰아내고 차지한 대가로 그 지배권은 필히 그 아들에게 빼앗길 것으로 예언됩니다.
크로노스는 이를 두려워하여 자신의 아들이 태어날 때마다 모두 죽였지만, 막내인 제우스(Zeus)만큼은 도저히 죽일 수 없었습니다.
성장한 제우스는 그의 부하에게 번개를 치게 하여 크로노스를 공격하고, 결국 지옥에 빠뜨리고 철사슬로 단단히 묶어두었습니다.
제우스는 이렇게 크로노스를 대신하여 지배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크로노스와 제우스는 로마어로는 새턴[Saturn]과 주피터[Jupiter]라고 부릅니다.)
북구의 신화에서 최초의 지산 지배자는 이밀(Ymir)입니다. 이밀은 극한세계의 얼음이 극열세계의 열에 녹아 만들어진 괴물입니다. 이러한 이밀에 대해 오딘(Odin)은 싸움을 걸어 결국 그를 죽이고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이밀의 몸에서 하늘, 땅, 산, 바다, 풀, 나무 등이 만들어지고 이 세상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페르시아 신화에서는 최초로 아후라 마즈다라는 신이 끝없는 광명의 세계에 살았고, 이에 비해 앙그라 마이뉴라는 사악한 정령(精靈)은 암흑의 심연에 살고 있었습니다. 우주의 창조는 먼저 이 두 신의 투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후라 마즈다가 창조한 인간은 앙그라 마이뉴 때문에 궁핍, 고뇌, 기근, 질병 등의 짐을 떠안고 죽고 맙니다만, 그 사체로부터 남녀가 태어나 인간이 지상에 범람해가는 것처럼그려집니다.
이상의 신화 중에는 잔인폭학과 대립항쟁을 통해 지배자의 위치가 결정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일본신화 중에서 가장 난폭한 스사노오에 대해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천석굴에 집어넣고 말없이 자신의 힘을 과시함으로써 반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패배한 스사노오는 이즈모(出雲)에 내려온 다음에도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증오하지 않고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天叢雲劍)을 얻자, “이것은 신검이다. 내가 어찌 감히 좋아하겠는가”라며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게 헌상하고 있습니다.
신화 중에서 가장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게 대항하여 세력을 얻은 오오쿠니누시노미고토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명령이라면 평화적으로 나라를 지키고, 이후는 이즈모로 물러나 대사(大社)에 모셔지고 있습니다.
4. 일본건국 사화(史話)의 중심점
건국이야기는 신대(神代)를 끝마치면 진무천황(神武天皇) 시대에 들어갑니다. 천황은 히무카에 모습을 드러냅니다만, 이후 동정군(東征軍)을 일으켜 결국 야마토 지방을 평정하고 넓은 땅에 제도(帝都)를 열고 처음으로 천황으로 즉위하셨습니다.
천황이 히무카에 발길을 내디뎠을 때, “황조황고(皇祖皇考)가 내신내성(乃神乃聖)하여 수년에 걸쳐 즐거움(慶)을 쌓고 빛(暉)을 더하였다. ……그런데 요막(遼邈)의 땅은 아직도 왕택(王澤)이 두루 미치지 못하였다.
읍(邑)에 군(君)이 생기고, 촌(村)에 장(長)이 있어 각자 영역을 나누어 침범하였다.……동방에 미지(美地)가 있다.……
그 땅은 필히 천업(天業)을 회홍(恢弘)하여 천하에 광택(光宅)을 비추는 천지와 사방의 중심이다.(일본고대사 연구자 감수 要)”고 숭앙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선조는 규슈(九州)의 히무카에서 오랜 기간 덕치를 베풀었고, 이는 많은 즐거움에 빛나는 치세였다.
그런데 먼 동방의 땅에서는 서로 사람들이 경계를 만들어 다투고 있다.
이곳에도 즐거움을 골고루 펼쳐야 한다. 더구나 이 땅은 일본의 중심으로서 천하에 천업을 회홍하는데 적절한 곳이라며 천황의 동정은 실로 이러한 이상 아래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적군(賊軍) 정벌 사업도 “나는 봉인(鋒刃)의 위력을 빌리지 않고 천하를 평정하겠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또 평정의 대업도 “그것은 대인(大人)의 제(制)를 세우고 필히 의(義)를 따라 민(民)을 이롭게 하지 않는다면 어찌 성조(聖造)이겠는가”라며 어디까지나 민리(民利)를 근본으로 수행하였습니다. 그 강원(彊原)에 수도(都)를 열 때에도 다음과 같은 대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상(上)8)은 즉 건령(乾靈)의 나라를 받아서 덕에 답하고 하(下)9)는 즉 황손(皇孫)의 적통을 기르는 마음을 넓힌다. 그리하여 6합(六合)을 겸하여 나라를 열고 8굉(八紘)을 취하여 우주로 삼으니,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즉 멀리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나라를 받아 모셔 덕(德)으로 응답하고, 가까이는 니니기노미코토가 융림(隆臨)하셔 정의를 기르고 그 마음을 넓힌 다음, 국내를 통일하여 수도를 열고 모든 세계를 한집안과 같이 절대적인 평화로 만들자는 주장입니다.
5. 일본건국의 이상
일본건국 이야기는 실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신격(神格)과 진무천황의 이상 수행의 사업, 이 두가지를 골간으로 성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정신과 사업은 황손인 니니기노미코토에게 내려진 천양무궁의 신칙에 그 구극점(究極點)을 제시하였고, 진무천황의 이상은 강원에 수도를 열 즈음의 팔굉일우의 선언으로 표출됩니다.
“□원(□原)의 1500년 상서로운 나라, 이것은 우리들 자손의 왕이어야만 하는 토대이고 황손이 통치함이 마땅하며 행의보조(行矣寶祚)의 왕성함은 마치 천양(天壤)과 무궁함이다.”
이 신칙에서 “□원(□原)의 1500년 상서로운 나라”라는 미칭(美稱)을 통해 먼저 조국에 대한 절대적인 긍지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 주권자의 지위를 절대적으로 확정하고 있습니다.
‘자손이 왕이어야 할 땅’, ‘천양과 무궁해야 할’ 땅은 아무리 변하더라도 천지는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이와 더불어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 후예가 계승하는 보조(寶祚)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입니다.
더구나 이 중심의 확립과 더불어 진무천황의 사업을 통해 팔굉일우는 횡으로 널리 모든 세계까지도 그 이상의 발전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천양과 더불어 끝나지 않을 보조는 힘으로 다른 곳을 정벌하고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 있는 모든 것에 그 삶을 즐겁게 하는 절대적 평화를 천직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건국의 이상은 실로 이러한 ‘천양무궁’과 ‘팔굉일우’의 정신을 다하는 것에 있습니다.
