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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무적 [1회]
1. 흑건회(黑巾會)
제령(劑嶺).
하남성과 호북성 사이에 있는 소도시다.
지리적으로 두 성의 경계에 위치해 있지만, 이곳을 둘러싼 산세가 워낙 험하다보니 외부 사람들의 출입조차 용이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령이 그나마 소도시로서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 가지 약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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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초(甘草).
성질은 평(平)하고 맛이 달며[甘] 독이 없다. 온갖 약의 독을 풀어 준다.
9가지 흙의 기운을 받아 72가지의 광물성 약재와 1,200가지의 초약(草藥) 등 모든 약을 조화시키는 효과가 있고,
오장육부에 한열의 사기(寒熱邪氣)가 있는 데에 쓰며, 9규(竅)를 통하게 하고 모든 혈맥을 잘 돌게 한다.
또한 힘줄과 뼈를 튼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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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경에 실린 감초의 효능을 설명한 말이다.
약방의 감초라는 말이 있듯이 약을 조제할 때 감초는 반드시 들어간다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이 쓰이는 약초다.
이렇듯 감초가 중요한 약재라는 사실은 명확하나 굳이 왕래가 쉽지 않은 이곳 제령까지
약재상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중원 천지를 아무리 둘러봐도 감초의 대량 재배가 가능한 곳은 몇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감초는 물이 풍부하되 비가 많이 오지 않는 지방에서 잘 자라는데, 그런 조건을 갖춘 몇몇 지역들 중 한 곳이 바로 제령이다.
사람이 모이면 상권이 형성되고, 더불어 상인들에게 기생하는 무리가 생겨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이곳 제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어리를 향해 맹렬하게 날아드는 파리 떼처럼
상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돈을 뜯는 건달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워낙 산골이고 바닥이 좁다 보니 여기서 활개를 친다고 해봐야 그들의 수준은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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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
이곳 제령에도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제령 시내에서 한참 외곽으로 떨어진 후미진 곳에 예전에 창고로 쓰였을 법한 허름한 폐가가 몇 채 서 있다.
너무 낡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듯 보이는 폐가 중 한 곳에서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서진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 때문인지 불빛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창고 안은 마치 태풍이 훑고 지나가기라도 한 듯 온통 난장판이다.
그곳에는 약 40여 명의 사내가 서 있거나 쓰러져 있었다.
쓰러져 있는 자들은 모두 흑의를 입고 있었는데,
전신이 온통 상처투성이로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듯한 중상자가 대부분이다.
꼼짝할 수 없도록 두 손을 밧줄에 묶인 채 무릎을 꿇린 그들은 원독에 찬 눈빛으로 적의인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흉기를 꼬나든 적의인들은 얼굴 가득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내려다 보았다.
적의인들 중 수뇌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앞으로 성큼 나서자,
옆에 있던 수하가 잽싸게 나무 상자를 가져다 사내 앞에 놓았다.
그는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수하가 준비한 상자 위에 올라섰다.
중년 사내는 자기 앞에 꿇어앉아 있는 흑의인들을 한번 스윽 둘러본 뒤에 의기양양하게 입을 뗐다.
“오늘은 우리 혈매파가 제령을 평정한 역사적인 날이다.
너희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흑건회 놈들과 싸워…….”
그때 갑자기 흑의인들 가운데 한 명이 그에게 악을 쓰며 욕설을 퍼부어댔다.
“개새끼들! 비열하게 암수나 쓰는 주제에 무슨…….”
말을 하던 중년 사내는 인상을 확 구기며 살기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저, 저 새끼 죽여!”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적의인 몇 명이 우르르 달려가 사내를 사정없이 짓밟기 시작했다.
퍽, 퍼벅!
“이 새끼, 감히 대형께서 말씀하시는데…….”
“아주 보내 버려!”
울컥.
그들의 무자비한 발길질을 견디지 못한 사내는 결국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셋째야!”
“형님! 정신 차리십시오, 형님!”
제압당해 있던 흑의인들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으나, 사내는 이미 숨이 끊어진 듯 미동조차 없었다.
꿇어앉아 있던 흑의인들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중년 사내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중년 사내는 그들의 증오 어린 눈길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흡족한 표정으로 피를 토하며 널브러진 남자를 내려다 보던 중년 사내는 다시 무게를 잡고 입을 열었다.
“에…,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서…, 그 뭐냐, 음…, 이런 씨팔! 저 새끼 때문에 잊어버렸잖아!”
그는 이 순간을 위해 미리 준비해둔 말이 떠오르지 않자 쓰러져 있는 사내를 보며 욕을 퍼부었다.
