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5. 12. 27. 토요일.
오늗도 무척이나 추워서 나는 외출하지 못한 채 아파트 안에서만 지냈다.
내 방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 뉴스를 보고, 또 <한국국보문학카페>와 <내 고교 여자친구 카페> 두 군데에 들락거렸다.
내 고교 카페에서는 오로지 나 혼자만 활동하며, 내 글 저장창고로도 활용한다.
<한국국보문학카페> '등단시인방'에 오른 시를 보았다.
엄마
김병환
내가 거듭 읽었으며, 댓글 달았다.
시에서 나오는 '엄마'라는 말이 정겹기에 내 글감으로 활용한다.
내 댓글 :
제목 포함 6개의 연에서 글자 숫자 총수는 75개 쯤이군요.
대단한 언어마술사.
어머니에 대한 회상으로 아주 어린시절로 되돌아갔군요.
엄마라는 말에 독자인 나도 고개를 끄덕합니다.
제 어린시절의 입말이기에.
엄마, 엄니, 어무이, 어미, 어메, 어멈, 에미, 애미, 어마니, 어머이, 어무니, 오매, 오머니,
어머니, 어머님 등으로 부르지요.
김 시인의 어린시절의 회상을 구체적으로 글 쓰면 더욱 좋겠지요.
최소한 1,000자 쯤. 사실대로 설명하면 독자의 이해력이 많아지겠지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엄지 척! 하면서.
긴 줄의 글 ...... 기다립니다.
어머니를 뜻하는 충남 방언이다.
남한과 북한의 방언을 모두 수집하면 그 양은 무척이나 많을 것이다.
2.
나는 서해안 충남 보령의 산골 한적한 시골 태생이다. .
국민학교(요즘에는 초등학교) 시절에 어머니와 헤어졌다.
1960년 봄 쌍둥이 형제는 울면서 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충남 보령 웅천역으로 나갔고 기차 타고 대전으로 갔다.
대전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했고, 서울에서 대학교를 졸업했다.
나와 쌍둥이었던 동생은 서울에서 같은 대학교 국문학과에 다니다가 여름방학 때 고향집에 내려왔고, 저녁 무렵에 바깥변소에 가다가 뱀 물려서 다음날 충남 대천병원에서 죽었다. 만20살.
형인 나는 지금껏 산다. 2025년 12월 현재 집나이 일흔여덟살 만76살. 얼마 뒤 내년 1월 말쯤이면 만77살이 된다.
내 어머니는 일평생 차 멀미를 심하게 했다. 차 타는 것을 무척이나 힘들어 하셨기에 고향집에서 혼자서 사셨다.
나는 객지에서 학교 다니면서 방학 때라야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만나서 잠깐씩 살았다.
내가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다가 주말을 이용해서 고향에 내려가서, 혼자 사는 어머니와 잠시 만났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했다.
수십년 간.
내가 정년퇴직한 뒤에서야 고향에 내려갔을 때에는 어머니 나이는 아흔살. 극노인이며, 치매기가 이미 상당히 진행 중이었다.
어머니와 둘이서 몇 해 살았다.
2024년 2월 초 내가 대상포진을 앓는 바람에 서울에서 치료 받으려고 급하게 서울로 올라왔다.
어머니도 졸지에 같은 차를 타고서 서울로 올라오셨다.
여름철 어머니한테 목에 음식물이 걸리는 응급사태가 발생했기에 서울 송파구 잠실의 소방서 차를 타고는 송파구에 있는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으로 신속히 갔고, .......
의사는 하도 늙어서 더 이상의 치료가 어렵다며 퇴원을 강요하기에, 민간 응급차를 대절하여 어머니를 충남 보령아산병으로 모셨다.
고향집에 가까운 곳에 있기에.
병원에서 여러 달 입원하셨으나 뇌상태는 오래 전에 멈췄다.
음력 섣달 그믐이 생일인 어머니는 집나이 아흔일곱 살(먄95세)을 맞이한 지 며칠 뒤 충남 보령아산병원에서 돌아가셨다.
2015. 2. 25. 밤 11시 45분.
의사의 사망진단을 받고는 그참 고향의 웅천장레식장으로 모셨다가 2월 27일 아침에 고향 죽청리 선산 아버지 무덤에 합장했다.
아들은 나 혼자 딸은 셋.
상주가 된 나. 혼자서 초상을 바쁘게 치뤄야 했다. 고향의 사촌동생, 큰당숙, 동네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상여와 매장....
2025년 12월 27일 오늘.
내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는 만10년도 넘었고, 내년 2026년 2월 25일에는 만11년째이다.
내년 2월에도 서울에서 어머니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가 만10년이 넘었으니 어머니에 대한 내 기억은 자꾸만 희미해진다.
위 김병환 시인의 시를 거듭 읽으면서 만10년 전에 돌아가신 내 엄니를 잠깐 떠올린다.
.............
나는 등허리뼈 굽혀져서 아픈 통증으로 절절매면서도 글을 빠르게 읽고, 나도 빠르게 쓴다.
딱딱한 정치외교학이나 전공했고, 공직자로서 행정(국방안보)업무를 수행하다가 정년퇴직한 사람이라서 그럴까?
우리말에 대한 국어학 지식은 별로 없다. 긴 글은 빠르게 읽어도 이해를 하지만서도 길이가 아주 짧은 시는 별 느낌이 없다. 내용이 머릿속에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기에. 상투적인 낱말은 구체성이 적다.
문학 글은 6하원칙(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등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독자가 빠르게 읽어도 그 뜻과 이미지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그 뜻을 오래토록 기억하였으면 싶다.
나중에 보탠다.
잠시라도 쉬자.