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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세상을 훔쳐본다.
태백산 깊은 골짜기에서
올려다보면,
한 평 넓이의
하늘이 보인다.
작은 하늘은
무척이나 파랗고,
깎아지는 벼랑과
푸른 소나무를 타고
산 안개가 구름 되어
계곡을 타고 올라간다.
만들어진 구름은
길을 재촉하고
바람을 벗 삼아
어디를 그리도 서둘러 가는지.
벗이 그리워서......, 반박자(글)
한낮의 태양은 뜨겁고, 눈이 부신다.
지루하고 무더운 한여름의 비속에 채광을 중단한 폐광산에 터 잡은 산 고양이는 모진 비에
젖어 굶주림에 떨고,
한낮 대지의 열이 올라오는 길목에서 웅크리고서 길을 주시한다.
한 때는 번잡했을 이곳은 이제는 인적은 끊기고, 나무와 문은 뜯겨서 허물어지고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듯한 폐허 같은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의 형태와 사택의 일부
그리고 블록담만이 덩그러니 그 자리에 남아 세상사의 무상함을 지킬 뿐,
전기마저 끊겨 들어오지 않는 깊은 산골의 오지 허름한 폐광의 입구에서는 녹이
쓴 철재 문만이 나를 막아서서 이곳이 폐광산이며 광산에서의 허락 없이는
출입을 할 수 없음을 내게 통고하듯 위엄있게 막아서서 지키고 있음을 느끼게 할 뿐,
이 폐광산은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몰리브덴염 광물을 채굴하는 광산으로서 광산의
수지 타산이 많지 않아 채광이 중단되고 이제 광물은 더는 채광하지 않는 폐광이라는
안내 간판은 탈색되고 칠이 벗겨지고 한쪽은 떼어져 판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고
그 쓰인 글마저 아마 누구도 도무지 알아볼 수 없을 듯, 허허
그리고 철재 문에는 굵은 쇠사슬이 겹겹을 감겨서 묵직하고 큰 자물통이 굳게 채워져 있다.
그 자물통이 반가워 아주 오랜만에 열쇠를 집어넣으려니 들어가질 않는다. 어렵게 넣어서
돌리려고 하니 이번에는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도통 열리지가 않는다.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오래된 자물통은 왜 이제야 왔느냐고 투정하듯 자신의 마음을 내게
드러내길 거부하는 것인가? 그냥 해머를 찾아 강제로 내려칠까 하다.
이도 저도 다 그만둔다. 열리지 않는 굳게 닫힌 철문을 강제로 열어본들, 열리기를
거부하는 그 속의 세상에 들어간들 과연 변한 것이 무엇이 있을 것이며,
주어진 여건 속의 세상을 거부하며 잊은 듯 외면하고 방탕하게 나돌다 불현듯 생각이나
찾아온 자물통에게......,
열쇠가 무슨 말로 자물통을 위로할 것 하며, 자물통은 스스로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자신에게 주어진 태생의 한계를 한탄하다.
이내 그 서러움은 분노로 변하고 그 분노는 비와 바람에 쌓여 자신의 입을 막고
마음마저 닫아 열리지 않는 그 마음에 내가 어찌 열리지 않는 자물통을 원망하며 잠시를
힘들다 하여 원망하듯 해머를 내리치는, 사근도원(捨近圖遠)의 우(愚)를 범할 수 있을지,
긴 세월 묵묵하게 지켜온 자물통에 쉽게 아니 헤프게 열리기를 바라는 내 마음만이 다소
멋쩍을 뿐, 오랜 세월을 나를 대신하여 지켜온 자물통에 감사한 마음을 속삭이고
다소 겸연쩍은 마음에 혹, 나중이라도 마음이 허락하면 보여달라 귀속에 속삭이듯 말을
전하고 그 열리지 않는 자물통에 윤활유를 흠뻑 묻혀 위로할 뿐, 허허허
이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굳게 잠긴 자물통 뒤 철문의 틈과 틈으로 보이는
저 너머의 칠흑 같은 어둠 속의 음산한 세상 속에서는 온갖 무섭고 스산한 냉기만
쏟아져 나오고,
마치 무엇이라도 바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런 음산한 분위기다.
몰리브덴염 폐광산에서 쏟아져 나오는 음산한 냉기가 겉옷을 뚫고서 내 뼛속 깊게 스며
들어온다. 다이너마이트를 잘못 다루다 터져서 광산은 무너지고 그 후 잦은 사고로 광산은 문을 닫았다.
담이 약한 사람은 잠시도 머물기가 두려울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속에 사람의
자취라곤 찾기 어렵고 폐광산 앞 공터의 자리에는 내 키를 넘는 잡초만이 더해져
더욱더 을사년 서러움을 드러낸다.
나는 광산을 조금 벗어나 광산을 돌아 오르는 길을 따라 다소 가파른 길로 발길을 돌린다.
거기에는 낡고 허름하지만, 폐광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비와 산 짐승을 피할 수 있는
나의 아늑한 너와집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폐광산 입구에 있는 사무실 건물에서 문과 목재를 뜯어와서 벽을 만들고,
방과 방의 사이를 막고 지붕을 비스듬하게 막았다.