그때 꿇어앉아 있던 흑의인들 중 험악한 인상의 애꾸눈 사내가 비아냥거리듯 입을 열었다.
“흥, 막내가 오면 네놈들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될 거다.”
그러자 중년 사내는 입가에 비릿한 조소를 머금은 채 애꾸눈의 흑의인에게 다가갔다.
“큭큭, 내가 그 정도도 생각 안 했을 줄 아나? 여기서 백날이 아니라 천날을 기다려 봐라,
그놈이 오나. 네놈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놈은 벌써 황천 구경을 하고 있을 거다. 크하하하!”
애꾸눈 사내의 안색이 삽시간에 흙빛으로 돌변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설마 네놈이…….”
중년 사내는 비웃음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흐흐흐, 그동안 너희 흑건회 놈들이 그놈을 믿고 얼마나 까불었는지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린다.
별것도 아닌 새끼들이…….”
그의 말에 흑의인들을 둘러싸고 서 있던 적의인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애꾸눈 사내는 희망이 사라졌는지 참담한 표정으로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한참을 웃어대던 중년 사내는 돌연 정색을 하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들에게 제안을 하나 하지. 살고 싶으냐? 아니면…….”
말을 잠시 멈춘 그는 허리춤에서 작은 소검을 꺼내 목을 베는 시늉을 해보였다.
“죽고 싶으냐?”
그의 제안은 간단했다.
살고 싶으면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보통 건달패 간의 세력다툼에서 한쪽이 무너지면 이긴 쪽에서 다른 쪽 수하들을 흡수하게 된다.
이것은 불필요한 희생을 막고, 무너진 쪽의 세력을 흡수함으로써 단번에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수뇌들은 사정이 다르다. 대부분 죽임을 당해 암매장 되거나 손목이나 발목의 힘줄이 잘려
병신이 된 채 마을 밖으로 쫓겨난다.
얼마 전까지 대등한 관계였던 그들이 순순히 수하가 될 리도 만무했지만,
혹 밑으로 들어온다 해도 나중에 뒤통수를 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중년 사내의 말에 흑의인들 중 절반 이상이 슬금슬금 애꾸눈 사내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살 수도 있다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애꾸눈 사내는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치욕스럽다는 표정으로 악을 썼다.
“너 같은 새끼한테 굴복하느니 죽는 게 낫겠다! 차라리 죽여라!”
곁에 있던 사내도 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발버둥쳤다.
“크핫핫핫, 우리 흑건회에 배신을 때릴 너절한 놈은 없다. 사내답게 깨끗하게 죽여라, 이 개자식아!”
그러자 동요하던 흑의인들 태반의 눈빛이 비장하게 바뀌었다.
비록 건달패의 무리지만 의리를 저버리고 목숨을 연명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중년 사내는 험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개자식이라고 욕한 사내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쉭!
“커헉!”
원독에 찬 눈빛으로 중년 사내를 노려보던 흑의인은 목덜미에 붉은 피를 뿜어내며 힘없이 옆으로 나뒹굴었다.
“넷째야!”
수뇌로 보이는 흑의 중년인이 쓰러진 자를 안타까운 목소리로 소리쳐 불렀다.
그러나 이미 목숨이 끊어졌는지 사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적의의 중년 사내는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득한 살기가 묻어 있었다.
“흥, 아무리 뚫린 게 입이라지만, 겁도 없이 그따위 개소리를 지껄여! 또 죽고 싶은 새끼 있으면 나서라!”
흉흉한 시선으로 흑의인들을 보던 중년 사내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 천천히 상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쾅!
창고 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렸다. 적의인들은 깜짝 놀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어떤 새끼야?”
적의인들은 문 앞에 서 있는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침중한 신음성을 흘리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중년 사내는 마치 귀신을 본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네…, 네놈은 혈랑 마대위! 어떻게 네놈이 이 자리에……?”
그때까지 꼼짝 못하고 있던 흑의인들의 반응은 사색이 된 중년 사내와는 정반대였다.
마치 이제야 살았다는 표정으로 사내를 반겼다.
“막내야!”
“크흑, 형님!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혈랑(血狼) 마대위(馬大偉).
스무 살의 나이에 흑건회 서열 5위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싸움 실력의 소유자다.
타고난 싸움꾼으로, 그가 싸울 때의 모습은 미친 늑대를 연상케 할 만큼 흉폭하고 잔인했다.
그의 옷은 항상 격렬한 싸움으로 인해 선혈에 흠뻑 젖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피에 굶주린 늑대, 혈랑이라 불렀던 것이다.
