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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궁 제 17장
第 17 章 장군부(將軍府).
2.
성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줄줄이 몰려나와 굴비엮듯 끌려가는
만천 등을 구경했다. 그들은 곧 관아로 압송되었다.
성주나 관리들은 이번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저간의 사
정을 잘 알면서도 사건을 은폐하고 확대 왜곡하여 반란으로 몰아붙
였다. 그러나 반란의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더우기 백성들은 점
점 화를 내고 있었다. 죄가 있다면 배가 고픈 것이요, 만천은 수재
민을 돕는데 앞장섰을 뿐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만천이 투옥 되
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백성들은 더욱 크게 관을 성토하기 시작했
다. 자칫하면 성 안팎에서 폭동이 일어날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관아에서는 만천을 어떻게든 폭동의 주동자로 몰아가려 했다. 수
재민 구호사업의 자금줄을 집중적으로 심문했다. 만천은 망설임없
이 후원자들의 이름을 댔다. 익명을 원한 후원자들은 그들중에서
뺐다.
"후원자들중 몽고인들은 한명도 없었소이다."
그 말에는 심문관들 얼굴도 벌겋게 물들었다.
그들은 또 만천과 도일봉을 연결지어 보려고 했다. 청향원 기생집
에 함께 있지 않았느냐? 익명의 후원자는 바로 그자가 아니냐? 그
러나 만처는 고개만 저었다.
심문이 시작된지 보름이 지날무렵. 성안 곳곳에 벽보가 붙었다.
'만천선생은 청렴결백(淸廉潔白)하여 오직 구호사업에만 열중하시
는데, 이제 저들은 우리의 선생을 빼앗아 갔다. 저들은 백성을 보
살피는 관리이면서도 백성을 외면했으며, 오직 사건을 날조하고 조
작하여 선생을 몰아붙이니 이는 하늘도 용납지 못할 일이다. 뜻 있
는 자들은 저들 포악한 몽고달자들에 대항하여 분연히 일어서라!'
대충은 그런 내용이었다. 서명은 장군부로 되어있었다.
낙양은날이 갈수록 술렁거렸다. 바람이 꽉 들어찬 풍선 같아서
건드리기만 하면 뻥 터져버릴 것 같았다. 더욱이 만천의 후원자가
ㄷ렀던 몇몇 유지들이 만천을 변호해 주었다.
성주는 더 이상 만천을 잡아둘 수 없었다. 한달가량 잡아둔 성주
는 만천을 풀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낙양을 떠나서도 안되
고, 무리를 모아서도 안된다는 단서를 붙여두었다.
만천은 황하가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돌아온 만천을 보고 기뻐 춤
을 추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워 했다. 자신들 때문에 죄없는 만
천이 그 곤욕을 치루었기 때문이다. 본래 말라있던 만천의 몸은 이
제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만천은 위로를 받고 위로 해주며 다시
일을 시작했다. 신해수는 이미 돌아와 먼저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물은 곧 빠지기 시작했다. 황토가 달라붙은 벼들이 드러났다. 사
람들은 어떻게든 벼들을 구해보려 했다. 무너진 제방도 쌓기 시작
했다. 사람들은 미안한 감정 때문에 만천의 말을 더욱 잘 따랐다.
이백명이 넘는 군졸들이 갑자기 나타나 만천과 수재민들을 감시했
다. 마카바스란 자와 노군관이 책임자로 나타났다. 만천에게 인심
이 쏠리는 것을 막기위해 성주는 천여석의 구휼미도 내놓았다. 만
천과 신해수등은 산채로 올라갈 수가 없게 되었다.
어느날.
만천은 힘든 하루를 보내고 거처로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하란이
반갑게 맞아주며 준비해둔 음식을 내놓았다.
"가서 신선생을 불러 주시겠소? 함께 식사나 하잔다고 전하구려."
"네."
하란은 만천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족했다. 하란은 곧 신해수
를 줄러왔다.
"빌어먹을 자식들! 뭐하나 도와주는 것은 없으면서 집 밖에만 나
가면 어딜 가냐고 닥달이야, 닥달이! 에이, 재수없는 놈들."