그리고 잡목을 자르고 자른 잡목을 도끼로 정성스레 갈라서 만든 지붕 위에
나무를 차곡차곡 얻어 만든 깊은 산 속의 너와집......,
이곳에서의 생활은 산 아래에서 따라 올라온 강아지도 있고, 폐광산을 지키는
산 고양이들, 얼굴을 튼 산 새들이 모두 내 벗이며, 귀한 친구들이다.
집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아래로는 폐광산에서 나온 물들이 흐르다.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와 저 멀리 드문드문 사람이 떠난 빈집들과 간혹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고, 저 멀리 높은 산들은 더 자라지 않는 키를 서로 재며
누가 더 큰가를 자랑하는듯하다.
나는 이곳이 좋다.
저 너머의 화려한 문명 생활에서의 문명의 이기에 의한 편리함에 익숙해진 생활에 비하면
다소 많은 불편함이 따르기는 하지만, 이도 별 상관없다.
그 불편함이 더 인간적인(?) 것은 혹은 아닐지? 생각하게 한다.
이곳의 생활은 좁은 머릿속의 복잡한 계산과는 거리를 두고, 몸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이른 아침부터 아궁이에 불을 집어넣고 큰 가마솥에 물을 끊이고 나서 타다 남은 숯불을
꺼내서 그 위에 작은 솥을 오려놓고 숯 밥을 짓는다.
밥을 하는데 한 시간이 훌쩍 넘게 걸린다. 이 불편함도 상관없다.
시간의 관념은 적어도 이곳에서는 불편한 하루를 가르는 의미 부존재한 토막일 뿐,
다만, 터지지 않는 헨드폰은 산 아래 놓아두고 올라와서, 간혹 내려가서 그동안 걸려온
전화번호를 나름 확인하는 정도, 이 또한 별 상관없다.
문명의 구형 묵직한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는 이북의 카랑카랑한 아나운서의 어거지성
억지가 흘러나오고, 정겨운 우리의 흘러간 옛 노래가 가장 반가운 소리인데 그마저 간혹
끊겨서 들려 트랜지스터라디오의 안테나에 굵은 철사를 엮어 방문 밖 30 미터를
연결하여 두고 들을 뿐,
산에서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밤에는 초를 태우는 사방 5 미터 정도만 사물을
식별할 뿐, 그마저 그 테를 벗어날 지면 그야말로 천지가 칠흑의 암흑으로
뒤덮이는 어둠의 세상이다.
산 아래에서 데려온 강아지마저 무서워서 끙끙대며 집으로 들어온다.
어둠의 저편 너머에서 보이지 않는 산 새들은 소름이 끼치는 휘파람 소리를 내고,
산 박쥐는 간혹 어둠 속에서 하늘을 가르고, 산 고양이는 자기 세상을 만난 듯 돌아다니며
연신 야옹 거닐 뿐, 산속의 깊은 밤은 일찍 찾아오고, 아침도 일찍 찾아온다.
저 너머 세상에서의 내 삶의 아침은 12시가 아침이었는데, 여기에서는 7시가 아침이다.
.
나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산 고양이들의 아침을 준비한다. 하루 두 번 아침과 저녁에
큰 밥통 안에 정선 장에서 사온 사료를 하나 가득 채워 놓으면 된다.
그리고 계곡으로 내려가 물을 길어 큰 가마솥에 물을 붇고, 장작을 패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물을 끊인다.
그리고 아궁이에서 타고난 숯불을 꺼내 밥 지을 준비 한다.
바삐 준비해야 늦은 아침에 이른 아침을 먹을 수 있다.
아침을 먹고 나서야 내게도 좀 시간의 호사를 누릴 여유가 생긴다.
잠시 눈을 붙이거나, 산 귀퉁이 자락을 깎아 만든 좁고 긴 텃밭에 상추와 깻잎을 심고,
그 아래 작은 밭에는 무와 배추를 심고 그 배추밭에는 배추흰나비가 낮게 낮게 날고 있고,
산 머루를 탐하는 직박구리는 몇 알의 머루를 텃밭 아래로 떨어뜨려 놓고서
나를 힐끔 쳐다보며 반말하듯 "야! 너 어젯밤 잘잖니! 이 씨 네가 심어" 하고,
말을 하는 듯하다. 허허허,
산에 드는 지친 새가 쉴 때를 얻어 쉬어 가는 것 같은,
모든 사물이 멈춘 폐광에서의 한 줄기 바람이 산을 타고 내려온다.
고된 일과와 더위에 젖은 내 마음에 귀하고 소중한 한줄기의 땀이 목젖을 타고 흘러내린다.
생활은 조금은 고되고 힘들지만 나름 내게 주어진 내 삶을 사랑하리라.