혈랑 마대위라 불린 사내는 창고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가 입고 있는 흑의는 군데군데 찢어지고 선혈이 배어 있었지만 심한 상처를 입은 것 같진 않았다.
그는 차갑게 번뜩이는 눈빛으로 창고 안을 둘러본 후, 애꾸눈 사내를 향해 깍듯이 머리를 숙였다.
“형님! 제가 좀 늦었습니다. 그런데 셋째 형님과 넷째 형님께서는……?”
으드득!
그는 바닥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두 명의 흑의 사내를 보더니
이가 부서질 정도로 거칠게 이빨을 갈아붙였다. 그의 음성에서 진득한 살기가 묻어났다.
“이 개새끼들! 감히 형님들을…….”
중년 사내는 그 살벌한 기운에 짓눌렸는지 자기도 모르게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리고는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켰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말 질긴 새끼군, 뭣들 하는 거냐! 어서 저 자식을 죽이란 말이야, 죽여!”
중년 사내의 외침에 주위에 서 있던 적의인들이 일제히 무기를 꼬나들고 우르르 사내를 향해 몰려갔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기는 했지만 아무도 선뜻 달려들지는 못했다.
자신들을 쏘아보는 혈랑 마대위의 눈빛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말없이 살기에 찬 눈빛으로 적의인들을 노려보던 마대위가
느닷없이 앞으로 달려들며 굉량(宏量)한 음성을 토해냈다.
“갈!”
적의인들이 그의 갑작스러운 고함에 놀라 움찔하며 뒷걸음질치자,
앞으로 달려들 것처럼 보이던 마대위는 뒤로 돌아 문 쪽으로 몸을 날렸다.
마대위가 자신들이 두려워 도망가는 것으로 생각한 적의인들은 함성을 지르며 그를 뒤쫓아 갔다.
적의인들이 밖으로 뛰어나가려는 찰나 별안간 창고 문이 닫혔다.
꽝!
중년 사내가 소리쳤다.
“빨리 문을 열어!”
그의 명령에 적의인들이 우르르 몰려가 힘껏 밀었지만 잠긴 문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흑의인들이 제압당해 있던 곳 바로 옆쪽의 창문이 부서지며 두 개의 인영이 뛰어 들어왔다.
와장창!
그들은 민첩하게 움직이며 손에 쥐고 있던 날카로운 소검을 이용해 결박된 흑의인들을 풀어주었다.
“어서 밖으로!”
문 앞에 서 있던 중년 사내는 그 모습을 보자 얼굴이 사색이 되어 고함을 질렀다.
“노, 놈들이 도망친다! 저놈들을 잡아라!”
적의인들이 도망치는 흑건회 사내들을 잡으러 달려갔으나 그들은 이미 창문을 통해 바깥으로 도망친 후였다.
적의인들이 그들을 쫓아 창밖으로 몸을 날리려고 하자, 갑자기 밖에서 불길이 확 솟구쳤다.
“헉! 부, 불이…….”
누군가 창고 주위에다 기름을 뿌려놓았는지 창고 안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창고 안은 곧 아비규환으로 변해 버렸다.
“사, 살려줘!”
“으아악!”
사방에서 창문이 부서지며 적의인들이 창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뒹굴어 옷에 붙은 불을 끄기에 정신이 없었다.
우지끈. 콰쾅.
잠시 후 창고는 거대한 화염에 휩싸인 채 무너져 내렸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십여 명의 적의인은
그 속에서 시커먼 숯검댕이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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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그 소식 들었는가?”
“무슨 소식 말인가?”
약초꾼 왕삼에게 만두 장수 이호가 목소리를 낮추며 소곤거렸다.
“어젯밤에 월영교 근처의 버려진 창고에서 큰 불이 난 것 말일세.”
“아, 그거 말인가? 나도 들었네. 그 큰 창고가 흔적도 없이 타 버렸다면서?”
이호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더니 왕삼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이야기를 듣던 왕삼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뭐? 혈매파와 흑건회가 거기서 대판 싸웠다고?”
그러자 이호는 기겁한 표정으로 재빨리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 이 사람, 목소리 좀 낮추게.”
“그, 그래…….”
왕삼은 주위를 힐끔거리며 이호에게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불은 왜 난 건가?”
“흑건회의 혈랑조가 일부러 불을 질렀다더군. 듣자니까 혈매파 사람들 열 명 이상이 타 죽었다는 거야.”
이호의 대답에 왕삼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다.
“그렇게나 많이? 허, 무식한 놈들. 사람 목숨을 무슨 버러지 목숨으로 생각하나…….”
“원래 혈매파와 흑건회가 다시 구역을 나누기 위해 모였던 건데, 혈매파가 기습을 했다는군.