마카바스란 자는 만천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천을
만나려는 누구나 몸수색을 당하고, 용건을 털어놓아야 한다. 만천
이 웃으며 신해수를 맞았다.
"그러다 지치면 돌아 가겠지요. 그나저나 산채와 연락을 할 수 없
으니 그게 문젭니다."
신해수가 자리를 잡고 앉으며 말했다.
"내 오늘 성 안으로 들어갔다가 손삼여를 만났지요. 그렇지 않아
도 선생을 뵈려 했습니다."
"그래요? 어떻게들 지낸답니까?"
하란이 두사람의 점심을 가져왔다. 신해수가 음식을 먹으며 말을
이었다.
"별 일은 없는 모양입니다. 무삼수가 대장님의 의누이 모녀를 모
셔왔고, 황삼산과 조이강이 계속 몽고놈들을 괴롭히고 있답니다.
주로 개봉이나 정주 쪽에서 일을 벌이는 모양입니다. 또 원강은 성
안에 두곳의 접선지를 확보해 두었답니다. 그리고 대장님은 산채를
옮길 생각을 하고 계신답니다. 하긴, 산채가 좁긴 하지요. 또 새로
운 대원들도 꽤 모집 되었답니다."
"산채를 옮기려면 쉽지 않을텐데요?"
"여러곳을 물색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곳 망산은 넓고 깊어서
적당한 장소가 있긴 있을 겁니다."
만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일은 한달이면 끝이날 겁니다. 제방만 완성되면 모두 돌
려 보내야지요. 더 버틸 식량도 없고요."
"네."
신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천은 일단 산채의 일을 접어두기로 하고, 제방 쌓는 일에만 매
달렸다. 사람들은 낙담하고 힘을 잃었지만 할 일이라곤 제방을 쌓
는 일 밖에 없었다. 올해도 홍수로 인해 황하인근의 논들중 반이상
유실되었다.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올 한해는 또 굶는 수 밖에 없었
다. 만천은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으려고 노력했다.
결코 쉽지않은 일이다.
여름이 갈때쯤 제방은 전보다 더욱 튼튼해 졌다. 험난한 물줄기도
이젠 함부로 넘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쩐단 말인가?
만천은 사람들을 돌려보내려 했지만 돌아가야 집도, 먹을것도 없다
는 것을 만천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떠나려 하지 않았다.
만천 곁에 있으면 하루에 한끼는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천은
안타까와 고개를 저었다.
마카바스가 군졸들을 풀어 강제로 사람들을 해산시켰다. 가슴아픈
일이었다.
군졸들도 곧 철수했다. 그러나 만천은 여전히 감시를 받고 있었
다. 만천은 신해수와 가까운 몇사람을 떠나보냈다. 그리고는 자신
도 짐을 챙겨 하란과 함께 그동안 정들었던 집을 떠났다.
"선생, 어딜 가시는게요?"
만천을 감시하던 사복포졸이 앞을 막았다. 만천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소생이 할 일은 없지 않소? 이 낙양은 더 이상 지긋지긋합
니다. 유람이나 떠날까 하오."
"선생은 이곳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모르시오? 마카바스님에게
보고해야..."
"본인은 죄인이 아니외다. 소생은 이곳이 싫소."
"그래도 소관은 임무가 있는지라..."
"그럼 장포교도 함께 가십시다. 그렇지 않으려거든 가서 전하시
오. 우람을 떠났다고."
"선생!"
만천은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 장포교
는 어쩔줄 모르다가 엉거주춤 만천을 좇았다. 만천은 포구에 당도
했다. 장포교가 할 수 없이 고개를 저었다.
"선생, 어디로 가시오?"
"모르겠소. 발길 닫는대로, 바람이 부는대로 가볼 생각이오. 소생
이 안보이면 성주께서도 마음이 편할게요. 정포교도 잘 있으시오."
"선생도 몸조심 하시오."
장포교는 몸을 돌렸다.그동안 정말이지 지긋지긋 했다. 몽고놈에
게 붙어 만천을 감시 한다고 당한 손가락질이 얼마였던가. 차라리
잘된 일이다. 문책을 당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천은 기다리고 있던 사공을 향해 말했다.