산 높고 골 깊은 하늘만이 빼꼼한 이곳은 바깥세상과 단절된 문명과는 동이진 오지,
높고 낮은 봉우리 틈새 조그마한 텃밭을 이루고 깎아 지는듯한 절벽과 바위를 깎아내고,
경운기가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이 길을 걷다 보면 산 더덕은 진한 냄새를 풍기며
술래잡기를 하자하고, 길옆 흐드러지게 핀 연보랏빛 산도라지,
각종 야생화 금낭화, 초롱꽃, 매발톱, 그리고, 이름 모를 들꽃들이 한 것 뇌쇄 이는
깊은 원시림 속 늦여름의 끝자락에 내가 서 있다.
하늘로 가는 첫 집은 제멋대로 자란 잡풀 속에 가려 보이지 않고 6.25 때 도망치던
빨치산들이 숨어든 첩첩산중 속의 작은 마을은 파괴되어 일부의 주민은 빨치산을
피해 산 아래로 내려가 지금의 산 아래에서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루었고,
또 일부는 빨치산에 이끌려 더 높고 더 깊은 산 속으로 올라가서 화전을 이루고
살았던 그 자리에는 빈터만 덩그러니 남아 세월의 무상함 속에 빈 바람만이
스산하게 그저 오고 갈 뿐,
빈 공터 한가득 도라지가 군락을 이루고 바람에 연보랏빛 가득한 파도를 치듯 요란을 떨며
그 시절 슬픔 기억의 향을 짖게 흘린다.
향에 취해 잠시 넋을 놓고, 이념의 상반되는 관점에서의 오만과 편견을 잠시나마 곱게
접어서 조심하게 땅에 내려놓는다. 다름이 그 다름과 어떻게 다르기에......,
페트병 속에 담아온 막걸리를 땅에 적시고 내 목에도 쏟아 붙는다.
땅을 파서 꺼낸 도라지를 대충 흔들고, 털어서 입에 밀어 넣는다. 흙이 조금은 섞였는지
씹을 때마다 다소 서걱서걱 댄다.
그래도 산 도라지의 향이 입안 한가득 향을 품고 입 주위를 맴돈다.
아무튼, 이것도 그다지 싫지 않다.
술기운에 벌러덩 드러누워 한 평의 하늘 속을 미친 듯 혼자 히죽히죽 거리며 훔쳐본다.
옛 시간 속, 깊은 상념(想念)으로 나는 점점 걸어 들어가고 있는가?
그 묻힌 옛 시간 속 "인간의 편협(偏狹)한 오만(傲慢)과 편견(偏見)으로 설정된 척(尺)으로,"
삶과 죽음이 결정되었던 그 아픈 시절 쓰러져간 무명(無名)의 망인(亡人)에게,
그 당시의 척(尺)이, 오늘 우리의 이념적(理念的) 삶과 철학(哲學)에 무슨 의미가 그리도
있었는지?
한 시대나 한 사회 또는 서로 이해관계(利害關係)가 다른 계급(階級) 사이에 부르주아 계급
과 프롤레타리아 계급 사이의 투쟁, 그 계급투쟁(階級鬪爭)에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관념
(觀念), 믿음, 주의(主義) 따위의 성질이 과연, 얼마의 의미가 그렇게나 있기에......,
허허허, 나는 그냥 이 모두 형식을 더한 형상의 그림자에, 그저 아미타불이로고......,
나에게 내가 묻는다.
나는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향(香)을 피우고 반야 사상의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독송(讀誦)
하다, 잠이 든듯한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구슬프게 울어대는 산 새의 소리에 눈을 뜬다.
사방은 어느 사이 어둑어둑한 기운이 내 주위를 압박하듯 엄습(掩襲)하고 다가온다.
이런! 서둘러 집으로 내려가려 하니 숲이 험하고 잡목이 많아 올라온 길을 놓친 듯...,
이곳을 나가려고 하여도 길을 잃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미타불이로다.
길이 없는 험한 산을 두어 개 넘어와서 너무 깊이 들어온 듯, 나는 잠시 세상 속에 갇혔나?
산중에서의 낮과 밤은 도시에서의 그것과 너무 다르고 위험하다. 야간 산행을
즐기는 나도 이 산중에서는 도체 길의 방향을 잡을 수 없다. 허 참 낭패로다.
한 평 남짓 한 하늘에 떠 있는 선명한 별자리를 보고,
미 군용 야광 나침판을 참조하며, 어둠이 짙게 내린 산중 속 우거진 소나무와 활엽수
사이를 정글 칼을 내리치며 길을 뚫고, 찾아서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깊은 산 속을
전진하고 나아간다.
드디어 산 정상 부근에 내가심은 듯한 낮 잊은 더덕의 향이 방향을 잡을 수 없는
깊은 산중 어둠 속을 짖게 풍긴다. 그래도 맞게 찾아왔나 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침판에 의지하고 나름 방향을 잘 찾았구나! 안심한다.
어찌 되었든 집 근처 산 정상에 다 달은듯하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다시 방향을 갈음하며, 산 아래로 길을 재촉한다.
멈춘 시간에서 움직이는 시간으로, 차수(次數)가 변경되고, 변경된 차수에서 나는 더덕의
향을 따라 어둠 속의 길을 잡는다.