초반에는 흑건회가 완전히 밀리는 듯 했지만 혈랑이 나타나 제압당해 있던 흑건회 사람들을 구하고
창고에 불을 질렀다는 거야.”
왕삼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혈랑이? 허, 충분히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놈이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왕삼이 별안간 뭔가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이호를 보았다.
“헌데 자네는 그런 일을 어찌 그렇게 자세히 아는가?”
“왜 일전에 내가 혈매파에 사촌 동생 놈이 있다고 말했잖은가.”
왕삼은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촌 동생 놈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꼼짝없이 타 죽을 뻔했다더군.
어젯밤에 시커멓게 그을려가지고 우리 집으로 도망쳐 왔길래 그놈한테 캐물었지.”
왕삼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곧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우린 도대체 누구에게 상납금을 내야 하는 거지?”
“그거야 낸들 아나. 혈매파나 흑건회 둘 다 어제 일로 꽤 큰 타격을 입었다고 들었거든.”
그때 왕삼이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입을 다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호에게 슬쩍 맞은편을 향해 턱짓 했다.
그의 눈에 느긋한 걸음으로 시장 길을 무리지어 걸어가는 흑의 사내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다섯 명의 흑의인이 가운데 있는 사내를 빙 둘러싼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의 앞쪽에 서 있던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서둘러 길을 비켜 주었다.
“혈랑과 그의 수하들이군. 헌데, 별로 다친 것 같지도 않은데?”
이호가 조심스레 소곤거리자, 왕삼은 몸을 부르르 떨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저놈들은 언제 봐도 섬뜩한 느낌이 든단 말이야.”
흑의 사내들은 서슬 퍼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시장을 한 바퀴 쭉 돌아 길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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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랑 마대위는 흑건회의 본거지로 알려진 화양객잔으로 들어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탁자에 앉아 있던 사내들이 급히 일어나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형님들은?”
“방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대위는 객잔 안쪽에 위치한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애꾸눈의 사내와 중년 사내가 심한 부상을 입었는지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침상에 누워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형님.”
“그래, 시장 사람들의 동태는 어떻더냐?”
애꾸눈의 사내는 애써 태연한 척 입을 열었으나, 그의 얼굴엔 고통의 빛이 완연했다.
“대부분 어제 일을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더군요.”
“음…, 혈매파 놈들은?”
“그놈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애꾸눈의 사내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흠…, 수고가 많았다. 큰 형님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조직은 막내 네가 관리해야겠다.”
“알겠습니다. 그쪽은 걱정 마시고 형님들께서는 몸조리나 잘 하십시오.”
마대위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 다섯 명의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마대위가 조장으로 있는 혈랑조 조원들이다.
마대위는 그들을 이끌고 객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인적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쌍칼,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애들이 몇이냐?”
얼굴에 길게 칼자국이 난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어제 구역을 돌아보느라 창고에 가지 않았던 열다섯 명 정도입니다. 형님.”
“음…, 너희들은?”
다섯 사내는 일제히 힘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저희들은 괜찮습니다!”
“좋아.”
마대위는 고개를 끄덕인 뒤 조용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움직일 수 있는 아이들을 모두 불러 모아라. 지금 즉시 혈매파를 친다.”
그의 명령에 사내들은 기겁을 하며 물었다.
“저…, 형님. 대형께서 허락하셨습니까?”
마대위는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형과 둘째 형님께선 부상 때문에 당분간 휴식이 필요하시다.
따라서 형님들께서 완쾌되실 때까지 흑건회는 내가 지휘한다.”
혈랑조 조원 다섯 명의 얼굴에 일말의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혈매파를 공격하는 것과 같은 중대한 일을 대형의 허락도 없이 시행한다는 건
그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호라!”
느닷없는 감탄사에 그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쏠렸다.
흑서(黑鼠) 초팔.
검은 생쥐란 뜻이다. 앞으로 나선 키가 작은 사내는 얼굴이 가무잡잡해서인지 흑서라는 별호와 잘 어울렸다.
작고 왜소해 보이지만 제령 일대에서는 독종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 사내가 제령을 주름잡고 있는 혈랑조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들 중 유일하게 글자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시절 마을 서당에서 잡일을 거들며 어깨너머로 천자문을 배웠고,
또 잔대가리를 굴리는 것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따라서 마대위의 지시를 가장 빨리 이해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까지 덥석 내놓을 줄 아는 자는 그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환히 웃으며 앞으로 나선 것이다.
“드디어 결심을 하셨군요, 형님!”
마대위는 흑서를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으면 어서 준비해!”
“옛, 형님!”