"왕선생. 한바퀴 돌아 제자리로 갑시다."
사공은 바로 그동안 만천을 도와 열심히 일해주었던 왕안수였다.
물을 편하게 한다는 안수(安水)라는 이름을 지니고는 있지만, 그는
이전 홍수로 집과 가족들을 모조리 잃어버린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용기를 잃지않고 열심히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고 만천
은 그를 가까이 두었다. 이미 거처할 곳도 없는 왕안수와 함께 산
채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산채는 그대로 였으나 사람들은 꽤 늘어 있었다. 그동안 만천은
수재민들 가운데 거느릴 식구가 없고 성실한 15세에서 40세 전까지
의 사람들을 골라 한명씩 산채로 보냈었다. 산채식구들은 이미 백
여명으로 불었다.
모두들 만천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도일봉은 만천의 손을 덮석 잡
으며 말했다.
"만천,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어서 와요!"
만천도 반가와서 웃었다.
"모두들 다시 만나니 반갑기 이를데 없습니다. 모두들 건강하니
다행이예요!"
"어서와요, 만천선생!"
"고생 많으셨소이다. 이제 만천선생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소
이다. 허허."
모두들 나서 한마디씩 하며 웃었다.
만천의 명성은 이미 사방에 퍼졌다. 수재민들을 도와준 일 뿐만아
니라, 한달여의 무관 옥살이로 인해 성 안팎 사람들은 모두 만천
설문빈을 우러러 보고 존경했다. 만천이 계면쩍은 듯 웃었다.
"과분한 일입니다. 모두들 도와주었기 때문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만천 설문빈을 이 시대의 활불(活佛)이라고 까지
부르며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만천으로서 그건 너무도 어색한 대우
였다. 도일봉이 크게 웃었다.
"핫핫핫. 그게 모두 우리 장군부의 복이 아니겠습니까! 자자, 들
어갑시다. 모윤은 나가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들이도록 하시오."
모윤이 대답하고 물러갔다. 도일봉등은 안으로 들어갔다. 만천은
곧 왕안수를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
고, 모두들 반갑게 맞아주었다. 왕안수는 다소 놀라는 표정이었다.
만천이 장군부와 연결되어 있는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자리를 잡자 도일봉은 곧 삼랑을 만천에게 소개시켰다.
"이 사람은 내 의누이라오. 남창 청운장에 있다가 무삼수와 함께
왔어요."
"반가와요."
삼랑이 얼굴을 붉히며 인사를 나누었다. 도일봉이 말했다.
"그동안 우리 누이가 친구한명 없어 심심해 하더니만 하란이 좋은
친구가 되겠는걸!"
하란이 방긋 웃으며 삼랑과 인사를 나누었다.
만천은 그동안 물가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모두들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또 한 번 분개하며 몽고인들을 욕했다.
"그리고 말이오. 우린 그동안 산채를 옮기려고 여러곳을 물색했다
오. 여긴 너무 좁고 옹색하거든! 성과 너무 가깝워서 위험하기도
하고요."
"그 말은 신선생을 통해 들었습니다. 적당한 곳이 있더이까?"
"몇군데 있더이다. 모두들 모이면 다시 의논하기로 하지요."
도일봉은 만천을 거처로 안내했다. 만천은 쉬어야 했다. 만천을
안내하고 돌아온 도일봉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삼랑에게 자랑했다.
"어때? 이 오래비가 말한대로 머리에 먹물이 가득한 사람으로 보
이지?"
산랑은 아직도 수줍움을 탄다.
"네."
"그는 이 오래비처럼 무식한 사람이 아니거든. 공부를 아주 많이
했어. 낙양에서 제일가는 수재라고!"
삼랑은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그때 다른 방에서 아기 울움소리가
들려왔다. 향아였다. 태어난지 벌써 일년이 지났는지라 향아는 많
이 컸다. 포동포동 귀엽기 짝이 없었다.