어둠 속을 한참을 걷다 보니 멀리서 강아지의 소리가 빈 바람을 따라 가득하다.
산 아래에서 함께 온 강아지가 짖는 소리가 내게 이리도 반가울 수도 있다는 것에
한 치의 의문이 생기지 않는다.
빈 바람에 묻어온 강아지의 소리에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 속 나의 부족함을
깨우치는 듯하다.
어둠을 뚫고 길 없는 길을 내며 내려온 몸이 무척이나 피곤한 듯 산 집에 도착한 나는
저녁도 거른 채 깊은 잠에 취한다.
산 집에서의 이른 아침은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내 머물고 있는 산속 너와 집......,
그 뒤 터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냉장 효과를 기대하며 땅을 깊게 파고 항아리를 묻어서
그 속에 담아둔 술이 어느덧 바닥을 드러내고, 폐광산을 지키는 산 고양이의 사료도 부족한
듯하여 정선 장을 가기 위해 산 아래로 이른 새벽에 강아지와 함께 길을 잡는다.
산 아랫마을까지는 쉬엄쉬엄 걷다 보면 아마 한 시간 남짓 걸리겠지...,
옛길은 일부의 도로가 포장된 다소 넓은 길이였으나, 드나드는 사람이 없어서 넓은 길은
좁아지고 폭우에 끊기고, 각종 들꽃과 잡풀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길을 덮어 사납고
제법 부분 부분이 험하다.
폐쇄된 광산으로 오르는 산은 철조망에 막혀있고, 길로 통하는 철문은 굳게 닫혀있다,
그 문에는 무단 입산하지 말라는 경고 팻말이 붙어있다. 아무도 올라올 수 없는 한적한
길을 따라 강아지를 벗 삼아 나는 내려간다.
나에게 주어진 내 세월의 시간을 감아가며......,
숲 속의 나무들은 뿌리마저 서로가 엮어서 나누어 가진 나무들로 가득한,
오래된 숲 속의 좁은 길과 그 옆을 졸졸 흐르는 개울을 따라서,
열목어와 금강모치들이 물속에서 요리조리 이동하며 한가함을 드러내고......,
산 아래의 개울가 오래된 외나무다리 건너에는 낡고 허름한 세월의 묵은 떼가 가득한,
억새를 엮어서 지은 아늑한 사람 냄새 풍기는 집이 있지 않은가.
소박한 살림살이 속에 인심이 정겨운 듯,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도 무척이나 반가운 듯
맞아주는 인심도 있다.
이곳은 계절 따라 봄에는 나물하고 여름에는 약초하고 가을에는 버섯을 딴다.
아주머니는 뒤 텃밭에 나가 방금 딴 곰취를 흐르는 개울에 내려가서 정성스레 씻어 낸다.
그리고 숯불에 올린 가마솥에서는 서서 하게 그리고 느린 시간 속, 밥이 익는 냄새에
이른 새벽녘에 산길을 잡아 내려온 나에게 슬그머니 시장기로 다가온다.
나는 안방에서 마치 주인이라도 되는 양 벌러덩 드러누워서 천장을 올려다본다.
내가 누워있는 방에는 크고 작은 문이 세게나 된다.
앞쪽 문을 열면 문 아래로 마루가 있고 마루 아래 마당이 보이고 그 아래로 개울이 흐른다.
그리고 그 개울 위로 깎아지는 듯한 높은 절벽과 산이 압박하듯 지켜서서 감시하듯 나와 집을 내려다본다.
조금 작은 문은 부엌으로 향한다.
부엌의 분주함과 구수한 음식들이 내는 저마다의 향이 앞을 다투듯 서로 자랑하며
내 눈을 동요시킨다.
뒤로 나 있는 문에서는 폭이 좁은 작은 마루 아래 텃밭과 닭장이 보이고,
그 텃밭을 따라 이내 산으로 완만하게 계속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한 시간을 넘어 올라가면 내 너와집과 몰리브텐염 폐광산이 나올 것이다.
누어서 바라보는 그 뒷문 너머에서 아줌마가 잠시 눈에 스친다.
땅에 묻은 항아리에서 구수한 된장을 바가지에 담아 오면서 눈이 마주하자 민망하다는 듯
히죽 웃는다.
별 반찬 없이 상을 차려서 다소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인데, 나도 따라 히죽 웃는다.
새 소리와 맑은 공기가 늘 함께 하고......,
산나물과 산 더덕의 향기와 구수한 된장국을 먹을 수 있고, 그녀가 내 상 앞에 마주하거늘
천상천하(天上天下) 어떤 산해진미(山海珍味)가 이보다 더 나을 수가 있을지?
은근한 숯불에 뜸들인 밥을 곰취나물에 한 술 얹히고, 산도라지와 더덕을 넣고 된장을
얹혀 곰취 쌈을 먹는다.
자연의 곰취 향과 산도라지, 산더덕의 향이 조화롭게 아울려 무척이나 입안이 향긋하다.