흑서는 대답하기가 무섭게 혈랑조 5명을 이끌고 어디론가 우르르 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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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제령 외곽의 한적한 공터에 20여 명의 사내가 모였다.
모두들 머리에 검은 두건을 쓰고 살벌한 무기로 무장한 상태다.
꿀꺽!
어디선가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싸늘한 긴장감이 흘렀다.
혈매파와 혈전을 벌인 지 하루 만에 떨어진 소집령에 잔뜩 굳은 표정들이다.
혈랑 마대위가 천천히 걸어 나와 그들 가운데 섰다.
그는 자신의 앞에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는 수하들을 찬찬히 둘러본 후 결연한 태도로 말문을 열었다.
“어제 혈매파 놈들의 비열한 짓거리로 인해 본회의 형제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침중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음…….”
마대위는 주먹을 불끈 쥐며 분노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나는 도저히 혈매파 놈들을 가만 둘 수 없다!
내 두 눈에는 그들에게 목숨을 잃은 형제들이 복수를 해달라고 울부짖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흑서 초팔이 얼른 앞으로 나서며 고함을 질렀다.
“맞습니다, 형님! 혈매파 놈들에게 복수를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형님을 따르자!”
그제서야 주저하던 사내들은 흑서 초팔을 따라 무기를 치켜 올리며 함성을 질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대위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래서 나는 형제들의 복수를 위해 혈매파의 본거지를 기습할 생각이다. 나를 따르겠느냐?”
사내들은 살기에 찬 모습으로 무기를 빼들며 공터가 떠나갈 듯이 함성을 내질렀다.
“와!”
혈매파의 본거지를 기습한다는 말에 모두 흥분한 듯 했지만 유성추를 들고 있는 사내만은
왠지 불만스러운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종만리,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철구(鐵毬) 종만리(琮萬理).
그는 흑건회 서열 2위인 무정혈수(無情血手) 천소백(千昭伯)의 직속 수하로,
흑건회 전체에서 서열 10위 안에 들어가는 인물이다.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형님, 대형의 허락은 받으셨습니까?”
마대위는 천천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일순 주위가 조용해지며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유성추를 잡고 있던 종만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 대형의 허락도 없이 독단으로 혈매파를 기습하시겠다는 겁니까?”
“아마 대형께서는 여쭤 봐도 허락하지 않으실 거다.”
종만리의 낯빛이 돌변했다.
“대형께서 허락지도 않은 일을 형님께서 하신다면 이는 하극상에 해당합니다.”
마대위는 그 말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더욱 당당한 목소리로 외쳤다.
“대형에게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나는 형제들의 복수를 해야겠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사내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마대위의 말에 동조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종만리와 몇몇 사내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마대위는 강렬한 눈빛으로 사내들을 응시했다.
“나는 진작에 우리 흑건회가 혈매파를 제령에서 몰아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흥, 그 새끼들과 권역을 나누는 따위의 웃기는 짓거리는 내 체질에 맞지 않아.”
사내들은 다시 함성을 지르며 그의 말에 동조했다.
종만리와 몇몇 수뇌급 사내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마대위는 다소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종만리, 너는 우리 흑건회가 제령을 일통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냐?”
“저 역시 원하긴 합니다만…….”
종만리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제령 일통은 그로서도 바라마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혈매파의 전면전은 많은 피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흑건회 회주는 입 밖에도 내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그렇게도 바라던 이야기를 마대위로부터 들으니 속이 다 후련했다.
그는 다시 한번 침중한 목소리로 마대위에게 물었다.
“대형의 분노는 어찌 감당하려고 하십니까?”
“모든 건 내가 책임진다.”
종만리는 말없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대위가 비록 자신의 막내 동생뻘 밖에 안 됐지만,
싸움 실력으로 치자면 제령 전체를 놓고 보아도 그를 따를 자가 없다.
거기에 과감한 결단력과 통솔력을 갖추었고, 형제들의 죽음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의리까지 있다.
건달들 중에서 이만한 인물을 찾아보기는 아마 어려우리라.
종만리는 마음을 굳힌 듯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형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그를 따라 나머지 수하들도 모두 마대위의 뜻에 따르겠노라며 함성을 질렀다.
마대위는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우렁차게 외쳤다.
“형제들! 이제 제령을 접수하러 가자!”
첫댓글 즐감하고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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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ㄷㄳ
ㅎㅎㅎ
감사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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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깁니다.
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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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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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좋아
1권8회까지 보고 왔어요. 재미있겠습니당~~~ 5회쯤에서 중단할까도 했지만~ 검은눈동자님 작품이기에~ 감사합니당~
감사합니다 즐독하고 갑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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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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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