삼랑이 옆방으로 들어가자 도일봉도 따라 들어갔다. 도일봉은 요
사이 삼랑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삼랑모녀를 구한 이후,
도일봉은 그녀들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동안 너
무 소홀히 대해왔다. 청운장 문부부가 있으면 외롭지 않을 것이라
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사람모녀가 산채로 왔을 때 도일봉
은 그것을 알았다.
삼랑에게 있어 문부부는 남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잘 대해 주
었지만 그것으로 홀로된 외로움을 채울 순 없었다. 생각나는건 이
미 죽고 없는 식구들과 일년내내 소식없는 도일봉 뿐이었다. 외롭
고 힘든 나날이었다. 무삼수가 왔을때는 얼마나 기쁘고 반가왔는지
모른다. 남모르게 눈물도 많이 흘렸다. 도일종은 삼랑의 핼슥해진
모습을 보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욱 잘 대해주고 싶
었다.
삼랑이 향아를 안자 울움은 곧 그쳤다. 잠이 덜 깬 모양이었다.
"어디, 삼촌이 한 번 안아볼까?"
삼랑이 미소를 지으며 아기를 건네주었다. 아기는 도일봉이 안자
마자 다시 울움을 터뜨렸다. 흔들고 얼러 보았지만 더욱 크게 울기
만 했다. 도일봉은 아기를 엄마에게 넘겨주었다.
"이녀석은 아무래도 이 시커먼 얼굴이 싫은 모양이야."
삼랑이 아기를 추수리며 말했다.
"오라버니가 싫어서 그런게 아니라 아직 낮이 설어서 그래요."
아기는 아직도 울었다. 목소리가 대단히 우렁차다. 계집아이 같지
가 않았다.
"계집아이가 목소리 한 번 크구나. 커서 여걸이 되겠는걸! 젖을
주지 그래? 젖을 주면 울지 안잖아?"
"아니예요, 아니예요. 향아는 배가 고파서 우는게 아니예요!"
삼랑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혔다. 도일봉이 웃었다.
"핫핫. 누이는 여전히 부끄럼을 많이 탄단 말야. 우리동네 마누라
들은 아무데서나 젖을 주곤 했지. 하긴, 무식한 여편네들과 누이가
같겠어?"
"...."
"그나저나 누이 얼굴색이 아직도 좋지않아. 좀 쉬어요. 내 갈게."
"저는...아무렇지도 않아요. 여기 오게 되어 기뻐요."
삼랑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도일봉은 삼랑의 그런 애초로운 모
습이 마음 아팟다. 그동안 얼마나 홀로 외로웠을까? 도일봉은 삼랑
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누이야. 너무 마음 상하지 말아라. 그동안이 오래비가 얼마나
무심했는지 잘 알고 있어. 이제 부터라도 잘해줄게. 무슨 필요한
것은 없을까? 좋아하는건 뭐지? 보석을 사줄까? 근사한 집을 지어
줄까? 예쁜 옷을 사줄까? 말만 하라고. 내 다해줄게."
"아니예요, 오라버니. 저는...오라버니를 보게 되어 무척 기뻐요.
아무것도 필요한게 없어요. 여기가 좋아요..흑!"
삼랑은 도일봉의 품에 얼굴을 뭏고 울움을 터뜨렸다. 삼랑이 어깨
에 기대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도일봉 뿐이었다. 떨
어져 있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이 의오래비를 보고싶어 했던가.
삼랑은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연씨가문으로 시집을 왔다. 물론 시
집오기 전까지 남편될 사람의 얼굴도 몰랐다. 거의 대부분의 부부
들이 그렇듯 삼랑도 얼굴도 모른체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으며 살았
다. 살다보니 정도들고 책임감도 생겼다. 가문의 교훈대로 남편을
받들며 살림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엇다. 그리고 그 끔찍한 사고가
터ㅈ다.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었다.
삼랑은 그 참변이 있고나서 사람들과 함께 있을 웃고 울며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는 너무 외롭고 두려
웠다. 청운장의 문부부가 잘 대해주었지만 외로움을 달래주진 못했
다. 외로움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다. 식구들이 그리웠다. 자신을
혼자두고 죽어버린 남편이 원망 스러웠다. 그리고 그가 보고 싶었
다.