가끔은 뒤 터 마루 건너 닭장의 닭이, 산에서 방금 캐어낸, 대자연의 약초와 더불어
한 상 가득할 때에는, 호텔 스위트룸에서 각종 접대의 호화로움 보다는 빛이 다소 약할
지라 하여도, 은근한 자연의 향과 정겨운 그녀의 미소 앞에서 어찌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어화둥둥, 내 사랑이로고.
억새를 엮어서 지은 지붕과 나무와 흙을 발라 지은 벽, 그 흙집에서 세상사
부러울 것 없고 여유롭고 한적한 배부른 호사를 누린다.
나는 웃옷을 벗고 배를 들어내 큰 대자로 누어 한가득 올라온 배를 연신 쓰다듬으며
앞문 너머 세상을 지긋하고 거만하게 내려다본다.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는 경복궁 박물관이 화재로 사람이 상했다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드문드문 심심파적 삼아 어지러운 세상의 소식을 들려주는 고마운 라디오인걸. 허허,
어찌 됐건 참 어지러운 세상이로고, 이 또한 아미타불이로다.
나는 아줌마 다리를 벼고 큰 대자로 드러누워 잠을 청한다.
세상사 시름 따위가 나와 무슨 까닭이 그리도 있을까 산 사리(事理)의 삶에 젖어......,
있으면 먹고, 졸리면 자고, 반찬이 동나면 몇 걸음을 나가서 툭툭 걷어오면 그만인 것을
아침을 든든하게 먹으니 슬그머니 피곤함이 밀려온다. 잠시 눈을 붙인다.
방문 너머 개울과 앞산이 벽처럼 다가오듯 나를 막아선다.
그 자리에 나는 누워 세상사 사름을 잃고서 깊은 잠에 취한다.
마치, 꿈에서 소풍을 나온 듯, 개울가에는 아침의 안개가 가득히 피어오르고,
한적한 비포장길 옆으로 개울물이 내 깊은 상념과 별 상관없다는 듯 졸졸 흐르다.
이곳에서의 멈춘 듯 느린 생활과 다르게, 저 너머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너무 빨리, 너무 급하게, 너무 정신없이, 혹 살고 있지는 않은지!
맞춘 듯, 틀 속에 갇혀 마트에서 돈을 내고 물건을 사듯 삶의 시간을 사는 것은 혹, 아닌지!
산, 나물들의 향이 가득한 곰취 쌈보다는, 집으로 배달되는 짜장면에 더 길 들려진 세상,
P.C와 헨드폰이 손에 익기가 무섭게 새로운 상품이 우리를 압박하고 선택을 강요한다.
급하고 빠르게 변하는 문명을 허겁지겁 따라가기에 숨은 거칠어지고,
어떤 이에게는 편한 문명이 또 어떤 이에게는 불편함의 시작일 수도 있는
다소 아이러니한 삶의 불편한 진실 속에서, 개인의 감정은 무시되고......,
진열장에 전시된 상품의 홍수 속에 기계적인 선택을 강요받고도 본인의 의지에 따른
선택을 하였다고 강변하고 자위하는, 그 채 바퀴 돌 듯한 일상들 속......,
삶의 노동 속에 녹아, 가족의 틀 속 엉킨 실타래에서 한올 한올 풀어나가며, 땀을 흘리는
모습과 지금에 안주하는 삶 속에서 현실을 부정하며 과거로 돌아가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 자리에서 한적하게 자연과 함께 더불어 숨을 맞추는 삶,
어느 것이 현자의 삶인지는, 나도 잘은 모른다.
다만, 자연과 벗이 되면 그 자연이 벗의 마음이 되어 넉넉하게 품어준다는 것. 외에는
더도 모르고, 덜도 알고 싶지는 않다.
마루 밑에서 낮잠을 자던 강아지가 마당 앞 가지에 않은 새를 보고 짖어 댄다.
나도 아침 녘의 한숨을 자고 나서 긴 기지개 하며 아줌마와 함께 앞 개울로 나선다.
강아지도 아줌마 옆을 지키며 졸졸 꼬리를 치며 앞장을 나선다.
신발을 벗고서 개울 물속에 손을 집어넣으니 이젠 나도 손에 쑥쑥 다슬기가 붙는다.
어느 사이 냄비 안에 다슬기가 제법 찬다.
아침을 얻어먹었으니, 점심은 내 가하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며......,
잡은 다슬기에 호박과 싱싱한 산, 나물을 툭툭 잘라 넣고 다슬깃국을 끊인다.
근처에서 나물 몇 가지를 뜯어와 채우니 금세 한 상이 차려진다.
밥맛이 그야말로 꿀 맞이다.
아줌마와 마주하고 호젓하게 겸상(兼床)을 한다.
처음에는 조금 서먹서먹하였으나 한 달을 넘어가니 아주 오래된 벗이 아닌가?
인생을 살아가는 세상의 사리가 뭐 그리 복잡하다고......,
자신이 설정한 편협(偏狹)한 틀에 갇혀서, 머릿속 한가득 복잡하지 않은 생각을 스스로
우둔(愚鈍)한 허상(虛像)으로 가득 채웠을 뿐,
이리하여도 한세상 저려도 한세상인 걸 어찌 모른단 말인가,
"이 중생들아! 내 안의 나에게 버럭! 소리친다."
