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고참 교사인 숙희의 큰 언니는 자기 집에서 아버지 생신 잔치를 치르자고 했다.별거 중이신 엄마를 자연스레 불러 모시기 위한 복안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반대하셨다. 한창 영글은 복숭아 과수원의 수확 작업을 팽개치고 어디로도 갈수 없다는 고집이셨다.
“숙희야 ! 네가 이번주 구로동 고시원에서 독거하는 엄마에게 반찬을 전달해 드리면서 헛고생 치고 엄마를 한번 설득해 보렴..올해 아버지가 75세야. 사시면 얼마나 사신다고 두분이 저렇게까지 원수지간으로 늙어가셔야 되겠니?”
손주들 재롱이나 보시면서 안락한 일상으로 복귀할 법도 했지만 엄마는 끝내 아버지와의 화해를 거부하고 집을 3년전 나가셨다.하루를 살더라도 자신의 자아 실현을 위한 몸부림을 추구하는 엄마였다. 마치도 마지막 무인도 감옥에서마저 탈출을 기어이 하고 만 빠삐용 같은 정신이었다.
엄마가 있는 고시원은 밤인데도 복도의 형광등이 어둡게 한 개씩 건너 불을 켜놓고 있었다.
"엄마 이 꽁치 구이부터 먼저 드세요. 냉장고에 오래 두시면 맛 없으니깐요"
그런데 엄마는 다리를 절고 계셨다.
“마을 회관 요가 강습장에서 따라 하다가 순식간에 삐끗했지 뭐니.”
발목을 걷어 보니 퍼런 멍이 심하게 들어 있었다.
마을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요가 교실에는 수강료 절반을 감면받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절반을 넘어섰고 40대의 나도 따라하기 벅찰 만큼 과격한 동작들이 숨 가쁘게 이어지는 시절이다. 그런 난해한 자세를 척척 소화해내는 노인분들 사이에서 엄마는 최고령자로 어깨를 나란히 하시다가 발목을 다치시고 말았다.
“엄마 우리 다음달에 에버랜드 같이 갈까?”
엄마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이때다 싶어 숙희는 말을 이었다.
“엄마 다음주 아빠 생신 잔치를 복숭아 과수원에서 하기로 했어요. 엄마도 함께가요”
그 말에 엄마는 숙희가 깍아내놓은 배를 한조각 물다가 도로 내려 놓으신다.
"니네 아버지는 내 맘을 강제로 빼았아 갔던 인간이야"
그렇게 수십년 세월이 흘렀건만 아빠와의 삶은 엄마에게 지금도 모멸과 고통의 악몽이었다.한창 가정을 돌보고 부양하셔할 시기때 아빠는 술과 외유로 가정을 비우셨었고 보채는 6자매를 거의 혼자 키우다시피 했던 엄마는 이대로 늙을 수는 없다며 늘그막에 자유와 도전의 길을 스스로 택한 것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잠이 오질 않았다. 없는 돈에도 과일은 외상으로라도 상자 때기로 구입하면서 자식들을 먹여 살렸던 엄마의 생활력이었다.
엄마를 모셔오면 벌어질 뒷탈이 염려가 된다.노쇄하시어 지력이 떨어진 엄마는 열정이 오히려 자란 나머지 감당하기 힘든 사고를 치곤 하시기 때문이었다.
의상실과 미용실을 운영하며 늘 어느 순간 화려한 도약의 포부를 놓치 않고 살아오신 엄마였다. 그런 엄마에게 어느날 의상실 한켠을 차지하던 수다스런 아주머니들의 의기투합이 포착되었다.
다단계 판매 회사였다. 엄마의 잠재된 도전의식이 나래를 피기엔 궁합이 맞는 무대였다. 그런 업체들과 연을 맺고 많은 사람들과도 교유하신 엄마였다.
조기퇴직, 경기불황, 물가상승 등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의식과 함께 길어진 노후에 대한 불안으로 장수를 축복이 아닌 `공포`로 느끼는 그분들께 엄마는 금새 좌중의 분위기를 주도하시는 인생 선배로서의 덕담을 곁들이시는 분이셨다. 그리고 엄마가 가입돼 있는 다단계 조직의 상품을 성공의 열쇠인양 노련히 권하신다.엄마의 일하는 방법이었다.
여사님 소리를 들어가며 성취와 성공의 전형으로 대우도 받았으나 종국적으로는 빚과 손해로 결말이 나는 활동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엄마는 모임에 출석하고 상품을 홍보하고 상담 시간을 꾸려가고 있었다.그녀는 불안했다. 엄마의 건강이 언제까지 저런 활동을 감당해낼수 있을지가...
연로하시어 인지력은 노쇠했는데도 열정과 의욕은 여전한 엄마의 파장을 감수해야하는 것이 요즘은 힘들게 느껴지는게 사실이었다.
연로한 엄마가 식을줄 모르는 저 열정을 발산할 공간이 찾고자 시민회관에서 노인들 대상의 셀프 리더십 특강도 몇차례 했던 숙희였다.