다른 건국
8)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
9) 현재 천황.
에 관한 많은 이야기도 이러한 중심점에서 그것이 지닌 의의를 규명해야 합니다.
다음 호에는 ‘건국의이상’을 다른 방면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상이 단순한 이상으로 그치지 않고, 국사(國史)를 일관하여 발전해나가는 이상 실현의 발자취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참고>
'녹기 아래로'의 제43호 「녹기정신에서 본 일본건국의 이상」
육군성 발행 '학교 교련의 참고' 제15호
졸고, 「일본건국이상과 그 발전」
<출전: 森田芳夫, 「綠旗聯盟綱領解說 日本建國の理想」, '綠旗' 第1卷 第2號, 1936년 2월, 10~15쪽>
2-3)
녹기연맹 강령 해설, 일본건국의 이상(2)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
1. 팔굉일우·천양무궁
녹기연맹 강령 제2조인 “우리는 일본국체의 정신에 따라 건국의 이상실현에 공헌한다”의 ‘건국의 이상’에 대해서는 저번 호에 건국이야기에 대한 우리의 연구태도를 서술하였고, 또 그 건국이상의 중심점은 ‘팔굉일우(八紘一宇)’와 ‘천양무궁(天壤無窮)’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호는 그 이상 내용에 대해서 상세히 해설하겠습니다.
진무천황(神武天皇)의 조칙(詔勅)에 나타난 ‘팔굉일우’의 ‘팔굉’이란 ‘팔방의 구석(隅)’의 의미로 예전부터 ‘아메노시타’
10)라고 불렀습니다. ‘천하’를 덮은 집, 즉 온 세계를 한 집안과 같이 평화스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평화란 단순히 다투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고, 삶을 즐기지 않고 단지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도 아닙니다.
생명이 지닌 특질은 항상 자라나고 발전하려는 것입니다. 생명이 여러 모순에 부딪쳐 이를 극복해나 가는 곳에 올바른 발전이 있습니다. 평화란 모든 생명의 올바른 발전입니다. 각각 올바로 살면서 그 삶을 즐기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 뜻을 깊이 생각하면,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개현(開顯)’입니다.
모든 것의 가치를 드러내 올바른 진실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올바로 살기 위해서는 그 사업의 중추가 필요합니다. 중추 없이는 개별적인 것이 아무리 살려고 해도 분열적인 경향으로 치달을 뿐입니다. 일본건국의 이상에는 먼저 이러한 중추를 확고히 정하고 그 영원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천양무궁-천황이 되어 왕통을 이어받음이 마치 하늘과 땅처럼 끝이 없이 무궁하다-이 신칙(神勅)중에 무한의 영원성을 지닌 중추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중추를 통해 모든 것이 올바로
10) あめのした, 천하.
정비되어 태어납니다. ‘팔굉일우’의 이상은 이러한 중추로부터 나오고, ‘팔굉일우’의 사업은 이러한 중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개별적인 것이 영원히 이 중추를 지키려는 성업(聖業)에 참여할 때, 모든 절대적인 올바름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메이지 대제는 교육칙어 속에서 “이 길은……고금(古今)을 통해 그릇되지 않고, 중외(中外)에 널리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천양무궁과 팔굉일우의 다른 말로 배찰(拜察)한 것입니다. 건국이상 중에는 시간과 공간을 통해 보편타당한 모든 생명의 올바른 발전의 원칙이 제시된 것입니다.
2. 건국의 3대강(大綱)과 3종 신기(神器)
영원히 사는 것은 순간에 그 이상을 파악합니다. 모든 개현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 자체에 올바른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일본건국의 이상 속에 그 원만한 진리는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서기 속의 진무천황의 조칙에 제시된 ‘적경(積慶)’, ‘중휘(重暉)’, ‘양정(養正)’의 정신입니다.
일본 국체학(國體學)의 창시자인 다나카 치카쿠(田中智) 선생은 일찍이 이를 건국의 3대강이라고 이름 붙여 주장했습니다. 즉 적경 ‘즐거움을 쌓는다.’란 사랑의 뜻이고, 중휘 ‘빛을 더한다.’란 힘의 뜻이고,
양정 ‘올바름을 기른다.’란 정의의 의미입니다. 사랑과 힘, 정의 이 세 가지를 올바로 제시한 것입니다.
더욱이 이 세 가지 정신은 그대로 황위의 상징이 되어 3종 신기에서 현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번호에서 쓰다(津田) 선생이 집필한 「우리의 건국과 국체정신」에서 잘 나타나 있기 때문에 이를 인용하겠습니다.
3종의 신기는 여러분이 잘 아는 바와 같이 거울, 구슬, 칼인데 거울은 만물을 틀림없이 비추는 것이다.
즉 정의를 나타낸다. 구슬은 실로 부드러운 느낌을 지닌 사랑의 표현이다.
칼은 힘을 나타내는 것으로, 모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이 세 가지이다. 이 세 가지가 일치하지 않으면 세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힘이 있어도 정의와 사랑이 따르지 않으면 세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또 아무리 정의와 사랑이 있어도 힘이 따르지 않으면 이 또한 충분하지 않다, 이 세 가지가 각각 고립해서는 의미가 없다.
이 세 가지 방면을 원만히 구비하는 것은 예전부터 많은 성현의 최고 이상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유교의 '중용'에서는 “지인용(智仁勇) 세 가지는 천하의 달덕(達德)이다”고 가르쳤습니다.
지란 정의이고,인이란 애정이고, 용이란 힘입니다. 불교가 최고 이상으로 삼는 부타(佛陀)의 인격에는 법신(法身),
보신(報身), 응신(應身)의 세 방면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또한 다름 아닌 이러한 세 가지의 가르침입니다.
올바른 진리(법신, 즉 정의), 올바른 진리에 의거한 자비심(보신, 즉 사랑), 자비심에 의거하여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는 실천(응신, 즉 힘)의 세 방면입니다.
모모타로(桃太郞)가 개와 원숭이, 그리고 꿩을 거느리고 오니가시마(鬼ケ島)를 정벌하고 보물을 가지고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개는 ‘3일간 사육하면 3년간 보답한다.’고 말할 정도로 인자하고 정이 많습니다. 원숭이는 머리 좋은 동물이자 지혜를 표상하고, 꿩은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날아가는 용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도깨비가 살고 있는 무서운 곳에서도 이러한 지인용 세 가지를 준비해 가면 훌륭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혁명 당시에 주창한 자유, 평등, 박애의 사상은 이러한 세 방면의 사회적 실현을 추구한 말입니다(자유는 힘, 평등은 정의, 박애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또 최근 교육학적으로 지식 편중의 결함이 제기되어 정조(情操)와 노작(勞作)의 방면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세 가지의 원만한 발달을 인격도야의 지침으로 삼은 것입니다.