나는 사회의 편견과 비난에 초월할 수 있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점과 선이 혼재(混在)
하는 경계선에 서 있다.
누구에게도 속할 수 없는 경계선에서 항상 외 줄을 타는 이방인이었다.
젊었을 때의 나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갈림길에서 선택하는 혼돈 속 착각에 속았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 좋은 것과 더 안 좋은 것 중에서라도, 지금 내게 있어야 할 것을
선택하려 한다. 지금의 나에게, 안 좋은 것이든, 더 안 좋은 것이든, 별 큰 동기를 부여할
의미는 부족하리라. 최악의 선택이 아니라면, 지금 주어진 조건에 온 힘을 기울일 뿐......,
그것이 인생의 삶이 아니었는가 회상하듯 돌아본다.
나름 지나온 삶 속에 터득한 비법인지도, 내 나름의 철학과 신조대로 “아니면 말고” 인가?
어지러운 세상사 속에서 완벽하고, 확실한 것은 누구나가 원하는 수(數) 이다.
혹, 무결점이고 완벽한 당신에게(?), 완벽한 선택을 할 경우의 수는 얼마일까?
그것은 남의 집 현관 앞에서 비밀번호를 맞추고 들어갈 확률!
설령 요행하게 들어섰다. 치자 그 다음 날에 혹시, 비밀번호가 변경되었다면?
그럼, 당신은 다시 선택하여야 한다. 비밀번호를 풀 것인지 그냥 돌아설 것인지를......,
인간의 삶 속에는 부단하게 두 갈래 길에서 부단하게 당신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는지는 선택을 할 사항이 아니며 그 선택의 결과 역시 당신이
스스로 감내(堪耐)할 삶 중의 일부 일 것이다.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물질 만능의 세상사 속에서......,
낚고 허름한 것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사라지는 세상 속의 편협함을 버리니,
하나를 버리면 또 하나가 채워지는 인생살이의 넉넉함이 찾아온다.
이것이 산 사리(事理)의 진정한 행복이 아닌가!
넉넉한 산의 품에 안겨서 산 사리(事理)에서의 낡고 허름한 것과 오래된 것의 가치와
느리게 사는 행복의 맛을 느낀다.
개울에 발 담그고 흐르는 물에 물장구만 치고 놀아도 하루의 해가 짧은듯한 시간
어쩌면, 이 순간이 내 시간 속의 고독한 여행 중 가장 순수하고 진솔한 삶의 순간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생명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이곳, 깊은 산 속 순순한 영혼과의 만남, 아름다운 추억을
나는 간직하리라,
아름다운 시간 속 고독한 여행 중,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나야 할 시간이 내게 다가오는가!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항상 생긴다는 고집스러운 나의 철학처럼......,
점심을 먹고 나서, 오일장 열리는 정선 시내로 향한다.
오늘은 구수한 입담과 정겨움이 가득한 정선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다.
거기에서 활동적인 삶의 향과 사람의 냄새를 나는 맡으려고 한다.
좁은 길을 가득 채운 사람과 사람들, 그리고 구수하게 물건값을 흥정하는 목소리,
전을 부치는 냄새, 걸쭉한 밀주 냄새, 팔다 남은 물건은 돈이 아닌 서로가 필요한
물건으로 바꾸기도 하는 장터의 인심, 이 모든 것의 향에 나는 잠시 가던 길을 멈춘다.
좁은 장터를 오고 가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고즈넉한 언덕 큰 나무 아래에는 장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할머니가 힘에 부쳐 잠시 나무에 기대어 가쁜 숨을 내리고,
긴 장대의 곰방대에 불을 붙이고 연신 연기를 내뱉는다.
거기에서 나는 세상을 봤다.
아리 아리 아리랑 아리 아리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오다가 가다가 만난 임은
팔뚝이 끊어져도 못 놓겠네
문고리 잡고 일어나 넘어가는 고개는
아리랑 아리랑 아나리오
둘이 살다 혼자 되어 넘어가는 그 고개는
너무 힘들어 잠시 쉬어 넘어가네
저 산 해는 지고 싶어서 지느냐
날 버리고 떠난 임은 떠나고 싶어서 떠났겠느냐
인생길 어두운 밤, 날 두고 떠난 임아
아리랑 아리랑 아나리오 아리랑 고개로 나도 넘겨 주소.
"나는 장터 너머 조그만 바위에 몸을 걸터앉아 세상을 겹눈으로 훔쳐본다."
고독과 잃어버린 여행 속, 방황하는 내 모습을......,
이미타불^^
물의 경계
물길 너머 시간의 시름을
갈음하는 해는
산을 넘기가 힘에 부쳐
허덕대고,
개울가에
비치는 하늘은
피곤한 듯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저녁녘 술을 구해
산에 오르니
산을 따라 내려오는
물의 경계가 그윽하구나
술에 취해 집으로 향하는 발길에 개울 속에 비치는 나를 보고서......, 반박자(글)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훔쳐보는 큰 세상
정선의 깊은 골짜기
아래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큰 산을 넘는
해를 보니
나도 몰래 절로
탄식이 나오는구나.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훔쳐보는 큰 세상 속, 부족한 나 자신을 한탄하며......, 반박자(글)
푸른 소나무
빈방에서 잠에 깨니
여름날 밤이 이미 무르익었구나.