까만 피부, 작은 체구에 불타는 듯 빛나는 두 눈, 밝은 웃움과 약
간의 멍청함, 그런 것들이 그리웠다. 여직껏 누구를 그리워 해본적
이 없는 삼랑에게 이건 새로운 세게였다. 그리고 충격이었다. 그에
대한 감정이 어떤때는 어려움에서 구해준 마음좋은 오래비 같기도
했고, 어떤때는 남편에게서 느꼈던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삼랑은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움이 사무쳐
병이 되었다.
무삼수가 와서 도일봉에게 가자고 했을 때, 삼랑은 터져나오는 눈
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원망스럽기도 했고, 너무도 반갑기도 했
다. 그리고 산채로 와서 도일봉을 보았을땐 참을 수가 없었다. 가
슴에 파고들어 펑펑 울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도일종을 한 남
자로써 그리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도일봉이 다정스럽게 위로해 주었을때도 참을 수가 없었다. 안되
는줄 알면서도 삼랑은 도일봉의 품에 파뭏혀 울었다.
삼랑은 도일봉을 꽉 끌어안았다. 도일봉이 등을 토닥여 주었다.
"누이, 그만 울어요. 엄마가 우니까 아기도 따라우는걸? 어디 말
해봐요. 뭘 해줄까, 응?"
도일봉은 거친 사람이다. 세심한 감정의 변화나 사랑을 알지 못한
다. 그가 비록 교영을 좇아 다니고는 있지만 그것이 애뜻한 애정은
아니었다. 다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아직 애정의 변화무쌍
함을 알지 못했다.
삼랑은 그제서야 도일봉에게서 떨어져 얼굴을 붉혔다. 코를 훌쩍
거리며 아기를 달랬다. 삼랑은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오라버니. 제가 괜시리...잠시 나가계세요."
"왜 쉬려고? 그럼 푹 쉬도록 해요. 내가 자리를 깔아줄까, 응?"
"아니에요, 아니예요. 향아에게 젖을 주려고..."
"하! 부끄러워서 그러는구만. 내가 보면 안될까? 하하, 나갈게,
나갈게. 잘자라고. 향아도 잘자고."
도일봉은 향아의 도톰한 볼을 가볍게 쥐어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오며 한마디 해주었다.
"헤헤. 누이가 안보여줘도 나중에 누군가는 보여주겠지."
삼랑은 그 말에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래간만에 산채의 모든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소두목들만
한자리에 모였는데도 열명이 되었다. 도일봉과 만천 설문빈. 무삼
수와 모윤. 황삼산과 조이강. 원강과 손삼여. 신해수와 새로 들어
온 왕안수까지. 왕안수는 만천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인해 소두목이
되었다.
도일봉이 소두목들을 돌아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그동안 모두들 수고가 많았어요. 일이 잘 풀려가는 듯하여 기분
이 좋습니다. 한사람씩 그동안의 경과에 대해 말해보시오."
먼저 원강과 손삼여가 나섰다.
"성 안은 아직까지도 벌집을 쑤셔놓은 듯 합니다. 그놈들은 우리
가 개봉이나 정주에서 일을 벌였는데도 여전히 성 안팎을 뒤지고
있어요. 우리의 본거지가 낙양이라고 확신하는 모양입디다. 각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날 것 같아요."
"성 안에 이미 두 곳의 접선지를 확보해 두었습니다. 객점을 한곳
인수했고, 술집도 한곳 인수 했습니다. 성 밖에는 여러곳의 노상주
점을 개설 했습니다. 그들은 정보를 전해주지만 우리가 누군지는
모릅니다."
만천이 입을 열었다.
"외부인과의 접촉시에는 항상 점조직을 이용해야 합니다. 접선지
가 발각되어도 산채는 지켜야합니다."
조이강이 나섰다.