옛날 지나의 하(夏)나라 우왕(禹王)이 규슈의 홍수를 다스리고 천자(天子)의 지위에 즉위한 후, 규슈의 금을 모아 아홉 개의 정(鼎)을 만들어 신지(神祗)를 제사한 이후, 정은 천자제후 자리의 심벌이 되었습니다.
정의 경중(輕重)을 묻는다는 것은 이러한 것에서 유래합니다만, 이 정은 음식을 담는 그릇입니다.
백성이 배불리 먹는 것이 치세의 근본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요(堯)나라 시절에 요임금이 자신의 치세를 살펴보려고 미복(微服)하고 거리에 나섰을 때, 노인이 고복격양(鼓腹擊壤)하면서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 밭을 갈아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백성의 평안한 생활 앞에 제력(帝力)은 필요 없다는 것이 지나의 정치 이상이었습니다.
일본의 만요(萬葉) 시인이 대군(大君) 앞에 절대적인 귀의를 바치면서 “바다에 가면 물에 잠기는 시신, 산에 가면 풀이 우거지는 시신, 오로지 대군 옆에서 죽겠노라.”는 노래를 불러 영원한 황위를 바라는 심경과는 단연코 거리가 있습니다.
3종의 신기의 이상과 정의 이상의 차이는 이러한 백성의 심경의 차이입니다. 하야시 라잔(林羅山) 선생은 지나 유교의 입장에서 일본역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오(吳)나라의 태백으로부터 일본 황실이 발상하였다며 그들이 지니고 있던 기물을 일본의 3종의 신기로 헤아렸습니다만, 이는 정말로 천박한 견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메이지 대제가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나라의 징표가 되었다”고 말한 것처럼 3종의 신기는 일본통치의 근본지침입니다.
일본의 혼입니다. 각 대의 천황은 이러한 신기를 물려받고 그 정신을 체현하여 일본의 발전을 도모하고 계십니다.
3. ‘우시하쿠’11)로부터 ‘시라스’12)로
제 느낌으로는 진리를 천직으로 삼는 일본천황은 모든 인류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십니다.
고전에는 천황 통치의 정신을 ‘시라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사기 안에 아메노토리후네노카미(天鳥船神)와 다케미카즈치노카미(建御雷神)의 두 신(일본서기에는 후쯔누시노카미[經津主神]와 다케미카쯔치노카미[武甕搥神])이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명령을 받고 오오쿠니누시노미고토(大國主命)를 찾아와 “네가 영유하는 이시하라 나까쓰꾸니(葦原中國)는 우리 손자의 나라로 하사하려한다”라며 국토를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게 헌상할 것을 권유하였습니
11) うしはく.
12) しらす.
다.
통치에 대해서 ‘우시하쿠’의 뜻과 ‘시라스’의 뜻은 분명히 구별됩니다.
학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누(ぬ)’와 ‘우(う)’는 소리 상으로는 통하고 ‘우시(うし)’란 ‘주(主)’의 뜻으로‘소유자’를 의미합니다. ‘하쿠(はく)’라는 말은 ‘칼을 차다’, ‘신발을 신다’, ‘버선을 신다’의 ‘신다’로 자신의 몸에 붙이는 것입니다.
즉 ‘우시하쿠’로 계속되는 것은 자신의 소유로 한다는 뜻입니다.
‘시라스’란 ‘알다(しる)’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알다’라는 뜻, 즉 실정을 알고 지도하며 애호한다는 의미입니다.
오오쿠니누시노미고토는 주코쿠(中國)를 영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국토에 대해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정신을 갖고 지배하였습니다. 천양무궁의 신칙(神勅) 중에는 “너희 황손이 통치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알림(しらせ)’ 또한 ‘시라스’의 뜻입니다. 좀 후대의 일입니다만, 다이호령(大寶令) 중에 천황이 조서를 내렸을 때에 천황 자신을 나타내는 형식으로서 아키츠미가미토 야마토 천황(明神御字日本天皇), 아키츠미가미토 천황(明神御字天皇), 아키츠미가미토 오야시마 천황(明神御字大八洲天皇) 등으로 규정하고, ‘시라스’의 정신을 명확히 제시하였습니다.
‘우시하쿠’로부터 ‘시라스’로, 자기를 위한 정치로부터 국민을 위한 정치로의 전환이 일본건국의 스타트입니다.
4. 축사(祝詞)에 나타난 정신
자기를 위해 하는 것에는 스스로의 범위가 있습니다. 공간적 시간적으로 가능한 한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을 위해, 인류를 위해 진정으로 받드는 것은 국민이 존재하는 한 무한히 계속됩니다.
인류가 거주하는 곳이라면 어디까지라도 넓혀 갑니다. 팔굉일우와 천양무궁의 이상을 체현하면서 3종 신기의 가르침을 받들고, ‘시라스’의 정신으로 사는 천황폐하의 마음은 무한 영원한 진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년제(祈年祭)를 맞이해 신전에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받드는 축사 중에 그 광대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기년제는 연초에 천황의 안태를 기원함과 더불어 오곡풍양(五穀豊穰)을 빌고 국가의 안강(安康) 등을 기청(祈請)하는 제의(祭儀)로 다이호령에 의해 법적으로 규정되었습니다만, 실제로는 예전부터 실시되다가 전국시대 무렵에 중단된 것이 메이지 시대에 이르러 다시 행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궁중에서 2월 4일 반폐(頒幣) 의식이 행해지며 17일에는 궁중 삼전에서 제전이 행해지는데, 폐하가 직접 참배하고 신궁에는 칙사가 파견됩니다.
그 축사의 일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황신(皇神)이 둘러보건대 사방의 나라는 하늘의 벽처럼 서있고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푸른 구름이 널리 퍼져있다.
흰 구름이 내려와 항복하지 않는 한, 푸른 바다는 마르지 않고 선박은 어디든지 가며, 큰 바다에 배들이 가득차 있다. 육지로 가는 길은 짐을 단단하게 묶고 바위와 나무를 보면서 말들이 어디든지 가는 한, 긴 길은 계속 이어지며, 좁은 나라는 넓어지고, 험준한 나라는 평탄해진다. 멀리있는나라가 계속해서 접근하는 것처럼 황태어신(皇太御神)에 의지하여 받들어야 한다.”