무심한 구름은 물 위에 눕고,
새벽녘의 달은 소나무 사이에 걸치네.
세상 일 잊고 있으니 마음이 편하고
산을 나가지 않아 꿈도 편안하다.
내 고향에 있는 푸른 소나무는
지금쯤 얼마나 자랐을까.
집에 두고 온 고양이를 그리워하며......, 반박자(글)
호텔에 묻고 있는 일본 관광객이다.
네 명이 왔는데 한 명은 피곤하여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고 한다.
맹랑한 일본 아가씨들이 물어보지도 않은 독도가 다케시마라고 눈 크게 뜨고 우기며 세 명이 들이댄다.
미워서 수영장에서 물 먹이려고 하다가 모두가 수영을 너무 잘한다.
그만, 나만 흠뻑 물 먹었다.
오늘 저녁은 건너뛰어도 될듯하다. 허허허,
수영하다 말고 갑자기 피자가 먹고 싶다고 하네요?
그래서 피자 내기 당구를 치는 중입니다.
참, 당구는 10분 전에 당구 치는 법을 그것도 대충 가르쳐 주었지요.
신이 나서 난리입니다. 저녁 부페까지 내기하자고 나설 판이네요. 허허^^
오늘은 사다리 대신 당구로(?) 조금은 품위있는 저녁의 만찬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겠군요.
이런! 운수 대통이로다. 이 또한 아미타불이로고. 허허허
참! 어지러운 세상이로고,
물 밖이나, 물 안의 세상이나, 어지럽기는 마찬가지구나. 허허허
천상천하(天上天下) 아미타불이로고.
호텔 객실담당 지배인입니다. 음악과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성격은 차분하고 나름 분위기가 상당합니다. 영어, 불어, 일어, 에 능통합니다.
아직 미혼이고. 나이는 30대 중반, 내가 중매를 쓴다고 하니 웃네요
동양인 중 한국인도 나름의 관심이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나도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녀 왈 “너 빼놓고 다 가능해”하네요? 이런......,
이곳은 한국인은 잘 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본 한국어를 몇 마디 지도하고 있지요?
사랑해, 시간 있니, 놀자, 등등......,
객실 예약과는 별 상관없는 단어로, 교육은 호텔은 조금 그래서 호텔 밖에서 베트남식 커피전문점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커피를 볶아서 커피를 내립니다. 시간이 좀 걸리지만, 향이 좀 특이합니다.
그녀는 커피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저를 좋아하는 것은 혹 아닌지 궁금하지만,
그 또한 그녀의 숙제이고, 나 또한 상관없지요. 허허허
아미타불^^
정선 근처 깊은 산 속에서 한 달 조금 넘게 있다가.
너무 더워서 베트남 호치민으로 들어간다. (호치민은 사실 더 더운데, 허허허)
호치민에 가면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고딕 분위기의 건물 풍의 지은 지
200년이 훌쩍 넘은 마제스틱 호텔이 있다.
요즈음은 그 옆에 최신식 초고층 호텔을 짓고 있지만 마제스틱호텔은 요즘 새로 생긴
호텔에 비하면 호텔의 규모는 화려하거나 호화롭지는 않지만, 그 분위기가 고전 풍의
번잡하지 않고 웅장한 제가 좋아하는 옛날 풍의 분위기이지요.
그리고 오게 되면 자주 묵는 호텔이라 비교적 편하고, 행동이 자유롭습니다.
열흘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나만의 오지 속의 여행을 위해 서울에서 함께 온 일행은
서울로 되돌려보낸다.
내 목적지로 가는 여정 속에는 일행이 묵을 호텔도 없고 더운물도 식사도 열대 모기도 극성이다.
한 마디로 일반인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 탐험이다.
나 혼자서 라오스의 오지로 향하기로 정하고 배를 알아봐 달라고 호텔 지배인에게 부탁한다.
미모의 여 지배인이 내게 호감(?)이 있는지 상당하게 친절하여 신경이 좀 쓰이긴 하지만,
그녀에게 부탁하여 현지인의 배를 아주 저렴하게 한 달 정도 임대할 수 있었다.
배를 운항할 현지 가이드 포함해서, 근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이드가 젊은 여자다.
한참을 망설이다 조금은 불편할 것 같고 조금은 믿음이 부족하지만, 대여 조건이 좋고
지배인이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그 여자 가이드의 자신이 있다는 씩씩한 말에 그냥
가기로 한다.
나와 그녀, 아니 손님과 가이드는 출발한다.
