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09년. | |
![]() | ![]() | FW. |
![]() | ![]() | 포철공고. |
![]() | ![]() | 185cm. |
![]() | ![]() | 80kg. |
![]() | ![]() | 1979-04-29. |
![]() | ![]() | . |
![]() | ![]() | 여행, 골프. |
![]() | ![]() | A형. |
![]() | ![]() | 라이언 킹. |
![]() | ![]() | . |
![]() | ![]() | 제육 볶음. |
![]() | ![]() | 지금 흘린 이땀은 결코 날 배신 하지 않는다.. |
![]() | ![]() | 초등학교 4학년 때 육상 대회에서 1등 한 후, 감독님 권유. . |
![]() | ![]() | . |
![]() | ![]() | . |
![]() | ![]() | . |
![]() | ![]() | 버락 오바마. |
![]() | ![]() | . |
![]() | ![]() | . |
![]() | ![]() | 올해도 우승을 목표로 열심히 뛰겠습니다. . |
![]() | ![]() | . |
![]() | ![]() | 2009 K-리그 득점왕. |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나 포항제철동초등학교,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위덕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데뷔 초기에는 머리가 길어 골을 넣고 뛰어다닐때 머리 모습이 사자 '심바'의 갈기와 비슷하다는 연유로 '라이언 킹'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신인시절 황선홍의 뒤를 이을 대형 스트라이커로 주목받았다. 1998년 5월 16일 자메이카와의 친선경기에서 후반 34분 황선홍과 교체되면서 처음으로 국가대표 경기에 데뷔했다. 이후, 1998 FIFA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되어 예선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엣하르 다비츠를 따돌리고 강력한 중거리 슛을 쏘아 강한 인상을 준 바 있다.
월드컵이 끝나고 청소년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을 거치며 대표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자리잡게 되고,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 6골로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2002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엔트리에서 제외되어 큰 충격을 받았고, 같은 해에 개최된 2002년 아시안 게임 축구 대표팀에서 주장을 맡아 분전했지만 준결승 이란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이영표가 어이없게 실축하는 바람에 패배하면서 끝내 병역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하여 결국 2003년 광주 상무 불사조에 입대하였다.
2004년 새로 부임한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바레인전에서 골을 기록하고, 2004년 AFC 아시안컵에서 4골을 기록하는 등 여러 좋은 장면을 연출하면서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의 눈도장을 찍었다. 2004년 12월 19일엔 부산에서 열린 독일과의 친선경기에서 멋진 터닝슛으로 결승골을 넣어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이 골은 축구팬들이 뽑은 '2004년 최고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아시안컵과 월드컵 지역예선을 통해 10골 넘게 기록하면서 '본프레레호의 황태자'로 확실하게 부활하였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본프레레 감독의 후임으로 임명된 후에도 대표팀에 소집되어 2006 FIFA 월드컵의 무대를 노렸지만 2006년 4월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입어 월드컵 본선에서의 활약이 끝내 좌절되었다.
이후, 2007년 AFC 아시안컵 엔트리에 발탁되었으나,음주 파동에 휘말리게 되어 국가대표 1년간 자격 정지 및 대한축구협회 주관 대회 2년간 출전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2009년, 징계 기간이 끝나고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자 일부 축구팬들은 이동국의 대표팀 발탁을 바라는 목소리를 높였고 언론들도 이동국의 국가대표 발탁 여부를 조명하기 시작하였다. 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은 "더 좋은 활약을 펼쳐야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히다가, 2009년 말 대표팀 평가전에 다시 발탁하였다. 재발탁 직후 대표팀 전술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8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후 4경기 3골을 넣었고, K리그에서도 개막 이후 5경기 동안 침묵하다가 AFC 챔피언스리그와 인천전에서 연속골(3경기 4골)을 넣는 등 절정의 몰아넣기를 과시했다.
이동국은 2010년 5월 16일 에콰도르전에서 전치 3주의 허벅지 부상을 당하여 월드컵 엔트리 합류 여부가 불투명 하였으나 허정무 감독에 의해 2010년 FIFA 월드컵 국가대표 최종 엔트리 23명에 선발되었다.
조별 라운드 두 번째 경기 아르헨티나전에서 후반전에 교체 출전하여 13분 간 뛰었다. 16강 우루과이전에서도 후반전에 김재성과 교체되어 34분 간 경기를 뛰었다. 후반 40분, 박지성이 연결해준 패스를 받아 골키퍼와 1:1이 되는 결정적인 상황을 맞이했으나 슛이 빗맞아 골키퍼 정면으로 굴러가 막혀버리며 동점골을 넣는데 실패했고 대한민국은 결국 8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1년 9-11월,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이동국을 외면하던 조광래 감독이 여론에 못 이긴 채 그를 발탁하고, 폴란드와의 평가전에서 이동국 맞춤 전술을 구사하겠다고 언론에 밝혔으나, 어울리지 않는 쓰리톱 전술로 후반전 시작과 함께 바로 경기장 밖으로 교체해 내보냈고, 그 다음 경기에서도 후반전 20여분만을 뛰었다. 이동국도 그 이후 대표팀 은퇴를 시사하는 트위터 글을 남기기도 했다.
2011년 12월, 최강희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된 후 부름을 받았고 2012년 2월 25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친선경기에 이동국은 선발로 출전하여 2골을 넣어 최강희 감독의 데뷔전 승리를 이끌었다. 2010년 3월 3일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 이후 약 2년만에 나온 골이었다.
2012년 2월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쿠웨이트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전에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2012년 6월 9일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카타르와의 경기에서는 김신욱의 골을 어시스트하였으며, 2012년 9월 11일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는 1:1 상황에서 역전골을 기록하였다.
첫댓글 은퇴는 고향에서ㅠ
20대가 지나니 얼굴이 많이 나이테가.....
앳된 모습이 그냥 귀엽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