이 의미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바라보는 사방의 나라들은 하늘과 땅 모두 끝이 없고, 하늘에는 파란구름과 하양구름이 널리 펼쳐있다. 공물을 바치는 배는 끊이지 않고 왕래하여 바다 끝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 뭍에서는 공물을 쌓은 말이 머나먼 길을 연속하여 나무뿌리를 밟으면서 다가온다.
좁은 나라는 땅을 넓히고 준험한 나라는 이를 개척하여 평탄한 나라가 된다. 먼 나라는 많은 그물망을 던져 끌어올리는 것처럼 다가온다는 뜻입니다. 온 세계의 황도화(皇道化)를 추구하고 있는 일본건국의 이상의 웅대함과 유궁(幽窮)이 유감없이 표명되고 있습니다. 아직 외국과의 교통이 충분히 열리기 이전부터 벌써 이러한 세계적인 이상을 지닌 것입니다. 최근에 인터내셔널리즘이 주창됩니다만, 일본은 건국 당초부터 가장 철저한 근저 있는 인터내셔널리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5. 세계 인류의 최종목표
일본건국 이상의 존귀함은 이러한 웅대한 이상이 단순한 사상으로서만 그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이상은 만세일계의 천황으로 이어졌고, 국민은 이 천황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정신으로 계속된 일본의 역사 속에서 건국이상은 알게 모르게 실현되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여러 종족이 흘러들어왔지만 이들은 모두 천황을 중심으로 하나의 민족을 형성한 사실, 여러 문화가 흘러들어왔지만 이들은 모두 천황 중심의 새로운 문화로 통융(通融)된 사실, 항상 백성의 행복을 바라는 천황의 인자함으로 일본의 백성은 사랑과 정의와 힘을 민족정신으로 삼아 모든 모순을 극복해온 역사 속에 얼마나 강력하게 건국 당초의 이상정신이 나타났겠습니까. 제가 여기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논하는 것은 이전에 발표한 「일본국체」의 해설과 중복되기 때문에 생략합니다만, 아주 먼 옛날에 주창된 이러한 이상정신이 왜 2500년간이나 일관된 정신일 수 있을까라는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전에 맥콜리(McCawley)는 로마법왕조(羅馬法王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상에서 인간이 만든 사업 가운데 로마교회처럼 연구의 가치가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이 교회의 역사는 인류문명의 2대 시기가 걸쳐있다.
희생을 불태운 연기가 판테온(Pantheon)에서 피어올랐을 때, 플라비아누스 원형경기장에 지라프(giraffe)와 호랑이가 으르렁거릴 때까지 인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교회뿐이다. 세계에서 오랜 계도(系圖)를 자랑하고 가장 영속한 왕실일지라도 로마법왕조에 비하면 그 연령은 마치 아이와도 같이 어리다.
로마법왕조에 비해 훨씬 오랜 역사를 지니고 더욱 심원 웅대한 이상을 내건 일본 황실의 존재를 알았다면, 그는 얼마나 놀라며 어떻게 서술하였을까요?
지나의 송나라의 태종이 일본에서 온 승려에게 그 단체가 만세일계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는섬 오랑캐일 뿐……하지만 이는 옛날의 도(道)이다.”고 말하며 칭찬했습니다. 섬 오랑캐란 일본을 경시하는 말입니다만, 지나에 있어서의 옛날의 도, 즉 요순의 시절 외에 나타나지 않았던 이상을 실현하고 있는 일본이 얼마나 부러웠겠습니까.
니체는 위대함이란 방향을 부여한 것에 있다고 말합니다. 인류가 인류로서의 자각과 반성 위에서 향상의 생활로 나아간 지 수 만년, 민족적 집단을 기초로 국가적 역사를 영위한 지 수 천년, 이 인류의역사에 몇 번인가 방향이 부여되었습니다. 문화의 흐름에 몇 번인가 방향이 부여되었습니다.
그때마다 거기에는 ‘위대’한 영웅이 나타나고, ‘위대’한 천재가 나왔습니다. ‘위대’한 종교가 생겨나고, ‘위대’한 철학이 조직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영웅이 결코 인류의 방향을 결정한 것도 아니고, 그 천재가 인류의 귀결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은 과거의 파란만장한 세계사와 혼돈스러운 현하의 대세가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류는 많은 곡절에 침잠하면서 아직 갈구할 수 없는 결정적 방향에 고뇌하고 있습니다.
맑스놀드는 근대문명을 평하여 “인류는 시종 행복을 욕구하면서 도저히 행복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만, 실로 지당하고 슬픈 외침이지 않습니까?
일본건국의 이상은 이렇게 고뇌하는 인류에게 제시된 최종의 귀결입니다.
인류에게 제시된 결정적 방향입니다.
생명의 본질적 개현에 입각하여 진정한 평화확립을 위해 당당히 나아가야 할 진로를 제시한 것입니다.
만약 니체가 말하는 방향을 제시한 것의 위대함을 말한다면, 이러한 일본건국의 이상이야 말로 세계인류에 대한 결정적 방향을 제시한 가장 위대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은 현실과의 차이를 명확히 했을 때 그 빛을 발합니다.
일본이 건국 이후 천년을 거쳐 지나의 문명을 흡수하고, 나아가 지나에 대해 자기 자신을 명료히 할 즈음에 고사기와 일본서기가 편찬되었고, 그 가운데 건국이상은 불후의 문자가 되어 기록되었습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80년, 서양문명의 근간적인 것을 모두 흡수한 오늘날, 일본주의와 일본학이 주창되고 일본연구가 세계에 부흥하고 있습니다.
또한 위기를 품은 지금의 세계정국에서 일본의 문제는 이제 일본만이 아니라, 세계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방향은 단지 일본만이 아니라, 세계의 방향과 합치할 때가 온 것입니다. 건국 당초에 내걸었던 일본 건국이상은 일본의 목표로부터 현실적으로 세계의 목표로서 내걸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또 건국의 이상은 대외적 선양에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 국내의 현실을 바라보았을 때, 거기에는 많은 왜곡된 현실의 모습이 보입니다. 비(非)국체적인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는 외부와 더불어 내부를 건국의 본의에 비추어 올바른 모습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나가려고 합니까? 건국의 이상실현으로!! 일본은 어디를 향해 나가려고 합니까?
건국의 이상실현으로!! 세계는 어디를 향해 나가려고 합니까? 건국의 이상실현으로!!