그 배로 사이공 강을 따라 해안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해안에서 육지 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메콩 강 상류 쪽으로 올라가며 길을 잡아 오래전부터 계획한 최종 목적지인 라오스의
오지 중의 오지인 마을 폰난르에 도착할 생각이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출발하여 캄보디아를 거쳐서 라오스로 라오스에서 므앙 응오이를 거쳐서
우 강의 줄기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관광객은 없고 현지인들만이 사는 오로지 배로만
들어갈 수 있는 오지 중의 오지마을 폰난르로 갈려고 준비한 여정이 캄보디아 국경에 도착
하고 나서야 내 여권이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이런 멍청한 나 자신은 생각하지 않고 타인에게만 여권을
준비하라고 독촉하고 확인을 하였을 뿐인걸, 허허허.
호텔에서 차량을 대여할 때 대여업자에게 차량을 반납하면서 여권은 찾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멍청한 한동안 멍 때리다 그냥 무시하고 통과할 수 있다는 현지인의 당찬 말 대로 들어가다
다시 되돌려 나온다. 현지인의 말대로 통과할까 하다. 배의 방향을 호치민으로 되돌린다.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는 현지인의 말대로 강을 따라 올라가다 슬쩍 통과할 수는
있어도 라오스 국경에서는 통과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라오스는 강에서의 국경의 경비가 비교적 삼엄하고 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문제 발생 때 강제 출국이 아닌 그곳에서 갇힐 수도 있다.
그리고 들키면 캄보디아 국경에서의 통과도 함께 문제가 된다.
낭패다. 할 수 없이 캄보디아 국경에서 배를 돌린다.
라오스까지 다녀오려고 했는데, 누구를 탓하리오. 내 자신의 우둔함을......,
도로아미타불이로고, 허허허.
호치민 대학에 다닌다는 씩씩하고 당찬 학생이다.
방학 중에는 틈틈이 착해 보이는 여행객을 상대로만 가이드를 한다고 한다.
일본 여자 관광객들이 주 대상이나 평소에 잘 아는 호텔의 지배인이 특별하게 부탁을
하였고,
내가 착하게(?) 보여 가이드를 하기로 하였다나......,
그저 이미타불이롤세,
유럽의 경제 여건으로 호텔 투숙객이 많이 준듯합니다.
하여, 액세서리를 많이 세일을 하네요. 모처럼 돈 좀 벌어볼까(?) 하여 호텔 로비에서 300불짜리 팔찌 200불에 사서 선물하니,
성질 급한 그녀가 바로 900불이 넘는 샤넬 안경을 선물로 주네요. 허허허,
오늘만큼은 조금은 남는 하루인 듯합니다.
글쎄, 아직 저녁까지 시간이 좀 남아있어서 좀 불안은 하지만, 허허^^
아미타불이로고,
-- 사진 내립니다--
성격이, 보면 볼수록 아주 쓸만한 여인입니다.
자기 얼굴 나오면 짐 싸들고 집으로 온다고 하네요. 그건 두렵지 않으나......,
허허허.
--- 사진 내립니다 ---
여기서 쉬고 있던 사진이 까칠한 주인을 따라 갑니다. 허허허^^
첫댓글 forever free man ^^ i envy you
넘길어
다른건모르고 금팔지하고 목거리는탐이나네요
^^;
멋진인생 ~~
핸드폰으로 글을 읽다가 한참을 내려 갔는데도 스크롤바가 엄청 남더군요......
오늘은 무슨 심정으로 이리 긴 글을 올리셨나... 나중에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에 멈추고 미팅 끝나고 지금 컴퓨터로 읽었습니다.
근데....... 사진이었군요..... ㅎㅎㅎ
어디서 많이 본사람인디.... 어서 봤더라??
반박자님~~부럽다는 ~~ㅋㅋ
뭐 하는 분이세요.....?
얼굴 정리좀 하니 전에보다 헐 봐주기가 났네그려.(잘생긴 얼굴을)......정선-호치민-서울을 오가며..............나 무 아 미 타 불..........한동안 뜸하더니ㅋㅋㅋㅋ
벗에게,
여름날 밤,
빈방에서 잠에 깨어
밖을 바라본다.
산사의 바람 소리 요란하고
떨어진 나뭇잎들이 이리저리 뒹굴 때
새벽의 공양소리
어둠을 비집고 내게 들어온다.
문득 집에 두고 온 고양이가 그리워진다
아마, 온 집안을 헤집어 놓았겠지.
내 삶의 먼지 속에서......, 반박자
천재의 글과 시,,,,,,,,그리운 아름다운 목소리,,,,,,,너무 많은것을 가진 그대를 부러워하며,,,..시기하며,,,,,대리만족하는 즐거움!!
글을 읽다 보니 저도 모르게 반박자님의 글속으로 들어가게 되네요
서너 번 읽고 나니 글속의 내용이 상상으로 그려지고 빠져들어 가 내가 그 속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그 속에서 개울을 건너고 덧마루에 걸터앉아 세상을 내려보는 듯합니다.
오랜만에 읽어보게 되는 아주 좋은 글입니다.
서점에서 구해서 읽을 수 있는 흔한 글은 아닌듯합니다.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반박자님의 글을 자주 읽게 되는 일이 있었으면 합니다.
감사드리며, 저도 삶의 먼지 속으로 들어가렵니다.
자유로운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