"낙양과 개봉, 그리고 정주에서는 우리도 제법 알려지기 시작 했
습니다. 사람들은 은근히 우리들을 후원하고 있어요. 하긴, 몽고놈
들을 털때마다 재물만 가져오고, 곡식들등은 거리에 쏟아 사람들에
게 나눠 주었으니까요. 몽고놈들만 길길이 날뛰고 있습니다."
먼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보이지 않는 협조자들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의
진정한 협조자라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백성들을 돕은 것을 첫째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번엔 무삼수가 나섰다.
"바깥 세상은 정말 어지럽습니다. 그중에서도 의혈단(義血團)의
횡포가 가장 극심합니다. 놈들은 마치 걸신들린 거지떼처럼 작은
문파들을 병합하고 있어요. 무력을 쓰기도 하고, 회유도 하지만 놈
들의 행동은 그야말로 은밀해서 종적이 없습니다. 워낙 철저한 비
밀결삽니다."
무삼수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다음 문제는 바로 무림문파간의 분쟁입니다. 벌써 여러해
동안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만, 서로들 양보를 모릅니다. 벌써 원수
처럼 된 곳도 여러곳 입니다. 정말 한심한 작자 들이외다!"
도일봉이 탁자를 꽝 후려쳤다.
"세상은 그런 놈들이 다 망쳐 놓는 것이다! 쥐뿔도 없는 것들이
그저 자기만 잘났다고 아웅다웅 이란말야. 그런 개새끼들 과는 알
고 지낼 필요도 없어. 몽고놈들보다 오히려 그런 놈들이 더 못난
자들이다. 먼저 그런 놈들부터 싹 쓸어 버려야 해!!"
도일종이 갑자기 호통을 내지르자 모두들 어리둥절 해졌다. 만천
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장의 말이 옳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을 욕할때가 아니지
요. 산채를 새로 구하고 있다던데요?"
이번엔 모윤이 나섰다.
"본인은 그동안 이곳 망산을 주욱 둘러 보았습니다. 몇군데 마음
에 드는곳이 있긴한데 어느 한곳을 찍어 결정할 순 없었소이다."
도일봉이 나섰다.
"만천과 함께 다시 돌아보도록 하시오. 산채를 빨리 구하는 것이
우리에겐 유리합니다. 모두들 자기 할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
다는 것은 압니다. 앞으로도 잘 할 것을 믿어요. 무엇보다도 우리
는 장군부의 명예를 떨어 뜨려서는 안됩니다."
다음날.
만천과 모윤은 산채를 쓸 곳을 물색하기 위해 나갔다. 그들은 열
흘쯤 지나서야 돌아왔다. 기분이 좋은 표정이다.
만천은 도일봉 앞에 한 장의 지도를 꺼내 놓았다. 그린지 얼마 되
잖는 계곡이었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있고, 계곡안엔 넓은 분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물도 있고, 소택지도 있었다.
"산채로선 좋은 위치입니다. 천명은 충분히 들어가 살 수 있습니
다. 낙양성에서 백여리, 황하와도 인접해 있어요. 밖으로 나가긴
편하고, 방어하기 좋은 곳입니다."
도일봉이 만천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건물을 세우는 것 아니겠소? 공사가 벌어지면 비밀이 세
어나갈 것인데?"
"소생에게 맡겨주면 일년안에 산채를완성시켜 놓지요. 자금만 있
으면 가능합니다."
"자금이야 충분합니다. 꽤 많이 벌어 들였어요. 어쩌시려오?"
"지금도 떠도는 유랑자들은 많습니다. 그들을 쓰면 어렵지 않을
것이예요. 그들을 감독할 인원만 있으면 됩니다."
"자신이 있다니 맡겨야지요. 우선 산채의 대원중 반을 데려가시
오. 나는 이곳에 있겠어요.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또 만천에게 수고를 끼쳐야 하겠구려. 신해수와 왕안수를
딸려 보내리다."
"그들이라면 좋습니다."
"우리 장군부가 평생 살아야 할 집이니 튼튼하게 지어야 합니다."
"그러지요."
만천은 웃으면서 두명의 소두목들을 데리고 떠나갔다.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합니다,고맙습니다,
잘보았습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잘밨어요
즐감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요
천명의 거처를 신축할 장소 ???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