이 모든 것이 이러한 건국의 이상실현으로 다시 태어날 때, 인류는 절대 안주의 경지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그 목표를 명시하고 방향을 확고히 지니는 것이 녹기연맹 강령 제2조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녹기연맹 제2조의 해설을 시작한 지 이로써 7회째입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말하면서 논지가 거칠었고 한정된 지면 때문에 충분히 그 뜻을 전달하지 못한 점을 사과드립니다.
<출전: 森田芳夫, 「綠旗聯盟綱領解說 日本建國の理想(2)」, '綠旗' 第1卷 第3號, 1936년 3월, 8~14쪽>
3. 규약개정에 관한 취의서, 녹기연맹규약(1937)
규약개정에 관한 취의서
본 연맹의 현행 규약은 창설 당시 정해진 것으로 과거 4년간의 실적을 감안하면 개폐가 필요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에 규약을 개정하여 실정에 따라 원활히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별항과 같이 개정조약안을 작성하였습니다.
이번 개정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창립 당시는 많은 단체가 연맹을 형성하였기 때문에 소속단체 및 대표자회 규정이 필요했습니다만, 지금은 그 소속단체원 모두가 본부 직속의 연맹원이 되었기 때문에 소속단체 및 대표자회의 규정을생략하기로 하였습니다.
2. 종래는 연맹원만으로 조직되었습니다만, 지금은 연맹의 후원자도 많아지고 '녹기'의 독자도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이들도 정신적으로 같은 동지로서 받아들이고자 이들을 포함해 회원으로 칭하기로했습니다.
3. 물가의 등귀 및 연맹의 활동이 왕성해짐에 따라 회비의 최저액을 인상하기로 하였습니다.
4. 연맹 결성 당시 중견이 되어 활동한 녹기동인회의 정신을 보존하기 위해 동인회의 규정을 두었습니다만, 이제는 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동 규정을 없애도록 하였습니다.
5. 연맹원의 증가에 따라 현 규약에 의한 임원선출의 방법이 곤란해졌기 때문에 실정에 맞추어 개정하였습니다.
6. 지방이사와 평의원은 실제적으로 일이 유사하기 때문에 이를 합하여 평의원으로 하였습니다.
녹기연맹규약(1937년 5월 16일 개정)
제1장 총칙
제1조 본 회는 녹기연맹이라고 칭한다.
제2조 본 회는 강령의 취지 달성을 목적으로 한다.
제3조 본 회는 그 목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다음 사업을 실시한다.
1. 강령 실현에 필요한 이론 및 방법의 연구
2. 국가의 중견이 될 인물의 양성
3. 사회교화
4. 후생시설
5. 연맹원의 공제
6. 앞 각 호 이외에 필요한 사항
제4조 본 회의 중앙기관으로 본부를 경성부 초음정 200번지에 둔다.
제2장 회원
제5조 본 회의 회원을 나누어 연맹원과 찬조회원 및 지우(誌友) 3종으로 한다.
제6조 본 회의 강령 및 규약에 동의하고 입회한 자를 연맹원으로 하고 이를 다음과 같이 4종으로 나눈다.
1. 특별회원 : 회비 월액 1원 이상을 부담하는 자
2. 정회원 : 회비 월액 50전을 부담하는 자
3. 통상회원 : 회비 월액 30전을 부담하는 자
4. 가족회원 : 통상회원의 가족으로 회비 연액 1원을 부담하는 자
제7조 본 회의 찬조자로 이사회의 추천을 받은 자를 찬조회원으로 한다.
제8조 '녹기'를 1개년 이상 계속하는 독자를 지우로 한다.
제9조 회원은 별도로 정하는 바에 따라 특전을 받는다.
제10조 회원으로서 강령의 취지에 반한다고 인정되었을 때는 이사회의 결정을 통해 제명할 수 있다.
제3장 임원
제11조 본 회에 다음 임원을 둔다.
회장 1명
이사 10명 내지 5명
감사 2명 내지 3명
평의원 약간 명
제12조 회장은 총회에서 연맹원 가운데 이를 추대한다.
제13조 이사, 감사, 평의원은 회장이 이를 위촉한다.
제14조 회장은 본 회를 대표하여 회무를 총리하고, 회장 사고 시에는 회장이 지명한 이사가 이를 대리한다.
제15조 이사는 회무를 심의 처리한다.
제16조 감사는 회무를 감사한다.
제17조 평의원은 필요한 사항에 관해 회장의 자문에 응한다.
제4장 회의
제18조 회의를 나누어 총회, 이사회, 평의원회로 한다.
제19조 총회는 매년 봄에 연다.
회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이사회의 논의를 거쳐 임시로 이를 개최할 수 있다.
총회에는 회원이 출석하여 전년도의 회계 및 제반 보고를 받고, 이사회로부터 제출된 사항을의결한다.
제20조 이사회는 매월 1회 이상 이를 열고 중요한 회무를 심의한다.
회원은 이사회에 의견을 구신할 수 있다.
제21조 평의원회는 수시로 개최하여 회장이 자문하는 사항을 평의한다.
제22조 회의는 회장이 이를 소집하고, 의사는 출석자의 과반수로 이를 결정한다.
찬부 동수일 때는 의장이 이를 결정한다.
제5장 회계
제23조 본 회의 수입은 회비, 기부금 및 기타로 한다.
제24조 본 회의 예산은 평의원의 의견을 구하여 이사회가 이를 결정한다.
제25조 중요한 재산의 처분 또는 예산을 변경할 때에도 앞 조와 동일한 수속이 필요하다.
제26조 본 회의 회계연도는 역년(曆年)에 따른다.
제6장 부칙
제27조 본 규약 집행의 방법 기타 본 규약이 정하지 않은 사항은 이사회에서 이를 정한다.
제28조 본 규약은 총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으면 변경할 수 없다.
