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밤, '한여름의 판타지아'라는 영화를 보았다. 수원의 영화관에서는 하루에 한 차례 상영을 하고 있었다.
그 영화에서 '고조'라는 일본의 도시를 처음 알게 됐는데, 등장인물 말을 빌자면 우리나라의 경북 봉화 정도에 빗댈 수 있는 작고 고즈넉한 곳이다.
나는 그 날 단순히 이 영화 자체가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나를 느끼게 되었다. 시간 사정 때문에 부랴부랴 조조 상영관을 달려가던 날이 아니어서일 수도 있다. 하루를 마친 느긋함과 고단함이 함께 뒤섞였고, 화면 앞에 잠시 눈을 감고 주인공의 목소리들만 들어보는 시도도 할 수 있었다.
영화의 런닝타임이 전부가 아니라 그것을 포함한 나의 시간, 우리의 시간이 새삼스러웠던 건 영화 속 이야기와도 관련이 있다. 영화는 암전을 사이에 두고, 제목을 달리하는 두 개의 이야기로 나뉜다.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고조라는 장소를 답사하고 안내받는 이야기가 하나이고, 고조에서 있었던 어떤 일 -혹은 고조가 배경이 되어 만들어진 새로운 영화 한편-이 다른 하나의 이야기이다.
영화 본 날의 이 느낌은, 지젤이 어느 새벽 글을 고르고 자기 생각을 보태고 하던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다. 꼭 지젤이 아니더라도, 어떤 사람이 그런 행위를 하는 모습, 시간에 대해 생각하니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의 마지막 부분이 떠올랐다.
자기가 이 글을 새롭게 만났고, 그 글쓴이를 추억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어떤가요...? 라고 나직이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은주가 희미하게 웃었다는 글로 기억하고 있는데,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찾아보니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되어 있다.
맥주잔을 들고 가만히 나를 마주 보던 은주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간 환하게 웃었다.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 중에서.
기억과 '사실'의 차이인 것인데, 나는 내 기억을 통해서 새롭게 확인하게 된 이 사실이 반갑다. 내가 왜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맥락을 알겠으니 말이다.
상춘곡을 어떻게 해서 떠올리게 됐는지를 말하는 건 좀더 복잡하다.
나는 요며칠 동안
문학의 일, 그렇다면 문학 너머의 일, 반성의 언어, 판단의 언어, 요구하는 언어,
표현하는 언어, 말해지지 않은 일... 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내 마음 속에 어떤 판단이 일었다.
누군가의 말들을 기다린다.
어떤 말들은 만났고,
만나지 못한(않은) 말들이 있다.
만난 말들에 대해선 또다른 판단이 일었다.
만나지 못한(않은) 말들에 대해서도
판단이 일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나의 말을 어떻게 맺을지 두렵다.
그리고 자신이 없다.
다만, 나도 갖고 있었지만 열어보지 않았기에
잠시 기억 속에 묻어져 있던
어떤 글과, 어떤 이의 마음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만이라고 할 수 있는 내 마음의 역사를)
특별한 시간과 특별한 공간에서 만나게 해준
친구의 새벽 시간에 감사한다.
나는 내가 말해온 방법, 상대의 말을 들어온 방법,
내가 판단하는 과정, 내가 판단의 근거로 삼아온 어떤 것들에 대해
요즘 생각하고 있다.
여전히 두렵지만 마음은 조금 더 가볍다.
그렇다 해도
'진실'이라는 것 앞에 겸허하고자 하는 어떤 사람들의 자세가 자칫
어떤 이의 '진실'과 '용기'를 능욕하게 된다면
같은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인연을 가진 우리는,
나는,
내가 '진실'이라고 더듬더듬 손짚어 가며 믿고 있는 그것이
도대체 '무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부족하게라도,
자신없겠지만,
내보여야겠다고 생각한다.
진실은 어려운 말이라 하더라도
예의라는 말까지 그렇게 어렵게 만들면 안 된다.
------------------------------------------------
나는 내 기억의 불완전함을 확인하며
특별하게 옮겨 적는다.
<향>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글의 첫번째 문단과 두번째 문단을 적는다.
올라가리라 마음먹고 아침에 일어나 짐을 꾸려 놓았습니다. 선운사 동구에서 꼭 열흘을 보낸 셈이군요. 떠나기 전에 마저 씁니다.
조금 전에 나는 만세루를 다시금 참견하고 돌아왔습니다. 거긴 어떤지 모르겠지만 여긴 어제오늘 날이 무척 흐려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공기가 무거워진 선운사 경내는 영산전 목조삼존불에서 퍼져 내린 향내로 이틀이나 내내 신비한 빛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 향내에 발목을 묻고 나는 생각했지요. 이제 우리는 가까이에선 서로 진실을 말할 나이가 지났는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우린 진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깨달은 지 이미 오랩니다. 그것은 한편 목숨의 다른 이름일 겁니다. 그러니 이제는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아무한테나 함부로 그것을 들이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것은 자주 위험한 무기로 둔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여기 와서 알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멀리서 얘기하되 가까이서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야 서로의 생에 대해 다만 구경꾼으로 남은들 무슨 원한이 있겠습니까, 마음 흐린 날 서로의 마당가를 기웃거리며 겨우 침향내를 맡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된 것이지요.
- 내 기억 속의 제목은 <상춘곡, 1996>인 <상춘곡> 중에서.
첫댓글 벌써 이십년 전 소설이 되어버렸지만, 오히려 이제사 더욱 깊게 와 닿네요..^^ 이전엔 반만 읽었나 봐요..작가가 그 글을 쓴 나이쯤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근사치 이해가 가능한가 봅니다.
진실과 마주하려면 언제나 큰 용기와 체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그에 도달하기엔 아픈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
<외딴방>에서 소설가가 된 '나'는 "왜 너는 여공시절의 우리 얘긴 쓰지 않니? 우리가, 그 시절이 창피한 거니?"라는 공장시절 친구의 전화를 받고, 밤마다 이마에 낙숫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같은 고통을 느낍니다..괴롭고 고통스런 시간일 거라 생각합니다..그것도 본인이 찾아가는 진실의 경로에 어떤 한 조각이 아닐까하는.
지난 주말 저는 시네큐브에서 <트립 투 이탈리아>라는 유쾌한 영화를 보았는데, 옆관에서 상영 중이던 <한 여름의 판타지아>에도 마음이 쏠렸더랬습니다..보면 또 같이 나눌 얘기들이 피어나겠죠? ^^
그리고 곧 진짜 봐요 우리.. ♡
시간이 너무 빨라요 ×.×
어쩌면 우리 서로 봤을 수도 있었겠네요. CGV 동수원이겠죠? 그 일본 영화를 보러 가려다가 막내와 함께 <쥬라기월드>를 볼 수밖에 없었기에 집 근처로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영화 속 시간과 현실의 그것. 결국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로 까지 전이가 되었네요.
문학과 진실에 대한 얘기는 얼굴 마주보면서 나누고 싶네요.
극장에서도 발길이 엇갈리네요. 트립 투 이탈리아는 서울나들이가 요구되니 보류, 쥬라기월드는 12세관람가라 면제!라고 나름 이유를 달면서 말이에요.
영화를 그닥 자주 보는 편이 아닌데, 그렇게 만난 영화가 이토록 몇날 며칠 말을 잃게 만들 때, 먼 곳에 새로운 곳에 갈 이유가 없구나 하게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