노년에 돈이 없다는 경제적인 문제가 심각하지만 무한정한 시간 속에서 인생 후반기를 어떤 내용으로 채울 것인가가 더 시급했다. 자식들의 보호와 지원을 기대하기보다는 자립적으로 삶을 꾸려야 하는 `홀몸노인 100만명 시대`. OECD 가입 국가들의 평균보다 2배가 높은 자살률 중에서도 날로 비중을 더해가는 노인 자살률을 고려할 때 남아있는 나날에 무엇으로 건강과 삶의 질을 지킬 것인가.
한때 실버사업을 그려보기도 했던 숙희로서는 엄마의 문제로 인해 이런 고민들을 서둘러 할 수밖에 없게되었다.
세상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의 시각이 여기 저기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문화ㆍ예술적 유희의 인간상의 구현은 자살률만큼이나 일하는 시간으로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하게 부각돼 갔다.
“일생은 즐겁게 살기엔 턱없이 짧지만 권태롭기엔 너무도 길다. 열심히 일하는 만큼 잘 놀아야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삶을 헤쳐 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어느 방송 프로에 나오는 연사의 발언은 마치 엄마의 사고 방식을 그대로 대변하는듯 했다.
제2의 삶을 위해 잊었던 꿈과 미뤄둔 엄마의 몫을 되찾아야 할 때다. 시간이 나고 여유가 생기면 해보리라 남몰래 마음먹었던 것들을 일깨워드려야 한다. 그걸 찾아 소일하시는 엄마의 건강한 삶에서 형제들은 자기들의 노후에 대해 희망적인 청사진을 그려갈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아빠의 생신 모임으로 향하면서 숙희는 생각해 보았다.
두 분 사이의 미결된 정산 작업. 그것은 어쩌면 자신과 범도 사이의 숙제와도 비슷한게 아닐까?
그냥 모른척 방치할수록 그 업보의 질곡을 커져가 또 다른 악연으로 하늘을 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새삼 느껴졌다.
오랜만에 할아버지 댁에 놀러온 조카들이 부산스럽다. 장작 난로에서 군고구마를 만들겠다고 사내 녀석들과 계집 아이들이 서성거린다.
"이모 이 고구마는 뭘 먹고 이렇게 맛있는 게 된거야?"
"햇살이 이 고운 흙을 노랗고 달콤한 고구마살로 만든단다.씨는 그 매개체이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생의 표정은 전보다는 밝아 있었으나 아직도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진주 목걸이 알알이 조개안에서 분투해온 상처의 시간을 슬픈 광채로 토해내는데
그 가늘고 긴 목이 차라리 슬퍼보였다.
“얘들아 새참 먹자”
아빠의 농장에는 무우가 한참 푸성귀 빛깔을 더하고 있었다.
일렁이는 그 푸른 밭은 땅이 비를 머금듯 뜨거운 태양을 빨아들이고 있었고 그 기운을 전해 받아 땅 밑에서 무우살이 매끈하게 살쪄가고 있었다.
“아빠 드리려고 사온 술이에요”
막내 동생이 출장길에 사왔다는 양주를 아빠에게 한잔 채워드린다.
발렌타인 21년 산이었다.
머리숱이 많은 아빠는 탈모가 적은데다 아주 백발이었다. 억새풀같았다.
아빠에게 내려오느라 지나치던 국도변 정경이 떠오른다. 태양은 그토록 멀리에서도 저 억새풀들을 일렁이게한다
아버지의 좋은 것을 물려받고 어머니의 좋은 것을 먹고 자랐지만
그 두 분의 뿌리깊은 불화가 일으킨 멀미가 인생의 부채로 남았다.
그 부채가 지금 삶의 뿌리를 흔들어댈 만큼 업보가 돼 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숙희는 결심했다.
‘엄마를 내 아파트에 모셔와야지’
전세를 빼서라도 범도 몫의 보증금을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녀의 입장이 변하는 순간이었다.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님의오늘..
허벌나게 좋은날 되세요..^^*
글 쓰시느라 힘드셨죠?
한줄 한줄 읽을때 글의 정성이 가득하네요
밖의 날씨가 차갑네요
건강 챙기시면서 좋은글 부탁드려요
보라님 주변 정경과 잘 어울리는 분이 정말 미인임을 실감하게 되는군요
자작 소설이예요?
네. 오리지날 자작이오니 아끼고사랑해 주세요
흔적..두구가오니다
행복 하시 길요..^^*
밉네 곱네 해도 부부가 최고라곤 하는데...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ㅋ
다음 편 또 기대합니다
글 잘보고감니다...좋은날 되세요~~~
글을 쓴다는게 쉬운 일은 아닌데...
대단하십니다.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go
음~~ 어머님 노년의 인생을 후회 없이 사시고 싶은... 헌신과 희생이 없이는 사랑과 행복을 얻기는 힘들지 않을 까요 ?
다음편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