녹기연맹 임원 씨명(1937년 6월 16일 현재)
회장 쓰다 사카에(津田榮)
이사 아이바 간지(相羽桓次), 스에 모쿠지로(須江杢二郞), 다가와 고죠(田川孝三), 다케무라 이사오(竹村勇), 츠지마 다케노부(津島武信), 쓰다 츠요시(津田剛), 나카지마 다다지로(中島唯次郞), 미야타 마코토(宮田實),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 야마자토 히데오(山里秀雄)
감사 노나카 겐조(野中健造), 히라토 세이지(平戶淸治)
평의원 이시이 모토이치(石井素一), 우스이 겐고(臼井儉吾), 가메이 사다토(亀井貞人), 기나이 가츠오(木內勝男), 구니마츠 야타로(國松彌太郞), 겐뻬이 요시로(源平義郞), 고이즈미 기쿠에(小泉菊枝), 고마다 마사츠기(駒田正次), 곤도 도시나카(近藤利仲), 사에키 기요시(佐伯穆), 사카타 세이지로(坂田政治郞), 사토 치요조(佐藤千代藏), 사이다시게루(財田重), 다키가와 가즈에(瀧川一江), 다쿠마 료타(田熊良太), 다케무라 가츠미(竹村克己), 쓰다 세츠코(津田節子), 츠보이 고세이(坪井幸生), 츠보이 마사토(坪井正人), 야스 유미오(耶須弓雄), 하라구치 쥰(原口順), 히로가네 도라오(廣兼寅雄),
마츠자키 시츠미(松崎七美), 미야타 간(宮田寬)
녹기연맹 본부직원 씨명(○은 본부 상근직원)
사무국
주사 ○야마자토 히데오(山里秀雄)
서기 ○고바야시 츠기죠(小林次三)
국원 서무계 ○기도 다카오(木戶孝夫)
성광각숙(晟光閣宿) 직원 이마무라 소마(今村惣馬)
동 ○이마무라 가즈에(今村カズエ)
교무국
주사 ○쓰다 츠요시(津田剛)
서기 ○겐뻬이 요시로(源平義郞)
국원 녹기연구소 주사 ○쓰다 츠요시(津田剛)
성인부 총무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
동 나카지마 다다지로(中島唯次郞)
동 츠지마 다케노부(津島武信)
동 다가와 고죠(田川孝三)
학생부 총무 고마키 스케오(小牧祐夫)
동 히라이 다케오미(平井武臣)
부인부 총무 오쿠야마 다카미(奥山貴美)
청화여숙(淸和女塾) 숙장 쓰다 요시에(津田ヨシエ)
동 숙감 야마자토 히데오(山里秀雄)
동 숙생 주사 쓰다 세츠코(津田節子)
편집국
주사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
서기 ○현영섭(玄永燮)
국원 편집위원 하라구치 쥰(原口順)
동 고마키 스케오(小牧祐夫)
동 다나카 지로(田中二郞)
동 나카무라 도시코(中村年子)
동 다카키 치요(高木ちよ)
<출전: 「規約改正に關する趣意書, 綠旗聯盟規約」, '綠旗' 第2卷 第7號, 23~25쪽>
4. 녹기연맹의 정신
녹기연맹의 정신은 그 이름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녹색으로 표징(表徵)됩니다. 녹색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머리에 먼저 떠오르는 것은 봄에 풀과 나무가 파릇파릇 싹트는 그 신선한 녹색입니다.
희망으로 가득차고 생명력이 넘치는 발랄한 색입니다. 우리가 내걸은 녹기정신은 세상 모든 것을 생성 발전시키려는 것입니다.
더구나 녹색은 절대 평화를 표징합니다. 종래 사회운동에 사용된 적색이나 흑색은 피를 연상시키고,증오와 투쟁을 그 본질로 삼습니다. 녹기의 녹색은 모든 것을 살립니다. 부드러운 녹색을 통해 원융통일(圓融統一)로 나아가려는 것입니다.
또 녹색은 웅대심원(雄大深遠)을 표징합니다. 하늘 곳곳을 뒤덮은 옅은 녹색, 유리와도 같은 깊은 바다의 진한 녹색.
거기에는 모든 것을 담은 웅대함, 어떤 것이라도 포용하는 구원성(久遠性)이 보이지않습니까?
녹기연맹의 녹색은 그 심원한 사상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에 이즘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작게는 개인의 입장과 주의부터 크게는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것까지 다양하고 지극히 잡다할 정도로 착종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이러한 이즘의 혼란 속에 새롭게 녹기정신을 외칩니다.
하지만 이는 이즘과 동일한 지위에서 서로 그 우열을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한 단계 위에 서서 그 하나하나를 살리고, 더욱 커다란 목표를 부여하려는 것입니다.
녹기연맹은 침체한 세상에 생명의 녹색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흩어진 개인에게 융화통일을 부여하려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효과와 감각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구원(久遠)한 생명을 가르치려는 것입니다.
녹기연맹 강령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웅대한 녹색 정신은 이 강령 속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낙토건설’, ‘건국의 이상실현’, ‘각자의 인격완성’. 이는 우리 모두의 목표입니다.
연맹의 정신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분은 본지의 강령해설과 기타 논문을 읽고 우리가 말하는 바가 다른 것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웅대심원한 최고 목표-결국에는 지상의 모든 인류가 추구해야 할 최고목표-의 이상을 잊어버리기 쉬운 현대인에게 강력하고 철저하게 주지시키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상을 외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의 대지에 발을 굳건히 딛고 일어서려고 합니다.
연맹의 사업에 아직 이해가 없는 분은 본지의 체험에서 나온 사색이나 읽을거리, 그리고 연맹의 행사를 정독해 주십시오. 연맹의 사업은 강령에 제시된 ‘사회발전의 법칙’, ‘일본국체의 정신’, ‘인간생활의 본질’, 이 세 가지를 모든 기준으로 삼습니다.
생활원리를 갖지 못한 현대인에게 우리는 굉대(宏大)한 이상과 더불어 강력한 생활의 기준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먼저 '녹기'를 정독하십시오. '녹기' 속에 스며있는 녹색의 정신을 받아들이십시오. '녹기'로부터 웅대한 이상과 올바른 생활원리를 얻으십시오. 그리고 함께 '녹기' 정신의 보급을위해 노력해보지 않겠습니까?
<출전: 「綠旗聯盟の精神」, '綠旗' 第1卷 第2號, 1936년 2월, 79쪽>
5. 주요단체 조사 -녹기연맹(1938)
명칭 녹기연맹
취지 목적
사회발전의 법칙에 따르는 인류의 낙토건설 및 일본국체정신을 본받아 건국의 이상실현에 기여하고 인류의 본질적인 인격완성에 노력한다.
개황
1925년 1월 천업청년단(天業靑年團) 경성지부의 설립과 더불어 지부장이 된 쓰다사카에(津田榮)는 동지를 모아 수양에 노력하였다. 이후 내지에 명치회(明治會)가 설립되자 천업청년단 본부는 이에 합류함으로써 동 지부는 해산되기에 이르렀다.
본래 동 지부 및 많은 일련주의자(日蓮主義者)는 그동안 기대할만할 기관이 없는 것을 평소 유감으로 생각하였는데, 쓰다 사카에 등이 중심이 되어 1930년 11월 3일명치절(明治節)을 계기로 전선녹화연맹(全鮮綠化聯盟)을 설립하고 부내 초음정(初音町)국체회관에 본무소를 두었다. 1932년 5월에는 그곳에 신광각(晨光閣)을 건설하여 본무소를 옮기고, 두 세 개의 세포단체를 만들어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을 규합하여 전선단체주의연맹을 보호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4월에는 이들 여러단체를 통일하여 녹기연맹이라고 개칭하였다.
이후 강습회와 수양강습회를 개최하거나 혹은 여자수양을 목적으로 청화여숙(淸和女塾)을 설립하여 장기강습을 실시하였다.
한편1938년 8월 5일에는 불용품정리회의 통제와 모집, 순금 90돈과 해간(海干) 16동을 모아 군부에 헌납하는 등 당국에 즉응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회원 800명.
소재지 경성부 초음정 신광각 내
설립년월일 1932년 4월 3일
소속재산 부동산 약 5천원
유지방법 회원의 회비 및 임시 갹출금
임원
쓰다 사카에(津田榮), 스에 모쿠지로(須江杢二郞), 야마자토 히데오(山里秀雄), 모리타요시오(森田芳夫), 쓰다 츠요시(津田剛), 하라구치 준(原口順)
<출전: 「附表 - 主要團體調(綠旗聯盟)」, '治安情況(京畿道)', 1938년 9월>
6. 쓰다 쓰요시(津田剛), 지나사변의 현대전적 성격 -비약한 우리 국력의 진상
녹기연맹 주간 쓰다 쓰요시(津田剛)
지나사변 처리는 우리 국책의 중심문제이다. 이에 대한 적확한 인식이 없고서는 우리나라에 관한 모든 논의는 공론이 된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지나사변의 현대전적 요소를 파악해야 한다. 현대전은 커다란 입장에서 논할 때,과거 백인 특히 앵글로색슨에 의해 수립된 세계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구상 아래 인류가 신질서를 건설하려는 연속적인 세력 이동의 단면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의 국부적인 전쟁이 일정기간에 시작되어 일정기간에 종결되어도 결코 그것은 그것만으로 고립된 완료적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
요컨대 긴 선상에서의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이다.
현대전이 선전포고로 시작되지 않고, 또 과거처럼 항상 강화조약에 의해 종결되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점에서 유래한다.
지나사변 또한 이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원래 지나사변은 거슬러 올라가면 만주사변으로 이어지고, 이를 장래로 연장하면 대동아공영권의 건설 속으로 몰입된다.
지나사변은 이들 일련의 선상의 점에 불과한 것이다. 만주사변이 시작되었을 장시, 국민의 일부는 오늘날보다도 훨씬
격렬하게 종래의 전쟁관과 평화관에 집착하여 그 신속한 종결에 마음을 애태웠다.
하지만 만주사변은 종결점이 없이 그대로 지나사변으로 확대되었다.
정치적으로 말한다면 소위 정부가 계상(計上)한 만주사변비(滿洲事變費)가 지나사변비(支那事變費) 안으로 통합, 해소된 점을 들어 일단 고립된 만주사변은 종결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만주사변의 진정한 건설적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말하자면 만주사변은 이러한 낡은 국민의식에서 본다면 행위(行衛) 불명이 되었다.
지금 또한 지나사변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나려고 한다. 국민의 일부는 낡은 전쟁관념에 따라 지나사변의 종결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설령 장개석이 진정으로 전향하여 일단 형식적인 지나사변의 해결에 성공하였다 하더라도(이는 극히 드문 경우이지만), 여전히 진정한 의미의 지나사변은 결코 종결 되지 않는다.
지나사변 종결의 목표는 진정으로 일본과 지나 양 국민의 합작을 통한 동아신질서의 일환으로서의 새로운 지나의 건설이다.
그런데 지나사변의 현단계는 일본의 세력 하의 새로운 지나의 건설지역, 장제스 세력 하의 앵글로색슨의 속령지역, 소비에트 세력에 의한 공산지대의 세 개로 분열되고 있다.
지나 대륙은 앞으로 각 블록의 세계 쟁패전의 축도(縮圖)로서 천하가 삼분되는 양상을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다.
지나사변은 표면적으로 항일 지나와 일본과의 정면 충돌의 형태로 개시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나에서의 동아공영권 편입운동과 세계구질서 유지운동 그리고 세계적화운동의 세 개로 나뉘어져 3자 모두 격렬한 본질적인 대립을 나타내고 있다. 표면적인 이들 세력의 하나 둘로의 합류와 분리는 본질관계를 뒤집을 수는 없다.
지나사변의 세계쟁패전의 일환으로의 심입(深入)은 만주사변이 지나사변으로 해소된 것처럼 지나사변 그 자체의 세계전쟁으로의 투입(投入)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가장 잘 명시한 것은 작년부터 갑자기 표면화된 남방문제의 긴박화이다. 남양권의 동아공영권으로 편입 없이는 진정한 동아공영권의 건설은 있을 수 없다. 더구나 남방권이야말로 명백한 앵글로색슨의 세력권이고, 이와 정면충돌 없이는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여기에 삼국동맹을 중심으로 일본과 미국이 불행하게도 싸우게 된다면, 그 문제의 크기는 지나사변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 일부는 미국과의 정면충돌은 아주 큰일이라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지닌 자도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우론(愚論)은 국민의 일부가 우리 국력의 진정한 실력을 인식하지 못한 점에서 생긴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지나사변의 현단계는 표면상 1~2개의 세력의 이동만으로는 그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
이는 만주사변과 동일하게 더 커다란 사건을 통해 해소되려고 한다.
이와 더불어 만주사변이 우리 국력의 비약적 증대를 가져온 것처럼 지나사변 또한 우리 국력의 미증유의 증대를 가져왔
다. 우리나라는 지나사변을 뛰어넘어 일본은 더욱이 커다란 문제의 해결을 향해 지나사변도 그 가운데로 포함하면서 돌진할 단계에 도달하였다. 더구나 우리 국력의 충실은 실로 이를 가능하도록 하였다.
국민의 놀랄만할 착종의 하나는 적성국가에 의해 선전된 것처럼 지나사변을 통해 일본의 국력이 소모되고 있다는 말을 정말로 믿으려하는 것이다. 만주사변 당시에도 사변이 장기화됨에 따라 국민의 일부 보수 계급에 이러한 관념이 발생하였다. 이번에는 모든 국부의 축적 및 군비의 확충이 모두 비밀에 붙여져 이러한 착종의 발생에 대해 국책의 필요상 모두 해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러한 착종에 빠진 것 같다.
일본은 실로 지나사변의 수행을 통해 놀랄만할 정도의 고도국방국가를 완성하고 있다.
먼저 지나사변을 통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최우수한 무장 국가가 되었다.
독일과 소련 등 현대적 국방국가가 지닌고도한 군비와 놀랄만할 충실의 속도는 평시 편성의 데모크라시 국가에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이는 이번 대전에서 프랑스와 영국이 분명히 이를 보여주었다. 우리나라도 만약 일부 보수적 국민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사상을 지니고서는 불과 수년간에 이러한 국방의 충실을 이룰 수 없었을지 모른다.
더구나 지나사변은 육지에서 일거에 일본이 소련과 지나 두 나라에 대한 정면작전이 가능할 정도의 군비의 충실을 가져왔다. 그 내용은 군사의 기밀에 속하는데, 아마도 그 전력은 전쟁 이전의 여러 배에 달할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한 시절의 돌발적인 전시체제가 아니라, 지구적인 영구성을 지닌 체제로 정비될 수 있었다.
이를 북방으로 사용할지 남방으로 사용할지는 우리의 자재이다. 또 한편 이러한 군비를 마련하면서 전시 하의 국민의 생활안정을 이루는 고도자급자족경제는 전쟁 이전의 일본에서는 매우 취약하였다.
만약 그 당시 일본이 파천황(破天荒)이라고 할 만할 커다란 비약을 일부러 이루지 않았다면, 곧바로 격렬한 열국의 고도국방국가건설 경쟁의 레이스로부터 밀려났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나사변은 거국일치로 결속한 국민을 통해 이 커다란 사업을 훌륭하게 궤도에 올려놓았다.
만주국의 건설이 소련과의 전쟁에서 불패의 발판을 전략적, 경제적으로 쌓아올린 것처럼 지나 대륙의 파악(把握)은
고도국방국가건설을 위한 기초적 조건을 마련하였다. 물론 이는 남방권의 편입을 통해 비로소 완벽한 것이 되겠지만, 만주사변 및 지나사변 없이 우리나라는 도저히 앵글로색슨에의 의존의 사슬을 끊을 수없었을 것이다.
최근의 정세는 전적으로 의존하던 우리나라의 국방경제의 영미 의존을 거의 모두 단절시키고 말았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에서 더 이상 영미에 의존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이러한 사슬을 끊었기 때문에수많은 모순이 연이어 생겼다.
국민의 일부는 석유와 설철(屑鐵) 등 그 모순 때문에 일어난 많은 장애를 마치 지나사변에 의한 국력의 저하로 오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고, 청산되어야 할 일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청산할 수 있다.
더구나 고도국방국가 건설을 위한 기초적 조건이 마련되었다.
이렇게 커다란 비약을 국운의 미증유한 신장이라고 말하지 않고서 그 무엇으로 형용할 수 있겠는가.
물적인 면에서 모든 물동계획은 기밀사항에 속하고 외부에서 왈가불가할 일이아니지만, 경제적인 면에서 우리 국력의 신장을 나타내는 1~2가지 실례를 들어보겠다.
근대전에서는 국내에서 모을 수 있는 전비(戰費)의 한도는 국민소득의 10할 내지 12할이라고 한다.
러일전쟁 당시 국민이 부담한 전비는 그 당시 소득의 8할 1분에 해당하였다. 통제경제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이전의 구주대전에서 영국은 11할 2분, 프랑스는 11할 4분, 독일은 10할의 부담을 견뎌낼 수 있었다.
이후 인류는 더욱이 새로운 방식을 발견했겠지만, 가령 이전의 구주대전 그대로 한다하더라도 우리나라가 현재 부담할 수 있는 전비의 총액은 실로 1년 200억 원 내지 300억 원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지나사변에서는 불과 그 4분의 1 정도만을 사용하였다. 더구나 그 가운데 많은 부분은 소련에 대한 준비(형태를 바꾼 만주사변비)이자 또 군비의 충실이라는 의미를 함께 지닌 비용이다.
이러한 견지에서본다면 지나사변으로 일본의 국력이 소모되었다는 것은 실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유언비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국민소득은 1935년의 137억 원에서 1937년의 180억 원, 1938년 210억 원, 1939년 250억 원, 1940년 300억 원(추정)으로 비약적으로 증대하였다. 그동안 국민의 저축액은 최근 3년간 300억원에 달하였고, 1941년도에는 135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소위 지나사변비는 매년 거의 50억 원을 제외하더라도 비약적으로 국부가 축적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보더라도 분명하다.
어디를 보아 국력소모라는 말이 가능한가.
이상을 통해 분명한 것처럼 정치적으로 보더라도 군사적으로 보더라도 우리 국력은 비약적으로 증대하고 있다.
이렇게 증대시킨 힘으로 새롭게 남방권 문제의 처리를 위해 매진하려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상이다.
국민은 깊이 우리나라 국력의 현실과 지나사변의 본질을 이해하여 강한 결의를 다져야 한다.
<출전: 「綠旗聯盟主幹 津田剛, 支那事變の現代戰的性格, 飛躍した我國力の眞相」,'三千里' 第13卷 第4號, 1941년 4월, 80~83쪽>
7. 갸륵한 총후미담, 녹기연맹부인회 폐품회수 헌납(기사)
첫달 월급을 국방헌금해
제주 세무서장(稅務署長) 나카무라(中村善助) 씨의 영윤 풍명(豊明)군은 금년 봄 중 복강고등상업(福岡高商)을 졸업한 후 대판(大阪) 15은행에 취직하여 첫 달에 받은 월봉 중에서 5원을 그 부친에게 보내면서 국방헌금을 해 달라고 해서 광주병사부(光州兵士部)에 뜻 깊은 헌금을 하였다.
녹기연맹부인회 -폐품회수 헌납
녹기연맹부인회에서 폐품회수의 이익금 148원 40전과 또 능금엿 53개를 제20사단을 휼병부(恤兵部)에 보냈다 한다.
직공으로 모은 돈 5원을 헌금
대판 왕풍구(往豊區) 촌상정(村上町) 6정목 3번지에 사는 삼천부단추제조공장(三千部飾製造工場)의 직공 경북 상주군 외남면(外南面) 근□리(斤□里)에 본적을 둔 윤수석(尹水石)은 1금 5원을 제20사단 휼병부(恤兵部)에 헌금해 왔다고 한다.
<출전: 「갸륵한 銃後美談, 첫달 月給을 國防獻金해, 綠旗聯盟婦人會 廢品廻收獻納, 職工으로 모은 돈五圓을 獻金」, '東亞日報', 1940년 6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